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85
“헬파이어.”
수련장에 거대한 화염이 폭발했고,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가르시아는 다시 에이미를 돌아보았다.
사관학교에 입소했을 때만 해도 애기 티가 났으나 어느새 1명의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막사가 뒤집힌 것도 이해가 되는군.’
타고난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지옥의 훈련을 통과하면서 생긴 정숙한 기운이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인기 좋더라, 너.”
에이미가 활짝 웃었다.
“하하! 군대니까 그렇죠, 뭐. 치마만 둘러도 여자라고 좋아하는데요.”
가르시아가 피식 웃었다.
“그래, 고생이 많겠어.”
아직 계급이 높지 않다는 것도 부하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원인일 것이다.
‘이번 전쟁으로 얼마가 죽을지 모른다. 전공에 따라 계급은 수직으로 상승하겠지.’
물론 지옥의 군대를 막아 낸다는 가정하에서였다.
“그런데 스승님은 무슨 일로……?”
“여기 있을 것 같아서. 지평선 너머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건가?”
에이미가 얼굴을 붉혔다.
“아, 그건…….”
“만날 수도 있겠지. 이번 전쟁에서 이긴다면.”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자부심을 가져라. 어떤 상황에서든 네가 여태까지 해낸 것을 생각해.”
지휘 계통의 격차가 크기에 어쩌면 가르시아도 이번이 에이미를 보는 마지막이었다.
“네. 이길 겁니다.”
가르시아가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머리를 쓰다듬자 에이미도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내일 공표되겠지만, 너희 부대에 새로운 군 장비가 도입될 거다. 시범 운행이니 써 보도록 해.”
“새로운 군 장비요?”
“성전에서 업체를 바꿨다더군. 신생 업체인데, 마도 무구를 주로 취급하는 모양이야.”
에이미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지만 전쟁을 코앞에 두고 장비를 바꾸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 하지만 그만큼 성능이 좋다는 얘기도 된다. 부하들에게 제대로 전달시켜.”
성능만 좋다면 상관없지만, 대부분은 정치인과 사업가의 결탁이었다.
“그 신생 업체가 어딘데요?”
“네이드 군수라고 하더군. 그러고 보니 네 조국도 토르미아였지. 그쪽의 회사인 모양이야.”
“네이드? 네이드 군수요?”
“왜 그러지? 알고 있나?”
“아, 그게…… 어쩌면 제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마법사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군. 굉장히 젊은 사장이라고 하던데. 아마 너랑 비슷할 거야.”
에이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네이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녀석이 전쟁 무기를 만든다고?’
성격상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마족과의 전쟁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그럴듯했다.
또한 성능이 입증된다면 다른 사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확실히 똑똑한 놈이라니까.’
물론 단지 돈을 보고 덤비는 것이 아니다.
이루키가 성전의 군사부서에서 활약하는 지금, 그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시로네를 만나기 위해.’
혼자 싸우는 게 아니었다.
웃음을 짓는 에이미의 모습에 가르시아가 만족한 듯 몸을 돌렸다.
“꼭 살아남아라, 에이미.”
“네.”
스승님도.
***
발키리 제2군단 소속 마법사단 예하의 병사에게 결의서라는 거창한 문구가 적힌 종의가 돌려졌다.
전쟁을 앞두고 자신의 소원을 적어 생존의 욕구를 높이자는 사단장의 지시였다.
뜻은 좋지만, 말단 병사들에게는 그 시간에 낮잠이라도 더 자고 싶은 피곤한 행사일 뿐이었다.
“젠장! 곧 죽게 생겼는데 소원은 무슨 소원이야? 차라리 유서를 쓰라고 하지.”
“까라면 까야지 뭐. 결의서를 잘 쓴 부대는 특별히 위문 공연에도 참석하게 해 준다고 하니까 말이야.”
“개뿔. 잘나가는 미녀들이 이런 전쟁터에 오겠어? 게다가 누가 오든 상관없어. 나는 대대장이 최고니까.”
에이미 직속 부대인 제2중대의 마법사들 모두 침묵으로 동의를 표했다.
“크크, 그래. 소원이라.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거라면 딱 하나 있긴 하지.”
상병 베리크가 결의서에 무언가를 휘갈겼다.
“우리 대대장이랑 천막 하나 쳐 두고 밤새도록…….”
옆자리에 있던 동기가 베리크가 쓰는 것을 읽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미친놈아! 이런 거 쓰면 영창이야! 간부들이 읽으면 어쩌려고 그래?”
“쓰고 버리면 되지. 젠장! 이런 것도 쓸 수 없는데 무슨 결의서야, 결의서가.”
“하긴…….”
전쟁을 앞두고 긴장의 극한에 있던 중대는 베리크의 결의서 한 장으로 시끌벅적해졌다.
“푸하하하! 이거 출판해도 되겠는데? 병장님, 베리크가 쓴 것 좀 읽어 보십쇼.”
결의서는 돌고 들아 다시 베리크에게 돌아왔고, 그 시점에 막사의 천막이 열렸다.
“부대 차렷!”
일단 본능적으로 상체를 세웠으나 대원들의 얼굴은 에이미의 얼굴을 보고 창백하게 질렸다.
‘젠장, 완전 엿 됐다.’
에이미가 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재밌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분대장이 황급히 소리쳤다.
“없습니다!”
“없기는 뭐가 없어? 결의서 쓰는 중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소원이기에?”
에이미는 대원들의 앞에 놓인 결의서를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오직 베리크만이 황급히 구겨 버린 결의서를 엉덩이 뒤에 던져 놓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뭔데? 나도 좀 보자.”
“아무것도 아닙니다.”
베리크가 사력을 다해 고개를 저었으나 그럴수록 호기심만 자극할 뿐이었다.
에이미는 피식 웃었다.
“여자 지휘관이라고 차별하는 건가? 이거 좀 서운한데.”
남자들의 농담이야 대충 짐작이 갔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거 아닙니다! 대대장님, 제발 믿어 주십시오.”
“알았어. 장난인 거 감안하고 읽을게. 줘 봐.”
지휘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베리크가 구겨진 결의서를 건넸다.
백전 용사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흐음, 어디 보자. 소원이고 뭐고 대대장이랑…….”
결의서를 눈으로 읽어 내려가던 에이미의 얼굴이 점차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상관의 눈치를 살피던 대원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때.
“후우.”
한숨을 내쉰 에이미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베리크를 흘겨보았다.
베리크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차라리 죽여라! 쪽팔려 미쳐 버리겠네!’
영창일까?
상관 모독에 성희롱까지 추가하면 그보다 심한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래, 뭐. 상상은 자유니까.”
에이미가 결의서를 돌돌 말아 내밀자 베리크가 감동에 젖은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대대장님…….”
“장난인 거 아니까 봐주는 거야. 상병, 아무리 소원이라도 실현 가능한 얘기를 좀 써라.”
긴장이 풀린 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죄송합니다, 헤헤.”
결의서를 받으려는 그때, 에이미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말린 종이가 베리크의 머리를 탁탁 때렸다.
“어휘 선택 똑바로 안 해? 내가 열매냐? 응? 열매야?”
“악! 죄송합니다! 악!”
대원들이 자지러지자, 흉흉하게 기다리고 있던 소대장도 피식 웃고 말았다.
이것으로 끝내자는 뜻이었다.
“자, 자! 모두 주목.”
순식간에 군기가 엄숙해졌다.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내일부터 우리 부대에 새로운 보급품이 들어올 것이다. 지급 종류는…….”
장난기를 보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벼랑 끝에서 (4)
***
자정이 넘은 시각.
“후우.”
상부의 지령을 각 중대에 전달한 에이미는 늦은 시간에 목욕탕으로 향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어쩌면 오늘이 마음 편히 씻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
“추워.”
옷을 벗자 싸늘한 한기에 솜털이 곤두섰다.
텅 빈 욕실의 정적이 견딜 수 없이 공허했기에 그녀는 빠르게 수도꼭지를 돌렸다.
‘적들의 숫자는 4천만.’
국경선이 아무리 길어도 그녀의 부대가 마주할 숫자는 아군의 10배가 넘었다.
‘산술적으로는 막아 내기 불가능하다. 특별한 전략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벼랑 끝에 몰린 자의 최후의 항전인가.
‘여기가 나의 끝일 수도 있다.’
머리부터 흘러내리는 따듯한 물의 온기를 느끼며 에이미는 눈을 감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미?”
기병대의 상사 테스가 목욕 바구니를 허리에 차고 들어오고 있었다.
“테스, 아직 안 잤어?”
“오늘 당직이야. 그러는 넌?”
“그냥……. 잠이 안 와서.”
사관학교 시절부터 단짝으로 지냈던 테스였기에 에이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음보다도,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이지.’
리안을 만나고 싶었다.
에이미의 옆자리에서 수도꼭지를 돌린 테스가 물을 맞으며 말했다.
“살아남을 거야, 반드시.”
“……그래.”
에이미의 눈에 번진 붉은 빛에 고개를 돌린 테스가 그녀의 나신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거의 회복됐네.”
가르시아에게 훈련을 받던 중에는 화상 흉터가 사라질 날이 없었다.
다행히도 이제는 어깨에 작은 딱지만 남아 있었고 그마저도 얼마 후면 떨어질 터였다.
“스승님 덕분이야. 훈련은 힘들어도 회복만큼은 최고 수준으로 받게 해 주셨거든.”
“그러고 보니 피부가 되게 뽀얗잖아? 이런 거라면 나도 해 볼까?”
물론 농담이었다.
화상과 회복을 반복하며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은 당사자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흐음, 그렇다 이거지?”
테스는 물광으로 매끈한 에이미의 몸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섬뜩한 기분을 느낀 에이미가 방어 자세를 취하며 돌아서자 테스가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 마. 명령이야.”
“후후, 이제 계급으로 누르겠다 이거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네.”
초고속으로 비눗물을 씻어 낸 에이미가 목욕 바구니를 들고 출구로 뛰었다.
“먼저 나가 있을게!”
부리나케 달려가는 에이미의 뒷모습에 테스가 피식 웃으며 엉거주춤한 자세를 풀었다.
“순진하기는…….”
심장이 거칠게 뛰고 아랫배가 울렁거렸다.
‘긴장이 풀리지 않아.’
물을 맞으며 한참이나 서 있던 테스가 주먹으로 벽을 쿵 하고 때렸다.
‘죽는다.’
거의 절대적인 확률로 죽는 전투일 것이다.
‘상관없어. 한 마리라도 더 죽이면 그만이야.’
아버지가 마족에게 당했을 때부터, 그녀는 전쟁터에서 죽기로 다짐했다.
‘적어도 1명은 살아야 해.’
에이미.
‘리안, 너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
카샨의 수도는 복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구역마다 간이 대피소를 세우는 게 고작인 가운데 오대성이 시로네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