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94
내가 좋아하는 일을 최고로 잘하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바라는 게 없었다고.
‘그런데 세상에 나와 보니까…….’
마법을 잘하는 것보다 그냥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게 제일 힘들더군.
책임져야 할 것들, 감당해야 할 것들.
선택해야 하는,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수많은 카드들.
‘내가 버릴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나 자신이었어.
‘아무리 힘들어도 말이야.’
정말이지 내가 가진 카드 중에 버릴 수 있는 건 나 하나밖에 없더라고.
‘나만 참으면 돼.’
책임은 끝없이 어깨 위에 쌓이고, 감당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처럼 불어나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까.’
모든 인류를 내가 짊어지고 있더란 말이지.
“시로네! 준비해!”
마족들이 100미터 전방까지 도달한 시점에 리안이 소리쳤으나, 시로네는 반응이 없었다.
“시로네!”
순간 이동을 시전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아무도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세상에는 싫은 인간들도 바글거리지만, 그들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어디서부터 시작된 폭탄 돌려막기인지.’
내가 왜 나네를 이길 수 없었냐고?
솔직히 말하면, 내 마음속의 깊은 곳에서는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이럴 거면 차라리 다 끝내 버려.’
폭파시켜 버리자고.
‘억울할 것도 없어. 세상이 닫히면 그만이지. 모두 다 사라지면 힘든 것도 없잖아. 그래, 여기서 끝내.’
끝내는 거야.
“시로네!”
리안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의 얼굴이 무섭게 구겨졌다.
“으아아아아!”
오른손에 떠오른 빛의 구체가 무섭게 진동하며 백광의 빛을 뿜어냈다.
“죽어라! 인간!”
창을 겨누며 날아드는 마족의 얼굴이 시로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감정, 어떤 느낌.
“으아아아아아아!”
당장 부숴 버리고 싶은, 끔찍하고 증오스러운 느낌.
‘순수성?’
박애의 초심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우주 한복판에 있는 것 같아.’
떠나온 행성은 별처럼 작게 보여서, 그곳이 과연 내 시작점인가도 의심스럽고.
‘방향성마저 상실해서.’
나에게 남은 것은 시작한 곳에서 내디뎠을 첫발의 미약한 관성밖에 없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 관성이 그저 무사히 자신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한 줄기의 섬광이 마족을 강타하는 순간, 반경 수십 미터를 날려 버리는 폭발이 일어났다.
“이런……!”
충격파를 맞이한 리안이 걸음을 멈추고 황급히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폭발?”
포톤 캐논은 폭탄이 아니다.
‘마치, 바다 한복판에 떨어진 거야.’
물을 밀어내지 못하면 익사하고 말겠지만, 그렇다고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알아?’
혼자라는 거야.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지극히 명백해서, 살려 달라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거.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
표정조차 변하지 않아.
겁에 질린 얼굴도, 비명 소리도 의미가 없으니까.
그저 적막 속에서 조용히 버둥거리는 거야.
동공은 확장되고, 얼굴은 잔뜩 얼어붙어서, 그런데 또 정신은 이상하게 또렷해서.
‘뭐라도 해 보려고 허우적대는 게…….’
야훼였다.
마치 공간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사방에서 불의 구체가 피어올랐다.
“크아아아아!”
초당 수백 발의 포톤 캐논.
다만 전과 다른 점은, 포톤 캐논의 섬광이 목표물에 도달하기도 전에 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빛?’
마법 세계에서 네 가지로 구분되는 빛의속도를 인간의 눈으로 구별할 도리는 없다.
하지만 리안의 느낌은, 시로네의 포톤 캐논이 전보다 빛에 더 가까워졌음을 직감했다.
“으아아아아!”
연약한 마법사의 몸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마족들이 불에 타들어 가고 있었다.
시로네의 손에 또 한 발의 포톤 캐논이 떠올랐다.
‘죽어라!’
질량을 가진 섬광이 뻗어 나가는 속도는 준아광속을 넘어 아광속에 도달했고.
‘죽어!’
포톤 캐논의 속도에 비하면 대기의 입자들은 정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콰아아아앙!
고열로 인해 일대가 녹아내린 자리에 멀쩡히 서 있는 마족은 없었다.
아광속의 포톤 캐논이 얼마나 위험한지 직감한 리안이 이를 악물었다.
‘대상을 상정하고 시전하는 마법이 아니야.’
말 그대로 공간 전체를 타격하는 방식이라면, 황성의 민간인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제길!’
리안은 마족들을 몰살시키는 시로네를 떠나 구스타프의 황성으로 몸을 날렸다.
‘시로네, 정말로 후회하지 않겠냐?’
영원히 미쳐서 살 게 아니라면, 최악의 인명 살상 사태는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후회하지 않아.’
끝없이 밀려드는 마족의 군대를 무참하게 짓밟으면서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 전쟁을 끝낼 거야.’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려서, 이제는 오감으로도 위치를 짐작할 수 없지만.
‘느끼고 있어.’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의 감정만큼은 지금도 마음 깊숙한 곳에 반짝이고 있었다.
‘돌아갈 거야.’
이 끔찍한 전쟁이 끝나면, 순수했던 시절의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타락시아.”
육탄계.
오색찬란한 마법진을 통과한 시로네의 정신력이 폭발할 듯 팽창했다.
단위면적당 소멸하는 마족의 숫자를 떠올린 시로네는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마족들이 줄어들고 있다.’
죽이면 죽는다.
더 이상 보충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성음이 이 세계에 가져다준 핵심적인 희망이었다.
“흐으으으…….”
성음을 떠올린 시로네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이게 뭐야.”
이런다고 성음이 돌아오나?
“이게 뭐냔 말이야아아아!”
분노의 일갈과 함께 퍼져 나간 광폭이 직경 200미터를 돌파하는 순간.
퍼어어어어엉!
반경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폭발이 일어났다.
황성 마르사크.
“사령관님! 진천 제국의 20만 병력이 수도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뭐?”
구스타프 제1사령관이자 리안의 큰형인 오젠트 가이가 미간을 구겼다.
“무슨 헛소리야? 지옥의 군대가 진천 바다를 점령하고 있는데 어떻게…….”
말을 멈춘 가이가 생각에 잠겼다.
‘이미 일어난 일의 원인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곧바로 표정을 바꾼 그가 전령이 가져온 보고서를 빼앗아 들고 읽어 나갔다.
“공간 조작인가?”
하지만 대체 어떻게?
마법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바다를 접어 버릴 정도로 공간을 조작하는 마법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진성음.’
만의 하나 가능하다면 그녀밖에 없을 것이다.
“수도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리지?”
“지옥의 군대를 총동원한다면 최소한 3일 이상은 묶어 둘 수 있습니다.”
구스타프 수도에 있는 지옥의 군대는 전체 병력의 5할에 달했다.
무엇보다 마계를 열 수 있는 군단장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것도 큰 힘이었다.
“좋아. 폐하께 전보를 부치겠다. 총군사의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총력전을 펼쳐라.”
“급보! 급보입니다!”
두 번째 전령이 뛰어들어 왔다.
“진천 군대에 앞서 마법사로 추정되는 자가 마족의 부대를 전멸시키면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법사? 몇 명인데?”
“그…… 보고에 의하면 1명입니다.”
가이의 눈이 빛났다.
‘그 녀석이로군.’
야훼.
진천 제국의 군대라면 몰라도 야훼가 온 이상, 군단장들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좋아, 지금…….”
가이가 몸을 돌리려는 그때, 세 번째 전령이 들어왔다.
“보고드립니다! 1명의 검사가 마족들의 군대를 뛰어넘어 황성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검사야?”
“아직 큰 타격을 입히지는 않고 있지만 접근 속도가 가장 빠릅니다. 이대로는 1시간 안에 도착할 겁니다.”
지옥의 군대를 뛰어넘어 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실력자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호오? 누군데?”
“그게…….”
전령이 보고서에 적힌 내용을 보더니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마하의 기사.”
가이의 눈썹이 씰룩했다.
“오젠트 리안이라는 자입니다.”
“…….”
보고가 떨어진 뒤에도 가이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흐음.”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기며 내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그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왔구나, 내 동생.”
광기로 어른거리던 가이의 눈빛에 일순 다정한 감정이 깃들었다.
추녀 (4)
***
자이브, 몰튼, 보르나이의 국경선에 수비벽을 치고 있던 발키리 부대는 모두 후퇴했다.
지옥의 군대가 남하한 가운데 하비츠는 폐허로 변해 버린 자이브 왕국을 산책했다.
그를 호위하는 나타샤가 물었다.
“시체밖에 없는데 여기서 뭐 해? 차라리 전장으로 가는 게 훨씬 재밌을 텐데.”
이미 발칸은 지옥의 군대를 이끌고 남진했다.
“다 죽지는 않았을 거야.”
하비츠가 덧붙였다.
“죽여야지.”
나타샤는 인형처럼 깜찍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하비츠는 잔인하구나.”
지옥의 군대가 이곳을 떠났으니 생존자들은 삶의 희망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불쌍하잖아.”
딱히 감정이 깃든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타샤, 너는 참 이상해.”
하비츠가 걸음을 옮기자 나타샤가 정확한 보폭으로 뒤를 밟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