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67
“정확히 반 토막이 났군.”
유리엘의 말에 대천사들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 세상을 지탱하는 8개의 원천 개념.
하지만 이제 그들 각자는 정확히 대비되는 자신의 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증폭은 소멸을 잃었고, 파괴는 탄생을, 분해는 결합을, 빛은 중력을 떠나보냈다.
빛의 대천사 레이엘이 물었다.
“대천사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앙케 라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 하지만 이제 라는 없습니다. 반쪽짜리 백경을 소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르가 얼음의 장벽을 깼다.”
이카엘의 말에 천사들의 성광체가 경직되었다.
“특별한…… 율법이 작용한다고 하지 않았나?”
사티엘이 알기로 니플헤임의 얼음 바다는 영혼마저 얼어붙는 절대 부동의 세계였다.
“어차피 이미르를 가둘 만한 곳은 아니었어. 그가 얌전히 있었던 이유는 앙케 라 때문이 아니다.”
유리엘이 말했다.
“의미가 없으니까.”
자신을 파괴할 정도의 대상이 없다면 이미르 또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레이엘이 유리엘을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의미가 생겼다는 말이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천국이 아닌 곳에서.”
대답을 해 줄 사람은 이카엘뿐이었으나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한참이 지난 후에 사티엘이 입을 여는 순간, 백경의 공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지?”
대천사들의 성광체가 광륜으로 확장되고 날카로운 시선이 주위를 살폈다.
“왔구나.”
오직 이카엘만이 태연했으나 그녀의 눈빛은 여느 때와 달리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진동이 강해지면서 백경의 공간에 2개의 손이 불쑥 들어왔다.
사티엘이 벌떡 일어났다.
“누구냐!”
백경은 대천사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순결한 정신의 집합으로 탄생한 장소.
어떤 불순물도 그 정신을 찢고 들어올 수 없었다.
“크으으으!”
투박한 두 손이 백경의 공간을 벌리자 천사들의 성광체가 좌우로 흔들렸다.
“누구긴 누구겠어?”
마침내 목소리가 흘러들어 오고, 그 시점에서 모두들 깨달았다.
“바로 나지.”
거인의 왕 이미르가 백경을 찢어 내듯 벌리며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흐윽!”
벽은 순식간에 아물었으나 이미르라는 이물질의 침투는 천사에게 지독히도 불쾌했다.
“미친 것이냐, 이미르?”
천사의 정신에 물리적인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르가 가이아인의 결합이기 때문.
그에게 있어 힘이란 생물의 완력을 넘은 순수한 에너지 그 자체였다.
“여기 있을 줄 알았지.”
유리엘의 도발을 무시하고 이미르는 이카엘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말이야.”
“…….”
비로소 이카엘의 입술이 열렸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냐?”
“전쟁.”
이미르가 이카엘에게 다가갔다.
“나를 보내 줘. 너라면 할 수 있지?”
인간이 만든 시온이라는 조직이 여전히 천국의 침략을 막아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가장 강력한 방어력을 가진 사람은 미로의 시공을 지켰던 아드리아스 미로였다.
“건방 떨지 마라, 이미르.”
이미르의 눈썹이 꿈틀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너의 개인적인 이유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개인적인 이유라.”
이미르가 이카엘의 어깨를 짚었다.
3명의 천사들이 동시에 일어나 그를 죽이려고 했으나 이미르의 말이 먼저였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사티엘이 가장 먼저 적의를 풀고, 다른 2명의 대천사도 이카엘을 돌아보았다.
“앙케 라의 아카식 레코드는 나네에게 넘어갔다. 그렇다면 천국은 한시라도 빨리 나네를 찾아야 할 터. 그럼에도 당신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지.”
이카엘은 반박하지 못했다.
‘시로네.’
거핀의 의지가 담긴 아이.
“수오이를 통해 대충은 알고 있어. 이카엘, 당신…… 기억을 되찾은 거지?”
앙케 라는 이카엘의 죄를 말소시켰지만 엄청난 증폭으로 모든 기억을 복구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 못하는 거야. 뭐, 그건 좋아. 하지만 한 가지 듣고 싶은 게 있어. 어째서 인간의 아이를 낳은 거지?”
3명의 대천사가 다시 자리에 앉는 것으로, 이카엘은 대답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사티엘이 적의를 담아 이카엘을 노려보았다.
‘나 또한 거핀을 사랑했다.’
이제는 거핀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를 향한 열망은 지금도 정신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야.’
천사는 개념.
이데아 그 자체인 그들이 고작 그림자에 불과한 인간의 아이를 가질 이유는 없었다.
“우선, 시로네는 내 아이가 아니다.”
이카엘이 선포하듯 말했다.
“아이는 이미 죽었어. 탄생과 동시에.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하지만 관계가 없지는 않을 테지?”
이카엘은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앙케 라가 파계를 금지한 이유는…… 누구도 이 세계의 비밀을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비밀도 있나?”
“그렇기에 비밀이지. 심지어 앙케 라조차도. 그것은 접근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이카엘이 검지를 들었다.
“우리는 개념이고, 그렇기에 영원히 존재한다. 반면에 인간은 물질이고 필멸자. 따라서 그들은 우리의 지배를 받고, 영생을 위해 복종한다.”
천국의 율법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면?”
“반대?”
“사실 우리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고, 인간이야말로 영생의 비밀을 깨달은 존재라면?”
대천사들의 성광체가 흔들렸다.
“우리는 그저 인간의 편의에 의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어. 이 세계를 지탱하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백경의 분위기가 폭발할 듯 팽팽해졌다.
“우리는 필멸자가 된다. 이 세계가 닫히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야. 반대로 말하자면…….”
이카엘이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인간이야말로 신인 것이다.”
사티엘이 벌떡 일어섰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저 나약한 인간들이 신이라고? 이 세계가 끔찍하게 싫어서 발버둥 치는 게 인간이잖아!”
“그렇기에 파계할 수 있다.”
“아…….”
사티엘이 물러섰다.
“파계라는 것은 규칙의 예외. 어떤 인간은 이 세계의 특정 규칙을 무시하지. 그리고 그것은 바깥의 세계가 없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야.”
이카엘의 얼굴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여기까지가 거핀의 가설이다.”
사티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거핀.”
“모르겠다. 천사장으로서 거핀과 치열하게 싸웠지.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았다. 그저 하나의 정보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아이를?”
“단지…… 이어 나가고 싶었을 뿐이다.”
광자계를 이탈한 가이아인처럼.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아이는 죽었고, 앙케 라는 대역죄를 저지른 이카엘의 전권을 회수했다.
회상에서 빠져나온 이카엘이 다시 근엄한 얼굴로 모두에게 알렸다.
“앙케 라는 절대로 파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천국이 궤멸되기 직전까지도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앙케 라는 헥사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나는 신이 될 수 없는가? 하지만 헥사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어. 바깥에서 왔음에도, 그는 이 세계를 지키려고 한다.”
어쩌면 바깥에서 왔기 때문일 것이다.
레이엘이 말했다.
“그래서 라께서는 나네를 선택하신 거로군.”
나네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존재.
“처음에는 기다렸다. 그가 우리를 밖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 믿었기에. 하지만 헥사의 장벽에 막히고 말았지.”
“어쨌다느니 저쨌다느니 말이 많아.”
이미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결국은 가야 되는 거잖아. 인간을 모조리 박살 내든, 나네를 따라 밖으로 나가든.”
“그곳에는 사탄이 있어.”
율법 외의 존재.
인간의 모든 혼돈이 흘러들어 탄생한 사탄은 천사에게 최악의 상성을 가진 적이었다.
“하지만 나네가 파계를 허락했다.”
유리엘이 말했다.
“예전처럼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아.”
여태까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이엘이 이카엘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나네를 제외한 어느 누구라도 이 세계를 관철시키면 천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결국은 가야 한다는 것은 이카엘도 알고 있지만 그녀가 여전히 갈등하는 이유는…….
‘시로네.’
지국으로 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헥사와 충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이카엘의 판결을 기다리는 가운데,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군대를 조직하세요.”
천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아탑 대소집(1)
상아탑 400층.
현세가 마족과의 전쟁으로 한창인 지금에도 400층의 자연경관은 한적했다.
인위적으로 구현된 자연의 경관 속에서 사람들은 씨앗을 심고 희망찬 내일을 준비했다.
‘나는 패배했다.’
마을의 외곽에 마련되어 있는 빨간 지붕의 집에서, 시로네는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내가 진 거야.’
을 통해 하비츠를 암살하는 계획이 실패하면서 세계는 파국을 향해 치달았다.
마족에게 죽은 사망자는 벌써 10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시로네는 거기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다.
‘어째서 졌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달한 지점은, 결국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성스러운 야훼의 빛이 얼굴을 감싸고 있지만 아름다운 구체의 형태는 아니었다.
‘참아야 한다.’
만물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박애의 정신.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돼.’
머리로는 깨닫고 있으나 내면의 분노를 잠재운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어느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 때, 정신은 뒤틀리고 경지는 깨지게 된다.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계산을 넘어 박애 그 자체가 된다면 비로소 시로네는 완벽한 자유를 얻게 될 터였다.
“흐윽!”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용서해야 한다. 내가 끌어안아야 해.’
흘러내리는 시로네의 눈물처럼 야훼의 빛방울이 불타는 듯 아래로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인간을 섬멸하라!”
하비츠가 지옥의 군대를 흡수함으로써 구스타프 제국은 명실공히 세계 최강의 군사 강국이 되었다.
내정왕 스모도는 마족의 특성에 따라 10억에 달하는 군대를 재편성했다.
그리고 현재는 발칸의 계획하에 5천만 군대가 카샨의 황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냐? 재미없게 말이야.”
가히 하나의 국가가 통째로 이동하는 수준이었고 인류의 어떤 군대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이면 세계의 괴수 마랑카들이 끄는 거대한 차에는 하비츠와 구스타프 4기예가 모두 모여 있었다.
“우오린.”
제국의 황제가 전장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점령국이 카샨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황성을 점령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되는군.”
하비츠는 사방이 트인 마차에서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운 지옥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한 행렬이었다.
“사탄이시여!”
붉은 꼬리에 날개가 달린 마족이 삼지창을 앞세운 채 비행 부대를 역주행해 다가왔다.
인간의 언어를 배운 전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