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05
반사적으로 에어 건을 난사하자 괴상하게 비틀린 육체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여긴 어디야?’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가올드의 등 뒤로 여단장이 해머를 쳐들었다.
“위험해!”
강난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무릎으로 여단장의 얼굴을 강타했다.
신적초월의 위력에 괴물의 얼굴이 으스러지고, 강난이 착지와 동시에 고개를 틀었다.
“뭐 하는 거예요! 빨리 출구를 열어요!”
“시간…….”
중얼거리던 가올드가 물었다.
“오늘 며칠이야?”
뜬금없는 소리에 강난이 미간을 찌푸렸으나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16일요! 대체 왜 그래요?”
“16일?”
대군을 향해 에어 프레스를 시전한 시점으로부터 4일의 기억이 삭제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자기상환적 돌연변이가 생긴 후부터 단기 기억상실을 겪기는 했지만 이토록 기간이 늘어난 경우는 처음이었다.
“전원 공격!”
하늘에서 박쥐의 날개를 단 마족들이 가올드와 강난을 향해 불덩어리를 쏘아 댔다.
“가올드……!”
강난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가올드의 눈이 빛나면서 대기의 압력이 치솟았다.
“으아아아아!”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치자 백사장을 걷고 있던 강난과 줄루가 돌아보았다.
“아파요? 요새 너무 잦은 거 아니에요?”
가올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다. 섬의 끝인가?’
강난의 옷이 타들어 가 있는 게 보였다.
“언제 다친 거야?”
“오전에 포위망을 뚫다가 조금 탔을 뿐이에요. 같이 있었잖아요. 대체 왜 그래요?”
이번에는 대략 6시간이었다.
가올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줄루가 과묵한 입을 열었다.
“이유를 말해. 계속 싸우려면 우리도 알아야 한다요.”
“나는……”
기억이 끊어졌다.
“으아아아아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고, 마족들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군단장님의 원수를 갚아 주마!”
에어 프레스의 원통형 기둥이 마족들을 내리꽂고 있지만, 가올드는 너무나 낯설었다.
‘나는 뭐지?’
왜 싸우고 있는 것일까?
“일단 후퇴해요! 수가 너무 많아! 파계의 위력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랬던가?
‘위력이 약해졌다고?’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잠깐 기다려.”
코트를 잡아당기는 강난의 힘을 이겨 내고 가올드가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또 왜요?”
“나는…….”
가올드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싸우고 있지?”
“미로를 갖기 위해서. 그녀가 당신이 싸우는 것을 원하니까. 됐어요?”
가올드의 동공이 흔들렸다.
“미로.”
……누구더라?
강난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당신…… 솔직히 말해. 뭔가 있지? 우리에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지?”
“아, 미로.”
생각났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요즘 생각이 복잡해서. 아무튼 빠져나가자고.”
가올드가 걸음을 옮기는 순간 강난이 붙잡았다.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강난의 눈이 부릅떠졌다.
“당신, 알고 있어? 지금 나에게 한 질문을 2시간 전에 똑같이 했다는 거.”
“…….”
가올드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로기 (1)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모닥불을 피운 백사장에서 가올드와 강난, 줄루가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 잠시 괜찮아졌다가, 조금 더 심해졌어.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올드가 횃불에 번질거리는 얼굴을 들었다.
“기억이 사라지는 기준이 없다는 거야.”
돌려서 말했지만 강난은 알아들었다.
“미로.”
협회장 시절부터 기억은 심심할 때마다 출타했지만 미로에 대한 것만은 절대로 잊지 않은 그였다.
가올드는 왜 싸우고 있냐고 물었다.
‘너무 아파서, 고통이 한계를 모르고 치솟은 결과 본질마저 상실하고 있다.’
강난이 물었다.
“만약 미로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상관없어.”
가올드는 단호했다.
“특별히 거기에 불안감을 느끼는 건 아니야. 내가 미로를 잊어도, 상관없다. 다만 너희들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이유는 전력의 약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야. 미로를 잊으면 파계의 위력은 낼 수 없을 거야.”
“지금 그게 문제예요!”
강난이 벌떡 일어났다.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있잖아! 죽도록 고통받으면서! 지금이라도 시온으로 돌아가요! 가서 미로에게 솔직하게 말해! 여기가 한계라고!”
“그런 다음에는?”
가올드의 시선 앞에서 강난은 위축되었다.
“떠나. 미로를 데리고 떠나. 어디든 도망쳐서 행복하게 살아. 미로도 그러겠다고 했잖아.”
“……그랬지.”
강난은 깨달았다.
미로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가올드는 그녀에게 갈 수 없는 것이었다.
“멍청한 인간.”
가올드는 아픈 미소를 지었다.
“크크, 너무 이상하게 몰지 마라. 나도 마법사다. 끝을 보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아. 어쨌든 좋지 않은 상황이야. 문제 해결에 치중하자.”
줄루가 말했다.
“단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 뿐, 이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요. 냉정하게 자신을 파악한다면 전투에서 실수를 할 일은 없어. 문제는 위력이 약해졌다는 것이지.”
가올드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위력이라…….”
미로를 떠나 1명의 마법사로서 약해지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사랑보다 거대한 고통이라는 건가?’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이 통각의 수치로 매겨진다는 것이 굴욕적이었다.
“충격요법이 필요하겠군.”
“미로야.”
명상에 잠겨 있는 미로의 방에 세인이 들어왔다.
그의 뒤편에는 간부인 아르민과 쿠안, 이제는 어엿한 마도사가 된 리리아가 서 있었다.
“왔어?”
미로가 눈을 뜨자 정숙한 기운이 사라지면서 인간 본연의 기색이 드러났다.
가올드가 떠난 이후로 많이 야위었으나 아름다운 모습은 퇴색되지 않았다.
세인이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 식사량이 너무 적어. 수면 시간도 극히 짧고. 이래서는 싸울 수 없어.”
“오히려 도움이 돼.”
육체가 마를수록 정신은 날카롭다.
비록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몸이 망가질 테지만, 그녀는 최후의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심령권이 사라졌으니 시온에 많은 인력이 있을 필요 없어. 이제부터 활동을 시작할 거야.”
그래서 부른 3인이었다.
“쿠안, 아르민, 리리아는 토르미아로 가. 그곳에서 지옥의 군대를 막아 줘.”
쿠안이 물었다.
“어째서 토르미아지? 마족들은 아직 카즈라에도 오지 못했는데.”
“소정화로 마족 5할이 전멸했지만 군단장들은 살아남았을 거야. 그들이 중부 대륙에 집결한다면 뚫리는 건 시간문제. 토르미아가 유일한 방어벽이야. 그리고…….”
미로가 입꼬리를 올렸다.
“가고 싶잖아? 토르미아.”
올리페르 시이나가 있었다.
쿠안이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는 가운데 리리아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준비되는 대로 출발할게요.”
토르미아로 떠날 세 사람이 방을 나섰으나 세인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로야.”
세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기에 미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만 나가 줘. 정신 집중에 방해되니까.”
대화는 늘 여기서 끊어졌었다.
하지만 심령권이 봉인되어 활동이 자유로워진 지금 세인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정말 안 만날 거냐?”
미로는 말이 없었다.
“단신으로 남방을 초토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놈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
“버틸 수 있을 거야.”
“없어. 마음이 얼마나 강하든, 뇌는 물리적인 기관이야. 내구력의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그녀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가올드는 오지 않아. 그러니 네가 가야 해. 가서 놈의 상태를 확인해. 이건 군사로서의 지시야.”
미로가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그러다가 살림 차리자고 하면?”
세인이 돌아섰다.
“……그럴 힘이나 있으면 다행이지.”
문이 닫혔다.
***
구스타프 제국은 행성이 처음 탄생했을 때의 모습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마족들은 거의 전멸했으나, 그렇다고 한 마리도 남김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군단장들이 제국을 벗어나자 눈치 빠른 마족들도 황급히 도주했기 때문이다.
생존한 마족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그들이 본 것들을 전파했다.
-비가 내렸어. 빛의 폭격.
-모든 게 파괴되었지! 마족도, 세계도,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쓸어 가 버렸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그렇게 무서운 야훼는 처음이었어. 절대로, 절대로 그를 분노하게 해서는 안 돼.
-우리는 전부 소멸하고 말 거야! 그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나, 나는 봤어! 절대로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고! 으아아아아아!
소문을 들은 마족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야훼의 공포에 몸서리를 쳤다.
그렇게 3주가 흘렀다.
시로네와 리안이 아카드 사막을 건너 중부 대륙의 경계선에 도착한 시점이었다.
2일 전에 발견한 군마를 타고 있는 리안이 등을 대고 앉아 있는 시로네에게 말했다.
“아마도 보르나이 왕국일 거야.”
한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마족과의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
시로네는 죽은 듯 말이 없었다.
며칠째 굶어서 말할 힘도 없는 건 당연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건 마음의 벽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리안은 구스타프 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제국 하나를 지워 버린 폭격.
아마도 어떤 세계에서 가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행성은 멸망했을 터였다.
그 얘기를 들은 이후로 시로네는 생리 활동에 대한 것 외에는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충격이 크겠지.’
거대한 힘이라는 것은 마법사의 꿈이지만, 그것도 통제 가능할 때의 얘기였다.
소정화의 재앙은, 시로네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통제할 수 없었던 마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