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98
빛의 파동이 사라지자, 사방으로 흩어지던 마족들이 흘끔 뒤를 보았다.
“이, 이제 만족했나?”
군단장들이 내린 지시는, 시로네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그냥 죽어라’였다.
“아타락시아…….”
거대한 마법진을 띄운 시로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육탄계.”
마족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으아아아아아!”
또다시 엄청난 빛의 장막이 퍼지고, 아광속의 광폭이 수도 바깥의 모든 것을 폭파시켰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마족들의 사망자는 지옥의 군대 2할에 해당하는 2억 마리를 돌파했다.
‘통쾌하다.’
세상이 정화되는 느낌에 시로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열했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성음이 희생당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사랑 따위가 다 뭐라고.”
얼마나 끔찍한 곳일까?
그녀는 지금 지옥의 참혹한 환경에 붙잡힌 채 끝없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까?
‘강한 사람이야. 내가 아는 누구보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담대하게 고통을 받아들이고 있는 성음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미지는 곧바로 성음이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는 상상으로 변했다.
“죽어어어어어어!”
시로네를 중심으로 빛의 입자가 퍼져 나가고, 또다시 거의 멈춘 시간 속에서 마족들이 연기로 흩어졌다.
높은 하늘에서 지켜보던 마족이 제2군단장 메라니아에게 말했다.
“큰일 났어요. 분이 풀릴 기미가 안 보입니다. 이러다가 세상 끝장나겠는데요?”
이대로 간다면 시간문제였다.
“그렇겠지.”
허공에 누운 자세로 지상을 살피고 있던 메라니아가 중심축을 뒤틀어 기립했다.
“내가 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마족이 깜짝 놀랐다.
“안 됩니다! 왜 하필 마족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분이 가시려 하나요! 다른 군단장님들도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무려 서열 2위가 아니던가.
“어쩌겠어. 야훼를 죽이는 것이라면 몰라도 당하는 쪽이라면 내가 적격이다.”
그녀의 마계는 어둠.
야훼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지만, 분이 풀릴 때까지 버틸 자로는 제격이었다.
마족이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앙! 메라니아 님! 안 됩니다!”
“오지 마라. 볼만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마족을 남겨 둔 채 메라니아는 빠르게 지상으로 내려갔다.
엄청난 속도로 빛의 포격이 가해지는 가운데, 그녀가 하얀 손을 내밀었다.
원반 형태의 검은 장막이 회전하면서 포톤 캐논을 전부 빨아들였다.
“군단장님!”
상황의 변화를 포착한 마족들이 도주를 멈추고 일제히 그녀에게 모여들었다.
“군단장님이 오셨다! 이제부터 반격이다!”
그녀가 마계를 여는 순간, 시로네도 지금처럼 막나가지는 못할 터였다.
“너는 뭐야?”
여전히 정신력이 증폭되어 있는 시로네가 다가오자 메라니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부처.’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야훼가 어느 시점에 부처가 된 것도 필연적인 역사일까?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저희가 아무리 미워도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본래…….”
“닥쳐.”
시로네가 눈을 부릅뜨며 다가왔다.
“더러운 마족 따위가.”
메라니아의 곁을 지키고 있던 여단장들이 얼굴을 구기며 무기를 내밀었다.
“감히 군단장님을……!”
메라니아가 손을 들어 막았다.
“심령권이 닫혀서 마족은 고향을 잃었습니다. 당신의 분노는 우리 탓이 아니에요. 그녀가 자초한 일을, 왜 저희에게 화풀이를 하십니까?”
“그래서 억울하다는 거야?”
“마는 본래 이런 존재입니다. 어째서 참회를 강요하시나요? 참회해야 할 것은 저희가 아닌 인간입니다.”
포톤 캐논이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검은 장막이 펼쳐졌지만, 그것마저 뚫은 채 메라니아의 얼굴을 강타했다.
“군단장님!”
상체를 젖힌 채로 미동이 없던 메라니아가 천천히 자세를 되돌렸다.
아름다운 얼굴에 핏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말해 주지.”
시로네가 걸음을 옮겼다.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든 말든, 마족이 인간에게서 나왔든 말든…….”
박애는 없다.
“너희들이 참회해.”
마족들의 눈이 붉게 타오르자, 그들이 행동에 나서기 전에 메라니아가 말했다.
“마족은 참회하지 않습니다.”
“그럼 죽어.”
시로네가 더욱 가까이 다가오자 모든 마족들이 소멸을 걸고 싸울 준비를 했다.
시로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빛의 구체가 떠오르고, 그것이 무섭게 진동하는 순간.
“군단장님!”
메라니아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지옥에서 두 번째로 위대한 자가 인간의 방식으로 굴욕을 당하는 것에 마족들은 충격을 받았다.
“일어서십시오! 저희가 싸우겠습니다!”
메라니아가 고개를 들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원하는 만큼 괴롭히십시오. 당신이 내리는 어떤 벌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부처가 되는 건 무조건 막아야 한다.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순수하고 영롱하여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렸지만…….
“…….”
시로네는 그저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특이점 (3)
***
성음의 희생으로 광천성이 가동되었다.
공간의 왜곡으로 구스타프와 진천의 국경선이 맞닿았지만, 바다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진천의 서해에서는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었고, 마족들은 끝없이 백사장으로 밀려들었다.
“막아라! 조금만 버티면 된다!”
진천의 정예가 구스타프를 함락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게 이들의 목적이었다.
두 제국의 존멸을 걸고 치러지는 전투에서 단연 압도적인 쪽은 지옥의 군대였다.
“껄껄껄! 인간들이 발버둥 치는 것도 모아 놓고 보니 징그럽군. 꼭 벌레 같지 않은가.”
둥근 아래턱이 튀어나온 거구의 마족이 대왕조개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지옥의 군대 제8군단장 미투라.
마계는 해일, 정상 체구의 인간이라면 들지도 못할 거대한 식도를 옆에 두고 있었다.
“출출하구나! 뭐 좀 먹자!”
미투라의 지시에 수발을 들던 마족들이 바다 깊은 곳에 사는 생물체를 잡아 왔다.
“꺄악!”
아름다운 인간의 상반신에 하체는 물고기처럼 꼬리가 달린 인어였다.
“살려 주세요!”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수압이 작용하는 환경에 살기에 학술적으로도 거의 보고된 바가 없다.
눈물을 흘리며 빌어 대는 인어의 얼굴은 처연했으나, 미투라에게는 그저 식재료일 뿐이었다.
“시끄러! 이런 별미를 놓칠 수 없지.”
인어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대왕조개의 등판에 패대기친 그가 식도를 들었다.
“제발! 제발!”
인어의 머리를 짓누르고 식도를 탁 하고 내리치자 꼬리가 끊어졌다.
“꺄아아아악!”
고통과 공포에 상반신이 몸부림치고, 따로 떨어진 하체는 놀란 듯이 펄떡거렸다.
“어디…….”
꼬리지느러미 쪽을 붙잡은 미투라가 피가 철철 흐르는 절단면을 한입 베어 물었다.
생선의 차가운 육질이 혀에서 살살 녹았다.
“흐으으으…….”
눈앞에서 자신의 몸이 먹히는 것을 지켜보던 인어가 눈을 뒤집어 까며 기절했다.
오래 살지 못할 터였다.
“괜찮은데?”
꼬리 부분의 절반을 빠르게 씹어 삼킨 미투라가 남은 부분을 바다에 던지고 일어섰다.
“슬슬 시작해 볼까?”
굳이 마계를 열지 않아도 백사장을 쓸어버릴 해일이라면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었다.
“후우우우우!”
거대한 반경이 출렁이기 시작하더니 그 파동을 타고 바닷물이 승천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미약하지만, 육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200미터 높이의 해일이 되어 있을 터였다.
“대장님! 저기……!”
백사장에서 싸우던 진천의 군대는 밀려드는 해일을 보고 싸울 의지를 잃었다.
“이런 제기랄!”
집채만 한 마족들을 잘라 내는 것도 일이었는데 이제는 숫제 자연재해가 닥치고 있었다.
“다 끝난 것인가?”
서해가 점령당하면 제8군단의 마족들은 순식간에 황성 염라를 쓸어버릴 것이다.
“으아아아아!”
대자연의 압도적인 기세에 힘이 빠진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그때.
딸랑.
종소리가 들렸다.
딸랑딸랑.
전쟁의 소음은 거대했지만, 병사들은 그 맑고 연약한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뭐지?”
지휘관이 돌아본 곳에, 정수리 위로 머리를 동여맨 말끔한 인상의 사내가 부채를 들고 서 있었다.
상아탑 3성급 주민 아르테.
그리고 그의 어깨 위에는 붉은 피부의 작은 생물체가 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200미터가 넘는데? 정말 막아 낼 수 있겠소까?”
아르테의 위성 토케이였다.
“마, 마족이잖아?”
지휘관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아르테가 걸음을 옮겼다.
“200미터라. 조금 힘들지.”
아르테가 부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아주 조금?”
마치 춤을 추듯 소매를 펄럭이며 팔을 내리자 시간이 느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거대한 벽을 세운 해일의 표면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광경이 선명하게 보였다.
“풍경.”
아르테의 마법은 공기의 흐름이 아닌 기압의 차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기압골이 발생하면서 해일만큼 거대한 반경의 대기가 엄청난 속도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퍼어어어어어엉!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쇼크에 청각에 마비된 군인들의 눈에 활짝 열린 바다가 보였다.
“해, 해일이…….”
소형 태풍에 얻어맞은 것처럼 물의 장벽이 파괴되면서 우박처럼 묵직한 비가 쏟아져 내렸다.
“후우.”
아르테가 춤사위를 갈무리하자 또다시 청량한 종소리가 딸랑딸랑 울려 퍼졌다.
정신을 차린 지휘관이 물었다.
“누구십니까? 도대체 이런…….”
“상아탑에서 왔다.”
아르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좋게 만든다. 인간의 이상향에 대해 이의는 없지만…….’
상아탑 모든 별들이 시로네의 의견에 동참하여 전면전을 치르는 것은 초유의 사태였다.
“어쩔 수 없지 않소까.”
토케이는 현재의 상황도 제법 재밌었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 시로네라는 새로운 흐름이 상아탑을 바꿀 것이외다.”
그렇기에 오대성도 자신의 철학을 다시 증명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것이었다.
“나도 알고 있어.”
지휘관이 다가왔다.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 해일은 막았지만 2차, 3차가 밀려들 것입니다.”
아르테가 바다를 향해 걸어가며 부채를 들었다.
“귀신도깨비 아르테, 마족과의 전쟁에 참전한다.”
토케이의 방울처럼 커다란 눈에 박힌 동공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바람의 요소를 계산했다.
“320893. 23091. 3494539. 곡사각 23도…….”
아르테의 마법이 노리는 곳은 지옥의 군대가 아닌 바다 건너에 있는 구스타프 제국이었다.
“최소 카테고리 식스 이상의 풍력. 할 수 있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