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02
무엇보다 지금의 현상이 시로네에 의한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광경이 있었다.
타타타타타타!
굉음을 내며 세상을 파괴하는 빛의 입자가 물체의 표면에 닿을 때마다 빛이 번쩍거렸다.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그 빛은 정확히 육각형의 형태로 발광하고 있었다.
“헥사.”
대지성전의 첨탑에서, 태성은 구스타프 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았다.
유리 바닥 아래로 보이는 행성에는 야훼의 구름이 제국을 뒤덮고 있었다.
“테라포스.”
그리고 그 검은 구름을 가르고, 제국 절반의 크기를 가진 거대한 우주선이 접근하고 있었다.
쿵! 쿵!
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태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은…….”
“가이아의 관리자여.”
회색빛 피부에 앞뒤로 긴 두상, 기름질로 뒤덮인 눈은 커다랬고 턱은 뾰족했다.
가느다란 두 팔을 어색하게 휘적거리며 다가오는 3미터 높이의 외계 생물체, 테라포스 대법관이었다.
“직접 오셨군요.”
“헥사 프로그램이 가동되었다. 사용자 보호 규칙에 따라, 테라포스는 방주를 보낸다.”
태성의 옆에 나란히 선 대법관이 화면에 비치는 지상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태성이 물었다.
“……헥사란 무엇이지요?”
“울티마 시스템의 단위이자 일종의 소멸 코드로 추정된다. 헥사의 신호는 모든 정보에 1대1로 대응, 아카식 레코드의 소스를 말소시킨다.”
빛의 폭우에 의해 세상의 정보가 지워지는 광경을 바라보던 대법관이 말을 이었다.
“두 번째로군, 소정화를 눈으로 확인한 것은.”
“가이아의 시대에 있었죠. 방주가 왔다는 것은, 이번에도 2명을 선별하는 것인가요?”
“헥사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전자기 장막도 결국에는 부서질 거야. 그 전에 2명을 뽑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 오직 2명의 인간이 방주에 타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게 된다.
“야훼의 분노는 더욱 커질 것이고, 행성 전체를 뒤덮을 것이다. 끝났어. 그가 이 세계를 닫은 것이다.”
“영원한 끝은 아니지만요.”
그렇기에 소정화였다.
“음, 선별된 남녀는 결국 다른 행성에 정착해 수많은 사용자들을 불러들이겠지.”
대법관이 태성을 돌아보았다.
“먼 옛날 소정화에서 선별된 2명의 가이아인이 이 땅에서 인간을 번성시켰듯이 말이야.”
“…….”
태성은 침묵을 지켰다.
“이곳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광자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가이아인이자, 이 행성 최초의 인류.”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에요. 작은 뇌에 기억만을 담은 채로 존재하고 있죠.”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선별된 남녀는 누구죠?”
“많은 조합을 검토하고 있다. 대략 300명의 후보군이 있지. 조만간 의회에서 결정이 날 것이다.”
“2명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하다니. 너무 가혹한 일이군요. 후보는 누구인가요?”
“예를 들자면, 미로와 하비츠.”
태성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대법관을 돌아보았다.
“극선과 극악?”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미로는 납득할 것이야. 예전의 오류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돼.”
최초의 인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브 말이군요.”
“그녀는 규정을 어겼어. 모두의 어머니가 되려고 했다. 결국 이브의 파트너는…….”
소멸하지 못한 채 뇌로서 살아가고 있다.
“어쨌거나 그 조합은 성공할 수 없어요. 예전의 미로라면 그렇겠지만, 지금은 달라요. 그녀는 가올드 외에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후보지. 우선은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현재 의회에서는 에텔라와 샤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에텔라와 샤갈?”
참으로 의아한 조합이었으나, 잠시 생각에 잠긴 태성은 납득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테라포스의 대법관이 직접 방주를 이끌고 오자 비로소 실감이 났다.
“또다시, 끝나 버린 거네요.”
대법관이 태성의 어깨를 짚었다.
“실망하지 마라. 시행착오를 겪는 단계일 뿐이야. 언젠가 인류는 궁극에 도달한다.”
“정말로 가능할까요, 완벽한 계라는 것?”
더 이상 고칠 것이 없는 세계.
“신이 무엇을 만들든, 그것은 신의 완벽함일 뿐이다. 진정 완벽한 것은 우리가 신이 될 때.”
인간이 정의해야 한다.
“그렇기에 신은 무심하고, 이 세계에 간섭하지 않는다. 바깥에서 보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해 봤자…….”
대법관이 시로네를 눈에 담았다.
“인간의 몸을 빌린 신호 정도겠지.”
“그게 야훼인가요?”
“인간에게서 가장 멀어진 자가 부처라면, 야훼는 신에 가장 가까운 자. 만물을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일 테지만, 시로네도 결국 인간일 뿐이다.”
성음의 영원한 고통 앞에서는, 시로네도 박애가 아닌 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다른 조합으로 시작해 볼 것이다. 최선의 2명을 뽑을 것이야.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어.”
족히 수백억 년이 남아 있다.
“방주가 도착할 행성을 물색해라. 가급적 이곳에서 멀었으면 좋겠군.”
“……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섭리라면 따를 수밖에 없지만, 태성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시로네…….’
세상을 소멸시키는 빛의 물방울이 시로네의 눈물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정말 이대로 끝낼 생각인가요?’
***
제8군단장 미투라는 상아탑 오대성들과 바다 위에서 접전을 펼쳤다.
수많은 마족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난폭한 전투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이런…….”
인류 최강의 마법사 4명의 합공은 무시무시했고, 미투라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군단장님! 마계를 열어요!”
답답해진 부하들이 소리치자 미투라의 얼굴이 사악하게 일그러졌다.
‘개자식들! 자기들 일 아니라고……!’
마계를 열면 영원히 소멸한다.
‘진짜 확 열어 버려?’
프리드와 검투를 벌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크윽!”
씽의 율법이 미투라의 사지를 구속하고, 아만타의 수레바퀴가 머리를 치고 나갔다.
쾅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간 미투라가 사납게 전방을 되돌아보는 그때.
끼이이이이잉!
미네르바의 제트가 명치를 강타했다.
“크아아아!”
힘에 밀려 수 킬로미터를 물러나자 비행 마족들이 황급히 뒤를 따랐다.
“군단장님! 빨리 마계를……!”
“으아아아아! 닥쳐!”
애꿎은 마족들의 머리가 뎅겅 달아났다.
“미쳐 버리겠네.”
탄생과 동시에 마계의 권한을 받은 특별한 존재.
미투라도 그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지만, 막상 때가 닥치자 각오가 생기지 않았다.
‘이대로 영원한 무로 돌아가라고?’
아몬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마계를 연 것일까?
“의외로 소심하네.”
4명의 오대성이 미투라를 추격하며 나란히 비행하는 가운데 미네르바가 말했다.
“마족이 부처를 무서워하는 이유지. 지옥 불에서 부활하지 못하는 이상 죽는 것과 똑같아.”
프리드가 코웃음을 쳤다.
“저런 겁쟁이가 잘도 군단장을 하고 있군.”
씽이 말했다.
“악의 기질만을 담았다는 것 외에 본질적으로 인간과 다르지 않다. 쉽게 해치울 수 있겠어.”
“너무 방심하지 마. 그러다 눈 뒤집어지면 그다음부터는 골치 아파져.”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오대성과 달리, 미투라의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돼. 사탄 님을 위해 마계를 열어야 한다. 열자, 열자, 열자!’
미투라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젠장! 조금만 더 싸워 보자! 이길 수 있어!”
그렇게 전의를 다지는 순간,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들어 수면 위를 폭파시켰다.
***
메라니아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야훼의 눈물이라.”
제국 전체에 꽂히는 빛의 입자들이 물체를 파괴하는 굉음은 가히 종말을 떠올리게 했다.
메라니아의 검은 우산도 오래 버티지 못할 테지만,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지.”
이면 세계의 교리에 따르면, 야훼의 눈물이 세상에 넘칠 때 마는 소멸한다고 했다.
실로 그러하다.
빛의 폭우가 담고 있는 위력은 제국의 마족을 전부 쓸어 내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우리가 왜 당신을 증오하는지 아시나요?”
시로네에게 다가간 메라니아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헥사의 입자를 어루만졌다.
퍼퍼퍼퍼퍽!
내리꽂히는 빛에, 순식간에 손이 터져 나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검은 우산이 사라지고, 메라니아는 그 상태로 시로네의 몸을 끌어안았다.
“우릴 보아 주지 않으니까.”
무수한 빛방울이 육체를 강타했다.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떡하나요?”
군단장의 내구력으로도, 단지 다른 마족보다 몇 분을 더 버틸 수 있을 뿐이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마족도, 하비츠도, 사랑하는 방법 따위는 모른다.
“당신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요. 당신이 원하면 사탄도 죽일 수 있어. 하지만…….”
시로네의 대답을 기다리던 그녀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난 정말로 그게 뭔지 몰라.”
아름다운 얼굴이 붕괴되면서 그녀의 육체가 위에서부터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
시로네는 말이 없었다.
“왔냐?”
신호로만 존재하는 시로네는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여긴?”
육각형의 입자들이 빠르게 조립되면서 인간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몰라. 저승인가 보지.”
시로네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턱을 괴고 있는 오젠트 가이가 있었다.
“저승?”
시로네는 저 멀리 어둠에서 날아오는 한 줄기 빛이 가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너도 보이냐, 이 빛? 끌어당기는 건 아니지만 자꾸 부르는 느낌이라 불쾌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랄까?”
시로네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으나 어디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 오니 뭔가 좀 알겠더라고. 아마도 이게 이데아의 정체일 거야. 그래서 나만 죽은 것 같은데. 아, 너도 죽은 건 마찬가지군.”
“우리가…… 죽었다고?”
가이의 검에 찔린 뒤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꿈인가?’
현실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지만 설명할 방법이 없어. 그런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아무튼 너를 기다린 이유는, 제안을 하고 싶어서야.”
“이미 죽었다면서 무슨 제안을…….”
“너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어.”
설령 꿈이라도 외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지? 그러니까, 내가 이 빛을 따라 나가지 않으면 너는 살 수 있다. 내 자리를 준다고 해야 하나? 자리가 하나 남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느낌이거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리고 왜 당신이 나를 살리지? 그럴 이유도 없잖아.”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기억 못 하나 보군.”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폭소를 터뜨린 가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래, 이제 화는 좀 풀렸냐?”
비 (3)
***
“테라포스는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그들보다 월등한 문명을 이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