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21
“일, 일단 기다려 봅시다.”
관리들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자 시로네가 다시 눈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자, 우리도 준비하자.”
세계 최강의 마법사라는 이름 아래, 관리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시로네를 바라보고 있는 대부분은 그것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이제는 그들도 알고 있었다.
온전히 남을 위해 화를 내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이고 희생이 필요한 일인지.
‘왜 그때는 몰랐을까?’
어쩌면 학창 시절을 가장 힘들게 보냈을 사람은 시로네였을지도 모른다.
“어? 이루키다.”
성전의 마차가 도착하고 이루키가 내렸다.
타국의 어느 관리도 거느리지 못한 강력한 기사들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도로시가 그들 사이를 거침없이 지나쳐 이루키의 팔짱을 끼자,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뭐야? 둘이 사귀는 거야?”
시로네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이루키, 너…….”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고급 마차가 빠르게 달려오더니 입구에서 멈췄다.
코트를 어깨에 걸친 네이드와 단정하게 정장을 입은 리즈가 나란히 내렸다.
“시로네!”
시로네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네이드!”
마법학교의 꼴통이라 불리던 삼총사의 재회에, 동창들도 아련한 추억에 잠겼다.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정시가 되자 단테가 묘지의 입구를 넘어섰다.
“단테다.”
시로네 일행과 마찬가지로 삼총사였던 클로저와 사비나가 눈을 빛냈다.
‘왕성 기록물 관리부에서 일한다고? 개소리하네.’
수도에 들를 때마다 단테를 찾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정보 마법의 실력으로 봤을 때 아마도 정보부, 그중에서도 극비를 다루는 요원일 터였다.
‘서운해할 수는 없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감정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말들이 오갔다.
그저 반가울 따름이었다.
“이제 다 모이셨나요? 그럼 장례식을…….”
초괴생물 연구소의 직원이 사회를 시작하려는 그때, 거대한 마차가 들어왔다.
“저건 뭐야?”
마차가 끌고 있는 짐칸에 실린 물건을 보자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황금으로 만든 거대한 화환이었다.
“여기가 피쇼의 장례식장 맞습니까?”
운송업체 직원이 결재 서류를 들고 묻자, 식장 관리자가 사인을 하며 물었다.
“맞긴 한데, 누가 보낸 거죠?”
“모릅니다. 익명을 요구하면 저희로서는 알 방법이 없어요. 어쨌거나 확실히 배달했습니다.”
사람이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기에 2명의 마법사가 에어 마법으로 화환을 옮겼다.
놀란 시선이 따라가는 가운데, 시로네는 화환에 걸린 검은 리본을 바라보았다.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추억하며.
“페르미구나.”
모두들 짐작하고 있었다.
“그 녀석 말고 누가 저런 짓을 하겠어? 뭐 하고 살까? 예전에는 얄미웠는데, 지금은 보고 싶네.”
“어디서 또 돈을 쓸어 담고 있겠지. 저거 순금이라면 20억 골드도 넘을 것 같은데.”
네이드는 페르미에 대해 들었으나, 아직은 시로네에게 말을 꺼낼 때가 아니었다.
“그럼 이제부터 피쇼의 장례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시로네의 동창들이 무덤에 가장 가깝게 자리한 가운데 시체 없는 관이 들어갔다.
시체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지만, 듣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뛰어난 마법사이자 생물학자였습니다. 그의 희생은 남겨진 우리들의 마음에 영원히…….”
동창들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관이 묻히자 몇몇이 눈물을 흘렸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여운은 이어졌으나 관리들도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자, 이제 공표하시지요.”
초괴생물 연구소의 소장이 무거운 철제 상자를 수레에 끌고 등장했다.
“이 영상 기록 장치에는 피쇼가 남긴 27분가량의 녹화 화면이 담겨 있습니다.”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현재 저희 쪽도 영상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물론 믿지 못하시겠지만…….”
관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증명할 방법 또한 이 영상에 있을 것이라고 피쇼는 말했습니다. 상아탑의 별께서 영상을 확인하면 우리의 결백을 입증해 주리라 믿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로네가 누구와 함께 영상을 확인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었다.
세리엘이 다가왔다.
“시로네, 인류에 중요한 일이야. 내가 알고 있는 정보도 있어. 나도 최대한 협조할게.”
이루키와 단테도 거들었다.
“우리도 같이 들어갈 수 있게 해 줘.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생각에 잠겨 있던 시로네가 말했다.
“일단 내가 먼저 확인할게. 나에게 권한을 넘긴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런 다음 결정하면 안 될까?”
그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그렇게 해도 되겠죠?”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권은 시로네 님에게 있습니다. 확인할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요? 마법 제어가 되어 있는 밀실이나…….”
“아뇨. 그냥 가까운 곳에서 할게요. 어차피 제가 보고 난 뒤에 다시 결정해야 하니까요.”
시로네의 제9감을 뚫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자는 이곳에 없었다.
“저기가 좋겠네요.”
묘지에서 200미터 떨어진, 관리인들이 밤에 숙식을 하는 건물이었다.
철로 만든 상자를 마법으로 띄우자 소장이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시죠. 건물 안에서 개봉하겠습니다.”
시로네가 소장과 함께 건물로 들어가자 남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초조하게 기다렸다.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젠장! 뭐 하는 거야? 27분짜리 영상이라며? 벌써 50분도 넘게 지났는데.”
누군가가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나온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시로네가 사람들 앞에 도착하자,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세리엘이 물었다.
“어때, 시로네? 피쇼의 유언은 확인했어?”
“응. 전부 봤어.”
소장이 마지막 절차를 진행했다.
“고인 피쇼는 시로네가 동의하는 자에게만 영상을 공개한다고 했습니다. 자, 이제 권한 이임에 대한 결정을 내려 주시죠.”
시로네는 신중하게 생각에 잠겼다.
“저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린 시로네가 고개를 들더니 좌중에게 선언했다.
“누구에게도 영상을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피쇼가 옳았다.
생물 프로그램 (3)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타국의 관리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공개할 수 없다니! 이게 어떤 사안인지 알기나 하는 겁니까? 상아탑이 정보를 독점할 생각이라면……!”
“어떤 사안인지 알아요.”
시로네가 말을 끊었다.
“그래서 더더욱 공개할 수 없습니다.”
시로네가 확인한 피쇼의 영상은 기밀도 아니고 신비로운 것도 아니었다.
얘기할 수 없는 이유는…….
‘진실이기 때문에.’
피쇼가 자신의 육체를 희생해서 전해 준 진실.
누군가는 깨달음을 통해 진실에 근접하지만, 때로는 그 진실이 가혹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번복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영상 기록 장치는 파괴되었어요. 상아탑에서 재검토한 뒤 공표하겠습니다.”
단테가 손을 들었다.
“잠깐, 상아탑에서 재검토한다고? 그 말은, 국가 쪽은 무시하겠다는 거야?”
“무시하는 게 아니야. 단지 말을 하는 거라면,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있어. 하지만 그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왕국 단위에서 감당할 수준이 아니야.”
세리엘은 대충 짐작했지만, 역시나 직접 듣지 않고서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적어도 어떤 내용인지는 말해 줄 수 있지 않아? 우리도 나름 정보를 가지고 있어.”
“미안해. 생각할 시간을 줘.”
세리엘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반면 이루키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물어봐야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내세우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상아탑에 보고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말할 수 있어.’
그 정도의 신뢰는 있다고 보았다.
“인정할 수 없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관리가 소리쳤다.
“고작 그런 소리를 들으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닙니다! 전 세계의 비난을 받을 겁니다!”
“찾아오라고 한 적 없습니다.”
시로네가 매섭게 관리를 노려보았다.
“또한 각자의 왕국에서 어떤 대응을 하든 상관없지만,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네요.”
“후우우!”
상아탑의 판단은 언제나 옳다.
실제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만이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자! 시간 낭비했군!”
마엘 왕국의 관리가 가장 먼저 몸을 틀고, 다른 관리들이 뒤를 따랐다.
그러는 와중에도 말은 끊이지 않았다.
“정말로 이대로 물러설 겁니까? 우리도 성전에 지분이 있어요. 국가 단위로 소송을 걸어야 합니다.”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첩보전을 펼치는 수밖에요. 어차피 완벽한 비밀은 세상에 없으니.”
관리들이 자리를 떠나자 시로네가 말했다.
“다 끝났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교사들과 학생들은 미리 예약해 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반가운 자리라 시끌벅적했으나, 몇몇 사람들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은 가운데, 이루키가 시로네에게 다가왔다.
“잠깐만 보자.”
시로네가 이루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며 세리엘은 고민에 빠졌다.
‘나도 따라가야 해.’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반드시 정보가 필요한 사람. 그리고 그 정보를 넘길 수 있는 신뢰도.’
에이미가 남아 있는 이유는 전자일 테지만, 세리엘은 아무래도 후자를 충족하지 못했다.
‘내가 오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단테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네이드가 걸음을 옮겼다.
“나도 가 봐야겠어.”
리즈가 말렸다.
“그냥 있어. 저 뒤를 따라가려면 두 가지 자격을 충족시켜야 돼.”
“뭔지는 나도 알아.”
마법사라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왜 가려고? 넌 굳이 알 필요 없잖아.”
네이드가 리즈를 돌아보며 말했다.
“궁금하니까.”
“…….”
“걱정하지 마. 중요한 건 신뢰도야. 듣기만 하고 입 다물고 있으면 되잖아.”
“나에게도?”
네이드가 눈을 깜박거렸다.
“나에게도 말 안 할 거야? 정말 그럴 자신 있어?”
“어, 그게…… 안 물어볼 거잖아. 그렇지?”
리즈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라.”
네이드가 입맛을 다시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시로네와 이루키는 묘지 인근의 숲으로 들어가 바위에 걸터앉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이루키의 질문을 완벽하게 이해했지만, 시로네는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피쇼의 영상, 뭐가 녹화되어 있었지? 설마 나한테도 말 해 줄 수 없다는 거야?”
“그래. 미안해,”
이루키의 반응을 잠시 지켜보던 시로네가 표정을 바꾸며 웃었다.
“장난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