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95
“내가 이상해?”
“발칸, 스모도, 제타로. 다들 재밌는 놈들이지만, 너는 좀 달라. 뭐라고 해야 할까.”
하비츠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좋은 사람 같아.”
호인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도 여리고 말이야. 네 허리를 부러뜨렸던 괴한들에게 복수도 하지 않았잖아?”
나타샤는 양손으로 머리를 떠받쳤다.
“복수해서 뭐 해? 그런다고 다시 무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검지를 세우며 강조했다.
“그리고 나는 절대 좋은 사람 아니거든! 내가 여태까지 죽인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그건 그렇지.”
하비츠는 시체들을 발로 툭툭 치면서 남은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너는 수없이 많은 인간을 죽이고 있지만…….”
나무판자 밑에 남자가 누워 있었다.
“반대로 인간의 편이었다면, 모두가 너를 좋아했을 거야. 그리고 나에게 맞서 많은 사람을 구했겠지.”
그런 느낌인 것이다.
“흐음.”
생각에 잠긴 나타샤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쨌든 나는 너랑 같이 다니고 있는데. 그리고 다른 쪽에 붙을 생각도 없어.”
하비츠가 나무판자를 치우며 말했다.
“나도 너랑 노는 건 재밌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는 거야.”
“그렇게 하고 있어.”
대화를 끝낸 하비츠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일어나.”
거짓말처럼, 남자의 몸이 꿈틀거렸다.
“살, 살려 주십시오.”
허리에서 장검을 뽑은 하비츠는 곧바로 남자의 심장을 향해 내리꽂았다.
“커억!”
그리고 죽어 가는 남자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체념. 후회. 원망.’
한 사람의 인생이 하나로 통합된 듯한 눈빛.
‘온다.’
그 눈빛의 말미에서, 분석할 수 없는 느낌 하나가 찰나의 순간 불타올랐다.
‘대체 무엇일까?’
죽은 시체의 눈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생명 그 자체의 증발을 보는 듯했다.
나타샤가 물었다.
“왜 그거에 집착해?”
“그냥 신기해서.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아. 중독 같은 거지. 그래서 계속 죽이게 된단 말이야.”
나타샤는 딱히 흥미가 없었다.
“더 죽이고 싶으면 다른 곳으로 가 보자. 여기에는 생존자가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럼 저기 마을로…….”
하비츠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 마을 대신 사람들의 인영이 서 있었다.
나타샤가 고개를 돌리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어느새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상한 기계장치를 장착한 자들, 마법사처럼 로브를 입은 자들, 상의를 탈의한 가무잡잡한 자들.
영생자 커뮤니티였다.
해가 떨어져 사위가 으슥했으나 그들 하나하나의 기도가 태양처럼 불타는 듯했다.
영생자의 인파를 헤치고 3명의 남녀가 걸어 나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분명 다른 100명과는 기질이 다른 존재였다.
‘특이한 느낌이네.’
1만 년을 넘게 살아온 십로회의 간부라는 점에서 나타샤의 촉은 틀리지 않았다.
노르의 허무주의자, 십로회 서열 5위 배니싱이 등에 매단 거대한 붓을 내밀며 물었다.
“너희들은 뭐야? 이미 자이브는 멸망했을 텐데, 여기서 얼쩡거리는 이유가 뭐야?”
“들을 필요 없어. 내가 살펴보면 되니까.”
메카족의 여성, 십로회 서열 8위 오시란테가 계란 크기의 드론을 눈에 댔다.
증강 현실을 통해 하비츠의 정보가 떠올랐다.
“어라? 이 녀석, 구스타프의 황제야.”
“호오?”
케르고 전사, 십로회 서열 6위 이토카가 두꺼운 도를 치켜들었다.
“황제라고?”
그의 육체에서 뿜어지는 고슴도치의 가시 같은 살기에 나타샤가 눈을 빛냈다.
‘강하네.’
육체기술자 이토카.
검으로는 서열 9위의 박녀를 뛰어넘는다고 알려진 케르고 최강의 전사였다.
“멋진 전리품이 되겠어. 부처를 찾으러 왔다가 이런 거물을 만날 줄이야.”
앙케 라가 사라진 이후 십로회의 간부들은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다가 나네를 찾아 다시 세계를 일으키자는 뜻을 모은 게 지금의 간부들이었다.
팀의 리더인 배니싱이 지평선을 넘어다보았다.
‘슈라와 같이 있으니 찾기가 쉽지 않아. 약해 빠진 주제에 숨는 건 잘하니까.’
하비츠가 콧수염을 꼬며 물었다.
“너희들은 우리의 적인가?”
메카족의 기술자, 오시란테가 답했다.
“구스타프 황제라면 시대의 극악. 딱히 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군도 아니지.”
“그럼 그냥 보내 주면 안 되나?”
영생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뭐야? 지옥의 수장이라기에 기대했더니 마족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하비츠는 담담했다.
“당분간은 싸우고 싶지 않거든. 나는 전의를 상실한 자들을 죽이고 싶어.”
생의 마지막 불꽃을 더욱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냐, 천하의 개자식아?”
평화주의자는 아니지만, 영생자에게도 하비츠의 악행은 혐오스러운 데가 있었다.
“여태까지 죽이고 다니느라 재밌었지? 어디, 네가 당하는데도 즐길 수 있나 보자고.”
하비츠가 몸을 돌렸다.
“나타샤.”
“응?”
“먼저 갈게. 이런 건 귀찮아.”
나타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먼저 가.”
영생자들이 무기를 꺼냈다.
“동료를 두고 튀겠다고? 이제 보니 지옥의 수장이 아니라 쓰레기 같은 놈일세.”
비난이 쏟아졌으나 하비츠는 대답이 없었고, 그들의 시야에 나타샤가 들어왔다.
“사신의 무도.”
자리를 옮긴 나타샤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두 무릎을 안쪽으로 휘꺼덕 꺾었다.
무릎이 땅에 닿기 직전 10미터 높이에 떠오른 해골의 화신이 그녀의 사지에 강선을 연결시켰다.
“화신술?”
높은 경지지만, 기본적으로 1천 년 이상을 산 영생자들에게는 기본 소양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간 끌 필요 없어. 죽여라.”
케르고 전사들이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나타샤의 눈에 서늘한 빛이 떠올랐다.
사신의 무도-살인 기계.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인형의 잔상.
“으아아아!”
세상이 멸망할 듯한 온갖 소리를 외면하며 하비츠는 마을로 걸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커억!”
나타샤의 주먹이 명치를 꿰뚫자 오시란테의 입에서 핏물이 역류했다.
그것으로 전투는 종료.
개시부터 완료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분이 채 되지 않았다.
‘무슨 이런…….’
오시란테의 망막에 조금 전 드론이 전송한 증강 현실의 데이터가 깜박거렸다.
나타샤의 신체 능력 수치를 분석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죽음보다 더 아쉬웠다.
‘신은 미친 게 아닐까?’
어떻게 이런 걸 만들어 내지?
명백히 신이 미쳐서 창조한 생물이거나, 신이 만든 것이 아니어야 한다.
‘내 생각에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오시란테가 다른 동료들처럼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나타샤가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쓸어냈다.
짧은 전투였지만 반경 수백 미터가 폭격을 맞은 듯 난장판으로 갈아엎어져 있었다.
“대단한 놈들이네.”
나타샤의 경험으로 미루어 봐도 현재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러게 하비츠가 가라고 할 때 가지.’
감흥은 그게 전부였다.
“하비츠.”
발에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통통 튀어 오른 그녀가 하비츠를 따라잡았다.
“끝났어?”
“응. 전부 죽였어.”
하비츠의 머릿속에서 ‘강함’으로 정의되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나타샤였다.
“즐겁지는 않았나 보군.”
“싸우는 게 뭐가 즐거워? 힘들고, 귀찮지. 그나마 춤이라도 출 수 있으니까.”
인류 최강의 3명을 죽인 일도 나타샤에게는 달빛 아래의 무용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럼 즐거울 때는 언제야?”
“…….”
보름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나타샤가 하비츠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비츠는 어때? 내가 저들을 죽여서 즐거워?”
“즐겁지. 이기는 건 재밌잖아.”
나타샤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도 즐거워.”
하비츠는 눈을 깜박거렸다.
“넌 정말 이상한 아이야.”
구스타프 4기예는 모두 이상하지만 나타샤의 경우는 성질이 조금 달랐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그녀에게는 딱히 ‘하비츠’여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도 다 불탔네.”
마을로 진입한 두 사람은 이미 폐허로 변해 버린 정경을 두리번거렸다.
생존자를 죽일 생각에 들떠 있던 하비츠의 눈에 잠시 실망감이 깃들었다.
“너무하는군. 아무리 내 부하라지만 1명도 남기지 않고 전부 죽이다니.”
즐길 거리는 남겨 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그때, 밤공기를 타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생존자!’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이 달려간 곳은 거의 쓰러져 가는 낡은 판잣집이었다.
“아이만 살았나?”
하비츠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판잣집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쳤다.
“흐음.”
하비츠가 문 아래를 발로 밀자 문이 열리면서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
판자 지붕을 뚫고 내려오는 달빛 아래에 뚱뚱한 여성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들창코에 불규칙한 치열이 입술 밖으로 튀어나오고, 눈은 쭉 찢어진 얼굴이었다.
“날 죽이러 온 거냐?”
하비츠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
“기다려. 아이 젖 좀 먹이고.”
하비츠는 기다렸다.
아이를 어르며 젖을 먹이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죽이면 네가 이 애를 데려다 키워. 안 그러면 굶어 죽고 말 거야.”
하비츠는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네 아이인가?”
“응.”
“아버지는?”
“몰라. 여긴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이야. 용병들에게 빵 하나를 받고 몸을 팔았지. 그중 한 놈이 아비일 거야. 죽었는지 살았는지…….”
“잘 먹는군.”
하비츠는 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여자가 품고 있는 아이에게 기어갔다.
사력을 다해 젖을 빠는 아이의 호흡은 숨이 넘어가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맛있나?”
하비츠가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먹는 모습을 쳐다보자 여자가 물었다.
“너도 먹어 볼래?”
하비츠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