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88
“흐음.”
지옥의 군대 제7군단의 사단장 파크마는 이프리트를 노려보며 도끼를 내렸다.
“이건 좀…… 흥미로운데?”
에이미의 뒤편에서 상사가 고함을 질렀다.
“대대장님! 빨리 이쪽으로!”
“먼저 가. 내가 시간을 끌겠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휘관을 두고 후퇴할 수는 없었다.
“걱정 마. 무리하지 않는다. 지금 후퇴하지 못하면 부대는 전멸이야.”
스피릿 존을 통해 대원들의 혼란스러움이 전해져 왔다.
“어서!”
에이미의 일갈에 정신을 차린 대원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자 파크마가 폭소를 터트렸다.
“멋지구나! 부하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다니. 하긴, 그래서 인간을 괴롭히는 게 재밌는 거지만.”
시간을 길게 끌수록 아군의 생존자는 늘어날 것이기에 에이미는 침묵을 지켰다.
“결정했다.”
파크마가 도끼를 휘두르자, 강풍이 몰아치면서 이프리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너 같은 인간은 고통이 통하지 않아.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천천히 녹여 주지.”
전쟁터에 나선 여자로서 패자가 어떤 취급을 당할지는 이미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실망스럽네. 고작 한다는 말이 그거야?”
각오에 비해 턱없이 덜떨어진 마족의 협박이 오히려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행동파거든. 일단 내 손에 붙잡히면 실망 따위 할 겨를도 없을 거다.”
그것 또한 사실.
아군의 거리가 벌어진 것을 확인한 에이미가 눈을 빛내며 앞으로 돌진했다.
‘마족 사단장이라.’
발키리 군단장을 목표로 하는 에이미에게는 언젠가는 넘어야 하는 산이었다.
‘화권!’
이프리트의 주먹이 질풍처럼 휘둘리면서 사방에서 화염의 폭발이 일어났다.
한 발 한 발이 상급 마법에 준하는 위력.
“고작 이거냐?”
하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서면 위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기가 된다.
“너무 쉬운 것도 재미없지만…….”
이프리트의 불길을 뚫고 들어온 파크마가 허리를 뒤틀며 도끼를 쳐들었다.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강력한 일격을 내지르자 도끼에 뚫린 3개의 구멍에서 찢어질 듯한 소리가 터졌다.
타락의 음파.
거부할 수 없는 소리를 듣는 순간 에이미의 눈에 지옥의 풍경이 펼쳐졌다.
‘뭐지?’
땅 밑에서 썩은 팔이 올라와 발목을 붙잡더니 어느새 시체들이 주위를 메우고 있었다.
‘몸이 안 움직여.’
쇼크 상태인가?
‘정신은 멀쩡한데?’
끔찍한 소리를 들은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흐으으으…….”
땅에서 기어올라 온 시체들이 에이미를 둘러싸더니 그녀의 입을 손으로 벌렸다.
그 시체들 사이로 파크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크크크, 드디어 잡혔군.”
에이미에게 다가온 그가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지네를 내밀었다.
“먹어라. 맛있을 거야.”
혐오감의 극치였지만, 훈련된 마법사의 정신은 상황과 감정을 완벽하게 분리시켰다.
‘움직일 수 없는 게 아니야.’
음파가 뇌에 꽂힌 순간 벌어지는 환영이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았어.’
시간은 오감의 착각, 감각에서 분리된 뇌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
강제로 벌린 입으로 벌레가 들어오는 순간 에이미의 눈에서 홍안이 타올랐다.
정신에 관련된 작용이라면 무엇이든 초기화시킬 수 있는 것이 자기상 기억.
눈동자가 붉게 변하는 것과 동시에 지옥의 풍경에 쩍쩍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되돌린다.’
소리를 듣기 직전의 상태로.
정신을 차리자 괴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고 있는 파크마가 보였다.
“잡았……!”
에이미의 몸이 반사적으로 돌아서고, 파크마의 무게중심이 급격히 앞으로 쏠렸다.
“푸우우우!”
일도의 경지로 정신을 증폭시킨 에이미의 주먹에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거나 먹어라!’
하체부터 끌어 올린 회전력으로 파크마의 옆구리에 일격을 먹이자 폭발이 일어났다.
“크아아아!”
충격파에 날아간 파크마가 부여잡은 옆구리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너……!”
파크마의 얼굴이 섬뜩하게 일그러졌으나 에이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싸울 자세를 취했다.
“기억해 두겠다.”
파크마의 눈에 광채가 번뜩였다.
“절대로 잊지 않아. 내 망막을 파내서라도 네 얼굴을 새겨 둘 것이다. 기억해라. 내가 너를 잊지 않는다.”
정신 계열에 면역이라면 정공법은 불리, 파크마는 훌쩍 뛰어올라 아군의 진영으로 멀어졌다.
“죽일 생각으로 쳤는데.”
사단장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에이미!”
테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이끄는 기마 부대가 마족들 사이를 종횡무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테스!”
마족들의 눈에 정확히 세검을 박아 넣은 테스가 에이미를 말등 위로 끌어 올렸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전부 후퇴했단 말이야!”
등을 맞대고 앉은 에이미가 후방에 화염 마법을 쏘아 대며 소리쳤다.
“전황은 어때?”
“완전히 밀렸어. 수비 라인을 2킬로미터 당긴다는 지시가 내려왔어.”
에이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사단장 하나 해치우지 못하다니.’
힘의 차이는 여실했다.
가뭄에 콩 나듯 들리는 세계 저편의 승전보가 오히려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시로네가 성음을 일으켜 세웠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성음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지옥의 군대가 해상을 완전히 장악했어. 제8군단장 미투라. 바다를 지배하는 악마야. 진천으로서는 그를 막아 낼 방법이 없다.”
10대 군단장의 이름에 시로네의 표정이 변했다.
“마계는?”
“아직 열지 않았어. 그럼에도 밀린다는 게 수치스러운 일이지. 네가 카샨을 구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제발 도와 다오.”
성음이 다시 절을 하려고 들자 시로네가 황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이러지 마. 마족과 싸우는 일이라면 도와야지.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할 게…….”
시로네가 말을 흐리자 리안이 곁눈질을 했다.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아탑의 지휘부가 중부 대륙을 침범하는 마족을 최고 위험 요소로 평가해 주기를.
“네가 무엇을 신경 쓰는지 알아. 태성에게 들었다.”
“응? 태성?”
성음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해상권을 장악하면 진천은 곧바로 구스타프를 칠 것이다. 지옥의 군대의 본진이라 할 수 있지. 거기서 우리가 승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시로네도 깨달았다.
“중부 대륙에서 싸우고 있는 지옥의 군대도 구스타프로 복귀할 수밖에 없지.”
군단장은 없어도, 하비츠가 있는 부대였다.
“진천을 도와준다면, 우리도 너를 돕겠다. 아니, 내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방법을 찾을 테니…….”
“알았어.”
그 강직한 성음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살수를 향해 손을 내밀자 마테리얼이 풀리면서 이 시로네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물질을 창조하는 능력에 운동성을 부여할 수 있는 이유는, 마테리얼이 아르망의 정신이기 때문.
‘해상전이라…….’
아직 물에서 싸운 적이 없다는 것은 시로네의 성장 기간이 얼마나 짧았는가를 말해 주는 것이지만, 마테리얼이라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가자, 리안.”
리안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로네의 뒤에 서자 성음이 에테르 파동을 시전했다.
“고맙다.”
시로네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는 순간, 세 사람이 산중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
천국 제3천 셰하킴.
천국의 군대를 조직한 이카엘은 출진을 앞두고 영생자 커뮤니티, 십로회를 찾았다.
라 에너미의 부름을 받아 9명의 간부들은 지국으로 넘어갔지만, 오직 1명만은 이곳에 남아 있었다.
‘아니, 갈 수가 없는 것이지.’
밀실로 들어서자 롱 테이블의 한 곳에 10대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 있었다.
수장 베론이 앉아 있던 자리의 왼편이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서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지?”
“…….”
십로회 서열 2위 손유정.
앳된 모습과 달리 1만 세가 족히 넘었을 그녀는 천사장의 방문에도 침묵을 지켰다.
‘과연 잘한 일일까?’
대천사 회의 백경에서도 말이 많았던 사안이고, 특히나 이미르는 질색을 했다.
천국의 역사에서, 이미르나 오젠트 이전에 파계의 경지에 도달했던 강력한 생물이 있었다.
‘통제 불능이 될 것이다. 이미르하고는 달라.’
유정은 삶의 목적이 없다.
판단의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극악에 가까운 성향인 것이다.
‘정신을 차렸으면 좋으련만.’
앙케 라가 그녀를 구속하기 위해 머리에 씌운 금륜은 나네가 파계를 허하는 것으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천국을 위해 싸우겠느냐?”
그럼에도 그녀를 데려가야 하는 이유는, 천사들의 천적인 사탄이 지국에 강림했기 때문이다.
‘손유정이 필요하다.’
혼돈으로 혼돈을 친다.
이것이 지국과의 최종 일전에 앞서 이카엘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천국을 위해?”
유정이 고개를 돌리며 혀를 내밀었다.
“그딴 짓을 왜 해?”
이카엘이 눈을 부릅뜨며 손을 휘두르자 의자가 산산조각 부서졌다.
끽! 끽!
황급히 몸을 날려 벽에 붙어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닌 한 마리의 원숭이였다.
“한낱 짐승에게 물은 게 아니다.”
바람처럼 다가와 원숭이의 목을 붙잡은 그녀가 얼굴 앞으로 끌어왔다.
“지금 어디 있느냐, 너의 주인은?”
이카엘이 찾는 자는 원숭이의 몸으로 깨달음을 얻어 신의 반열에 오른 무장의 후예.
손오공의 증손녀 손유정이었다.
끽! 끼기긱!
원숭이가 죽을 표정을 지으며 벽 너머를 가리키자 이카엘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광륜이 회전하고 순식간에 벽을 뚫고 올라서자, 고도 2킬로미터의 하늘이 펼쳐졌다.
끼이이익!
겁에 질린 원숭이가 지상에 오줌을 갈겼다.
“어디야?”
지평선 너머의 산맥을 가리킨 순간 이카엘의 ‘굽어보기’가 산맥 전체를 훑었다.
유정을 발견한 그녀가 한숨을 내쉬더니 한 줄기의 섬광이 되어 산맥으로 뻗어 나갔다.
끼잉! 끼이잉!
바닥에 내려앉자 원숭이가 팔로 눈물을 훔치며 거대한 동굴의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뒤를 따르는 이카엘은 성광체의 빛에 의지해 흐릿한 동굴의 풍경을 살폈다.
건조한 모래로 뒤덮인 바닥에 말 갈퀴처럼 헝클어진 검은 머리를 침대 삼아 드러누운 소녀가 보였다.
“일어나라. 수백 년을 자느냐?”
“으음…….”
유정이 미간을 찡그리더니 바지춤에 손을 넣고 벅벅 긁은 다음 냄새를 맡았다.
그녀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는 이카엘이 소리쳤다.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