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82
더 이상의 생각은 사치였다.
“맡겨 주세요. 내가 해볼게요.”
시로네와 미네르바가 지상으로 내려가자 씽은 아르간티스를 바라보았다.
“……허상이라.”
상상의 크기를 현실로 드러낸 마계수를 눈에 담은 그녀가 천천히 손을 올렸다.
“마를 금한다. 포식을 금하고, 소화를 금한다. 활동을 금하고, 자유를 금한다.”
씽의 율법이 아르간티스의 율법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흐오오오오!”
으드득. 으드득.
갑자기 양분이 차단되자 거대한 가지들이 뼈가 부러지듯 흉악하게 뒤틀렸다.
“고로…….”
씽이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를 내밀며 말했다.
“너의 모든 것을 금한다.”
율법, 관철.
“크아아아아아!”
마계수의 입에서 일제히 튀어나온 괴성에 정신을 잃는 자들이 속출했다.
“크으으으.”
율법은 일종의 시소게임.
아르간티스의 처참한 몸부림에 씽의 얼굴에도 살며시 주름이 잡혔다.
마족들과 싸우면서 미네르바가 상황을 살폈다.
‘어쨌거나 일단 시간은 벌었어. 하지만 대체 무슨 방법으로 저 괴물을…….’
시로네를 돌아본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타락시아!’
머리 위에 거대한 마법진을 띄우고 있는 시로네가 미간을 찡그리며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설마…….”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다!’
거대한 적색의 광선이 빛의속도로 치솟아 하늘을 관통해 우주까지 뻗어 나갔다.
고고도에서 질량이 응집되면서, 10톤의 질량을 가진 회색빛 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샤이닝 스피어!”
가올드는 신의 징벌이라 불렀다.
벼랑 끝에서 (1)
아타락시아를 통과한 레이저는 대기권을 뚫고 고도 6천 킬로미터 상공에 정보를 전달했다.
10톤이 넘는 질량이 지상으로 추락했을 때 발생하는 위력은 가히 도시를 초토화시킬 정도.
마법의 개발자인 시로네조차 딱 한 번, 그것도 천국에서 시전했을 정도로 위험한 마법이었다.
‘대체 어쩌려고?’
레이저를 쏘아 올리는 시로네의 모습을 지켜보며 미네르바는 고개를 기울였다.
신의 징벌이 떨어지는 순간 발생하는 충격력은 인간이 버틸 수준이 아닐 것이다.
‘그럼 결국 똑같은 거잖아?’
시로네는 온 신경을 천공에 집중시켰다.
‘통제할 수 없는 건 마법이 아니다.’
그저 또 하나의 재앙일 뿐.
전대미문의 파괴력을 가졌음에도 시로네가 여태까지 꺼내지 않았던 이유였지만.
‘이제는 달라.’
우주에서 집적되는 정보에 의해 한 자루의 창이 지상을 향해 기울었다.
전과 다른 점이라면 창의 중간 지점에 삼각발처럼 생긴 시커가 장착되었다는 것이다.
시커에서 세 줄의 레이저가 쏘아졌다.
“저거구나!”
제트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간 미네르바는 대기권을 뚫고 내려오는 레이저를 확인했다.
‘레이저 유도장치.’
아래를 내려다보자 씽의 율법에 옴짝달싹 못 하는 아르간티스의 꼭대기에 붉은 점이 묻어 있었다.
‘정신 소모가 엄청날 텐데.’
쏘아 올리는 것 자체는 트리거라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신의 징벌에 시커를 달기 위해서는 스피릿 존이 상공 6천 킬로미터에서 활동해야 한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건 최후의 일격.
‘하지만 이것으로 정밀 타격이 가능해졌어. 제대로 떨어지기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시간.
그녀의 계산으로 신의 징벌이 지상에 도달하기까지는 최소 10분 이상이 소요된다.
그 안에 아르간티스가 풀려나면 정밀 타격은 물 건너가고 수도는 파괴되고 만다.
‘씽이 할 수 있을까?’
씽은 대략 5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오대성,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달려든다면 몇 분은 더 벌 수 있을 터였다.
‘그래도 아슬아슬하다.’
제트의 앞머리를 돌린 미네르바가 수직으로 내리꽂듯이 비행했다.
‘시로네는 무방비 상태야.’
지상에 도착했을 때 시로네는 눈을 뒤집어 깐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시커의 레이저를 정밀하게 조작할 때마다 반쯤 보이는 동공이 좌우로 흔들렸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전략 병기.
미네르바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착한 놈이라 다행이야.’
어쨌거나 본질은 인간.
마법을 성공시키기 전까지 그에게 어떤 자극도 미쳐서는 안 된다.
“야훼를 잡아라!”
군단장 아몬은 재앙이 되었지만, 사단장을 위시한 마족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신의 징벌의 존재를 알든 모르든, 가장 증오하는 야훼에게 달려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
“와라.”
평균 신장 4미터가 넘어가는 마수들이 시야를 차단하며 벽처럼 밀고 들어왔다.
“개자식들아.”
미네르바의 눈이 부릅떠지고, 그녀의 육체가 어린 소녀의 알몸으로 변했다.
하얀 피부에는 온갖 상처와 피멍, 살이 쓸릴 정도로 선명한 밧줄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크아아아앙!”
마족들이 발톱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소녀의 환영이 사라진 그녀가 마녀의 페로몬을 뿜어냈다.
“크으으……!”
마가 되기 전의 공포를 떠올린 마수들이 경직되자 제트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추진력을 받은 제트가 풀스윙으로 휘둘리고, 마수들의 얼굴이 같은 방향으로 꺾였다.
“가지고 놀 때는 좋았지?”
곰방대를 깊숙이 빨아들인 미네르바가 전방을 향해 연기를 뿜어냈다.
재앙 마법, 워킹 데드.
이성을 잃은 마족들이 옆의 마족들을 물어뜯으면서 공격의 흐름이 바깥으로 역전되었다.
“꺄하하하! 죽어! 죽어!”
제트를 내리찍어 마족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는 모습이야말로 그녀의 진면목.
지붕 위를 달리던 프리드가 혀를 찼다.
“하여튼 쌈꾼이라니까.”
어쨌거나 시로네의 방법이 뭔지는 알았다.
“기분이 나쁘다 이거야.”
고개를 쳐든 프리드는 율법에 묶여 기괴하게 몸을 뒤트는 아르간티스를 올려다보았다.
“나무 따위가…….”
오른손에 푸른 전격을 만들어 낸 그가 지붕을 박차고 날아오르려는 그때.
“살려 주세요!”
건물 아래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마족에게 포위당한 가족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흥, 인간 따위.’
죽으면 죽는 거지.
‘다들 사는 건 힘들어. 나도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피똥을 쌌는지 알아? 모르지? 그럼 그냥 죽어.’
마족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하하하! 여자는 내 거다!”
“엄마! 엄마!”
딸의 목소리도 들렸다.
“여보! 으아아아! 이 자식들아!”
점차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프리드가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염병.”
프리드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진짜 미쳐 버리겠네!”
아내 앞을 막아선 남편의 가슴에 창이 꽂히기 직전, 음속을 초월한 검격이 난무했다.
“어, 어?”
순식간에 목이 베인 마족들이 쓰러지고, 가족들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프리드가 짜증 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래서 내려오기 싫은 거야.”
인간이, 인간 따위가 아니게 되어 버리니까.
“크하하하! 아직도 정의의 사도가 있었나? 하지만 후회하게 될 거다!”
여단장이 지시를 내리자 수많은 마족들이 프리드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저희 가족을…….”
프리드는 그들의 딸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정의의 사도는 개뿔. 죽고 사는 거야 다 자기 몫이지. 누구 하나 살려 보겠다고 이러는 줄 알아?”
남자를 차갑게 뿌리친 그가 마족들에게 걸음을 옮기며 내뱉었다.
“그래도 가족은 건들지 마라. 내가 네 딸 잡아다가 족치면 기분 좋겠냐?”
“응? 딸?”
여단장이 주위를 둘러보자 부하들이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우린 그런 거 없는데?”
프리드는 있었다.
“…….”
자고로 남자는 검이 최고라며, 마법사인 아빠와 날마다 옥신각신하는 아들이었다.
“그래서 모르는 거야, 네놈들은.”
프리드는 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인간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죽여.”
마족들이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강풍을 일으키며 프리드가 검을 휘둘렀다.
원래 분리되어 있던 것을 허공에 던진 것처럼, 섬광이 지나갈 때마다 마족들이 쪼개졌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짧은 시간에 상황을 정리한 프리드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자 가족들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 나가는 다른 가족들의 목숨은 어찌할 것인가?
‘참으로 어렵지. 그래서 네가 싫다, 시로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
‘하지만…….’
시로네가 그를 똑바로 노려보며 소신을 밝혔을 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감정은.
‘내 아들도 너처럼 커 줬으면 싶었다.’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에이, 씨.”
눈가를 닦아 낸 그가 다시 아르간티스를 살폈다.
여전히 율법에 붙잡혀 있지만 조금 전과 다르게 활동성이 강해진 모습이었다.
“……저기도 피똥 싸고 있구만.”
“후우우우!”
크게 숨을 내뱉은 씽이 다시 이를 악물고 아르간티스를 노려보았다.
‘저건 허상이다!’
실체가 아니다.
‘오직 나만이 진짜. 생각하는 나. 존재하는 나. 나 이외의 모든 율법은…….’
그녀의 팔찌, 율법 무구 ‘진존’이 진동하며 마의 의지를 짓눌렀다.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크아오오오오오!
아르간티스가 괴성을 내지르며 답답한 몸부림을 치자 씽의 얼굴에 핏줄이 올라왔다.
‘아직 놓아줄 수 없어!’
이미 시로네에게 말했던 5분은 지난 시점이었다.
“씽.”
아만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직경 20미터까지 커진 세계륜이 빠르게 회전하자 주위의 인간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씽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물었다.
“얼마나 구했지?”
“사망자의 숫자만큼은 구할 수 있겠지. 테라포스의 셸터가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지만.”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