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8
전투 불능 상태였다.
‘대마법사는 정말 강하네요.’
음양파동권의 오의로도 다크 골렘이 휘두르는 일격의 힘을 파훼하지 못했다.
패배보다도 더 그녀를 괴롭게 하는 건 악을 멸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다.
조금 더 파동을 중첩했다면, 천수관음의 오의를 완벽하게 통달했다면, 강뢰장의 위력을 더욱 끌어올렸다면.
“흑. 흐윽…….”
에텔라는 경련을 일으키는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분합니다, 스승님.”
에텔라의 흐느낌이 산중에 울려 퍼졌다.
군상(1)
시로네와 카니스는 각자의 이동 마법으로 숲의 복잡한 지형을 돌아다녔다.
상성에 따라 한 번의 힘 싸움으로 전세가 기울 수 있기에 두 사람 모두 신중했다.
더 압박감을 느끼는 쪽은 카니스였다.
수비적인 특성상 카운터를 노리고 있지만 시로네는 전술작인 움직임만으로 카니스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하비스가 뇌파 교환으로 전했다.
-확실히 제법이군. 분노와 별개로 도발에는 넘어가지 않아. 냉철한 놈이야.
-속아 주는 셈 치고 붙어 볼까? 변수를 만들어야 해. 이대로 끌려다닐 수는 없어.
-흐음, 거울 체스 같은 상황이군.
상대와 똑같은 방식으로 말을 옮기는 전략은 결국 마지막에 패하기 마련이다.
‘흔들릴 기미조차 없어.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쪽이 휘말리게 될 거야.’
선공을 선택한 카니스가 뇌파를 교환했다.
-하비, 네 생각은 어때?
-응? 아, 그래.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가자.
응답이 평소보다 늦자 카니스가 다크포트로 거리를 벌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조금 전에 지진파가 느껴져서. 여기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야.
진동에서 태어난 하비스트는 진동을 느끼는 감각이 고도로 발달해 있었다.
-지진파?
-지금도 계속 전달되고 있다. 이 정도 충격이라면 아케인밖에 없어. 어둠의 권속을 시전한 것 같다.
-어둠의 권속? 하지만 그건 스승님의 오의잖아. 이게 무엇을 뜻하는 거지?
-좋은 뜻과 나쁜 뜻이 있겠지. 좋은 뜻은 영감탱이의 상태가 지극히 쌩쌩하다는 것. 나쁜 뜻은, 그럼에도 위험할 정도로 강한 상대를 만났다는 것.
-강한 상대라면…… 알페아스인가?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겠지. 아무튼 지금 움직여야 해. 아케인이 알페아스를 만났다면 우리도 이곳을 정리해 두는 게 좋아.
-알았어. 시작하자.
카니스가 급격히 간격을 좁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시로네도 지지 않고 맞부딪쳐 왔다.
-동물적인 피드백이야.
카니스는 고유의 개성인 양면 톱날의 형태로 그림자를 뻗어 냈다.
동시에 포톤 캐논이 그림자를 강타하면서 빛과 어둠의 전면전이 펼쳐졌다.
어둠이 찢겨 나가고 있었다.
이미 해가 떨어졌는데도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카니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지만, 저런 위력이라면 정신력 소모는 엄청날 거야. 이대로 버틸 수 있다면 흐름은 바뀐다.’
시로네도 알고 있었다. 벌써부터 정신이 피로했고, 속성상 우위에 있더라도 암흑 마법의 수비력 또한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해.’
광자는 활동성이 강해 필연적으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지만, 시로네는 손실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광자를 응집시켜 질량을 늘렸다.
백광의 구체가 어지러이 흔들리며 크기를 키워 나가자 카니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지?
-위력이 세졌군. 내가 맡을게.
하비스트가 카니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포톤 캐논이 복부에 처박히자, 그림자가 아래쪽부터 가늘어지며 숲속 끝까지 밀려났다.
카니스가 황당한 듯 물었다.
-하비, 괜찮아?
-그럭저럭. 더럽게 무거운데. 이거 살인 병기잖아.
그러는 동안 시로네는 머리 위에 포톤 캐논을 띄웠다. 이어서 양쪽 어깨 위에도 광자를 응집시켰다.
도합 세 발의 포톤 캐논이 흔들리는 것을 본 하비스트가 빠르게 날아와 소리쳤다.
“키키키키! 간지럽군! 고작 이게 네 필살기냐?”
“아니, 지금까진 연습.”
“…….”
시로네의 얼굴이 살며시 일그러지고, 세 발의 포톤 캐논이 팽창하듯 크기를 부풀렸다.
“카니…….”
하비스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쏘아진 섬광이 거목들의 옆구리를 터트리며 쇄도했다.
카니스의 뇌파가 번개가 치듯 탄생하며, 생각의 속도로 의견이 교환되었다.
-카니스! 피하자!
-안 돼. 한번 피하기 시작하면 주도권을 뺏길 거야. 물러 설 수 없는 싸움이야.
-못 막을 것 같아!
-막을 수 있어. 내 정신력을 흡수해.
-젠장! 진짜 골칫덩어리야, 넌!
카니스의 정신력이 하비스트에게 흘러들자 그림자가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어서 3개의 섬광이 복부 쪽에 탄착군을 형성하며 처박혔다.
“크아아아아아!”
하비스트의 괴성이 숲을 진동시켰다.
***
크레아스는 중부 대륙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따듯한 도시였고, 무엇보다 지금은 여름이었다.
‘추워.’
하지만 건널 수 없는 다리의 정상에는 유례없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옷가지를 여미는 이루키와 네이드의 눈에 시이나와 루카스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였다.
이루키가 말했다.
“이러다 얼어 죽겠어. 어떻게 된 거지? 자연현상은 절대로 아니야. 그렇다면 시이나 선생님이 블리자드 마법을 시전했다는 뜻인데.”
“정신이 돌아오신 게 아닐까? 혹시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깨어난 것이라면…….”
이루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정신이 돌아왔다면 우리가 있는데 광역 마법을 시전하지는 않았을 테지. 공인 6급의 판단이라 보기에는 좀 이상해.”
“하긴, 그렇지.”
두 사람은 물론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다.
기억을 잃은 그들이 영하 20도의 추위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면에 루카스의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더 짜증 나는 상황이 없었다. 체세포가 냉각되면 미토콘드리아 빌드의 효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치겠네.”
특히나 시이나 근처에는 강풍까지 불어서 체감온도가 훨씬 낮았다.
스키마를 통해 말초신경부터 괴사가 진행되는 게 느껴졌다.
실전에서 빙결 마법사들이 블리자드를 기본으로 깔고 전투를 시작하는 이유였다.
살상력은 크지 않지만 광역 마법인 데다가 냉각이라는 고정 대미지를 주기에 대검사전에 필수적인 마법이었다.
“하여튼 짜증 난다니까, 마법사들은.”
군상(2)
별의별 방법으로 검사들을 괴롭히는 마법사에게 진저리가 나는 루카스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시이나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선은 날 보고 있지만, 생기가 없어. 그런데 어떻게 마법을 시전할 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얼음의 창이 눈보라를 뚫고 날아왔다.
“큭!”
황급히 몸을 날린 루카스였으나 발사체의 속도가 워낙에 빠른 데다 미토콘드리아 빌드가 약화되는 바람에 옆구리를 스치고 말았다.
“빌어먹을!”
얇은 옷 한 겹만을 걸치고 있는 상태로 버틸 수 있는 추위가 아니었다.
철로 된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끝에는 벌써 홍반성 동상이 생기고 있었다.
‘기온이 더 떨어졌어. 저 여자 정말 미친 건가? 학생들까지 다 죽이려고?’
시이나가 다가오자 루카스는 감각이 무딘 손으로 검을 겨누었다.
“적당히 해. 이러다가 전부 다 죽어.”
“…….”
대답은 없었다.
비로소 시이나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 루카스는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감정도, 생각도, 심지어는 자아도.
“설마, 너…….”
기억을 되찾은 게 아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마법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육뇌肉腦.
검사들이 반복 훈련을 통해 기술을 체득하듯 시이나 또한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도 특정 뇌파의 패턴을 정확히 구현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반복, 또 반복. 자신의 정신을 끝없이 죽음으로 몰아세운 끝에 도달한 경지.
‘대체 얼마나 수련을 한 거야?’
루카스 또한 평판과 달리 검에 있어서는 부끄럽지 않게 단련했기에, 실력을 떠나 그녀가 걸어온 수라의 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똥 밟은 정도가 아니잖아, 이건.’
이쯤에서 튀어야 한다.
아무리 금화가 좋아도, 목숨 앞에서는 그저 쇠붙이에 불과했다.
“퉤!”
침을 뱉으며 몸을 돌린 루카스는 남은 힘을 전부 끌어내 도망쳤다.
블리자드의 영역권 밖으로만 나가면 설령 마법사라도 뒤쫓지는 못할 터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공인 6급의 마법사에게 등을 보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끄아아아아!”
상체를 활처럼 펼친 루카스가 배부터 떨어졌다.
“으아아! 으아아!”
고통은 없었다.
하지만 스카마의 인체 도식으로 느껴지는 것은, 마치 가위로 잘라 낸 것처럼 두 다리가 사라져 있는 자신의 감각이었다.
돌아누운 루카스는 하체를 살폈다. 딱딱하게 냉동된 두 다리는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말, 말도 안 돼.’
시이나를 불과 스무 살의 나이에 공인 6급의 마법사에 올린 앱솔루트 제로(절대영도)였다.
빙결 마법 최고의 전지라고 할 수 있는 보존 응축을 통해 순간적으로 기온을 섭씨 -200도 이하까지 떨어뜨리는 엄청난 마법이었다.
범위는 지극히 국소적이고 정신력 소모도 막대하지만, 제대로 들어갔을 때의 결과가 어떤지는 지금 루카스의 상태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허접스러운 학교라더니…… 학생이고 선생이고 정상이 아니잖아!’
시이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보존 응축의 전지에서 파생한 고등 마법 글레이셔 보밍(빙하 폭격)이었다.
블리자드가 걷힌 하늘에 바위보다 큰 빙하 수십 개가 탄생하자 루카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다리는 이미 사라졌다고 봐야 하기에 피할 방법은 없었다.
이루키와 네이드가 기겁하며 학생들에게 달려갔다.
빙하의 생성 지점이 중구난방인 것으로 미루어 절벽의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사람들 위로 떨어지면…….’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 시이나의 마음에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터였다.
아몬드 형태의 빙하들이 자유낙하를 하는 모습은 착시에 의해 느리게 보였으나 실제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자명했다.
아린에게 달려간 네이드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바닥에 쓰러뜨렸다.
“꺅! 뭐 하는 거야!”
“학생들을 대피시켜! 안 그러면 전부 죽어!”
아린은 수직의 시선으로 하늘을 살폈다.
그녀의 눈에 빙하는 불길한 흑염처럼 보였다.
“안 돼. 시간이 부족해. 전부 대피시킬 순 없어.”
이루키가 끼어들었다.
“내가 할게!”
“어쩌려고?”
대답할 겨를조차 없이 이루키는 허공을 노려보았다.
과연 가능할까?
자그마치 수십 톤이 넘어가는 빙하였다.
최소 1천 개 이상으로 쪼개지 않으면 파편 하나로도 사람 머리 하나 박살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해 보는 수밖에…….’
벡터를 수학적으로 예측해서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빙하를 분쇄해야 한다.
“간다아아아!”
이탈형 스피릿 존이 빙하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폭발을 일으켰다.
연거푸 두들겨 대자 마침내 빙하가 쩍 하고 갈라지더니 7개의 덩어리로 분리되었다.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더블 스피릿 존을 발동한 이루키는 눈으로 확인할 겨를도 없이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서로를 붙잡은 네이드와 아린은 하늘에서 터지는 얼음 파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들의 머리 위로 알갱이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학생들이 조건반사로 고개를 틀었다.
고작해야 우박 정도의 크기로 빙하를 갈아 버린 결과에 아린은 충격을 받았다.
‘마법학교에 이런 애들이…….’
스승인 아케인의 말과 달리 그녀가 직접 경험한 학생들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았다.
“응?”
고개를 돌린 아린은 네이드의 팔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밀어냈다.
“저리 가! 뭐 하는 거야?”
엉덩방아를 찧은 네이드가 억울한 듯 소리쳤다.
“내, 내가 뭐? 기껏 도와줬더니!”
“네가 왜 날 도와줘? 우린 적이야!”
“누가 뭐래? 빨리 정신 지배나 풀어! 너, 정말로 이 사람들 다 죽일 거야? 그러고도 네가 제정신이야?”
아린 또한 역사에 기록될 학살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