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09
마법사와 정신을 공유하는 미메시스 능력은 조작물의 작업 효율을 월등히 향상시켰다.
카카카카카카!
거대한 드릴 2개가 돌아가자 불꽃이 튀며 눈앞에 꽃잎과도 같은 빛의 잔상이 생겼다.
“힘내! 히커리 19호!”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만든 히커리 19호가 도로시의 정신을 받아들이며 더욱 출력을 높였다.
캉! 캉! 캉!
그때 장비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육중한 몸체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정지! 정지! 막혔어!”
한때 단테와 함께 마법학교를 다녔던 사비나가 정지 깃발을 흔들었다.
“아우, 젠장!”
히커리의 조종석을 강하게 내리친 도로시가 인상을 찡그리며 기체 밖으로 나왔다.
“뭐야? 또 철광석이야?”
“어. 광물 함유량이 너무 많아. 어쩐지 순순히 작업 허가를 내줄 때부터 이상하다 했어.”
아르카 산맥은 역사적으로 채굴이 어려운 지역이었다.
“내가 확인해 볼게.”
대지 마법을 전공한 클로저가 히커리 19호의 드릴로 다가갔다.
열기에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푸우! 완전 막혔는데. 이거 뚫으려면 2일은 걸리겠어. 차라리 제1 굴착지점을 다시 공략하는 건 어때?”
고고학 전공으로 굴착 팀에 합류한 카니스가 아린을 데리고 다가왔다.
“그건 안 돼. 저런 무식한 장비로 계속 뚫었다가는 난쟁이 유적이 파괴되고 말 거야.”
도로시가 도끼눈을 치켜떴다.
“야! 너 무식한 장비라고 했겠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걸로 공기놀이도 할 수 있어!”
“아무튼 안 돼. 유적지나 유물이 파손되면 어차피 말짱 헛고생하는 거잖아.”
클로저가 전공을 살려 동굴의 지대를 살폈다.
“일단 이 지점만 뚫으면 쉽게 내려갈 것 같은데? 흐름으로 보건대 깊이 매장되지는 않았어.”
“그럼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해 보자.”
도로시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10미터 높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전쟁이 터지고 자퇴를 하기는 했지만 마법사인 그들이 다칠 염려는 없었다.
“후우, 뭐 하나 쉬운 게 없네. 학교까지 포기하고 인생을 걸었는데.”
도로시가 안전모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아 검은색 러닝셔츠의 가슴 부위가 볼록 돌출되어 있었다.
클로저가 물통을 들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 정도면 나은 편이지. 프링스 소식 들었냐? 학교 졸업하고 마법 유치원 교사가 됐다던데.”
사비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빙결 마법을 전공한 프링스는 뛰어난 실력에 더해 관음증이 심한 변태로 기억되고 있었다.
도로시가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유치원 교사? 하긴, 그 녀석 성격을 생각하면 딱 맞는 적성일지도.”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오늘 아침은 뭘 먹었는지 물어보고 있지 않을까?
“우리도 많이 변했지. 그러고 보면 학교 때가 정말 재밌었는데.”
도로시는 졸업반을 회상했다.
대인 전투, 스크럼블 로열의 수 싸움, 치열했던 졸업 시험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누군가를 떠올리던 그녀가 회상에서 벗어나 소리쳤다.
“자! 다시 시작하자! 이번에는 제대로 해 보자고!”
“좋았어!”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때, 아린이 먼 곳을 돌아보며 말했다.
“카니스, 저기 봐.”
무장한 호위 기사를 대동한 거대한 집마차가 언덕의 내리막길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뭐야? 왕국인가?”
“아니, 마크가 다른데?”
발굴 팀 전원이 에어 마법을 시전해 공기를 압축시키자 마차의 인장이 또렷이 보였다.
“성전?”
그것도 전투부대 발키리의 인장이었다.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기다리는 가운데 마차가 먼지를 이끌고 정지했다.
문이 열리고 아로미가 내렸다.
단정한 자태로 발굴 팀을 지켜보던 그녀가 안경을 올리더니 고양이처럼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성전 예하 발키리 부대의 전략사령부 수행비서 실장 아로미라고 합니다.”
클로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거 이름 한번 기네. 무슨 일이쇼?”
아로미는 거두절미하고 공문을 내밀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아르카 산맥에 대한 발굴 권한을 발키리에 위임한다는 토르미아 왕국의 승인서입니다. 확인하시고 서명해 주시죠.”
“뭐…….”
도로시가 내뱉기 전에 카니스가 소리쳤다.
“뭐가 어째?”
거칠게 서류를 빼앗은 그는 10여 페이지에 달하는 계약 이전 사항을 빠르게 확인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
그러고는 서류철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아로미에게 똑바로 시선을 겨누었다.
“내가 조사하기 전까지는 난쟁이 유적에 대한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어. 우리가 계획하고 우리가 시작한 프로젝트를, 이제 와서 당신들이 빼앗아 간다고? 나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
아로미는 차분했다.
“난쟁이 유적하고는 상관없어요. 이건 국가를 초월한 세계 중대사입니다. 보상은 하겠습니다.”
“너 따위가 뭔데 유적의 가치를 돈으로 매겨? 난쟁이들의 유물은…….”
“잠깐 기다려.”
팀의 리더인 도로시가 나섰다.
“유적하고는 상관없다고 하셨죠? 그럼 발키리가 여기에서 뭘 하겠다는 거죠? 군사기지라도 세우겠다는 건가요?”
“기밀입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적어도 우리들이 납득할 만한 논지는 가지고 와야 되는 거 아닌가요?”
“왜 그래야 하죠?”
아로미는 물고 늘어질 빌미를 주지 않았다.
“성전이 요청했고 왕국이 승인했습니다. 일개 사설 발굴 팀이 나설 사안이 아니에요. 그만 빠져 주세요.”
이번에는 도로시도 참지 못했다.
“누구예요? 최고 책임자를 만나야겠어요. 비서실장이 결정권자는 아닐 거 아니에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야.”
도로시가 말을 끝내기 전에 이루키가 마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 이루키?”
마법사 커뮤니티를 통해 토르미아를 떠났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오랜만이다.”
이루키의 뒤를 따라 40명의 기사들이 좌우로 포진해서 그를 호위했다.
하나같이 사회에서 보기 힘든 고수라는 것은 마법사인 그들이 더 잘 알았다.
사비나가 물었다.
“이루키, 어떻게 된 거야?”
아로미가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당신들도 토르미아 국민이라면 예의를 갖추십시오. 성전 예하 발키리 부대의 총군사십니다.”
“총군사?”
클로저가 눈을 깜박거렸다.
“그럼 대장이잖아?”
이루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 미안하게 됐다. 하는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가 여기를 좀 써야겠어.”
마법사답게 사태 파악은 순식간에 되었고 사비나가 고깝게 물었다.
“그러니까 다 알고 왔다는 거네? 그럼 우리 성격도 잘 알 텐데? 아무리 성전이라도 남의 밥그릇 뺏는 건 너무하잖아.”
배신감을 느낀 건 도로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이루키였기에, 감정을 억누르며 대화를 시도했다.
“여기서 뭘 하려는 건데?”
“…….”
도로시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래, 알겠어.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니 우리 같은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위험한 무기를 만들 거야.”
“총군사님.”
이루키는 아로미의 신호를 무시했다.
“그러려면 특별한 광물이 필요해. 이 산맥에 대량으로 묻혀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어.”
분명 적진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기밀이었고 도로시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이루키.’
학창 시절, 가장 소중한 추억의 주인공.
그로기 (5)
“내가 말할게.”
카니스가 도로시의 옆으로 걸어왔다.
“성전이 필요한 게 단순히 광물이라면 굳이 이 장소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거 아냐?”
이루키는 순순히 답했다.
“그렇지.”
“그런데 왜 우리를 쫓아내지? 이곳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야. 게다가 우리 팀은 전부 사비를 털어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상이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실속의 문제가 아닌 감정의 문제였다.
“적어도 납득은 시켜야 하는 거 아냐? 산맥을 통째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 빡빡하게 구는 이유가 뭐야?”
“성전은 바빠. 채굴량의 한계를 정하지 않을 거고, 너희들의 사정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
0.1퍼센트의 변수도 남기고 싶지 않은 이루키의 마음을 카니스는 간파했다.
“한마디로 우리는 귀찮고 번거로운 존재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카니스의 눈에 분노의 빛이 타올랐다.
“호오, 그래. 많이 컸다, 이루키.”
뒤편에 있던 호위 기사들이 동시에 칼을 뽑아 들자 무시무시한 살기가 퍼졌다.
“이런……!”
클로저와 사비나가 스피릿 존으로 들어갔으나, 머리로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정말 강하다.’
집단 살기의 위세만으로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카니스, 소용없어.”
아린이 말했다.
“이루키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야.”
초경을 통해 보이는 이루키의 모습은 생명을 연료로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이었다.
‘목숨을 거는 것과는 달라.’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생명을 까마득히 초월하는 느낌이었다.
“쳇! 운 좋은 줄 알아.”
카니스가 살기를 거두자 클로저와 사비나도 스피릿 존을 해제했다.
사뭇 비참한 분위기였다.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돼?”
도로시가 물었다.
“좋게 설명할 수도 있잖아. 도와 달라고, 양해를 구할 수도 있잖아. 우리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이루키는 그녀를 눈에 담았다.
공상을 좋아했던 4차원 소녀는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어 팀을 이끌고 있었다.
“많이 변했구나.”
과감하게 맨가슴을 드러내는 옷차림도, 직설적으로 말하는 태도도 예전과는 달랐다.
“아니, 틀렸어.”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것들이 변한다.
하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했기에 결코 변할 수 없는 것도 있기 마련이었다.
“학교 밖은 힘든 곳이지. 나도 예전처럼 고집불통인 것은 아니야. 하지만 여전히 꿈을 향해 가고 있어. 카니스도, 아린도, 클로저와 사비나도 모두 학창 시절에 가졌던 꿈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내가 변한 걸로 해 두지.”
“나한테 그랬잖아!”
도로시가 소리쳤다.
“세상에 어른은 없다고. 아이와, 어른의 흉내를 내는 아이만 있다고.”
“…….”
“사실은 네 마음에도 아직 남아 있잖아. 그런데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마치 진짜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서운한 것이다.
비록 계산적이지만, 도로시가 기억하는 이루키는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 아는 아이였다.
“……미안하지만, 이럴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다는 말에 담긴 진짜 뜻을 아는 사람은 오직 아린뿐이었다.
‘이루키의 말이 맞아, 도로시.’
몸에 어떤 문제가 생긴 건지는 모르지만, 이미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린 초경이었다.
‘그럼에도 밝히지 않는 건…….’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고 싶기 때문에.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그렇기에 동창들이 반목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 시간이 없어?”
홱 하고 몸을 튼 도로시가 히커리 19호로 걸어가더니 대자로 드러누웠다.
“배 째! 우리는 절대로 못 비켜! 밟고 가든지 죽이고 가든지, 마음대로 해!”
눈을 질끈 감은 도로시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