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96
“나도?”
“가슴은 2개니까. 먹고 싶으면 먹어. 대신에 나한테 빵을 줘. 빵 있어?”
하비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짐승처럼 엎드려 기다리자 여자가 엉덩이를 돌리더니 반대쪽 가슴을 하비츠에게 내밀었다.
“자. 이쪽으로.”
악취가 풍기는 여자의 가슴을 빤히 쳐다보던 하비츠가 입술을 내밀고 눈을 감았다.
쪽. 쪽쪽.
빠는 소리가 격렬해지면서 하비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생명.’
이어져 있다.
쪽쪽. 쪽쪽.
여자의 가슴에 파묻힌 두 어린아이를 나타샤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특이점 (1)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젖을 물리고 있던 여자가 하비츠의 어깨를 살며시 밀어내며 말했다.
“아파. 이제 그만 먹어.”
천천히 입을 뗀 하비츠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아.”
모유의 맛은 달콤하면서 비렸지만, 하비츠의 머릿속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10분의 공백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안식이 주는 전율.
‘여기가 시작이다.’
여자의 모유에는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종류의 쾌락이 녹아 있는 듯했다.
“아기가 되고 싶어?”
여자의 물음에 하비츠가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세상은 그에게 여러 이름을 붙이지만, 실상 본인의 머릿속에 정의된 자아는 없다.
헝클어진 생각과, 그 생각의 변주 속에서 간간히 쏘아지는 쾌락만이 전부.
“응애. 응애.”
하비츠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건조한 얼굴로 순수를 연기하는 모습은, 가식의 극치라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다.
‘이것이 혼돈.’
마치 낙태당한 아기와 같다.
실상은 태어나지 못했음에도, 부모의 기억 속에 자식으로 살아가는 막연한 형태.
‘온갖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 압축되어 있는 시점.’
나타샤는 하비츠를 이해했다.
‘2명의 자식이 물에 빠진 것을 발견한 순간의 번뇌, 그 감정을 무한대로 증폭시키면 하비츠가 될까?’
그리고 지금 각성했다.
“응애. 응애.”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하비츠는 그 자체로 자신을 정의했다.
‘나는 사탄이다.’
***
하비츠로부터 17킬로미터 떨어진 마을.
마족들이 먼저 휩쓸고 도적들이 약탈해 간 마을에,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흐윽.”
왼쪽 다리가 잘려 피를 철철 흘리는 여성이 힘겹게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아가.”
그녀가 손을 뻗은 곳에는 화살에 관통당한 어린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엄마, 아파요.”
여자의 눈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고, 그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는 나네와 슈라가 있었다.
“괜찮아, 아가야.”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죽으면…….”
이를 악물고 슬픔을 참아 보려 했으나, 도저히 참담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죽으면 괜찮아질 거야.”
나네가 입술을 굳게 다무는 가운데, 마음이 찢어지는 여자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죽어 가는 자식의 옆에서 악을 지르던 여자는 결국 과다 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나네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합장했다.
“극락왕생하시길.”
슈라가 말했다.
“그만 돌아가요. 마족들과 싸울 것도 아니잖아요.”
산에 숨어 수양을 쌓던 나네가 돌연 세상으로 나가자고 할 때는 의아했다.
“아니.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다. 조금 더 세상을 돌아보자꾸나.”
“뭐야, 너희들은?”
시커먼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왔다.
전쟁 중에 무리에서 이탈한 마족들이었고, 저마다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슈라가 싸울 태세를 취했다.
“물러서라, 죽고 싶지 않으면.”
“크크크, 어처구니가 없군. 심령권이 닫혔다고 우리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아?”
나네가 물었다.
“심령권이…… 닫혀?”
불과 하루밖에 되지 않은 일이기에 나네는 성음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다.
“네까짓 것들이 알 필요 없어. 조용히 우리들의 분풀이 대상이나 되는 게 할 일이야.”
나네는 마족에게 관심이 없었다.
“심령권이 닫혔구나.”
제단을 개방했을 때만 해도 인간은 대정화기에 쉽게 휩쓸릴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은 강하다.’
가올드에게 얻어맞은 것도 그렇지만, 세상을 가볍게 너무 본 게 사실이었다.
“돌아가라. 앞으로는 악행을 일삼지 말고 참회하며 살아가도록 해라.”
마족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푸하하하! 지금 뭐라고 그러는 거야? 미친 거 아냐?”
“마족에게 악행을 일삼지 말라고? 하찮은 인간 따위가 우리에게 설교를…….”
마족들의 얼굴이 동시에 얼어붙었다.
“스, 스승님.”
창백한 얼굴로 돌아본 슈라는 나네의 몸에서 타오르는 빛의 아지랑이를 보았다.
“부, 부처…….”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다시 부처가 되어 세상을 박살 낼 수도 있는 나네였다.
“돌아가라고 했다.”
나네의 눈이 크게 뜨이는 것과 동시에 마족들이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적들이 사라지자 세상을 찢어 버릴 것 같던 기운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스승님, 어째서 참으시는 겁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깨달았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에.
“마족마저 사랑하고 동정하는 박애, 시로네. 나는 그의 생각을 조금 더 알고 싶다.”
박애의 경지에서 세상을 보았을 때도 부처의 관점에 흔들림이 없다면.
‘진정 옳은 것이 된다.’
나네가 슈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나의 극단은 전체를 떠받치지 못한다. 시로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각자의 극단에서 자신을 주장하던 자들 모두가 특이점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무엇이 됐든, 끝날 것이다.
***
아침의 태양이 떴다.
광천성의 공간 왜곡을 통해 구스타프로 들어온 진천의 군대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대체 이게…….”
눈에 보이는 어디에나 마족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재앙이라도 내린 것인가?”
마치 자연재해가 쓸고 지나간 것처럼 모든 건물들이 붕괴된 상태였다.
“야훼의 힘이다. 어쩌면 우리가 나설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는지도 몰라.”
오룡장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황녀님.’
성음의 희생으로 진천의 사기가 올랐지만, 그녀가 정말로 기대고 싶었던 것은 시로네였다고.
‘그래서 그분과 하루를…….’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니, 우리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진천에서 가장 고귀한 분이 만들어 준 자리야. 반드시 이긴다.”
진천의 군대가 다시 수도를 향해 나아갔다.
지평선 저 멀리에서, 마치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마족들의 비명 소리가 넘어오고 있었다.
시로네는 더 이상 달리지 않았다.
‘나네가 세상을 닫았다면…….’
성음이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지 않아도 되었을 터였다.
‘내가 참을 수 있다고…….’
남도 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야말로 고통을 모른다.’
박애의 정신으로 세상을 구원하면 모두가 행복하겠지만, 성음은 돌아올 수 없다.
‘파괴한다.’
걸음을 옮기는 시로네를 중심으로 눈이 멀 것 같은 빛의 파동이 끝없이 퍼져 나갔다.
아광속 레벨에 도달한 신의 입자는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 냈다.
“으아아아! 도망쳐!”
수도 인근의 도시, 파멜리온을 점령하고 있던 마족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야훼를 가증스럽게 여기는 그들이었으나, 지금의 시로네 앞에서는 공포의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도망! 도…….”
시간이 거의 정지한 듯 느려지고.
“망……쳐…….”
풍경을 가득 채운 마족들의 등 뒤에 빛의 입자들이 무한대로 꽂혔다.
폭발이 일어나기도 전에 거구의 육체가 먼지처럼 흩어지고, 뒤이어 충격파가 휩쓸었다.
쿠쿠쿠쿠쿠쿠쿠!
마치 홍수가 터진 듯 시가지의 길목마다 빛이 채워지며 모든 것을 쓸어 내고 있었다.
“이야, 무섭네.”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시로네를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칠흑 같은 흑발의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렸고 얼굴은 천사처럼 순결했다.
지옥의 군대 제2군단장, 메라니아였다.
“야훼가 화가 많이 났어.”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몰아치는 빛의 입자도 그녀의 주위로는 얼씬하지 못했다.
“어떡할까요, 군단장님. 이러다 우리 다 죽겠는뎁쇼?”
직위라고는 없는 하급 마족 하나가 그녀의 옆에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
“내버려 둬. 순둥이가 화가 났을 때는 분이 풀릴 때까지 어르고 달래야 하는 법이야.”
그렇기에 천만 단위의 마족들이 죽었음에도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도 화가 안 풀리면요?”
메라니아의 생각에도 시로네의 분노는 세상이 끝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그때는 뭐…….”
그녀의 입술이 살며시 올라갔다.
“나라도 가서 빌어야지.”
***
“빨리 도망쳐!”
황성 마르사크를 등진 리안은 마족들을 베어 나가며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시로네는 인간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의 각오가 아니고서는 야훼를 포기할 수 없다.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게 아니야.’
영원한 지옥에 갇혀 버린 성음에 비하면 죽음은 오히려 안식이 되기 때문이었다.
“가라고! 빨리!”
리안이 마족들을 베어 나가자 수도에 살고 있던 민간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밤을 새워 가며 벌써 12시간 이상을 싸웠으나 아직도 떠나지 않은 자들이 많았다.
콰아아아앙!
온갖 비명이 나부끼는 전장에서, 유독 귀에 거슬리는 폭음성이 들렸다.
명백히 시선을 끌기 위한 소리에 리안이 고개를 돌린 곳에, 거구의 흑발이 서 있었다.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의 광기가 리안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형?”
예전의 건실한 모습은 사라졌으나 오젠트 특유의 인상은 아직 남아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