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84
“시로네! 정신 차려!”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다!’
신의 징벌의 궤도가 수정되면서 아르간티스의 몸통을 수직으로 꿰뚫을 수 있는 각도로 세워졌다.
혼신의 힘을 다한 시로네가 털썩 무릎을 꿇더니 땅을 짚으며 숨을 헐떡거렸다.
“허억! 허억!”
“됐어? 성공한 거야?”
죽을 정도로 정신이 피로했지만 시로네가 고개를 들고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네. 일단은…….”
“아직 안 끝났어.”
씽이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다시 움직인다.”
시로네가 굳은 표정으로 전방을 돌아보자 아르간티스가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흐오오오오오!
구름에 가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마계수의 꼭대기에서 수많은 가지들이 퍼져 나와 흔들렸다.
펑! 펑! 펑! 펑!
공기가 파열하면서 세상이 멸망하는 듯한 굉음이 고막을 두들겼다.
“뭘 하려는 거지?”
프리드의 말에 미네르바가 대답했다.
“의지 같은 건 없어. 사력을 다해 발버둥 치는 거야. 하지만 이 상태로는 궤도가 틀어질 거야.”
조금이라도 각도가 바뀌면 신의 징벌은 아르간티스의 몸통을 뚫고 나와 지상에 처박힐 터였다.
“저 가지를 잘라야 돼요.”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추락 시간을 계산했을 때 되돌아올 여유는 없었다.
프리드가 검을 어깨에 걸치고 말했다.
“내가 가지.”
“너…….”
미네르바의 놀란 표정에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할 수밖에 없잖아. 시간 내에 돌아오는 건 고사하고 저 가지들을 벨 수도 없을걸.”
누군가는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프리드 씨…….”
“간다.”
프리드가 튀어나갈 자세를 취하는 그때, 시로네의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높아서 안 보이는데?”
모두가 황급히 돌아선 가운데 프리드가 물었다.
“……너는 뭐야?”
대직도를 등에 매단 푸른 머리의 청년이 손으로 해를 가리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시로네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리안?”
리안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곤란한가 보구나, 시로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동시에 밀려들었으나 시로네는 황급히 핵심을 붙잡았다.
“이럴 시간이 없어!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걱정 마.”
리안이 시로네의 어깨를 짚으며 나서자 프리드의 미간이 좁혀졌다.
“뭔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아마도…….”
하늘 끝을 올려다본 리안이 땅을 박차며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베라는 거겠지.”
씽이 소리쳤다.
“빨리해야 된다! 이제는 나도 못 버텨!”
멸마삼천세계의 고리가 크게 흔들리더니 점차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온다.”
미네르바가 창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시간에 맞출 수 없겠어.”
리안이 무서운 속도로 아르간티스를 올라가고 있지만 신의 징벌이 떨어지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질주하던 리안은 창공에서 타오르는 한 점의 빛을 발견했다.
“여기쯤인가?”
우드득 소리를 내며 근육이 뒤틀리더니 충격을 감당할 수 있는 야차의 육체로 변했다.
“뭘 하려는 거지?”
씽이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리안이 둥치를 박차고 바깥으로 이탈했다.
“크으으으!”
그리고 그 시점에서, 오대성은 깨달았다.
“저런 미친…….”
마계수의 가지를 잘라 내기에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통째로 벤다고?”
대직도를 양손으로 붙잡은 리안의 허리가 한계치까지 옆으로 돌아갔다.
“후우우우우!”
그가 추락하고 있는 곳은 아르간티스의 높이에서 3분의 2지점.
아래쪽보다는 훨씬 가늘었지만 그럼에도 족히 100미터가 넘어가는 두께였다.
“이야아아아아!”
신적초월, 이데아.
카샨의 수도를 한 폭의 그림이라 한다면, 리안의 검은 캔버스의 끝과 끝을 가르는 한 줄기의 섬광.
쩍.
오대성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구름을 경계선으로 올라온 아르간티스의 윗부분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저걸…… 벴다고?”
시로네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리안.”
최강의 야차였다.
회심의 일격을 마무리한 리안이 서 있는 상태로 추락하며 시로네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시로네.”
이제는 내가 있다.
리안의 등 뒤로 마하 40이 넘어가는 회색 창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쿵.
마계수의 중심에 창끝이 맞닿는 순간.
퍼퍼퍼퍼퍼퍼퍼펑!
천둥보다 커다란 소리가 폭주하며 지하로 내려가고, 뒤이어 거대한 몸통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아르간티스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아!
몸통을 관통하고 지하에 처박히자 땅이 물결처럼 출렁거리고 충격파가 뿌리들을 끊어 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공포에 질려 머리를 감싸고 엎드렸으나, 오대성은 그 장대한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막았다.”
미네르바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막았어.”
쿠르르르르릉!
도시 규모의 흙먼지가 땅의 파동을 타고 동심원을 그리며 넓게 퍼져 나갔다.
“리안.”
시로네는 먼지 속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비록 아르간티스를 관통하기는 했지만 신의 징벌의 충격파를 지척에서 맞았다.
“리안!”
멀쩡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소리치는 그때, 흙먼지 속에서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후우, 장난이 아니네. 시로네, 네 마법이냐?”
옷이 너덜너덜해진 리안이 대직도를 등에 걸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상처가 없어?’
정확히 말하자면 충격파에 사지가 뜯어져 나갔다가 재생된 것이었다.
“너…… 괜찮아?”
시로네와 오대성이 황당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리안이 그들의 앞에 도착했다.
“남은 적은 없는 건가?”
마족들이 전부 사라졌음을 확인한 그가 비로소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시로네.”
벼랑 끝에서 (3)
***
성전의 군대, 발키리 70만 병력은 자이브, 몰튼, 보르나이의 국경선을 따라 수비벽을 세웠다.
중부 대륙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세 왕국이었고 하나라도 뚫리면 지옥의 군대는 계속 남하, 결국 행성에서 가장 큰 대륙을 통째로 장악하게 될 것이다.
‘각 국가에서 차출한 병력을 더해도 200만. 지옥의 군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
발키리 제2군단 소속, 에이미는 현재 몰튼 왕국의 국경선에서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아 낼 수 있을까?’
첩보에 의하면 지옥의 군대 본진 1천만이 카샨의 수도로 향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은 4천만은 부채꼴로 퍼지며 끝없이 남하, 48시간 안에 국경선에 도착하게 될 터였다.
“…….”
에이미는 달빛을 머금으며 아롱거리는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성전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일전을 앞둔 지금 시로네가 생각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잘 지내고 있을까?’
발키리 사관학교에서 마법부대의 대대장이 되기까지 피나는 수련을 했다.
세상을 위한다는 대의는 죽을 것 같은 훈련의 고통 속에서 점차 퇴색되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더욱 강해져서 시로네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너는 저 지평선 너머에 있겠구나.’
지금도 무서운 속도로 남하하는 4천만 군대를 뚫고 나아가면 시로네가 있을 터였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제2군단장 루다 가르시아가 뒷짐을 지고 다가오고 있었다.
“충성!”
에이미가 황급히 경례를 올렸으나 가르시아는 받아 주지 않고 지평선 쪽을 돌아보았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에이미가 손을 내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세계 최고의 화염 마법사.
그가 에이미를 제자로 받아들인 이유는 남에이몬드에서 시로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르시아도 에이미를 보는 눈이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관생도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기에, 가르시아는 원하는 자라면 모두 그를 사사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 가르시아의 옆에 남은 사람은 에이미뿐이었다.
‘이 지옥에서 목숨만 건사할 수 있으면, 미치는 것 정도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에이미에게는 부모와 형제, 친구와 애인도 있지만 그녀의 밑바닥을 확인한 사람은 가르시아였다.
에이미의 모든 것을 보았다.
이성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날것의 모습을.
‘강한 아이야.’
화염을 통제하지 못한 에이미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몸으로 진흙밭에 쓰러졌을 때가 떠올랐다.
훈련복은 순식간에 타 버렸고, 다리 사이에 손을 끼운 채 벌레처럼 꿈틀대던 모습.
가르시아는 그녀를 포기하려 했다.
“아직도 수치심이 남았나? 그럴 여력이 있으면 회복할 생각이나 해.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죽는다.”
“흐으. 흐으으.”
가르시아가 다가오자 에이미는 본능적으로 몸을 꿈틀대며 멀어졌다.
“도망칠 곳은 없어. 한 발 더 남았다. 화염을 통제하지 못하면 이번에는 생명이 타 버릴 거야.”
“흑! 으흐흑!”
초고열의 화염을 피운 가르시아는 흐느끼는 에이미의 목소리를 들었다.
‘시로네, 저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요?’
면담으로 알게 된 사실은, 에이미 또한 시로네를 만나기 위해 강해지려 한다는 것.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상태로는 절대로 당신을 만날 수 없습니다.’
현세의 지옥을 자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세계에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아이를 살려야 하지만…….’
이제는 그에게도 에이미는 특별했다.
자신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길 정도의 극단적인 훈련을 1년 가까이 가했기에.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넘으면…….’
죽여 보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미안하다. 죽어라.”
화염이 이글거리는 손길이 전방을 향하는 그때, 에이미가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로네. 시로네…….”
가르시아가 화염을 던지지 않은 이유는, 정말로 죽일 것이기에 베푸는 마지막 배려였다.
“만나고 싶으냐? 죽기 전에 마지막 재회를 꿈꾸는 거라면 여기서 그만두겠다.”
이미 꺾였다면 그저 살인이기에.
“시로네를…… 만날 겁니다.”
에이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반드시 만날 거예요.”
홍안의 불길이 강렬하게 타오르면서 눈에 맺힌 눈물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르시아가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