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99
“말했잖아.”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던 아르테의 얼굴이 귀신처럼 구겨졌다.
“전쟁에 참전한다고.”
부채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는 순간, 군인들은 공기가 모조리 밀려나는 것을 느꼈다.
“기후 마법, 대풍경.”
콰콰콰콰콰콰콰!
기압의 격차로 발생한 소용돌이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물을 빨아들이며 솟구쳤다.
바람은 더욱 강해졌고, 급기야 주위에 있던 마족들이 소용돌이로 빨려 들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소용돌이의 크기는 기하급수로 커져 가고 있었으나 그 속도조차 완성될 결과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했다.
“태풍이다.”
대풍경은 수천 킬로미터 이상을 나아갈 것이고, 제국에 준하는 크기로 구스타프를 강타할 것이다.
아르테가 다시 부채를 들었다.
“또 간다. 통째로 날려 주마.”
토케이가 눈알을 굴리는 것을 지켜보며 지휘관이 침을 꿀꺽 삼켰다.
‘미친놈들. 바다를 넘어서 타격한다고?’
시로네와 리안이 있는 구스타프 제국을 향해, 막대한 폭풍이 연달아 날아가고 있었다.
***
뒤통수에 꽂히는 시로네의 시선을 느끼며 메라니아는 더욱 애달프게 고했다.
“당신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이 자리에서 온몸이 토막 나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용서를.”
그녀는 이것으로 시로네의 화를 가라앉힐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효과는 있겠지.’
분노에 미쳐 날뛸 때는 지친 것을 느낄 수 없지만, 이성이 돌아오는 순간 후폭풍은 피할 수 없다.
‘고민하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해. 이미 하루 이상 세계를 파괴했으니 멀쩡할 리가 없어.’
메라니아가 고개를 들었다.
“야훼……!”
시로네가 그녀의 얼굴을 걷어찼다.
마법사의 발길질이야 깃털처럼 가볍지만,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은 충격에 잠겨 있었다.
“적당히 해라.”
고작 이 정도의 말로 고민할 거였으면 처음부터 야훼를 버리지도 않았다.
“믿지 않아. 그게 어떤 말이라고 해도. 아니, 설령 진실이라도 내가 부정할 거다.”
‘안 되는 건가.’
결국에는 시로네도 인간이니 이대로 가다가는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마도 없다.’
시로네가 포톤 캐논을 손바닥 위에 띄웠다.
“그냥 죽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메라니아의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되돌릴 수 있습니다!”
“……뭐?”
처음으로 시로네의 표정이 변했다.
“심령권을 봉인한 여성은 현재 지옥을 떠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있습니다.”
“성음을…….”
포톤 캐논이 사라졌다.
“살릴 수 있다고?”
사소한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칠 것이기에 메라니아는 사실대로 고했다.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옥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면…….”
시로네가 메라니아의 멱살을 끌어 올렸다.
“말해. 방법이 뭐야?”
“시옥을 뚫는 것입니다.”
“시옥.”
매초의 0.666초를 지키는 12명의 사도였다.
“심령권은 닫혔지만, 율법에 없는 시간을 통과할 수 있다면 그녀의 정신도 빼낼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뚫지?”
시로네조차 시옥은 인지할 수 없었다.
“군단장조차 시옥의 정체는 모릅니다.”
드래곤, 시간을 지키는 12명의 사도에 대한 대척점이라는 설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얘기가 안 되잖아.”
화를 주체하지 못한 시로네가 다시 손을 들자 메라니아가 황급히 말했다.
“하지만 그들도 사탄의 명을 따르는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가 승부처였다.
“인간의 황성에 시옥의 권한을 부여받은 자가 머물고 있습니다. 그를 만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시로네는 메라니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1퍼센트의 거짓도 없는 아름다운 눈이지만, 어차피 그런 눈으로 속였던 게 마족이다.
“……그게 누군데?”
“최고 사령관 오젠트 가이라는 인간입니다.”
일전에도 만난 적이 있는 리안의 큰형이라는 생각이 스쳤으나, 잠시일 뿐이었다.
“인간이 권한을 갖고 있다고?”
“사탄, 하비츠 님이 인간이시니까요. 시옥은 군단장이 통제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발칸 군사가 만일을 대비해 남겨 둔 것으로…….”
시로네가 멱살을 풀었다.
“안내해, 오젠트 가이가 있는 곳으로.”
어디까지가 진실이든, 성음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두고 돌아가는 선택지는 없었다.
“네, 네.”
머리를 조아리며 일어선 메라니아가 마족들을 돌아보며 지시를 내렸다.
“모두 물러가라. 이 순간 이후로 인간과 싸우는 자는 내가 먼저 죽일 것이야.”
언짢은 기색이 역력한 마족들이었으나, 군단장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마치 구석으로 숨어드는 바퀴벌레처럼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마족들이 흩어졌다.
“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시로네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내 모든 걸 걸고 너를 최악의 상태로 만들 거야.”
너무 거대한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법이었고, 메라니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상관없어.’
야훼의 분노를 1초라도 멈출 수 있다면.
황성 마르사크의 사령관실.
싸울 채비를 갖추기 위해 이곳을 찾은 오젠트 가이는 갑옷을 걸치며 생각에 잠겼다.
‘가족이라.’
흑발과 청발,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나름 좋은 관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리안.’
검에 대한 재능도 없고 철딱서니도 없었지만 묘하게 정이 가는 놈이었다.
‘오젠트도 이젠 청발의 시대인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유는 역시나 가족이기 때문일 테지만, 그런 생각조차 사치였다.
‘강해지고 싶다. 검사로서 당연한 거 아닌가?’
가족도, 국가도, 심지어 인격조차 버리고 마족의 편에 서서 강함을 추구한 그였다.
“전쟁을 끝내야지.”
허리에 장검을 채우고 돌아선 가이의 눈앞에 붉은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뭐야?”
제2군단장 메라니아가 소용돌이 속에서 걸어 나오자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족이 왜…….”
그녀의 등 뒤로 시로네가 차가운 눈빛을 드러내며 따라오고 있었다.
특이점 (4)
***
수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리안은 문득 변화를 직감했다.
어느 시점부터 마족들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잠시 휴전일세.”
골목 어귀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걸어 나왔다.
왜소한 몸집에 광대뼈가 불룩 튀어나왔고, 얼굴뼈에 달라붙은 거죽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내일이라도 호상을 치를 듯 지팡이를 짚은 두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지만, 리안은 거리를 벌렸다.
“누구야?”
마족이었고, 이자의 마기는 여태까지의 전투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름을 묻는 건가? 가이탄이라고 하네.”
지옥의 군대 제10군단장 가이탄.
마계는 충해, 이면 세계에서는 온갖 더러운 벌레의 지배자라는 별칭을 가진 자였다.
“군단장이군.”
“뭐, 그렇지.”
가이탄은 지팡이에 의지해 허공을 넘어다보았다.
“자네의 주군이 다른 군단장과 협상을 한 모양이야. 당분간 마족들은 공격을 하지 않을 걸세.”
리안이 검을 내렸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마계수 아르간티스를 베었다는 얘기를 들었지. 그래서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네.”
가이탄이 리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세상 끝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
“몰라.”
리안은 언제나 지금을 산다.
“마魔라는 건 말일세, 생명과는 달라. 시스템의 오류 같은 것이지. 왜 우리 같은 게 필요한지는 모르겠어. 어쩌면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
“너희들이 무엇이든, 자신 이외의 것을 괴롭힌다면 존재할 가치가 없어.”
가이탄이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마계를 열 생각이네.”
“…….”
“마계를 열면 다시는 나로 되돌아올 수 없지. 죽음이라는 게 무섭지는 않아. 정말로 무서운 것은 공空이지.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
“협박하는 거냐?”
가이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부탁이라고 해야겠지. 자네의 검술은 존재의 의미마저 벤다고 들었는데.”
정보 그 자체를 변형시킨다.
“내 마계를 베어 주지 않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지혜를 섭렵한 나. 그렇기에 두려움도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유일한 미지, 공의 저편뿐.”
대직도를 붙잡은 리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위험하다.’
마계를 열기 전에 베는 게 최선이었다.
“부탁이라고 했지만, 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래, 이것도 내 지혜라고 해 두지.”
말이 끝나는 동시에 리안이 허리를 뒤틀며 대직도를 휘둘렀다.
단칼에 가이탄의 목이 떨어지고, 이어서 뒤편에 있던 건물들이 우르릉 우르릉 잘려 나갔다.
땅으로 추락한 가이탄의 얼굴이 데굴데굴 구르더니 거꾸로 뒤집힌 상태에서 말을 이었다.
“대체 뭐가 있기에…….”
가이탄의 눈이 흰자로 가득 찼다.
“우리를 이 답답한 허상에 가두는고?”
마계, 팔라피나스.
가이탄의 얼굴이 빠르게 부식되면서 시커먼 점들의 집합으로 변했다.
이어서 육체마저 타들어 가듯 검게 물들더니 연기로 풀어지며 수백 미터 반경으로 확장되었다.
“크윽!”
연기가 아니었다.
위잉! 위잉! 위잉! 위잉!
형태는 파리를 닮았지만 리안의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내는 흡입력은 뱀에 물린 듯했다.
“으아아아아!”
휘두른 대직도의 궤적을 따라 시야가 열렸으나 이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벌레들이 수도를 뒤덮고 있었다.
“제길!”
아르간티스하고는 또 다른 형태의 짜증이었다.
***
‘오젠트 가이.’
리안의 큰형이라는 점에서 시로네에게도 마음의 파문은 있었다.
하지만 일전에 만났을 때도 이미 광기에 이성을 잃은 자였던 만큼, 차가운 눈빛은 거두지 않았다.
“뭐야? 둘이 정분이라도 났나?”
군단장과 시로네가 함께 있는 기묘한 광경에 가이가 검을 어깨에 걸치고 웃었다.
“당신이 시옥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가이는 메라니아를 돌아보았다.
“흐음.”
정황은 모른다.
하지만 무심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는 그녀의 모습에서 가이는 해야 할 일을 찾았다.
“그래, 가지고 있지. 그래서 뭐?”
“시옥을 불러 줘.”
“내가 왜?”
시로네는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