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16
에이미가 고개를 돌렸다.
“네가 신경 쓰일 만한 일은 하지 않을게.”
“응?”
마야가 눈을 깜박거렸다.
“동정도 아니고, 양심에 걸리는 것도 아니야. 친구니까. 여기 있는 동안에는 모두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남자니 여자니 따지고 싶지 않았다.
“에이미…….”
어쩌면 이렇게 학창 시절과 똑같을까?
“뭐야?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오해하지 마.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게 아니라…….”
마야가 눈물을 훔쳤다.
“고마워. 고마워, 에이미.”
너무나 멋진 친구를 두었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이러면 내가 빼앗지도 못하잖아.’
다음날 아침.
성전에서 보낸 카이드라가 질풍과 같은 속도로 에이미의 부대에 착륙했다.
“긴급 지령입니다!”
예상보다 빠른 반응 속도에 에이미가 긴장한 표정으로 전령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죠?”
테스와 리안이 도착하고, 짐을 챙기는 걸 도와주던 시로네도 마야와 함께 다가왔다.
전령이 서신을 꺼냈다.
“발키리 총군사 이루키 님의 지령입니다. 시로네, 에이미, 마야는 지금 즉시 토르미아 왕국으로 복귀, 크레아스 도시로 가라고 하십니다.”
마야가 자신을 가리켰다.
“네? 저도요?”
전쟁에 관련된 일이라면, 테스는 몰라도 리안이 끼어 있지 않을 수 없었다.
시로네가 생각에 잠겼다.
‘나랑 에이미, 마야라고?’
3명의 공통점을 대라면 알페아스 마법 학교 출신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여기 총군사의 서신입니다.”
에이미가 편지를 개봉하자 시로네와 마야가 등 뒤에 나란히 서서 눈으로 읽었다.
“뭐……?”
피쇼의 부고가 적혀 있었다.
부고 (2)
***
토르미아의 수도 바슈카.
행정구역 알로그 거리에는 고위 공무원들이 숙박하는 고급 호텔이 있었다.
호텔 데시카, 1403호.
단테는 창문 옆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아침 햇살이 포근한 거리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
속옷조차 없는 알몸에 무릎 위에 걸쳐진 팔, 손에는 아이스커피가 들려 있었다.
“피쇼…….”
그를 잠에서 깨운 건 마법협회를 통해서 전달된 한 통의 부고였다.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끊어지더니 한 여성이 머리를 털며 나왔다.
“뭐야? 아침부터 분위기 잡고.”
뜨거운 밤을 보낸 사이인 만큼 그녀 또한 옷을 걸칠 생각을 하지 않고 화장대에 앉았다.
빗질을 하던 여자가 거울로 비치는 단테의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악몽이라도 꾼 거야?”
단테가 피식 웃었다.
“글쎄. 지금 현실보다 더 무서운 악몽이 있을까?”
여자는 철학을 싫어했다.
“오늘따라 정말 이상하네. 안 씻어? 출근해야지.”
여자는 단테를 왕성 기록물 관리부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정보원 제2차장, 코드 블랙에 해당하는 요인이었다.
최고 기밀 암호화 시스템, 일명 ‘로프’의 열람권이 그에게 있다는 사실은, 국가의 모든 정보가 그의 머리를 거쳐서 저장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자가 화장을 하며 말했다.
“오늘 늦을 거야. 친구 만날 거거든.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고 있어.”
“그럴 필요 없어.”
단테가 여자의 등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만나자.”
립스틱을 바르던 여자의 손이 우뚝 멈추더니 미간을 찡그리며 돌아앉았다.
“지금…… 나한테 말한 거야?”
“둘 다.”
침대에서 또 다른 여자가 이불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났다.
“뭐! 나까지?”
그녀가 단테에게 다가와 항의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는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적어도 한 달은 만나 줘야지!”
화장대에 앉아 있는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질린 거야?”
어차피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남자라는 것은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질리기는. 사는 것 자체가 지루하지.”
“그럼 이유가 뭐야?”
단테가 햇살의 후광을 받으며 미소 지었다.
“진짜가 오고 있거든.”
토르미아의 차례였다.
***
시로네의 눈에 슬픔이 담겼다.
“피쇼가 죽었다고…….”
외계 생물 아르고네스의 숙주가 된 순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았다.
“죽었다는 말의 의미가 뭐야?”
에이미가 입을 열었다.
“내가 피쇼에게 듣기로, 아르고네스의 숙주가 된 사람은 수명의 한계가 없어. 물론 암세포의 무한 증식에 파묻히겠지만, 사망 판정을 내릴 수는 없을 텐데.”
“졸업 시험이 끝나고 피쇼는 떠났어. 격리 시설에 갇혀 있었을 거야. 거기서 많은 실험을 했을 테고…….”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왕국에서도 소수를 제외하고 아무도 몰랐다.
마야가 물었다.
“이루키의 편지에 적힌 내용은 그것뿐이야?”
에이미가 다시 확인했다.
“응. 지금 즉시라는 단어를 사용한 걸 보면 상당히 강제적인데. 부고 외에 다른 내용은 없어.”
“이루키가 그걸 놓칠 리는 없을 거야. 어쩌면 기밀일 수도 있고. 가 보면 알게 되겠지.”
시로네가 마야를 돌아보았다.
“일정이 바쁠 텐데, 갈 수 있겠어? 피쇼의 장례식.”
“당연히 가야지. 나랑 같이 졸업반에 가장 오래 남았던 사람 중의 1명이니까.”
마야가 졸업반의 애물단지였던 시절에도 항상 동등한 태도로 대해 주었던 과묵한 오빠였다.
“좋아. 그럼 바로 출발하자.”
성전의 허락이 떨어졌으나 에이미는 대원들을 남겨 두고 가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괜찮을까? 지휘관이 없으면…….”
테스가 가슴을 두드렸다.
“무슨 걱정이야? 내가 있는데. 잘 챙겨서 본진에 합류할 테니까 안심하고 갔다 와.”
리안이 입을 열었다.
“나도 여기에 남을게. 그래도 되겠지?”
당연히 시로네를 따라간다고 할 줄 알았기에 테스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 여기 남는다고?”
“이제부터 성전의 수비벽 안쪽이니까 시로네가 위험할 일은 없어. 반대로 지옥의 군대는 계속 남하하고 있지. 이 속도라면 토르미아도 가시권이야.”
리안은 방패가 될 생각이었다.
“응. 고마워, 리안.”
에이미가 말했다.
“3명이면 카이드라를 타고 가자. 카즈라에 도착해서 토르미아로 점프한 다음에 크레아스로.”
“그다음에는?”
이루키는 정확한 행선지를 말해 주지 않았다.
“글쎄, 뭔가 조치가 있지 않을까? 안 되면 학교로 가자. 선생님들도 장례식에 참석하실 테니까.”
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네. 모두 모이겠구나.”
무거운 분위기의 동창회가 될 것 같았다.
***
시로네 일행이 크레아스 도시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전쟁터를 전전했던 시로네에게는 차분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풍경이 낯설었다.
‘원래는 이랬지.’
마법협회 토르미아 지부의 옆에 있는 새벽 식당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끝냈다.
“아무도 안 나오네.”
협회에서도 딱히 기별이 없었다.
“오히려 철두철미한 것일 수도 있지. 피쇼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알아야 하지만, 그 외에는 모르는 게 좋다는 느낌이 드는걸.”
식당을 나온 시로네 일행은 원래 계획대로 알페아스 마법학교로 향했다.
그저 모교를 찾아갈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정문을 보자 시로네는 가슴이 뭉클했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지.’
열두 살에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담벼락을 넘었던 일이 아주 먼 옛날 같았다.
에이미와 마야도 시로네의 옆에 서서 아련한 표정으로 아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들어가자.”
에이미의 신분증을 확인한 경비가 길을 열어 주었다.
“뭐, 뭐야?”
그리운 정경이었으나 같은 건 풍경뿐, 분위기는 크게 변해 있었다.
모두 열과 오를 맞추어 걷고 있었고, 어린 학생들조차 눈에 투쟁심이 가득했다.
“학교의 군대화. 전쟁 중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씁쓸한 마음을 안고 교장실에 찾아가자 알페아스와 올리비아가 벌떡 일어났다.
“너희들…….”
놀란 것은 잠시였고, 피쇼의 사망에 생각이 이르자 이내 표정이 풀어졌다.
“왔구나. 어서 오렴.”
세 사람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황금 세대 졸업반의 주인공 세 사람을 바라보며 알페아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쪽으로 앉아라.”
올리비아가 내온 차를 마시며 시로네 일행은 학교의 사정에 대해 들었다.
“졸업 시험이 올해부터 폐지되었단다. 학생들은 정규 수업을 끝마치고 곧바로 군대로 차출되지.”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렇지. 경쟁의 장점도 사라졌지만, 무엇보다 교육 내용자체도 상당히 잔혹하다.”
시험을 보지 않고 전장에 보내지기에, 학생들은 강도 높은 실전 훈련을 받아야 했다.
“피쇼에 대한 얘기는 들었겠지?”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떻게 된 건가요?”
“나도 모른다. 성전이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 장례식은 3일 후에 있을 예정이다.”
“어째서 3일 후죠?”
“정치적인 문제겠지.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시로네 너 때문일 것이다.”
“저요?”
올리비아가 말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지만, 피쇼가 너에게 유언장을 남겼다는 소문이 있어. 네가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시로네가 눈을 깜박였다.
‘피쇼가 나에게?’
학창 시절에 깊은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상아탑의 오대성. 혹은 야훼.’
그 정도의 위치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였다.
“이왕 왔으니 졸업반을 둘러보는 게 어떻겠니? 하긴, 이제 그런 말도 추억이지만.”
훈련병이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알페아스를 따라 강철문을 지나자 30명의 학생들이 시이나와 사드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더, 더 집중해!”
얼굴이 창백해진 학생들이 전방을 향해 각자의 전공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이게 오전 수업이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마법을 시전하는 게 관건이지.”
시이나가 소리쳤다.
“카르나! 뭐 하고 있어! 정신 안 차려!”
위력이 약해진 여학생을 지목하자, 그녀가 입술을 깨물더니 보란 듯 주저앉았다.
“카르나! 너……!”
“이런 건 불합리해요!”
카르나의 외침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이게 뭐예요, 날마다! 똑같은 훈련에, 말도 안 되는 강도에! 리커버리조차 되지 않잖아요!”
“일어나.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