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01
진천해.
수평선 너머로 움직이는 태풍을 지켜보던 제8군단장 미투라가 대왕조개에서 일어섰다.
“또 오는군. 몇 발이나 쏴 대는 거야?”
“어떡할까요? 이대로 가면 구스타프가 작살나겠는뎁쇼. 그러면 사탄 님에게 혼날 텐데…….”
미투라가 째려보자 마족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당연히 저는 미투라 님을 믿고 있습죠.”
마족들의 말인즉슨, 일이 커지기 전에 마계를 여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짜증 난단 말이야.’
10명의 군단장만이 가진 특권이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한 소멸을 상징하기도 한다.
‘지옥 불에서 되살아나지도 못해.’
기왕 죽을 거 같이 죽자는 각오로 개방하는 게 마계였고, 미투라는 아직 내키지 않았다.
“군단장님! 저기!”
수평선 너머에 상아탑 오대성 4명이 거친 포말을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제트에 탑승한 미네르바가 말했다.
“다른 놈들 신경 쓸 거 없어. 군단장을 제거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야.”
수면 위를 달리는 프리드가 마족을 눈에 담으며 검을 움켜쥐었다.
“카샨에서 학습했겠지? 마계를 열기 전에 끝내는 게 최선이야.”
미투라의 마계는 해일.
일단 개방하면 바다를 끼고 있는 세계 각지의 도시는 전부 박살 난다고 봐야 했다.
미투라가 거대한 식도를 들고 일어섰다.
“좋아! 얘들아, 출격이다! 제대로 한판 붙어 보자!”
멀리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계나 열지.”
미투라의 식도가 가로로 그어지자, 수십 미터 거리에서 정렬해 있던 마족들의 목이 날아갔다.
“히익!”
더 이상 불만을 품는 마족은 없었다.
“인사 대신이다!”
자세를 낮춘 미투라가 포를 뜨듯 수면을 베자 거대한 파도가 일어섰다.
“온다!”
프리드의 빙결 마법에 수십 미터 높이의 파도가 쩡 하고 얼어붙고.
콰아아아아아앙!
얼음의 벽을 뚫고 튀어나온 미네르바가 허공에서 정지하며 제트를 쏘아 보냈다.
구스타프 수도.
“으아아아! 사, 사람 살……!”
비명을 끝내기도 전에 목소리가 사라졌다.
곤충에게 뒤덮여 숯처럼 검어진 사람들이 쓰러지는 사이를 리안이 질주했다.
“엄청난 숫자다.”
이면 세계의 곤충 팔라피나스는 끝없이 증식하며 도시를 통째로 뒤덮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없애지?’
강력한 것이라면 벨 수 있지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곤충이라면 검은 최악의 도구였다.
“이야아아아!”
마하의 경지를 담은 검이 풍경을 양단했지만 파리를 닮은 곤충들은 끝없이 리안에게 달라붙었다.
“크으윽!”
급기야 전신이 벌레로 와글거렸고 피가 빨리는 느낌에 정신이 혼미했다.
‘괜찮아.’
이 정도로 이데아가 깨지지는 않지만, 평범한 인간들은 10초 안에 사망이었다.
게다가 팔라피나스는 계속 증식하기에 초기에 진압하지 않으면 세상의 멸망도 과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마계.”
가속을 통해 벽을 관통한 리안이 온 힘을 다해 대직도를 내리찍었다.
대기가 굉음을 내며 쪼개지면서, 한순간 푸른 하늘이 보일 정도로 시야가 열렸다.
“뭐…….”
검을 들어 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리안은 멍하니 하늘 저편을 바라보았다.
“저게 뭐야?”
아마도 화신일 테지만, 저게 무엇인지 알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
시로네의 육체는 마치 야광을 띤 연기처럼 무게감이 전무한 상태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위편으로 끝없이 피어오르고 있는 것은 분노.
메라니아가 중얼거렸다.
“야훼의 분노.”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는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뚫고 버섯처럼 퍼졌다.
마치 하늘에 검은 물감을 뿌린 듯 스멀스멀 확장되는 과정에는 감속이 없었다.
‘세상에 나왔다.’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진 야훼의 울분이 육체를 뚫고 빠져나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퍼뜩 정신을 차린 메라니아가 소리쳤다.
“죽여! 야훼를 죽여!”
“크윽!”
가이가 곧바로 달려가 검을 내리그었으나, 시로네는 베이지 않았다.
‘물질이 아닌 것 같다.’
검이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가이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육각형의 빛의 입자가 떠돌고 있었다.
‘정보?’
메이레이가 벌떡 일어나 한쪽 귀를 막았다.
“대법관님.”
테라포스 대법관의 목소리는 여전히 중후했지만 급한 느낌이 물씬 들었다.
-헥사 프로그램이 가동되었다.
“헥사…… 프로그램? 그게 뭐죠?”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방주를 보내겠다.
그것으로 교신이 끊어졌다.
세계기후기구의 과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집어 던진 서류철이 바닥에 미끄러지고, 주위에 있던 직원들이 황급히 주웠다.
“과장님! 무슨 일이세요?”
아미라가 다가왔으나 과장은 콧김을 씩씩대며 정신없이 돌아다닐 뿐이었다.
“아미라, 이것 좀 봐.”
구스타프 제국의 관측소에서 보내온 서류를 건네받자 아미라는 빠르게 수치를 살폈다.
“…….”
서류가 또다시 그녀의 손에서 떨어졌다.
“불가능해.”
직원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실이야. 이건 자연현상도, 마법도 아니야. 뭔가 알 수 없는 어떤 것.”
행성에 있는 모든 물을 끌어다 쓴다고 해도 이 정도 질량의 구름은 생성될 수가 없다.
“마치…….”
직원이 천장을 넘어 하늘을 상상했다.
“행성보다 무거운 강철이 떠 있는 셈이야.”
가이의 칼날이 잔상을 일으키는 속도로 시로네의 육체를 베고 지나갔다.
‘왜 죽일 수 없지?’
어쩌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가이가 비로소 공격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더 커졌어.”
구름의 크기로 보건대 족히 하나의 왕국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저게 무슨 화신이야?”
“야훼.”
메라니아가 다가왔다.
“저게 야훼라고? 만물을 사랑하는 경지라고 하지 않았나? 이건 오히려…….”
마족보다 탁하고 어두운 살의였다.
“맞아. 실로 가증스럽지.”
1명의 인간이 박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억눌러야 하는 악의 크기였다.
“왜 화내고 싶지 않았겠어? 질투하고, 욕망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었겠지.”
야훼는 선이 아니다.
“박애는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 희생은, 내면 깊숙한 곳에 쌓이고 쌓여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고…….”
검은 구름이 제국 전체를 뒤덮었다.
“괴물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영원히 자기 자신을 가둔 채 살아가야 하는 존재.”
메라니아가 시로네의 입자를 어루만졌다.
“마족에게는 그 가식이 끔찍할 정도로…….”
그녀의 손이 빛을 움켜쥐었다.
“싫은 것이다.”
천천히 손을 펼치자 육각형의 빛이 나풀거리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것을 뒤쫓는 메라니아의 눈빛은, 내뱉은 말과 달리 황홀해 보였다.
“해냈어. 이것으로 야훼의 분노는 사라졌다.”
쿠르르르르르르.
태양을 가린 검은 구름에서 심상치 않은 천둥의 예비음이 들렸다.
“일단, 피해야 되는 거 아냐?”
“어디로?”
흐트러진 눈으로 고개를 든 메라니아가 하늘이 있는 쪽으로 손바닥을 뒤집었다.
“비가 내릴 모양이야.”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빛의 입자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신의 입자를 담은 빛은 암울한 회색이었고, 물방울보다 수천 배나 무거웠다.
쏴아아아아아.
빛방울은 거의 동시에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관측의 극한에서 동시는 성립할 수 없고, 선두의 빛방울이 황성 마르사크를 향했다.
수도에서 가장 높은 황성의 첨탑에 첫 번째 빛방울이 충돌하는 순간.
탁!
강력한 파열음을 내며 주먹 크기의 홈이 파였다.
탁! 타탁! 타타탁!
그리고 그런 것들이…….
“빌어먹을!”
무한대.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무한의 개수로 제국 전체를 강타해 버린 것이다.
“크아아아아!”
수천만의 마족들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으나, 그조차도 굉음에 파묻혔다.
황성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질량의 폭격에 높이가 초당 4미터씩 깎여 나가고 있었고.
“이게 뭐야! 이게……!”
그 위력은 제국 전체를 동등하게 두드리며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까 버리고 있었다.
“이야아아아!”
가이는 검을 휘둘러 빛의 입자를 쳐 냈다.
3초가 지났을 무렵, 검은 손잡이를 제외하고 형태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둔탁한 소리가 그의 두개골을 울렸다.
“컥!”
수천 개의 빛방울이 전신을 두들기자 가이의 육체가 바닥에 구겨졌다.
“애석하군.”
검은 우산을 들고 있는 메라니아가 형체를 잃어버린 가이를 내려다보았다.
“너에게는 방주가 오지 않은 모양이야.”
그녀가 돌아본 수도의 정경에, 수백만 개의 푸르스름한 돔이 만들어져 있었다.
비 (2)
***
“비.”
무기를 거둔 리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알 수 없는 돔형의 장막에 갇혀 있는 그의 눈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의 입자들이 보였다.
“아니, 빛인가.”
가이탄이 개방한 마계는 쏟아지는 빛에 의해 흔적조차 없이 소멸한 상태였다.
“저, 저게 뭐야?”
돔에 갇힌 생존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검은 구름을 가리켰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어떤 비행물체의 일부분이 구름 바깥으로 드러나 있었다.
‘심상치 않아.’
시로네가 걱정되는 리안이었으나, 푸른 돔의 바깥으로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불과 1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10미터 높이의 건물을 전부 까 버린 위력의 폭우였다.
죽는 것은 둘째 치고,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육체는 흔적조차 없이 짓이겨질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