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73
“짜증 나.”
단지 그 한마디만으로도 여느 별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움이 있었다.
‘저자가 통합우주관리부의 오대성.’
야훼의 경지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뭐지, 이 불안한 느낌은?’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처럼, 아랫배가 울렁거렸다.
하지만 같은 오대성답게 프리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크크, 박애의 상징께서 입이 거칠군. 짜증 나면 어쩔 건데? 여기서 한판 붙기라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로네가 벌떡 일어나 포톤 캐논을 집어 던졌다.
“흐읍!”
바닥을 박차고 프리드가 물러섰으나 순식간에 순간 이동으로 따라잡혔다.
‘진짜로 해보자는 거야?’
상아탑 별 중에서 유일하게 검과 마법을 동시에 다루는 프리드였으나 반응할 수도 없는 빠르기였다.
‘그래 봤자……!’
오신장의 갑옷 세트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포톤 캐논이 상당한 거리를 두고 비껴갔다.
‘이렇게 된다 이거지!’
동시에 밀착한 거리에 도착한 시로네가 또다시 포톤 캐논을 시전했다.
65퍼센트의 안티매직을 뚫고 빛의 구체가 진동하자 프리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떻게?’
이 정도의 거리에서는 피할 수 없다.
생각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포톤 캐논이 프리드의 복부에 정통으로 처박혔다.
“크으윽!”
복근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치밀어 오르는 순간 거짓말처럼 충격이 사라졌다.
“어?”
프리드가 주위를 둘러보자 모든 별들이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시간을 튕겼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시로네는 원래의 자리에서 프리드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우울증 (2)
‘빌어먹을 자식이.’
프리드의 십자가 투구 아래에 담긴 두 눈에서 거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시간을 되돌렸다고 존재했던 사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시나 오대성.
수치심을 억누르고 조금 전의 사건을 분석하자 확실히 기묘한 부분이 있었다.
한편 상아탑의 별들과 위성들은 말을 잊은 채 프리드와 시로네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프리드가 당했다.’
존재하지 않는 시간대의 사건이지만, 시간의 파계를 모를 만큼 어리석은 자는 자리에 없었다.
‘아니, 정말로 당한 게 맞는 건가?’
사건은 프리드가 일격을 허용한 시점에서 본래의 시간으로 되돌아왔다.
마법사이자 검사인 프리드의 내구력은 다른 별들보다 월등히 높은 만큼 의문이 남았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시로네의 공격을 직접 받은 프리드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이상하다.’
프리드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위화감.
‘시간의 파계. 시간선을 진동시켜 미래를 과거로 잡아당긴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포톤 캐논의 궤적, 시로네의 순간 이동이 자신의 지척에 도달했을 당시의 모든 변수.
‘어째서 피하지 못했지?’
설령 기습이라도 검과 마법에서 인류 최고의 경지에 오른 그가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 번이 아니야.’
마치 시간 속의 또 다른 시간이 진동한 느낌.
‘내가 놈의 공격에 당한 사건은, 무수히 존재했던 수많은 사건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 몇 번이나 같은 구간이 반복되었던 것일까?
‘알 수 없는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가 시로네에 대해 깨달은 사실은,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연산을 찰나에 수행할 수 있다는 것.
‘가장 완벽한 결론에 도달하는 루트를 탐색,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일격을 날리는 마법사.’
그게 바로 시로네였다.
‘하지만 마법을 쏘고, 이동해서, 다시 쏜다. 거기에 무슨 변수가 더 작용할 수 있지?’
변화의 폭은 평범한 마법사는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극히 미세할 터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 미묘함이 프리드에게 멀미와 같은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기습은 상관없다. 짜증 나는 것은…….’
검과 마법,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누군가에게 당한 적이 없는 프리드였다.
‘있었단 말인가, 내 경지의 빈틈을 파고들 수 있는 미세한 균열이?’
시간의 파계는 둘째 문제였고, 자신에게 기습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시로네의 사고가 거슬렸다.
“재미있군.”
프리드가 입가를 찢으며 흉흉한 기운을 뿜어냈다.
“예상 밖이야. 설마하니 통합우주관리부의 오대성께서 먼저 선공을 날릴 줄은 몰랐거든.”
대대로 태성을 지키는 오대성은 도통한 인간처럼 점잖게 앉아 있던 게 보통이었다.
“무슨 소리야?”
시로네가 능청스럽게 되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크크크.”
프리드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올라왔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애초부터 시로네의 철학에 따를 생각은 없었지만, 이번 공방으로 확실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든 절대로 관철시킬 수 없을 거다.’
대지성전의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각 부서의 별들과 위성들이 서로를 노려보는 살기에 공기마저 일렁거릴 지경이었다.
태성이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대소집이라는 이름은 그만큼 거대했다.
‘시로네.’
태성은 풀린 눈으로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시간의 파계는 행성을 직접 타격하는 가올드의 파계와 다른 의미로 그녀를 압박했다.
‘정신이 혼미하다.’
그녀가 느끼기로, 시로네가 프리드에게 기습을 성공시키기 위해 시간을 진동시킨 횟수는 대략 4만 번.
시간을 역으로 되돌린 것은, 아마도 공격이 성공한 이후 프리드의 반격을 염두에 둔 것이었으리라.
‘프리드도 쉽게 당할 사람은 아니죠.’
상황을 주도했다는 점에서는 시로네답다고 할 수 있으나 평소와 달리 방법이 제법 난폭했다.
미네르바가 시로네를 살폈다.
‘아니, 그 판단이 옳아. 이번 대소집에서 우리를 가장 집요하게 방해할 집단은 시스템감찰부. 하지만…….’
이 정도로 프리드가 꺾이지는 않을 터였다.
“통합우주관리부가 발언하겠습니다.”
시로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족이 인간의 악에서 탄생했다면,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그 악을 퇴치해야 할 때입니다. 마족과 싸우기 위해 상아탑 각 부서의 협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왜 마족과 싸워야 하지?”
프리드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강자가 약자를 먹는 것이 만물의 원칙이다. 그들이 강하다면 줘 버려도 되잖아, 이깟 세상 따위?”
시로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마족이 세상을 점령하면 인간의 모든 국가가 멸망합니다. 그게 시스템감찰부가 원하는 결말인가요?”
프리드는 태연했다.
“착각하고 있군. 우리는 왕족의 따까리가 아니다. 현재 세계를 주도하는 시스템이 국가 체제일 뿐, 마족이 다른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그것을 우리가 관리하면 그만이야.”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누가 이 세계의 지배자가 되든 상관이 없다는 뜻이었다.
“시스템감찰부의 의견을 태성님께 전하죠. 우리는 특정 국가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족 또한 이제 막 태어난 신생국가라고 봤을 때 현재의 상황은 그냥 전쟁일 뿐입니다. 언제나 있어 왔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그런 흔한 전쟁 말이지요.”
미네르바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주 작정하고 들어왔군.’
프리드는 재수 없지만, 5개 부서에서 시스템감찰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나 컸다.
“프리드 씨의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시로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적으로 봤을 때, 이 세계가 굳이 인간의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단 하나,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어서 묻고 싶군요.”
“크크크, 얼마든지 물어봐. 우리 애송이에게 상세하게 이해시켜 줄 테니.”
시로네가 프리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마족의 시스템을 관리한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그쪽 부서에 그런 능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요.”
시스템감찰부에 있는 8명의 별들의 눈에 저마다 다른 살기가 이글거렸다.
“이런 건방진 새끼가…….”
프리드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남들이 못 하는 재주 하나 있다고 설치는 것도 여기까지다. 너 따위를 죽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시로네가 태연하게 받아쳤다.
“그래요? 뭔데요?”
“…….”
프리드의 입은 한참이나 열리지 않았고, 잠시 후 그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였다.
“크크크. 크크크크.”
그의 육체가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고, 앉아 있던 자리의 땅이 반원을 그리며 함몰되는 순간.
“이런, 씨……!”
대지성전이 쿵 하고 흔들리며 검을 빼 든 프리드가 시로네의 눈앞에 나타났다.
‘염병! 또 이거야!’
반격의 자세를 취하며 몸을 뒤트는 시로네의 잔상을 보자 또다시 멀미가 났다.
‘시간은 이미 진동했다고 봐야 하고.’
두 번째 느끼는 것이지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극도로 더러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틈을 찾을 수 있을까?’
전과 같은 기습이라면 모를까, 임전 태세를 갖춘 자신에게 빈틈은 없다고 확신했다.
‘얼마든지 되돌려 봐라.’
어차피 결정되는 것은 시로네의 목이 떨어지는 사건뿐일 테니까.
‘이번에 내가 이기면 1승 1패. 하지만…….’
프리드의 검이 율법의 한계치를 흐르는 최고 속도로 휘둘렸다.
‘내 1승이 곧 너의 죽음이다!’
그때, 검과 마법이 충돌하는 중간 지점에서 수레바퀴가 빠르게 회전했다.
‘세계륜? 제길!’
그 자체로 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외부의 힘을 순환시켜 절대 균형을 유지하는 일에는 강强이 필요 없는 법이었다.
콰아아아아앙!
세계륜을 중심으로 위력이 회전하면서 시로네와 프리드가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크윽!”
두 사람이 노려보는 곳에, 손바닥 사이에 세계륜을 회전시키고 있는 아만타가 서 있었다.
“그만두게. 의미 없는 싸움이니.”
프리드가 입술을 이기죽거렸다.
“의미가 없다고? 저 애송이 놈이 나를 우습게 보는 걸 들었을 텐데?”
“두 사람 모두 틀렸기 때문이오.”
아만타가 태성을 돌아보며 말했다.
“인간 중심의 시로네, 시스템 중심의 프리드. 이미 오늘의 사태를 방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라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세계륜을 사용하게 해 주십시오.”
태성이 물었다.
“어느 정도로 균형을 맞출 수 있죠?”
“인류의 80퍼센트를 소멸시키는 대가로 마족의 숫자를 30퍼센트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미네르바가 따졌다.
“인류의 80퍼센트가 장난이야?”
“이 정도로 극단적이지 않을 수 있었죠. 내가 세계륜을 돌리자고 했을 때 말을 들었으면, 인류도 30퍼센트의 희생만을 치렀을 겁니다.”
시로네가 반박했다.
“30퍼센트도 큰 수예요.”
“네. 하지만 이미 그 30퍼센트는 세상에 없습니다. 전부 죽었거든요.”
“…….”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당신의 이상론, 자의는 아니라도 한 번은 용인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더 큰 희생을 치렀어요. 현실을 직시하세요.”
“소인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대지성전의 최외곽에서 검처럼 예라하고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율법부의 오대성, 씽이었다.
흑발의 머리를 정수리 위로 질끈 묶었고, 창백한 얼굴은 사납지만 아름다웠다.
“잠깐 기다려. 아직 내 말이…….”
프리드가 나서려는 그때, 씽의 오른손이 부드럽게 옆으로 움직였다.
‘뭐, 뭐야?’
시로네의 눈이 커졌다.
마치 벌레가 된 것처럼, 씽을 제외한 모두가 바닥의 먼지만큼 작아진 기분을 느꼈다.
‘엄청난 율법이다.’
미네르바가 이를 악물었다.
‘율법부의 씽. 프리드가 짜증 나는 놈이라면 저 여자는 정말로 강하다.’
씽이 입을 열었다.
“율법에 기준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강해지면, 남이 약해지는 것이죠. 따라서 기준이 없는 저의 생각을 밝히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태성이 물었다.
“그대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저 또한 인간이 그렇게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프리드가 입꼬리를 올리는 반면 시로네의 미간에는 주름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