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2
“허허허.”
아케인은 화가 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누군가를 죽이는 기준은 분노가 아니라 얼마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는가라는 점이 문제였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겠구나. 알페아스의 제자들은 전부 죽어야 하거든. 물론…….”
아케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너도 그렇고.”
엄청난 살기를 느낀 순간, 시로네는 자신도 모르게 포톤 캐논을 쏘고 말았다.
명백한 오발탄이었다.
가볍게 몸을 틀어 섬광을 피한 아케인은 마법이 소멸하는 지점을 확인했다.
“반경 52.7미터. 제법이구나. 나이에 비하면 꽤나 큰 스피릿 존이다.”
네이드의 표정이 멍해졌다.
“피, 피했어?”
질량이 담긴 이상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여타의 마법보다는 빠른 속도였다.
찰나의 순간 섬광을 피하면서 스피릿 존의 반경까지 측정하는 건 인간의 감각이 아니었다.
“큭!”
다급해진 시로네가 다시 광자를 압축시키려는 그때 산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두세요, 시로네.”
에텔라가 걸어 나왔다.
옷이 찢어져 있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투성이였다.
“아케인은 위험한 인물입니다. 지금의 시로네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에요.”
아케인은 미간을 구겼다.
예상과 다른 상황이 계속 일어나는 게 불쾌했다.
“패배자가 낯짝도 두껍구나. 운 좋게 목숨을 건졌으면 소중히 해야 할 것을.”
“패배자?”
시로네 일행은 충격을 받았다.
카르시스 수도회의 비숍, 스피릿 존의 권위자인 조너, 공인 6급의 마법사.
그녀를 수식하는 칭호는 어느 하나 허투루 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로네는 에텔라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네. 회복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떻게 된 거죠? 저 사람은 대체 누구예요? 아니,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죠?”
“저 사람의 이름은 빌토르 아케인. 비공인 3급의 대마법사입니다.”
그 말을 들은 네이드와 이루키가 동시에 아케인을 돌아보았다.
“대, 대마법사라고?”
마법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3급이 갖는 무게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다.
포인트 제도로 운영되는 마법사의 급수 중에서는 특별히 많은 포인트를 요구하는 특정 구간이 있는데, 바로 7급에서 6급, 4급에서 3급이었다.
6급이 마법기관의 간부급 위치라면 3급부터는 왕국의 핵심 시설의 수장을 맡는 직위.
공인 4급의 마법사인 알페아스조차 사립학교의 교장인 것을 생각하면 아케인이 마법사회에서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 자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케인은 교장 선생님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요. 복수를 끝낼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아케인이 감정대로 내뱉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구나. 제자에게 하소연해 봤자 너만 비참해질 뿐이다.”
“승패는 관심 없습니다. 저는 교사니까요.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겁니다.”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전력으로 덤벼도 이기지 못한 나를 이제 와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허세가 지나치군요, 아케인.”
아케인의 인상이 무섭게 변했다.
“그래요. 저는 당신을 막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전투에 치중할 정신력은 없을 텐데요?”
에텔라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실제로 어둠의 권속을 시전한 아케인의 마법력은 정상적인 상태의 1할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마법사의 1할이다.
이미 녹초가 된 에텔라와, 솜털도 안 빠진 애송이들을 쓸어 내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시대가 변하기는 했구나. 귀여워서 오냐오냐해 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주둥아리를 나불거려?”
아케인은 마법력을 끌어 올렸다.
사실 알페아스를 위해 남겨 둔 1할이지만, 골치 아픈 계산 같은 건 그의 인생관에 어울리지 않았다.
카니스가 끼어들었다.
“스승님,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어비스 노바는 평범한 마법사는 시도조차 못할 만큼 막대한 정신력을 소모하는 거대 마법.
그런 마법을 시전한 데다 전투까지 치렀다면 아무리 스승님이라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닐 터였다.
“네가?”
아케인의 표정이 언짢아졌다. 제자라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더니 이내 흥미로운 표정이 되어 시로네를 향했다.
“어이, 애송아. 너는 알페아스의 제자렷다?”
“살인자 주제에 교장 선생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
“크크큭! 그러하냐? 꽤나 존경하는가 보구나.”
시로네는 대답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알페아스는 시로네가 마법에 눈을 뜨게 해 준 장본인이자 평민인 그를 마법학교에 입학시켜 준 은인이었다.
“당신이 대마법사든 3급이든 상관없어. 교장 선생님에 비하면 당신은 마법사도 아니야.”
“푸하하하! 푸하하하하!”
폭소를 터트리는 것과 달리 아케인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알페아스, 얼마나 가식을 떨며 살아온 거냐?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누군가에게 존경받을 자격 따위, 너한테는 없다는 사실을.’
결정을 내린 아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제자들의 싸움을 보는 것도 즐겁겠지. 카니스, 놈과 겨루어 봐라.”
“네. 감사합니다, 스승님.”
카니스는 비로소 안도했다.
여태까지 저지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반면에 하비스트의 생각은 달랐다.
-카니스, 다시 생각해. 아케인에게 맡기는 게 나아.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 스승님을 실망시켰어. 이제는 죽는 한이 있어도 저 녀석을 이겨야 해.
하비스트는 말이 없었다.
전투를 앞두고 의견이 갈릴 수는 없기에 카니스가 다시 전했다.
-대답해, 하비스트. 아무리 너라도 이번만은 양보할 수 없어. 우리는 싸우는 거야.
정신 채널은 고요했다.
-하비스트?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카니스도 당황했으나, 아케인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쳇! 난 싸운다.’
다크포트로 거리를 좁히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가 순간 이동으로 날아올랐다.
‘공중전을 하자고?’
인질을 지키려는 생각일 테지만, 카니스에게도 밤하늘은 불리한 필드가 아니었다.
빛과 어둠의 전면전이 펼쳐졌다.
밤의 기운을 흡수한 카니스도 대단했지만 무한의 영역에서 끌어모은 정신력으로 포톤 캐논을 난사하는 시로네의 무위는 가히 인간 병기 수준이었다.
하늘을 보던 에텔라의 표정이 멍해졌다.
“저게 대체…….”
공인 6급의 마법사인 그녀도 시로네가 구사하는 마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친구들의 대화가 들렸다.
“역시 이모탈 펑션. 하지만 괜찮을까?”
“믿어 보는 수밖에. 발표회 때도 잘했잖아.”
“하지만 그때하고는 달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황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을 수도 있어.”
에텔라가 다가왔다.
“그게 무슨 소리니? 그럼 시로네가 전에도 이모탈 펑션에 들어간 적이 있단 말이야?”
“네? 아, 그게 사실…… 요즘에는 심심할 때마다 하는 것 같던데요.”
에텔라는 충격을 받은 듯 굳어 버렸다.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도 조심하는 척조차 하지 않다니.
하긴, 그 정도의 리스크를 짊어졌기에 지금의 시로네가 있는 것이었다.
에텔라는 다시 하늘을 살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엄청난 숫자의 섬광 다발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어둠의 방어막을 파괴하고 있었다.
카니스는 이를 악물었다.
‘제길! 대체 언제까지 퍼붓는 거야?’
어째서 저 녀석은 지치지 않는 것일까? 마치 정신력의 리미트가 끊어진 듯했다.
-하비! 이대로는 당하겠어!
분명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을 텐데도 하비스트는 정신 채널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야?’
고작 의견 충돌로 전투 중에 침묵을 지킬 만큼 어리석은 마도 생물체가 아니었다.
-하비스트! 대답해!
정신 채널에 신경을 곤두세운 순간 포톤 캐논이 옆구리를 스쳤다.
황급히 허리를 틀었으나 분명 늦은 반응이었다. 즉, 피한 게 아니라 빗나간 것이다.
“뭐지?”
고개를 돌렸을 때 10여 개의 섬광이 날아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조준점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니스는 시로네의 전략을 간파했다.
다크포트로 이동할 수 있는 어둠을 전부 소멸시키려는 것이다.
‘미친놈!’
붙잡아 놓고 패겠다는 전략.
일리는 있지만 너무 무식하지 않은가?
포톤 캐논처럼 정신력 소모가 심한 마법을 벌써 200발 이상 쏘아 대고 있다. 그런데도 지치기는커녕 연사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대체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
막연하게나마 크기를 상상한 카니스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수십 발의 포톤 캐논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번에는 빗나가는 게 아니었다.
‘피할 수 없어.’
분하고 원통했다.
죽는다는 사실보다, 스승님의 눈앞에서 패했다는 사실이 더욱 비참했다.
-짜증 나는군, 아케인.
그때 정신 채널이 열렸다.
-하비?
역전된 주종(2)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하비스트가 앞을 가로막으며 포톤 캐논을 받아 냈다.
그림자가 물결처럼 흔들리고, 그 충격이 고스란히 카니스에게 전달되었다.
“컥…….”
카니스의 눈이 당혹감에 흔들렸다.
단순히 충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포톤 캐논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하비스트가 그의 정신력을 끌어다 썼기 때문.
하지만 승인을 내린 적이 없기에 주종의 계약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 하비스트…….
-정신 차리고 집중해!
카니스의 정신력을 빨아들인 하비스트가 전면에 나서자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시로네가 근접전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제외해도 엄청난 전투력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심지어 카니스보다 훨씬 강한 듯했다.
시로네와 같은 생각을 한 에텔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케인을 노려보았다.
‘빌토르 아케인. 당신 정말 잔인한 사람이군요.’
복수심에 불타는 그에게는 제자 또한 소모품에 불과했을까?
마도 생물체를 붙인 이유는 카니스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비스트의 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연료통, 그것이 카니스의 존재 가치였다.
전투가 치열해질수록 카니스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정신이 탈탈 털려 생각조차 유지하기 힘들었고, 배신감과 박탈감만이 느껴지는 전부였다.
-하, 하비스트, 어째서…….
돌아오는 건 침묵뿐.
비로소 누가 주인이었는지 깨달은 카니스의 눈빛에서 생기가 꺼져 갔다.
지나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지상으로 피신한 시로네는 어깨를 붙잡았다. 잘려 나간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포톤 캐논을 피하다니. 이모탈 펑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비스트가 착지하자 카니스는 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토악질을 했다.
이미 초점이 엇나간 상태였으나 하비스트는 신경 쓰지 않고 돌진했다. 카니스의 정신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전에 끝낼 생각이었다.
‘제길! 너무 빨라!’
하비스트의 공격을 피하며 시로네는 생각했다.
어째서 유리했던 전세가 뒤바뀐 것일까?
‘주종의 역전.’
단순히 페어의 주도권이 바뀐 게 아니다. 개념 자체가 뒤집힌 느낌이었다.
‘그래, 똑같은 상대가 아니야.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적이다.’
카니스가 단지 연료통에 불과하다면 시로네의 적은 생명도, 죽음의 공포도 없는 전투 병기였다.
‘전투 병기?’
문득 핵심적인 통찰이 스쳤다.
주종의 역전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가?
적이 생물에서 무생물로 교체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그에 대응하는 마법 또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시로네는 포톤 캐논의 전지를 해제하고 그 자리에 광자 출력을 장착했다.
충격량이 중요하지 않다면 에너지 강도를 높여 소멸시키는 게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