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86
“우리는 상아탑으로 돌아갈 거야.”
미네르바가 말했다.
“지옥의 군대가 남하하고 있으니 당분간 여기는 무사할 테니까. 태성이 걱정되기도 하고.”
시로네도 아르간티스의 위력을 체감했기에 군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마무리하고 따라갈게요.”
프리드는 리안을 돌아보았다.
‘마하의 기사라.’
파계의 영역.
신적초월의 극한을 다룬다는 소문답게 일 검의 위력은 프리드를 상회했다.
“돌아올 때는 저 검사도 데리고 와라. 태성께서 만나고 싶어 하실 테니까.”
시로네가 돌아보자 리안이 즉각 답했다.
“시로네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갈 겁니다.”
그 대답 하나만으로도 오대성은 상아탑이 압박을 받는 기분이었다.
“재밌는 놈이군.”
프리드가 썩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고, 남은 자들이 그의 뒤를 따라 카샨을 떠났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시로네.”
“만날 사람이 있어.”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아가노스로 발길을 돌리는 그때,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가 떨어졌다.
풍장의 리더 율라였다.
“시로네 님, 여황님이 부르십니다.”
호칭이 달라진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랐다.
도착한 황성의 지하 시설은 아르간티스의 뿌리가 뚫고 지나가 거대한 터널이 뚫려 있었다.
“엄청난 괴물을 해치웠구나.”
“이제부터 시작이지.”
율라가 녹슨 철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들어가십시오.”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이어 철문이 열리자 허름한 방에 우오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시로네.”
예상과 달리 밝은 표정이었다.
구석에 놓인 간이침대에 키도가 배에 붕대를 감은 채 앉아 있었다.
“이야, 오랜만이네.”
“어? 키도?”
그가 우오린과 함께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시로네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얘기하자면 길어. 어쨌든 이 여자하고 한배를 타게 된 것 같지만.”
우오린을 돌아보았으나 그녀는 키도에 대한 설명 대신 자리부터 권했다.
“앉아.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어.”
시로네가 맞은편의 소파에 앉고 리안이 그의 뒤편으로 돌아가 기립했다.
‘2명의 파계라.’
인간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사회시스템의 지배를 받는 건 당연한 이치.
하지만 지금의 두 사람이라면 능히 하나의 국가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누추한 곳이라 미안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도 어쩔 수가 없네.”
“괜찮아. 네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우오린이 혀를 내밀었다.
“조금 창피한 일이 있었다.”
하비츠에게 무릎을 꿇을 당시의 감흥은 우오린에게 고작 그 정도였다.
“이것도 시로네 너를 위해서 한 일이야. 나같이 예쁜 여자가 죽으면 얼마나 손해야? 그리고 시로네 너도 살면서 제국의 여황 정도는 안아 봐야지.”
시로네는 말을 돌렸다.
“간도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어. 한심하기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걱정 마. 강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너도 무사하잖아. 이제부터 카샨을 재건해야지.”
우오린은 피식 웃었다.
“살다 보니 너에게 동정을 받는 날이 오는구나.”
“아니, 내 뜻은…….”
“알아. 하지만 내가 카샨이야. 게다가 성전도 남아 있지. 그리고 나 원래 이런 거 좋아해. 어려운 문제일수록…….”
우오린이 다리를 꼬며 미소를 지었다.
“정복하는 쾌감도 큰 법이지.”
너무나 당당해서 부아가 치밀기도 했으나, 의기소침해 있는 모습보다는 백번 나았다.
“하지만 카샨의 여황은 그만둘 거야.”
시로네의 눈이 커졌다.
“그만둔다고?”
“딱히 메리트가 없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알고 있었어.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부터, 테라제가 통제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우오린의 어깨를 으쓱했다.
“나네. 미로. 시로네. 가올드. 아, 이제는 리안까지. 각자의 철학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지. 하지만 내 생각에 현재 가장 강한 인간은 하비츠라고 단언할 수 있어.”
바야흐로 극악의 시대였다.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것은 포장된 역사에서나 가능한 일이야. 사람들은 영웅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감당할 수 있는 좌절, 감당할 수 있는 역경을 뛰어넘어 승리를 쟁취하는 영웅. 거기에 진실은 없어. 사실 누구도, 진실 따위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거야.”
인류에서 가장 오래된 테라제는 그런 방식으로 여황의 역사를 포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리야. 이 미쳐 버린 세계를 포장할 방법은 없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역사가 아닌 끔찍한 진실뿐.”
우오린이 시로네를 가리켰다.
“내가 바라보는 진실을 말해 줄까?”
시로네는 묵묵히 대답을 기다렸다.
“끝났다, 시로네. 선악공애, 누가 이기든 더 이상 아름다운 영웅의 이야기는 써지지 않아. 남아 있는 건 각자의 절망과 회한, 분노 그리고…….”
우오린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고통이다.”
***
“끄아아아!”
남방 대륙의 깊은 산속에 가올드의 절규가 처참하게 울려 퍼졌다.
“으아아! 으아아아아!”
벌써 2일째였다.
전투를 치르지도 않았건만, 이제는 살아 있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고통이 밀려드는 것이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강난이 울상을 지으며 흔들어 보지만 가올드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질 뿐이었다.
“아파. 아파아…….”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
머리는 하얗게 세어 버리고, 완전히 뒤집어진 눈에, 게거품을 물어 대며 경련하는 모습.
“…….”
강난이 남방에서 수십 번 목격한 광경이었다.
“끄아아아아!”
고통이 한계를 모르고 치솟으면서 가올드가 엎드린 채로 땅바닥을 기어 나갔다.
바짝 일어선 열 손가락이 땅을 미친 듯이 긁어 대지만, 누구도 그의 고통을 대신 당해 줄 수는 없었다.
“죽어…….”
강난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라리 죽어! 그냥 죽어 버리란 말이야! 이 모양 이 꼴로 더 살아서 뭐 해!”
미로가 원망스러웠다.
“지금 당장 시온으로 가자! 전부 죽여 버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버리고 끝내자고!”
“미로. 미로야…….”
아프다는 말 외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게 고작 그것밖에 없는 것인가?
“이 멍청한 자식아!”
가올드의 가슴에 올라탄 강난이 두 손으로 가올드의 목을 조였다.
“넌 이용당하는 거야! 네가 얼마나 아픈지 그 여자가 어떻게 알아? 억만분의 1이라도 알아?”
“끄으으으…….”
차마 목뼈를 부러뜨릴 수는 없었다.
“차라리 끝내 버리란 말이야.”
손에 힘을 푼 강난이 가올드의 얼굴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쏟아 냈다.
“그냥…… 죽자. 나랑 같이 죽자.”
가올드의 호흡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으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발, 제발…….”
둥그렇게 웅크리며 떨고 있는 강난을 줄루가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
“고통.”
시로네의 말에 우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름답게 포장된 역사의 이면에는 인간이 마주하기 싫은 고통이 생략되어 있다. 내가 카샨을 포기하는 이유는 더 이상 외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오린, 나는…….”
“끝까지 들어. 지금 당장 내가 너한테 안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잖아.”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부터 나는 카샨의 여황이 아닌 1명의 여인이 될 것이다. 어차피 달라질 것은 없어. 결국 너는 나를 받아들이게 될 테니까.”
“어떻게 장담하지?”
테라제의 밑그림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는 시로네는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너는 결코 나네를 넘을 수 없을 테니까.”
***
“싹이 텄네요.”
푸른 새싹을 내려다보는 나네의 등 뒤로, 수건을 머리에 두른 슈라가 다가왔다.
“그래. 싹이 텄구나.”
나네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아름답다는 생각.”
십로회의 괴물도 나네와 살을 맞대니 아낙네가 되어 버린 것일까.
슈라가 눈웃음을 지었다.
“어떤 꽃이 필까요? 아니, 풀이 자라려나?”
“아름다운 것은 꽃이 아니다. 내가 여기에 무언가를 심었다는 것. 그 마음이지.”
슈라는 경청했다.
“가올드의 고통도, 시로네의 박애도, 이 세계도, 결국 하나의 마음에서 싹튼 것이겠지.”
마음을 심는다는 것부터 시작된다.
“왜?”
나네의 등에서 금빛 기운이 일렁거렸다.
“애초부터 심지 않았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을.”
두 손으로 흙을 움푹 파내어 싹을 뜯어내자 슈라가 수십 미터를 물러섰다.
“부, 부처…….”
다시 깨어나는 것인가?
“집착하고, 번뇌하고, 있지도 않은 허상 속에서 행복을 찾아 헤매고!”
나네가 싹을 짓누르는 순간.
‘사라졌다.’
부처의 기운이 소멸했다.
“그럼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이유는…….”
나네가 천천히 손을 떼어내자 싹이 다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내가 심었기 때문이다.”
퍼낸 자리에 다시 싹을 놓아두고 부드럽게 흙을 덮어 주며, 나네가 말했다.
“이것이 이 세계의 마지막 문제다, 슈라.”
거의 도달했다.
“내가 넘을 유일한 것이니라.”
긴장이 풀린 슈라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가속화 (1)
쿵! 쿵!
검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괴물이 땅을 울리며 산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을 엔진으로 장착한 살수.
마테리얼로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는 살수의 외관은 유리구슬처럼 매끈한 표면의 사족 보행체였다.
얼굴은 둥그스름했고, 목에서부터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허리에 시로네와 리안이 타고 있었다.
“히익!”
인근 도시의 치안대가 황급히 말을 멈추고 옆으로 비켜서자 5미터 높이의 살수가 옆을 스쳐 지나갔다.
“뭐, 뭐야, 저건?”
치안대로서 멈춰 세워야 하지만 금속이 움직이는 광경 앞에서는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지! 정지!”
살수가 멈추자 치안대장이 다가갔다.
말을 타고 있음에도 시선보다 높은 곳에서 시로네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인간?”
마족이 아니라는 사실에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쉰 치안대장이 물었다.
“누구시죠?”
시로네는 카샨의 인장이 찍힌 통행증을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