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23
각자 생각에 잠긴 가운데, 시로네가 물었다.
“앞으로 어떡할 거야?”
“달라질 것은 없어. 하비츠의 군대가 코앞까지 와 있으니 막아 내야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루키는 오히려 시로네를 위로했다.
“아르고네스의 문제는 너에게 맡길게. 왕국은 신경 쓰지 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
“……너 자신을 구원하라.”
두 사람은 나란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이 떠나간 피쇼의 무덤 앞에, 케이든은 국화꽃 한 송이를 내려놓았다.
“만족한 삶이었냐?”
동창들과 얽히고 싶지 않아 일부러 늦게 도착한 그였지만,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
“늦었네.”
고개를 돌리자 에덴이 태양을 등지고 서 있었다.
“너도 왔냐?”
“와야지. 친구니까.”
케이든과 에덴, 피쇼는 한때 스크럼블 로열에서 팀을 이루어 싸운 적이 있다.
케이든이 천천히 일어섰다.
“시온에 있다고 들었는데.”
“심령권이 닫히고 수도사들이 세계 각지로 파견됐어. 중부 대륙 전쟁을 지원하기 전에 잠깐 들른 거야.”
“그래. 건투를 빈다.”
케이든이 몸을 돌려 걸어가자 에덴이 물었다.
“너는 어떡할 생각이야?”
“……뭘?”
“안 싸울 거야? 적십자성의 운명을 타고났잖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야.”
인류에게는 케이든이 필요했다.
“운명 따위 믿지 않아.”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구도자가 아니야. 너처럼 성직자도 아니지. 내가 왜 싸워야 하지? 누구를 위해?”
에덴은 수많은 이유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 이유 중에 유일하게 댈 수 없는 것은, ‘너 자신을 위해’라는 말이었다.
만약 케이든이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된다면, 그것은 곧 그의 불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강요할 수 없는 일이지. 아무튼 잘 살아. 생각이 바뀌면 나에게 연락해.”
잠시 움직이지 않던 케이든이 끝내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묘비의 입구에서 알페아스 마법학교 동창들이 삼삼오오 걸어왔다.
익숙한 얼굴.
시로네와 이루키, 에이미가 보였고, 그들의 뒤로 스크리머와 마야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사고가 정지한 가운데, 유일하게 심장만이 빠르게 뛰었다.
스크리머가 마야에게 사정했다.
“야, 그러지 말고 내 경기에 한번 와 주라. 공연까지 해 주면 더 좋고.”
“공연?”
잠시 고민하던 마야가 흥 하고 고개를 틀었다.
“싫어.”
“너…… 아직도 나 싫어하냐?”
“싫은 건 아니지만, 딱히 좋지도 않지. 솔직히 나를 싫어했던 건 너잖아?”
“미안하다니까. 나도 후회하고 있어. 그리고 그때도 네가 이겼잖아? 생각해 보니까 억울하네.”
에이미가 전방을 가리켰다.
“어? 저거 케이든 아니야? 에덴도 있네.”
케이든이 여전히 굳어 있는 가운데, 에덴이 달려와 손을 흔들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에덴이 시로네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스크리머가 케이든에게 다가갔다.
“야? 너 뭐 하냐?”
케이든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했다.
“어디를 보는 거야?”
케이든의 등 뒤로 걸어간 스크리머가 시선을 일치시켰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야.’
케이든은 전율하고 있었다.
그녀를 본 순간 깨달은 사실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가혹한 운명의 거대함이었다.
‘케이든이다.’
잠시 마음이 설렌 마야였으나,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는 괜찮아.’
시로네를 사랑하는 대가를 짊어지기로 했기에, 졸업 시험의 일을 물어볼 필요는 없을 터였다.
“야, 뭐라고 말 좀 해 봐! 왜 그래?”
케이든이 굳어 있는 이유를 아는 에이미가 한숨을 내쉬며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넘어질 듯 한 발을 내디딘 케이든이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마야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인사해야지.”
에이미가 답답한 마음에 코치를 하자, 케이든이 어색한 걸음걸이로 다가갔다.
“안, 안녕…….”
“그래, 정말 오랜만이다. 졸업 시험 때 보고 처음이지? 잘 지냈어?”
대답이 없자 마야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래, 케이든? 어디 안 좋아?”
케이든이 마야의 어깨를 짚자 모두가 대화를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 마야 씨.”
에이미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거 아니야, 이 멍청아.’
지금 케이든의 머릿속에는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을 터였다.
‘내 운명을 파괴한다.’
케이든은 말없이 얼굴을 기울여 자신의 입술을 마야의 입술에 가까이 가져갔다.
“……어?”
동창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때, 마야가 질색을 하며 케이든을 떠밀었다.
“뭐 하는 거야! 변태같이!”
에이미가 이마를 짚고, 엉거주춤 물러선 케이든은 친구들의 시선을 살폈다.
“죄송합니다.”
그 모든 눈총을 무시하고 마야에게 고개를 숙인 케이든이 걸음을 옮겼다.
“쟤 왜 저래? 예전에도 이상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맛이 가 버린 거 같은데?”
에이미가 말했다.
“그냥 모르는 거야. 지금까지 한 번도, 원하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케이든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그 결과는 언제나 최악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그 반대일 경우…….’
그 간절한 기도를 스스로 포기할 경우, 적어도 에이미의 상상은 초월할 터였다.
‘아깝긴 하단 말이지.’
군인다운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알페아스와 올리비아가 걸어왔다.
“아직 가지 않고 있었구나.”
“교장 선생님.”
에덴과 이야기를 끝낸 시로네가 알페아스에게 다가갔다.
“전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에텔라 선생님은 어떻게 된 거예요?”
“…….”
“왜 아무도 얘기를 안 해 주죠? 설마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로미 에텔라는…….”
알페아스가 슬픈 눈으로 말했다.
“마음을 잃어버렸다.”
기억 (1)
알페아스가 말을 이었다.
“1년 전에 마법학교 학생 중 1명이 괴한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살해요?”
“그때에야 알게 되었지, 에텔라와 샤갈의 악연을. 너도 샤갈이 누군지는 알고 있겠지?”
세계 100대 위험인물 중의 하나.
리안과도 일전을 벌인 적이 있는, 대정화기의 후각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기억의 왜곡이 있다고 들었어요.”
라 에너미는 샤갈에게 거짓된 기억을 주입했다.
그가 경험했다고 믿었던 모든 게 허상이었고, 결과적으로 그는 에텔라의 스승인 라파엘을 죽였다.
“라파엘은 그를 용서했다. 그 뜻을 받들어 에텔라도 샤갈을 선으로 이끌려고 했지만…….”
알페아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샤갈의 정신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나락에 빠져 있었지. 그녀의 주위에 있는 모두를 해쳤어. 학생은 물론 교사들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1명의 학생이 희생당한 것이지.”
“샤갈을 체포했나요?”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놈은 강하다. 그래서 에텔라가 학교를 떠난 것이다. 에텔라가 있는 곳에는, 샤갈이 온다.”
에텔라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죠?”
알페아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지. 샤갈의 후각은 초능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더구나. 그녀가 어디에 있든 추적할 수 있다면, 있을 만한 장소는 두 가지겠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샤갈과 맞서거나…….”
제압할 수 있는 상대라면 이미 에텔라가, 그가 날뛰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무리 속에 섞여 때를 기다리거나.”
체취를 감출 수 있는 곳.
페시아 왕국.
토르미아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남부 대륙에 속해 있다.
개발도상국으로, 부정부패가 심하고 경제 양극화에 의한 슬럼 현상이 심각한 곳이기도 했다.
슬럼가 섹터17.
토르미아 왕국의 라둠이 가난에 숨어 모사를 꾸미는 장소라면, 섹터17은 말 그대로 거지 소굴이었다.
비조차 막지 못하는 판잣집이 즐비한 이곳에서는 대략 450명의 거지들이 사육당하고 있었다.
왕국에서 급식을 제공하지만 음식의 질은 쓰레기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
그럼에도 그들을 거두어 먹이는 이유는, 그들이 정치가의 좋은 모르모트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비밀 생체 실험, 암살 공작, 미제 사건, 수많은 범죄들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 섹터17이었다.
“배고파…….”
사람으로 득시글거리는 7평 방 안에서는 그들이 싸 놓은 오물들로 악취가 풍겼다.
어디라도 화장실 같았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곳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로미 에텔라.
급식은 하루에 한 번이지만 그녀에게 순번이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흰색이었을 검은 넝마를 뒤집어쓰고 몸에 오물을 묻힐 때마다, 거지들이 흘끔거렸다.
“또 저러는군. 대체 저 여자 뭐야?”
언제부턴가 섹터17에 들어와 시간이 날 때마다 저러는 모습이 기괴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녀 같은 정신병자들도 상당수였기에 거지들도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떠나야 해.’
섹터17에 들어온 지도 벌써 30일이 지났다.
온갖 악취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지만 샤갈의 후각은 사건마저 기억할 정도였다.
‘내 모든 냄새를 알고 있어.’
내장의 냄새까지 지우기 위해, 그녀는 바닥의 오물을 손으로 퍼서 입에 넣었다.
그것은 수도사의 정신에서도 역한 일이었지만, 에텔라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릴 뿐이었다.
‘용서할 수 없어.’
마법학교의 제자가 샤갈에게 살해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라파엘의 의지를 받들려고 했다.
하지만 선의 의지를 행하는 대가로 얻은 것은 수많은 지인들의 죽음이었다.
카르시스 수도회의 수도사, 신도, 마법학교 학생까지.
‘악의 방법론.’
과연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네가 나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죽일 거야.’
샤갈의 악이 에텔라의 선을 갉아먹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저는 마음을 잃어버렸어요.’
샤갈에 대한 복수가 끝났을 때에는 에텔라도 이미 선이라 부를 수 없겠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샤갈. 당신 혼자 외롭게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는 그것도 상관없었다.
‘당신을 죽이고, 같이 가는 겁니다.’
에텔라의 눈에 광채가 번뜩였다.
‘영원한 지옥으로…….’
***
마크가 제안했다.
“선배님들, 이렇게 모인 것도 기념비적인 일인데 함께 저녁이라도 먹는 게 어떨까요?”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고, 동창들 모두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었다.
시로네와 에이미도 마찬가지였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고 술이 들어가자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고 갔다.
역시나 화두는 마족과의 전쟁이었고, 발키리의 총군사 이루키가 전황을 설명했다.
“안 좋아. 우리는 질 거야.”
절망적인 전망에도 두렵지 않은 이유는, 그들 또한 전쟁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었다.
“관건은 토르미아 왕국이야. 여기가 중부 대륙의 마지막 관문이니까. 만약 마족이 이곳을 뚫는다면, 세계 어느 나라도 막아 낼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