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81
참전 (5)
건물 잔해에 파묻힌 아몬이 집채만 한 바위를 들어 올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크크크.”
포톤 캐논에 맞은 부위가 깊숙하게 함몰되어 주위의 뼈가 전부 튀어나와 있었다.
“가증스러운 야훼여.”
거대한 잔해를 가볍게 집어 던진 그가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두 팔을 벌렸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정적 속에서 아몬의 목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지옥이다.”
제1에서 제10번까지.
사탄의 직계가 특별한 이유는 개체의 영역을 넘어 시스템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사탄의 10대재앙.
마족들은 그 재앙을 악마 시스템, 마계라 부르며, 일단 마계를 개방하면 개체의 의식은 완전히 사라진다.
‘상관있을까?’
재앙이 되는 것이다.
“너의 어리석음을 원망해라.”
마계를 개방하자 아몬의 피부를 뚫고 지렁이 같은 촉수들이 꿈틀거렸다.
무서운 속도로 증식하며 몸을 키우는 광경에 마족들이 기겁하며 도망쳤다.
“마계가 열렸다!”
반면에 인간들은 이제 곧 닥칠 재앙을 깨닫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쿠르릉! 쿠르릉!
아몬의 다리가 뿌리를 내리더니 사방으로 확장하면서 지반을 관통했다.
건물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뿌리가 확장되는 속도만큼이나 본체의 증식도 빨라졌다.
우오린의 고개가 하늘을 향했다.
“세상에…….”
카샨의 수도를 장악할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검은 둥치를 뒤틀면서 자라나고 있었다.
둥치를 따라 구멍이 뚫리더니 제각기 다른 형태와 크기를 가진 수만 개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흐오오오오오!”
세상에 없는 소리에 우오린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저건 분명…….’
마계수 아르간티스.
테라제의 기억에 마계수가 세상에 강림한 것은 까마득히 먼 옛날이었다.
용과 천사가 대립하던 시대.
마계수는 7개의 고대국가를 멸망시키고 끝없이 확장을 도모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았던 인류를 신경 쓰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인간들은 세계연합군을 조직, 인류 3분의 1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 끝에 겨우 재앙을 물리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하지만…….’
구름을 뚫고 올라간 아르간티스를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시여.”
도망치는 것조차 포기한 인간들이 하나둘씩 무릎을 꿇으며 기도를 올렸다.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흐오오오오오!”
마계수가 내지르는 소리는 실로 끔찍했으나 시로네는 그 이상의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어떤 생물도 이렇게 클 수는 없다.’
행성이 가진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샨의 수도에 뿌리를 내린 마계수가 지상의 에너지를 쭉 하고 빨아들였다.
“신이시여, 부디 저를…… 커억!”
동시에 수분이 말라 버린 인간들이 미라처럼 말라붙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건물의 밑바닥이 모래로 퍼지고, 사방에서 우르릉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망자의 숫자는 대략 2만 명.
더욱 끔찍한 것은, 그렇게 양분을 빨아먹은 마계수가 점차 크기를 키워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제길!”
시로네가 광익을 펼치며 쇄도했다.
상아탑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태성의 상태가 정상이 아닐 것은 확실했다.
‘천사의 징벌!’
광천사의 화신을 최대치로 키웠으나 마계수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쾅! 쾅! 쾅! 쾅!
빛의 창이 쉴 새 없이 내리꽂혔다.
‘꿈쩍도 하지 않잖아!’
직경 20킬로미터에 달하는 마계수의 밑동은 시로네의 눈에 그저 장벽으로 보였다.
“흐오오오오오!”
두 번째 흡수.
수만 명의 인간이 다시 미라로 변하고, 카샨의 수도 전체를 아우르는 지반이 퍼석 주저앉았다.
푸스스스스!
도시 크기의 먼지구름이 일어나면서 시로네의 시야가 차단당했다.
‘이대로 두면 세상은 끝장이다.’
마계수 아르간티스.
사탄의 10대재앙 중 가뭄에 해당하는 시스템이었다.
‘더 늦기 전에 해치워야 해!’
기술적인 난이도라면 학습으로 커버하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의미가 없었다.
“야훼를 죽여라!”
먼지 속에서 마족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광익을 펄럭거리며 물러서자 구름이 걷히면서 비행 마족들이 떼로 덤벼들었다.
‘아타락시아!’
순식간에 집적된 증폭의 정보가 시로네의 눈앞에 거대한 원을 그리며 펼쳐졌다.
시야를 가득 채운 마족들이 창을 던지기 직전 포톤 캐논이 아타락시아를 통과했다.
“키아아아아……!”
굉음을 내며 쏘아진 섬광이 마족들을 쓸어버리고 아르간티스의 둥치를 강타했다.
“으아아아아!”
최고의 출력으로 증폭시킨 섬광이 가로로 이동하며 마계수의 둥치를 긁어 나갔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이걸로는 안 돼! 더, 더 강하게!’
아르간티스에서 터지는 폭발음이 천지를 뒤흔들자 사람들이 웅크린 채로 머리를 감쌌다.
“흐윽! 흐으으윽!”
이미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포톤 캐논의 섬광이 대략 10킬로미터를 이동한 시점에서 증폭의 기운이 사라졌다.
“하아! 하아!”
섬광의 충격파에 홈이 파인 나무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쓰, 쓰러진다!”
꼭대기가 15도 기울어질 무렵 둥치에 달린 입에서 시커먼 가지들이 토해졌다.
“꾸에에에에에!”
쓰러지는 방향에서 수십만 개의 시커먼 가지가 뻗어 나와 무게를 지탱했다.
빠른 속도였으나 멀리에 있는 시로네의 눈에는 그저 느리게 보였고, 그래서 더욱 역겨웠다.
“흐오오오오오!”
마치 한 손으로 땅을 짚은 듯한 자세로 뿌리를 내린 아르간티스가 다시 양분을 빨아들였다.
땅이 더욱 아래로 꺼지면서 황성 아가노스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여황님! 지금 가야 합니다!”
풍장에게 이끌려 하늘로 날아오른 우오린은 지상의 광경을 보며 전율했다.
도시 전체가 말라붙어 가고 있었다.
***
“흐으으으!”
아무도 없는 대지성전에서 태성이 무릎을 꿇은 채 두 팔로 몸을 끌어안았다.
행성의 양분이 빨릴 때마다 수십 개의 주사기로 동시에 피를 뽑아내는 기분이었다.
‘안 되겠어. 막아야 한다.’
가이아의 화신인 그녀에게는 행성의 에너지 순환을 차단하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거대한 행성의 엔진을 정지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었다.
다시 순환시키기까지 시간이 걸릴뿐더러, 그사이에 수많은 장소가 썩기 때문이다.
‘파괴하는 건 쉬워도 복구하는 건 어렵다. 아직은 버틸 수 있어. 아직은…….’
태성의 어깨가 흠칫했다.
“으아아아아!”
조금 전보다 2배는 강한 흡입력으로 행성의 에너지가 빨려 나갔다.
“빨리, 빨리…….”
초췌한 얼굴로 지상을 확인하는 태성의 눈에, 빠르게 돌진하는 4명의 오대성이 보였다.
***
프리드의 일격에 마족들이 베이면서 카샨의 수도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인간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빌어먹을! 저게 군단장이라고?”
문명은 사라지고, 시커멓고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삐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달리는 프리드의 옆에서 제트를 타고 비행하는 미네르바가 말했다.
“아니, 저건 현상이야. 재앙. 프리드 네가 그렇게 상관없다고 말했던, 마족의 시스템이지.”
프리드가 이를 악물었다.
“……알았으니까 그만 좀 갈궈.”
회전하는 세계륜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아만타가 말했다.
“부처가 없으니 저런 것이 나대는군. 아무튼 어떻게 할 거야? 힘으로 하기에는 좀 벅찬데.”
확실히 나네의 설법이 아니고서는 쉽게 풀어 갈 방법이 없을 듯했다.
“어쩌겠어? 해봐야지. 일단 시로네와 합류한 다음 방법을 강구해 보자.”
“방법은 있다.”
수십 개의 잔상을 꼬리로 달고 있는 씽이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다가왔다.
“내 율법이라면 마계수의 생장을 잠시나마 억제할 수 있어. 그런 다음 수도를 봉쇄하고 폭파시킨다.”
“도시를 날려 버리자고? 화력은 어디서 구하고?”
아만타가 동의했다.
“세계륜. 도시의 인구를 희생시키는 정도라면 화력은 충분할 거야.”
“시로네가 허락하지 않을 텐데?”
프리드가 말했다.
“마계수가 더 커지면 골치 아파져.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지. 어차피 다 죽어 나가고 있잖아?”
“숫자의 문제가 아니니까.”
오대성들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씽이 말했다.
“내가 시로네를 설득해 보겠다. 따르지 않는다면 각개전투를 하는 수밖에.”
마침내 도시를 관통하자 멀리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끄아아아아!”
사람들이 시시각각 말라붙고, 건물 위와 하늘은 마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로네!”
미네르바가 제트의 추진력을 높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미네르바 씨!”
혼자서 사투를 벌이고 있던 시로네가 지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됐어?”
“아무리 퍼부어도 소용이 없어요. 충격을 받아도 양분을 빨아서 복구해 버려요.”
미네르바가 씽을 살피며 말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어. 잠깐 내려가서 씽하고…….”
“무슨 방법인지 알아요.”
시로네가 아르간티스에게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막아 낼 수 없어요. 아니, 마족에게 이길 수 없어요.”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
“들어 봐요.”
시로네의 말에, 미네르바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아르간티스에 달린 무수히 많은 입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먹고 싶다. 더 먹고 싶어.”
“내가 먹을 거야. 나만 커질 거야. 아무에게도 안 줄 거야. 나만, 나만, 나만!”
비명 소리에 숨어들어 있는 그 수많은 목소리에, 미네르바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인간이 만든 마족이에요. 세계륜을 돌려서 도시를 파괴하면 분명 저 괴물은 사라지겠지만…….”
이곳에서 희생당한 인간의 증오는 또다시 마가 되어 더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
“그 말에는 동의한다.”
어느새 씽이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막아 내지 못하면 더 큰 희생을 치르는 것도 사실이야. 이게 최선의 선택이다.”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굳이 인간을 희생시키지 않더라도 도시를 파괴할 방법은 있어요.”
시로네가 씽을 돌아보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죠?”
“지금의 크기라면…… 대략 5분 정도일까?”
프리드가 땅 위로 드러난 거대한 뿌리들을 검으로 베어 내며 소리쳤다.
“뭐가 됐든 빨리해! 계속 자라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