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70
“아니, 난…….”
음담패설을 즐기는 성향인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저돌적인 모습은 처음이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아리아나가 미니와 똑같이 앞섶을 풀어 헤치며 다가왔다.
“우리를 믿어요. 이건 과학적인 거니까. 여자 가슴에 파묻히면 모든 번뇌가 사라집니다.”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에 시로네는 덜컥 겁이 났다.
“다들 왜 이러세요?”
“미니, 잡아.”
거대한 손이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으며 다가왔다.
“잠깐! 잠깐만!”
본능적으로 테이블을 밟고 뛰어올랐으나 반대편 손이 날아와 시로네를 움켜쥐었다.
아리아나가 소리쳤다.
“잡았다. 넣어! 넣어!”
“그, 그만!”
미니가 시로네를 앞섶으로 끌어가는 그때, 문이 열리며 몽인 루버가 들어왔다.
“오대성님.”
미니와 아리아나의 동작이 우뚝 멈추고, 시로네가 부끄러운 것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을 붉혔다.
“아, 루버 씨…….”
집 안의 상황을 잠시 둘러보던 루버가 눈웃음을 지었다.
“좋은 시간을 방해했나요?”
“아, 아뇨! 좀 도와주세요!”
시로네를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은 미니가 스케일 마법을 해제하고 말했다.
“흠흠, 그러니까 이게…….”
루버가 미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웃는 표정은 그대로였으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독사처럼 탁하고 어둡게 변했다.
“오대성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말했을 텐데?”
두 여자의 자세에 바짝 군기가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근래 너무 고민이 많으신 것 같아, 그러니까…… 가슴을…….”
“흐음.”
두 사람을 옭아매던 살기가 사라졌다.
“그건 사실이다.”
루버가 시로네에게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대성의 번뇌는 그런 수준이 아니니, 이번에는 너희들이 실수한 것이다.”
미니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평소와 달리 군기가 세다는 것은 루버 또한 대소집의 무게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흐음.’
실제로 루버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2성급이면 알 만하거늘. 장난이나 치고 있다니.’
통합우주관리부에서 유일하게 대소집을 경험해 본 그였기에 경망한 분위기가 달갑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잠시 시로네를 살피던 루버가 눈을 깜박거리더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몽아야, 나오너라.”
루버의 등 뒤에서 계란처럼 하얀 얼굴에 눈동자가 똥그란 소년이 옆으로 튀어나왔다.
키는 다섯 살 아이 정도였고,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눈동자가 일견 섬뜩했다.
“안녕하세요. 꿈 설계자 몽아입니다.”
루버가 시로네에게 소개했다.
“제 위성 몽아입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몽인이지요. 제 밑에서 여러 가지 잡무를 맡고 있습니다.”
미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루버 씨의 위성?’
통합우주관리부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루버의 위성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상아탑에서도 몽인에 대한 정보는 태부족. 그런데도 참가한다는 것은 역시…….’
아리아나도 느꼈다.
‘이번 대소집은 장난이 아니다.’
별의 칭호를 받은 자들, 그중에서도 오대성은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다.
각자의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행위는 무한에 가깝고, 그렇기에 아군은 많을수록 좋다.
“꿈 설계자라고요?”
시로네가 관심을 드러내며 몽아를 내려다보는 그때, 소년의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지어졌다.
동공을 끝까지 올려 시로네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뭐지?’
시간이 점차 느리게 흐르는 가운데 몽아만이 입을 크게 벌리고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아이의 얼굴이 검은 액체로 풀어지며 시로네를 덮쳤다.
‘피해야…….’
마치 꿈처럼, 생각을 하는 순간 동작이 느려지며 검은 액체가 시로네를 뒤덮었다.
‘간단하네, 오대성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선인 렘 영역에 직접 침투하는 것은 오직 몽인만이 가능하다.
또한 다른 정신 계열 마법사와 달리 절대로 회피할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강점이 있다.
‘꿈에서는 내가 위라고.’
악몽, 마귀.
몽아의 능력 중의 하나로, 꿈을 꾸는 자의 불안한 감정을 빨아들여 덩치를 키운다.
크르르르르.
내면의 야수가 눈을 뜨고, 시로네가 머금고 있던 온갖 울분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끝도 없이 커지고 있다.
어떤 인간의 꿈에서도 접하지 못했던 거대한 분노에 몽인조차 일순 통제권을 상실했다.
‘야훼라며? 무슨 박애가 이래?’
우주 전체를 파괴해도 풀리지 않을 울분 앞에서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위험한데. 이러다 이 인간 죽어요.’
루버는 사정을 봐주지 말라고 했다.
‘에라, 모르겠다!’
악몽의 필터를 제거하자 억눌려 있던 시로네의 감정이 가히 빛의속도로 팽창했다.
“으아아아…….”
몽아는 자신의 덩치가 얼마나 커졌는지를 새삼 깨닫고 겁에 질렸다.
꿈에는 한계가 없음에도 자신을 이루는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런 걸 품고 사는 건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버틸 수 있는 거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미 시로네는 숨이 끊어져서 꿈의 세계가 닫혀야 했다.
‘어디 있는 거야?’
몽아의 품에 갇혀 있지만 덩치가 너무 커서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한참을 집중하던 몽아는 마침내 어둠에 파묻힌 시로네의 모습을 느꼈다.
끔찍한 악몽을 꾸면서도 시로네는 그저 차분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이것이 야훼의 정신?’
분노가 없는 게 아니다.
‘그냥 감당하고 있어.’
수많은 악몽을 설계한 몽아지만 이것처럼 섬뜩하고 무서운 건 처음이었다.
시로네의 두 눈이 천천히 열렸다.
“사랑.”
시간이라 부를 수 없는 순간 속에서, 가느다란 섬광이 마귀의 어둠을 꿰뚫었다.
그때까지도 몽아는 느끼지 못했다.
‘어라?’
까마득히 먼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자극.
“어? 어어?”
몽아가 깨닫는 순간 섬광의 크기가 빛의속도로 확장되며 마귀는 물론 세계 전체를 태워 버렸다.
“으아아아아!”
찰나의 꿈이 끝나고, 비명을 지른 몽아가 충격을 받은 듯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으아아! 으아아!”
미니와 아리아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반면 루버의 표정은 심각했다.
‘악몽을 설계하는 몽아가 겁에 질렸다.’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을까?
정답은 차분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시로네의 두 눈동자가 말해 주는 듯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시로네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몽아의 태도를 보고 루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다.’
몽아는 이 세상에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을 시로네의 마음에서 봐 버린 것이다.
‘위태로운 양날의 검.’
결국 박애가 어떤 이유로든 깨지는 순간, 이 세계는 끝나 버릴 터였다.
“야훼의 노여움을 샀구나, 몽아.”
남의 일처럼 말하는 루버의 태도에 몽아가 서럽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는지 루버가 시로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죄송합니다. 대소집을 앞두고 제 노파심이 컸습니다.”
“지독한 악몽이네요.”
말과 달리 눈빛은 고요했다.
‘이 정도라면 이번 대소집, 해볼 만하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미니와 아리아나가 조금 긴장이 풀어졌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인류 탄생 이래 두 번째 상아탑 대소집입니다. 아마도 현재 정세에 대해 논의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루버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회담의 분위기는 시로네 님을 징벌하는 식으로 흘러갈 공산이 큽니다.”
미니가 물었다.
“징벌요? 오대성을 누가 징벌해요?”
“물론 태성님은 아니지. 하지만 다섯 부서의 오대성이 전부 모이는 자리네. 의 실패 건으로 상황이 악화되었으니 분명 그것에 대해 물고 늘어질 터.”
“각오하고 있어요.”
시로네의 말에 루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오대성님이라면 능히 그들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걸 받으시지요.”
루버가 을 꺼냈다.
“시로네 님이 등재한 물건입니다. 어느 하나 허투루 대비해서는 안 되는 자리이니 가져가십시오.”
또한 이번 대소집에 유일한 아군이라 예상되는 미네르바와 접점을 만들기에도 좋았다.
“그런데 아직 1명이 안 왔는데요?”
통합우주관리부에 소속되어 있는 별의 숫자는 4명이라고 들었다.
“죄송함다!”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성이 들어왔다.
미니가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왜 이렇게 늦어?”
“네! 늦었슴다! 정말 죄송함다!”
허리띠로 조이는 허름한 무도복을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산골 소녀였다.
개구리 뒷다리처럼 토실토실한 넓적다리를 보고 있던 시로네가 루버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네. 통합우주관리부 1성급 주민 키라입니다. 언데드 마법사이지요.”
키라가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심까! 키라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잠시 후 2미터가 넘는 거대한 해골이 성큼성큼 들어와 키라의 어깨를 짚었다.
“제 위성 에트론임다! 산에서 주웠슴다!”
해골이 인사 대신 딱딱 턱을 부딪쳤다.
“시로네 님과 저, 미니, 키라. 이렇게 4명이 통합우주관리부에 속해 있습니다. 별의 숫자는 총 12개가 되지요.”
“별의 숫자요?”
“부서마다 별의 총개수는 다릅니다. 위세의 척도가 되기는 하지만, 신경 쓰지 마십시오. 4성이 없는 부서도 있으니 절대적인 수치는 아닙니다.”
‘우리 부서가 높지는 않은가 보구나.’
루버가 별들에게 말했다.
“태성님을 포함한 상아탑 27명이 모두 모이는 자리다. 절대로 긴장을 늦추지 마라.”
“네!”
별들과 위성들이 씩씩하게 소리쳤다.
상아탑 대소집(4)
상아탑의 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내정부의 아라카가 공간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로네.”
인류안전집행부의 미네르바가 시로네 일행을 맞이했다.
“미네르바 씨.”
세상사에 초탈한 그녀지만 마녀의 복장을 전부 갖추고 제트를 들고 있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다.
루버가 별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또 뵙는군요.”
가볍게 묵례한 그녀는 통합우주관리부의 별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다른 자들은 얼추 눈에 익었으나 키라는 미네르바에게도 생소했다.
‘저 애가 키라구나.’
시체수집가 성 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