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04
“시로네.”
리안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다가오자 시로네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리안! 내가 네 가족을……!”
리안이 넓은 어깨로 시로네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무서웠다.
“너만 살아 있으면 돼. 네가 누구를 죽였든, 너만 무사하면 상관없어. 내가 다 책임질게.”
시로네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많이 지쳤어. 쉬지 않고 싸웠잖아. 조금 쉬어. 한숨 자고 나면 기운이 날 거야.”
리안은 정이 많은 아이라, 괜찮을 리가 없다.
‘그것마저 짊어지겠다고.’
리안에게 영혼까지 기댈 수밖에 없는 시로네의 의식이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말미에서 문득 가이의 말이 떠올랐다.
‘마계니, 야훼의 분노니…….’
가장 강한 건 리안이다.
비 (4)
***
방주에서 보낸 마그네틱 실드가 풀리자 진천 군대는 비로소 구스타프의 수도로 진격했다.
군대는 말이 없었고, 말을 지어낼 수도 없었다.
“이런 것인가.”
빛의 입자에 까여 완전히 평평해진 세상에 마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연 압도적인 승리.
“우리는 대체 뭐냔 말이야!”
무엇에 대한 승리인가?
인간의 물리와 산술의 한계를 초월한 현상은 오히려 그들에게 무기력함만을 남겼다.
“여태까지 싸운 수많은 병사들은! 죄 없이 죽어 간 진천의 국민들은! 우리는!”
원망할 대상조차 없었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한 인간의 분노가 세상을 끝내기 위한 전부였다면, 남은 자들의 마음은 무엇인가?
야훼의 분노는 그렇게 세상에 허탈감을 남긴 채 구스타프 제국을 지도상에서 지워 버렸다.
“대장님! 폭풍이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카테고리 식스에 해당하는 막강한 폭풍이 대륙에 올라탔으나, 이미 날아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타탁! 타타타탁!
땅속 깊은 곳에서 잠에 빠진 시로네는 꿈결로 넘어오는 빗소리를 들었다.
“허억!”
기억에는 없지만 소정화의 빛방울이 세상을 파괴했다는 것을 몸은 알고 있었다.
“괜찮아?”
어두운 곳에서 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그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생각도 없이 묻자 오른쪽에서 횃불이 켜졌다.
리안이 파낸 것이 분명한 30평이 넘는 공간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시로네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
구스타프는 마족들의 보호를 받던 곳이었고, 이제는 살아갈 터전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리안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태풍이 불고 있어.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자.”
리안이 생전 본 적 없는 강력한 바람이지만, 땅 위에 세워진 것이 없으니 금세 물러갈 터였다.
“가고 싶어.”
시로네가 힘없이 말했다.
“나가자.”
“…….”
리안은 침울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로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승리의 1등 공신이지만, 구스타프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래, 나가자.”
리안이 일어나자 노인이 중얼거렸다.
“미쳤군.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버릴 거야.”
“비가 지반을 뚫고 내려오면 물을 받아 두세요. 이틀 정도만 버티면 태풍은 사라질 테니까요.”
몇 번의 칼질로 지하에 대피소를 만든 리안이었기에 사람들도 더 이상은 말리지 않았다.
“등에 업혀.”
리안이 등을 내밀자 시로네가 고개를 저었다.
“혼자 갈 수 있어. 그리고 태풍을 가로지르려면 마법을 시전해야 할 거야.”
“아니, 조금 더 쉬어. 많이 지쳤잖아. 액싱으로 뚫고 나갈 거야. 나에게 업혀.”
세계 최강의 마법사인 시로네라면 몇 시간의 수면만으로 정신력은 회복된다.
하지만 그가 다친 것은 마음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시로네가 결정을 내린 듯 등에 업히자 리안이 일어섰다.
‘이토록 가벼운가.’
바위도 들어 올릴 수 있는 리안이지만, 친구의 몸은 깜짝 놀랄 정도로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것 같았다.
“가자.”
오른손에 든 대직도를 천장에 대고 힘껏 위로 쳐올리자 펑 하고 구멍이 뚫렸다.
사람들이 멍하니 쳐다보는 가운데 리안이 한 번의 도약으로 대피소를 빠져나갔다.
쿠우우우우우우!
엄청난 바람이 두 사람을 강타했으나 디나이가 걸린 리안의 육체는 밀려나지 않았다.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각도는 거의 수평이었다.
“후우.”
대직도를 전면에 내세워 바람을 가른 리안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어디로 갈까?”
시로네는 마치 기댈 곳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리안의 목을 끌어안았다.
“……리안.”
정처 없이 10분을 걸은 뒤에야 시로네가 말했다.
“내가 원망스럽지 않아?”
리안은 생각했다.
‘원망스럽지 않다고 말한다면…….’
시로네는 믿어 줄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가족을 죽인 자에게 티끌만큼의 미움도 없는 게 가능할까?
“형이 죽은 건 나도 슬퍼.”
바람 소리에 목소리가 파묻혔지만 시로네는 리안의 등을 통해 듣고 있었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 하지만 시로네, 너를 원망하지는 않아.”
“기사 서약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리안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기사 서약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야. 세상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있고, 주군을 배신하지. 내가 너를 원망하지 않는 건, 기사 서약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내 주군이기 때문이야.”
시로네는 두 가지 경우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곧바로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나는 거기에 내가 생각하지 못한 아주 크고 깊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어.”
“대의라고.”
시로네는 리안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해 줄까?”
리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레이나 누나도, 클럼프 할아버지도, 비쇼프 아저씨도, 나를 믿어 줄까?”
“상아탑으로 가자.”
상아탑의 마법사들이라면 시로네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을 터였다.
“토르미아로 갈 거야.”
“시로네.”
“오젠트 가문에 가서 용서를 구할 거야.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리안은 침묵한 채 천천히 방향을 돌렸다.
쿠우우우우우우!
태풍이 불에 타는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강타했다.
땅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진천의 바다가 괄하게 불타올랐다.
“크아아아!”
불길 속에서 제8군단장 미투라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4명의 오대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 마계…….”
이제는 개방해야 하지 않을까?
“덜떨어진 놈.”
100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른 미네르바가 곰방대를 빨아들이더니 연기를 뿜어냈다.
가연성가스가 불과 화학작용을 일으키자 일대 바다를 날려 버릴 폭발이 일어났다.
“우오오오오오!”
증기 속에서 불에 타들어 가는 미투라가 사지를 활짝 펼친 채로 포효했다.
“전부 죽여 버리겠다!”
균형부의 아만타가 진두지휘했다.
“허세야. 계속 가.”
그의 예언대로 마계는 열리지 않았고, 남은 3명은 총공격을 감행했다.
“크악! 크악!”
미투라는 비참했다.
“어째서…….”
마계를 열 수 없는 것일까?
자폭의 각오로 마음을 밀어붙여도 극한에 수렴할 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었다.
“마음의 경지란 강함과 별개인 것처럼 보이지.”
프리드가 검을 치켜들고 돌진했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전부다.”
비록 마계를 여는 능력은 없지만, 오대성은 각자의 신념이 죽음을 초월한 자들이다.
“왜 마계를 열 수 없는지 말해 줄까?”
씽의 율법에 구속된 미투라가 하늘로 날아오른 프리드를 올려다보았다.
“열 수 없는 건, 열 수 없는 거야.”
마음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마, 마계에에에에!”
미투라가 소리쳤고, 마계는 열리지 않았으며, 프리드의 검이 그의 목을 베었다.
풍덩 하고 바다에 빠진 미투라의 얼굴이 놀란 표정 그대로 심연에 잠겼다.
“끝났군.”
프리드가 검을 갈무리하자 3명의 오대성이 빠르게 주위로 날아왔다.
“마족들이 도망쳤어. 어떻게 된 거지?”
미투라는 덜떨어진 놈이었지만, 군단장의 지시를 어기고 흩어진 것은 이례적이었다.
“구스타프와 연계된 일이겠지. 시로네가 갔으니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났을 거야.”
소정화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들이 충격을 받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씽이 말했다.
“여기는 진천에 맡기고 상아탑으로 복귀하자. 차후 대책을 세워야 해.”
이견은 없었고 4명의 오대성은 곧장 바다를 가로질러 북극으로 향했다.
진천은 살아남았다.
***
남방을 장악한 제11군단은 고작 3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를 쫓아 맹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군단장은 이미 가올드에게 소멸했지만 여전히 천만이 넘는 병력을 가진 그들이었다.
“저기다! 죽여라!”
해진 코트를 걸친 가올드와 곁을 지키는 강난, 쿠거를 소환한 줄루가 전투태세를 갖췄다.
강난이 말했다.
“여긴 우리에게 맡겨요. 조금이라도 쉬라고요.”
가올드의 상태는 심각해서, 머리털은 하얗게 셌고 피골은 상접해 있었다.
“쉬라고?”
영원한 안식을 거부한 시점에서 가올드의 삶에 휴식은 있을 수 없었다.
“그게 뭔데?”
언제나 그렇듯 가올드는 몰려오는 대군을 향해 똑바로 전진했다.
파계의 위력은 마족들을 소멸시킬 테지만 가올드의 마법은 고통을 담보로 한다.
‘버틸 수 있어.’
여기까지 와서 포기해 버리면 여태까지 감당한 세월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미로.”
가올드의 눈동자가 위로 뒤집어졌다.
‘에어 프레스.’
통각은…….
“응?”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마족들과 전혀 다른 공기의 냄새.
‘뭐야?’
팔 대신에 칼날이 달린 흉측한 마족들이 가올드에게 달려들었다.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