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19
‘잘 살고 있을까?’
피쇼의 장례식에서 그를 만나게 되면, 꼭 그날의 일을 물어보고 싶었다.
“맞아요.”
마야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다 잊었어요. 그런 남자 알 게 뭐야.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요.”
메이슨이 화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하하! 잘 생각하셨어요. 자, 그럼 마야 씨의 새로운 사랑을 위해서 건배!”
“좋아요! 건배!”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메이슨을 지켜보던 티토가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나는 그만 가 봐야겠다.”
“어? 벌써 가게?”
“여자 친구랑 약속이 있는 걸 깜빡했네. 미안해요, 마야 씨. 다음에 또 같이 한잔해요.”
메이슨은 눈물이 날 정도였다.
‘고맙다, 친구야.’
티토가 윙크했다.
“마야 씨 잘 에스코트해 드려. 다음에 보자.”
술값을 계산하고 출입문을 열자, 티토의 옆으로 시로네가 스치듯 들어왔다.
‘저렇게 마셔도 괜찮나?’
멀리서 테이블을 지켜보니 벌써 술병이 많았다.
“마야, 여기에 있었네?”
시로네가 테이블로 다가가자, 웃고 있던 마야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시, 시로네.”
마치 죄를 지은 듯한 기분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네가 보이기에. 이분은 누구야?”
분위기를 파악한 메이슨이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마야 씨 팬입니다. 너무 좋아하는 분이라 이렇게 대접을 하고 있죠.”
“반갑습니다. 저는 학교 친구예요.”
“아하, 그렇군요.”
메이슨은 단번에 깨달았고, 예상대로 마야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래, 학교 친구지.’
고작 그 정도였다.
“그만 돌아갈래? 내가 바래다줄게.”
어쨌거나 마야는 유명한 예인이었고, 창밖에서 힐끔거리는 시선도 신경 쓰였다.
“왜?”
평소와 달리 차가운 말투였다.
“네가 왜 나를 바래다줘? 지금 재밌게 놀고 있는데. 신경 쓰지 말고 먼저 가.”
“아니, 나는 걱정되니까…….”
“그러니까 무슨 걱정? 나쁜 사람에게 붙잡힌 것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술도 못 마셔?”
“너무 많이 마시니까 그렇지.”
마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우습게 보지 마. 나도 졸업 시험에 합격한 정식 마법사야. 이런 것까지 간섭받고 싶지 않아.”
생각에 잠겨 있던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조심히 들어가.”
시로네가 자리를 떠나자, 메이슨이 마야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괜찮으세요?”
술을 벌컥 들이켠 마야가 시원하게 웃었다.
“해냈다! 저 방금 잘했죠? 드디어 날려 버렸어요. 어우, 속이 다 시원하네.”
“마야 씨가 그렇다면 좋은 거죠.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요?”
“네! 우리 더 마셔요!”
자정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신 마야는, 메이슨의 부축을 받으며 호텔에 도착했다.
“마야 씨, 정신 차려 보세요. 다리가 풀렸잖아요.”
“괜찮아요. 저 마법사예요. 스피릿 존 알아요? 집중만 하면, 이딴 술은 금방 깬다고요.”
깨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메이슨 씨, 같이 들어가서 한 잔 더 할래요?”
“네? 아니, 그건…….”
마야가 메이슨을 빤히 쳐다보았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미쳐 버릴 것 같아.”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메이슨이, 다시 이를 악물고 마야를 이끌었다.
“일단 올라가죠. 로비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니.”
계단을 올라 마야의 방에 도착한 그가 부축을 풀고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후우. 마야 씨, 열쇠는 어디 있어요?”
“흑. 흑.”
문에 얼굴을 기댄 마야의 어깨가 떨렸다.
“잊어버리라고…….”
메이슨이 돌아보았을 때 마야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잊어버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마야 씨…….”
복도에 울려 퍼지는 서러운 울음소리를, 시로네가 벽 뒤에서 듣고 있었다.
열쇠를 찾아낸 메이슨이 마야의 방을 연 다음 돌려주었다.
“들어가세요, 마야 씨. 저도 그만 가 보겠습니다.”
마야는 황급히 눈물을 훔쳤다.
“아, 죄송해요. 제가…….”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마야가 젖은 눈으로 고개를 들자, 메이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짝사랑도 사랑입니다. 멀리서 지켜보는 고통보다 잊는 것이 더 힘들다면, 굳이 애쓰지 마세요.”
“메이슨 씨.”
“힘내세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마야의 눈앞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하아.”
바깥으로 나오자 봄바람이 차가웠다.
“결국 이번에도 이거냐?”
티토가 호텔 앞에 서 있었다.
“너, 안 갔어?”
“잠깐 와 봤어. 이런 적이 한두 번이냐? 그러니까 네가 평생 솔로로 살고 있지.”
“그만해라. 안 그래도 후회돼서 미쳐 버릴 것 같으니까.”
“크크, 평생 후회할 거다.”
“그래도…… 기억해 주겠지?”
호텔을 올려다보던 메이슨이 자랑하듯 말했다.
“쪽팔리진 않았으니까. 솔직히 나 엄청 멋있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티토가 피식 웃으며 메이슨의 뒤통수를 쳤다.
“술이나 먹으러 가자.”
언젠가는 봄이 오겠지.
생물 프로그램 (1)
토르미아 왕국.
산페로스 지역의 이름 없는 마을.
“빨리! 더 빨리 가 주세요!”
한 대의 마차가 깎아지른 산길을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오직 기동성을 고려한 외관은 날렵했고, 뒤에는 의료 장비가 들어 있는 짐마차가 걸려 있었다.
마차 바퀴가 돌부리에 걸려 튀어 오르고, 안에 타고 있던 의료진이 벽을 짚었다.
“길이 너무 험합니다! 이 속도로 가다가는……!”
마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객실에서 세리엘이 커튼을 젖히고 나왔다.
“괜찮아요! 최고 속도로 가 주세요!”
마부가 이를 악물며 고삐를 휘두르고, 마침내 산길 너머로 허름한 마을이 보였다.
토르미아 왕국령에 속해 있기에 이름이 없지는 않으나 현재 마을은 완벽하게 폐쇄된 상태였다.
3일 전에 보고된 이름 없는 질병으로 주민들이 변이를 일으키고, 그것은 세리엘이 찾던 것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쾅 하고 문이 열리면서 백발이 성성한 남자와 세리엘이 물에 뛰어들듯 내려섰다.
그 뒤를 따라 세계보건기구의 의료진이 황급히 의료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분자생물학 부서의 부장 테노스는 백발이 성성한 꼬장꼬장한 인상의 사내였다.
“변이자는?”
방균복을 입은 군인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전부 사망하고 이제 1명 남았습니다. 하지만 상태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
“비켜!”
군인을 밀치고 들어가자 의무관들이 소리쳤다.
“안 됩니다!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진입은……!”
“세리엘! 따라 들어와!”
“네!”
의료진에게 장비 가방을 받은 세리엘이 테노스의 뒤를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어떡하죠? 이러다가 전염이라도 되면…….”
지휘관이 지시를 내렸다.
“제길! 일단 입구를 봉쇄한다. 탈출하는 주민들은 무조건 사살해!”
군대가 활을 장전하는 가운데, 세계보건기구의 의료진이 줄줄이 따라 들어갔다.
300가구의 마을에는 시체들이 듬성듬성 쌓여 있고 생존자들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보내 주세요!”
마치 지옥의 늪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사람들이 세리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마을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도 시체가 쌓여 있었다.
‘생각보다 변이 폭이 크다.’
과연 저것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팔이나 다리가 곤충의 것으로 변한 자들은 물론, 전신이 동물로 의태한 시체도 있었다.
“과장! 세리엘!”
퍼뜩 정신을 차린 그녀가, 부장의 목소리가 들린 오두막집을 돌아보았다.
“네!”
안으로 들어가자 피부가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진 남자가 침대에 묶여 있었다.
“크아! 크아아아!”
이미 이성을 상실했는지 눈에 초점이 없었으나, 공포심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직 변이 전이야! 적출해!”
의료진이 남자의 옷을 전부 찢어 내고, 세리엘이 그의 위에 올라탔다.
“크아아아! 크아아아!”
명치를 양손으로 짓눌러 발버둥을 죽이고, 남자의 전신을 빠르게 살폈다.
‘어디지? 어디야?’
기생체가 숙주의 몸을 변이시키는 지점은 최초 인젝션 기관에서 반경 20센티미터를 벗어나지 않는다.
‘찾았다!’
남자의 가슴에서 인젝션의 상처를 발견한 세리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제길! 심장이야!’
높은 확률로 전신 변이였다.
“메스!”
의료진이 메스를 쥐여 주는 순간 남자의 상체가 더욱 거칠게 흔들렸다.
“크악! 살, 살려……!”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인간의 언어.
세리엘은 입술을 짓깨물고 남자의 가슴팍을 메스로 사정없이 그었다.
“끄아아아아!”
핏물이 팍 하고 치솟으면서, 세리엘의 얼굴에 붓으로 턴 듯 붉은 점이 생겼다.
그녀는 눈을 감지 않았으나 다행스럽게도 핏물은 안구에 묻지 않았다.
하지만 기생체가 어떤 식으로 다른 개체를 감염시키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었다.
“흐으으으으!”
남자의 심장에 손을 집어넣은 세리엘이 무언가 다른 촉감을 느끼고 쭉 뽑아냈다.
마치 암 덩어리처럼 물컹한 세포질이, 살아 있는 듯 거칠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적출!”
의료진이 꺼낸 금속 상자에 기생체를 집어 던지자 마치 수염처럼 세포 줄기가 쫙 하고 펼쳐졌다.
‘거의 본능이야.’
거기까지 확인한 순간 의료진이 상자를 닫았고, 세리엘은 황급히 응급조치를 했다.
“회복 마법을 걸겠습니다.”
테노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자에 자물쇠를 걸었다.
“제발! 제발!”
세계보건기구에서 세리엘의 회복 마법은 정평이 나 있지만, 아무는 건 상처뿐이었다.
이미 기생체에게 기력을 다 빼앗겨 버린 남자가 세리엘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선, 선생님…….”
“말하지 마세요. 지금은 회복이 우선입니다.”
“……꿈을 꿨어요.”
남자는 죽음을 받아들인 표정이었고, 세리엘이 알기로 그런 경우는 독특한 케이스에 속했다.
“몸이 불에 타는 듯 괴로웠는데 갑자기 고통이 사라졌어요. 선생님인가요?”
“기생체를 적출한 덕분일 겁니다. 살 수 있어요. 조금만 더 정신을 차리세요.”
“빛이 저를 끌어당기더니, 눈이 뜨이더라고요.”
남자는 꿈을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