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17
시이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자 옆에 있던 마크가 카르나를 부축했다.
“카르나, 다시 해 보자.”
“놔! 할 말은 해야겠어! 이건 마법이 아니야. 그냥 혹사시키는 거지! 우린 강해지기 위해서 온 거잖아!”
시이나가 서류를 꺼냈다.
“미노 카르나. 오늘부로 알페아스 마법학교에서…….”
시로네가 다가왔다.
“일어나라.”
시이나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졸업반 학생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시, 시로네 선배님…….”
시로네의 감동적인 졸업식 연설을 듣고 원대한 꿈을 품었던 학생들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세계 최고의 마법사가 되어 후배들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다시 일어나서 훈련을 시작해. 마법이 아니라고? 아니, 이게 마법이야.”
카르나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뇨. 이런 건 마법이 아니에요. 변화도 없고 창조도 없어요. 선배님도 이랬나요?”
“물론 너희들 때하고는 달랐지. 하지만 본질은 같아. 투덜거릴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마법을 시전해.”
카르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시로네였다.
그렇기에 더욱 서러웠다.
“왜요? 그렇게 해서 달라지는 게 뭔데요? 지금 당장 한 번을 더 한다고 해서 남는 게 뭔데요?”
“한 번이라도 더 했다는 기억이 남는다.”
카르나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그 기억을 끝없이 누적시켜. 최후의 최후에 가서는 그것만이 너를 지킬 테니까. 그게 전부야.”
“그게 전부…….”
“그래. 네 머릿속에 힘들어서 포기했다는, 그런 절망적인 사건을 남길 여지를 주지 마. 언젠가는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면 한계는 없는 거야.”
카르나의 눈동자가 냉철한 빛을 되찾았다.
“물론 쉬어야 할 때도 있지.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나고 보니까 알겠더라고.”
시로네가 씩 웃었다.
“하나 쓰잘머리없다는 걸.”
“……하하.”
“마법사가 쉬어야 할 때는 지치거나 힘들 때가 아니야. 한 번의 휴식이 승리의 가능성을 올릴 수 있을 때, 마법사는 휴식을 도모한다.”
시로네가 손을 내밀었다.
“통제할 수 있잖아? 너도 마법사니까.”
“네! 선배님!”
카르나가 미소를 지으며 벌떡 일어서자, 학생들의 의지가 불처럼 치솟았다.
“좋아! 해보자!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어!”
흐뭇하게 지켜보던 시로네가 자리로 돌아가며 시이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시로네…….’
이제는 제자가 아니었기에, 시이나도 마주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마크의 마법이 여느 때보다 강한 위력을 폭발시켰다.
‘시로네 선배님이 보고 있다!’
마리아가 뒤를 이었고, 다른 학생들도 피로를 잊고 모든 정신력을 쏟아부었다.
‘저에게도 조언해 주세요.’
세계 최강의 마법사가 지켜보고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학생들의 집중력은 사상 최고치를 달성하고 있었다.
부고 (3)
무려 4시간에 달하는 연사 훈련이 끝나자 학생들은 녹초가 되었다.
지친 기색을 드러내며 숨을 몰아쉬는 자들 중에는 시로네와 친했던 마크와 마리아도 있었다.
“오랜만이야.”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마크가 힘든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났다.
“선배님! 정말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
만난 시간은 짧아도, 마크와 마리아 또한 피쇼와 함께 졸업 시험을 치렀던 당사자였다.
“응. 너도 들었구나.”
“네.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던 마크가 퍼뜩 생각난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죄송해요, 선배님. 빨리 따라잡고 싶었는데 아직도 졸업반에 머물고 있네요.”
의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로네도 이미 졸업했기에 망정이지, 당시를 떠올려 보면 어떻게 해냈는지 아찔할 따름이었다.
“괜찮아. 나아가고 있잖아.”
거기에 대해서는 마크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이죠.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학생들이 점심을 먹으러 떠나자 시로네 일행은 교무실에서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 그런데 에텔라 선생님은요?”
수업 중에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교무실에 있던 책상마저 빠져 있었다.
“에텔라 선생님은…….”
시이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학교를 떠나셨어.”
“떠나셨다고요? 어디로요?”
“그게…….”
또다시 말을 고르는 시이나였으나, 시로네에게 설명할 어떤 단어도 찾지 못했다.
알페아스가 말을 돌렸다.
“그래,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냐? 피쇼의 장례식까지는 3일이 남았으니 집에도 가 봐야지.”
“부모님은 오젠트 가문에서 지내고 계세요. 저도 거기에서 지낼 예정이고요.”
말을 꺼내면서 시로네도 깨달았다.
‘리안이 없구나.’
가이의 죽음에 대해 변호해 줄 사람도 없고, 심지어 부모님까지 있었다.
‘차라리 잘됐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누군가의 뒤에 숨는 짓은 하지 않아야 될 것이다.
시로네 일행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알페아스 마법학교를 나왔다.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에, 에텔라에 대한 문제는 그때 물어보기로 했다.
귀족 구역에서 에이미가 물었다.
“나는 본가로 들어갈 건데, 마야도 같이 갈래? 어차피 지낼 곳도 없잖아.”
“괜찮아. 호텔에서 자면 돼.”
시로네가 극구 말렸다.
“안 돼. 유명인인데. 게다가 기획사 사람들도 없잖아?”
팔머스는 따로 군대에 이동 요청을 해서 다른 루트를 통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나랑 있는 게 불편해서 그래?”
“아니, 절대로 그런 건 아니야!”
마야가 펄쩍 뛰며 부정했지만, 사람인 이상 편한 자리가 아닌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오젠트로 가는 건 어때?”
“아, 아니…… 그것도.”
이번에도 마야는 손을 저었지만, 처음보다 훨씬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
“그냥 호텔에서 묵게 해 줘. 좋은 곳에서 잘 거니까 경호도 필요 없을 거야.”
시로네도 마야가 가장 편하게 여길 만한 곳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3일 뒤에 보자.”
“응. 모두 잘 지내.”
에이미를 배려한 마야는 먼저 자리를 떠나 숙박 시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아.”
시로네와 헤어지는 건 아쉬웠지만, 솔직히 지금은 한결 홀가분했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
시로네도 에이미도 남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중간에 끼인 입장이 더욱 비참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 볼까?’
시련의 상처는 새로운 사람으로 잊어야 한다는 격언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세상에 사랑의 열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시로네보다 더 멋진 남자…….’
그게 무엇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고, 답답해진 마음에 마야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다. 친구의 장례식을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나쁜 거야.’
고급 호텔이었지만 수도만큼 인구가 많지는 않았기에 4층짜리 건물이었다.
토르미아에서 마야의 인기는 타국에 비해 월등했기에 귀족 청년들이 알아보았다.
“어이, 저기! 맞지?”
“어? 맞는 것 같은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야. 크레아스는 웬일이지?”
“그러게. 혼자 온 것 같은데.”
4층 객실을 빌린 마야가 중앙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청년들이 눈을 마주쳤다.
“같이 놀자고 해 볼까?”
밑져야 본전이었다.
크로스 가문의 수련실.
책상 하나 겨우 들어갈 법한 좁은 석실에, 케이든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적십자성의 운명.”
마법학교를 떠나 본가로 돌아온 그는 오직 수련실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케이든, 출발할 시간이다.”
케이든의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석실에 빼곡하게 달라붙어 있는 마야의 초상화로 눈길을 돌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언제까지…….’
처음에는 누구냐고 물었으나, 케이든은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흘러, 초상화의 인물이 세계에서 유명한 가수인 마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예인에게 빠져 가지고.’
케이든이 입을 열었다.
“1시간만 더 있다가 출발하겠습니다.”
“인마, 적어도 동창 장례식에는 늦지 않아야 할 거 아냐.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냐?”
세계는 혼탁하다.
토르미아의 대표적인 혈통인 크로스 가문이 나서야 할 때임에도, 적자라는 놈이 가수에 미쳐 있으니.
“뭐라고 말 좀 해 봐. 마법학교를 떠났을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뭐냐? 수련은 하지도 않고 매일 틀어박혀서 그림이나 그리고 있으니.”
“수련은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
케이든이라는 이름값이 있기에, 아버지가 기대 어린 눈으로 물었다.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은 거냐?”
“깨달음도 필요 없습니다.”
“그럼 뭔데! 도대체 그 긴 시간 동안 여기 틀어박혀서 네가 한 일이 뭐냔 말이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케이든의 몸에서 황금빛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아버지가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이건…….”
희생의 적십자성.
애초부터 케이든에게 필요한 건 피나는 훈련이나 극상의 깨달음이 아니었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마야를 포기한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적십자성은 케이든을 사상 최강의 존재로 끌어올릴 터였다.
***
오젠트 가문에 도착한 시로네는 부모님과의 재회에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가주 비쇼프와, 마침 본가로 내려온 레이나가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감동은 잠시였고, 부모님에게서 멀어진 시로네의 얼굴이 이내 차갑게 변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그래. 우리도 듣고 싶은 게 많다.”
비쇼프가 상석에 앉으며 자리를 권했으나, 시로네는 차가운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레이나가 다시 일어섰다.
“시로네? 뭐 하는 거야? 왜 그러고 있어?”
“잠시만…… 제 얘기를 들어 주세요.”
시로네의 진지한 말투에 레이나가 다시 자리에 앉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담담한 말투로, 하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가이를 처음 만난 시점부터, 기억에 없는 야훼의 분노가 개방되었던 사건까지.
“가이 오빠가…….”
가이가 죽었다.
빈센트와 올리나가 손에 얼굴을 파묻고, 비틀거리던 레이나의 무릎이 휘청 굽혀졌다.
“오빠…… 오빠…….”
결국 참지 못한 레이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비수로 심장을 찌르는 고통 속에서도, 시로네는 그저 땅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이를 죽인 것은 접니다.”
시로네가 다시 한 번 사실을 적시하자 비쇼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감출 수 없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리안은 알고 있나?”
“네.”
“그놈이 뭐라고 그랬지?”
“리안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시로네는 단호했고, 비쇼프 또한 리안이 어떤 행동을 취했을지는 뻔히 보였다.
‘시로네의 잘못은 아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비쇼프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죽은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