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71
언데드 계열의 마법사로, 한때 제2의 미네르바라고 불렸던 재앙적인 인물이었다.
“안녕하심까! 처음 뵙겠슴다! 키라입니다!”
상아탑에서 활동한 경력도 꽤나 되건만 여전히 군기가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섬뜩했다.
“그래. 앞으로 잘 지내보자.”
그저 인사치레지만 대소집을 앞둔 상황에서는 명백한 목적을 가진 언사였다.
미니가 턱을 괴었다.
‘하긴, 미네르바 씨도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니 발을 뺄 수는 없겠지. 운명 공동체인가.’
시로네는 인류안전집행부의 면면을 확인했다.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성 뇌와, 그것의 뒤편으로 흉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포진해 있었다.
“저분들은?”
미네르바가 고개를 돌렸다.
“아, 소개할게. 인류안전집행부의 별들이야. 이쪽은…….”
소개가 시작되기도 전에 얼굴에 수많은 칼집이 나 있는 남자가 다가왔다.
상아탑 3성급 주민, 도살자라는 별칭을 가진 금속 마법사 라스카였다.
“크크, 누님. 이 녀석이 그 애송이요? 총각 딱지를 직접 떼어 주고 싶다는?”
시로네의 눈총을 받은 미네르바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농담이지.”
라스카가 시로네에게 다가왔다.
“잘 들어, 애송아. 오대성인지 뭔지 나는 신경 안 써. 우리 누님에게 손끝 하나라도 댔다가는…….”
시로네와 시선을 교환하는 순간 섬뜩한 기분을 느낀 라스카가 황급히 걸음을 멈췄다.
‘뭐야, 이건?’
살기는 절대로 아니다.
실제로 순진하게 눈을 깜박이는 시로네의 모습에서는 적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두려워한다고?’
사신의 기운을 뿜어내는 미네르바의 살기에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는 그였다.
‘대체 무엇을?’
알 수 없다는 점이 더욱 공포를 부추겼다.
“쳇!”
라스카가 별의 위세도 잊은 채 물러서자 루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월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군.’
몽아조차 시로네의 렘 영역에서 확인했던 선의 광기를 눈빛만으로 파악했다는 건 확실히 대단했다.
‘역시 3성급인가.’
인류안전집행부는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재앙이나 범죄에 관여하는 자들.
아이러니하게도 성 뇌를 제외하고는 한때 세상을 두렵게 만들었던 악당들이었다.
미네르바가 라스카의 뒤통수를 때렸다.
“아야! 왜 때려요, 누님!”
“그러게 해보지도 못할 걸 왜 덤벼 가지고 이런 추태를 보여? 너 때문에 나만 쪽팔리잖아.”
“아니, 누님이 흥미롭다기에 어떤 건지 보려고 했죠.”
미네르바는 한숨을 내쉬었으나 그녀 또한 시로네의 변화를 직감했다.
‘그래. 너도 미쳐 가고 있구나, 시로네.’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미안해. 대신 사과할게. 보다시피 우리 부서의 인간들이 워낙에 개차반이라서.”
“괜찮아요.”
시로네는 짧게 말했다.
무엇이 괜찮은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어차피 무엇이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미네르바는 인류안전집행부의 별들과 위성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2성급은 없었지만 라스카 외에 3성급이 1명 더 있었고, 1성급의 주민까지 소개를 받았다.
“총 5명. 별의 개수는 16개야. 다섯 부서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지. 통합우주관리부와 더하면 28개. 이 정도면 싸워 볼 만할 거야.”
“싸운다는 건 어떤 의미죠?”
“알다시피 다섯 부서의 역할은 각기 달라. 우리는 재앙과 범죄, 균형부는 세계의 안정, 시스템감찰부는 대국가 전담, 율법부는 말 그대로 율법을 관장하지.”
미네르바가 검지를 들었다.
“예를 들어 강력한 마족이 강림했다면 인류안전집행부와 율법부가 관여해. 만약 강림한 장소가 국가라면 시스템감찰부도 포함. 문제는 저마다 해결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거야.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너희 부서, 통합우주관리부야.”
대대로 태성을 보좌했던 것이 통합우주관리부의 오대성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어. 솔직히…… 처참하게 패배했잖아? 다른 부서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몰라. 그럴 때 별의 숫자는 태성께서 판단할 기준이 될 수 있을 거야.”
“흐음, 판단이라.”
“저번 대소집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소집의 안건의 범위는 세계 전체야. 하비츠는 물론이고 시온의 사정, 나네에 대한 대비책도 세우게 될 거야.”
시로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네를 찾았나요?”
“아니. 태성의 능력 가이아로도 나네의 위치를 포착할 수는 없어. 그의 옆에는 거짓의 신, 슈라가 있으니까.”
십로회의 서열 7위 슈라, 그녀의 게슈탈트라면 세상의 이목을 피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
중부 대륙의 깊은 산속.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천혜의 자연에 밭을 가는 1명의 남자가 있었다.
얼굴은 물론 전신에 빼곡하게 문신을 새긴 자가 곡괭이질을 하는 것은 이색적이었다.
“스승님.”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나네가 허리를 폈다.
“이것 좀 먹고 해요.”
다 떨어진 넝마를 입고 머리에는 수건을 두른 슈라가, 쟁반을 머리에 지고 걸어오고 있었다.
“네가 고생이 많다.”
인간의 사회를 등진 채 깊은 산에 숨어든 지도 시간이 꽤 되었으나 나네의 경지는 조금도 오르지 않았다.
“고생시키는 게 미안하면 빨리 깨달음을 얻으라고요. 지금 바깥은 난리도 아니에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나네가 눈을 돌렸다.
“바깥?”
“하비츠라는 인간이 극악이 되었다고 하네요. 지옥의 군대가 왕국을 초토화시키고 있어요.”
“그렇구나.”
나네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언제쯤 부처가 될 것 같아요?”
“되고자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슈라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드디어 세계의 비밀을 깨달았어요? 그럼 가르침을 내려 주세요! 빨리!”
슈라는 안달이 났으나, 나네는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 전에 확인할 것이 있다.”
나네가 품에서 씨앗을 꺼냈다.
“그건 뭐예요?”
“모르지. 산책하면서 하나씩 모아 온 것이다. 이걸 심으면 싹이 나겠지.”
씨앗을 심은 나네가 흙을 덮었다.
“무엇이 싹틀지는 모르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여기가 시작인 거야.”
나네의 말을 음미하던 슈라가 물었다.
“씨앗을 심는 거요?”
“아니.”
나네는 따스한 눈빛으로 땅을 내려다보았다.
“마음이다.”
씨앗을 심으려는 마음.
‘지금은 이것으로 좋다. 그러니 지켜보자, 시로네. 이 세상이 무엇인지…….’
아직 정의를 내릴 때가 아니었다.
“봄이구나.”
나네가 바라보는 하늘을 슈라의 시선이 뒤따랐다.
***
대지성전에 27명의 별들과 각자의 위성, 내정부의 아라카와 기록관이 자리했다.
태성을 중심으로 부채꼴의 형태로 앉아 있는 그들의 눈빛은 적진에 온 것처럼 투기로 불타올랐다.
“이로써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군요.”
태성의 입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별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태성님을 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저마다의 일가를 이룬 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광경에 아라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엄청나다.’
이들 모두가 하나의 의지로 움직였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니까 문제지.’
그렇기에 시행한 대소집이기도 할 것이다.
“상아탑에서 유일하게 공적인 자리인 만큼 저도 예의를 갖추겠습니다. 우선 현재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의견을 듣기에 앞서, 세계의 정세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죠.”
가이아의 능력을 발동하자 대지성전의 전면에 고도에서 보는 것 같은 지상의 풍경이 드러났다.
아라카가 머리를 짚었다.
“세상에…….”
아무리 거대한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에서, 지옥의 군대가 행진하는 동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략 5천만의 군대가 카샨을 향해, 그리고 중부 대륙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
별들은 말이 없었고, 얼굴은 차분했다.
균형부의 아만타가 입을 열었다.
“마족을 처단하는 것은…….”
“잠깐. 죄송해요, 아만타.”
태성이 말을 끊었다.
“극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여러분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현재 파계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은 3명. 물론 우리도 1명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누구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지만 시로네는 마치 몸이 관통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가장 먼저 살필 것은, 바로 이 사람입니다.”
행성을 손으로 굴리듯 풍경이 빠르게 뒤바뀌면서 남방의 대륙이 비쳤다.
추락하듯 클로즈업되자 시로네가 익히 알고 있는 자들이 지옥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가올드 씨.’
“죽여라! 고작해야 인간이다!”
제단을 중심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마족의 숫자는 어림잡아 수십만은 되어 보였다.
“징글징글하다, 진짜!”
가올드의 뒤를 따라 돌진하는 강난이 이를 악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파괴적인 그녀의 격투 실력 앞에 마족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으나 숫자가 워낙에 많았다.
“강난, 내가 하겠다요.”
줄루의 눈에 검은 물결이 휘몰아치더니 리치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반경 수백 미터에 낙뢰가 떨어지면서 마족들의 괴성이 하늘을 찔렀다.
“크에에에!”
폭죽처럼 터지는 마족들의 시체를 넘어 도착한 곳은 심령권의 중심에 있는 제단이었다.
“왔는가.”
제11군단장 피사로치, 지옥불의 지배자라는 별칭을 가진 강력한 마법사였다.
“군단장님까지 갈 필요도 없어!”
피사로치를 지키는 자들은 하나같이 여단급 이상, 여태까지 물리친 적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했다.
“크으으으!”
피사로치를 눈에 담은 가올드가 이를 악물자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기 시작했다.
“죽어……!”
쿵 하고 땅이 울리면서 사단장의 육체가 액체처럼 납작하게 짓눌렸다.
쿵! 쿵! 쿵!
마치 보이지 않는 철심이 떨어지는 것처럼 사방에서 프레스가 가해지며 적들의 군집에 구멍이 뚫렸다.
“으아아아아!”
가올드의 극기인 대초열지옥이 펼쳐지면서 주위의 풍경이 불의 지옥으로 변했다.
“크하하하! 어차피 여긴 우리들의……!”
또 1명의 사단장이 짓눌렸다.
‘대체 어쩌려고.’
고통에 온몸의 신경이 꿈틀거리는 가올드를 지켜보며 강난이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까지고 버틸 수는 없어.’
가올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미로야.’
전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그에게는 섬광이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내가 끝내 줄게.’
쿠쿠쿠쿠쿠쿠쿵!
수십을 넘어 수백 회의 프레스가 사방을 두드려 대자 장막이 걷히듯 시야가 열렸다.
“한심한 놈들!”
결국 피사로치가 양손에 지옥의 불을 끌어모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
동시에 가올드의 몸이 움찔했다.
‘또…….’
돌진하던 줄루가 강난을 붙잡더니 가올드와 반대 방향으로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피해야 한다요.”
가올드가 걱정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강난은 순순히 몸을 맡겼다.
“흐으으으!”
피사로치가 거대한 불을 집어 던졌다.
“이걸로 끝이다!”
가올드가 피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쳐들었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