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26
만약 페르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야훼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2명이 된다.
“나에게 맡기는 게 어때? 상당히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너를 대신해 내가 세상을 구해 주지.”
모든 짐을 페르미에게 넘길 수 있다.
여태까지 홀로 감당해야 했던 수많은 고통들이 시로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페르미는…….’
인정하기 싫지만 강한 사람이다.
규정외식의 완성도는 물론 판단력, 사고력, 지식, 심리전 등 모든 수치에서 만점에 가까웠다.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
페르미가 나네를 꺾을 수 있다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거절한다.”
시로네의 말에 페르미가 미소를 지었다.
“하긴, 상아탑의 오대성 같은 자리를 넘겨주는 건 아까운 일이지.”
“그런 문제가 아니야. 설령 네가 나보다 강하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트리며 모은 돈이야. 너에게 야훼의 능력은 팔 수 없어.”
언제나 그렇듯 페르미는 흥분하지 않았다.
태연한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시로네는 올가미에 잡힌 기분이 들었으나, 정신을 차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건 어때?”
페르미가 시로네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
나직하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시로네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
백사장에 홀로 서 있는 가올드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의식을 차린 이후 미로를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싸늘한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미로가 복잡한 심정을 짜증으로 풀어냈다.
“왜? 한판 더 붙어 보지.”
강난이 말했다.
“가올드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흥분한 상태에서 당신을 봤을 때는 이성을 잃었지만…….”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게 한 끗 차이라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터이기에.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는 미로가 있다.’
그 사실이 강난은 못내 슬펐다.
“미로야.”
가올드의 목소리를 들은 미로가 시종 투덜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불렀어?”
가올드는 미로를 눈에 담았다.
가슴속에서부터 뜨거운 열망이 치솟았으나, 이내 그 감정은 분노로 돌변했다.
‘아프다.’
가올드에게 미로는 고통 그 자체였다.
미로가 말했다.
“눈빛 한번 살벌하네. 그렇게 내가 미워? 그럼 차라리 뺨이라도 한 대 치는 게 어때?”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겠지.”
그녀에게 원망을 사는 것이, 영원히 머릿속에서 잊는 것보다 나았다.
미로가 바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온에서 했던 말 기억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면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말했잖아.”
“그랬지.”
“이제 그만 돌아오면 안 돼?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곁에 있을 테니까…….”
“약해 빠져 가지고.”
미로가 인상을 썼다.
“그래, 멍청아!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왜 내 인생에 끼어들어서 난리야! 솔직히 나는 너 안 좋아한다고!”
가올드는 차갑게 돌아섰다.
“떠나라. 이게 마지막 기회야. 다음에 내 눈에 보이면, 그때는 용서하지 않을 거야.”
강난에게 돌아가는 가올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너…….”
정말로 자신이 아는 가올드가 맞는 건가?
강난이 물었다.
“괜찮아요?”
사랑하는 여자를 증오하면서까지 싸우려는 가올드의 마음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만 떠나자. 중부 대륙으로 간다. 거기에서 모든 결판이 나겠지.”
세 사람이 걸음을 옮기고, 백사장에 홀로 남은 미로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래, 좋아! 이제 이걸로 끝이야.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알았어?”
가올드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돌아갈 거야.”
여기에서 더 마음을 품게 되면 극선의 의지마저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돌아갈 거라고!”
극선의 정신에 새겨진 유일한 균열이 미로의 가슴을 욱신거리게 했다.
‘나를 구하러 와 줬잖아.’
마법학교에서 만난 이후로 평생을 미로를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짜 미치겠네!”
결정을 내린 미로가 씩씩대며 걸음을 옮기더니 순식간에 가올드를 따라잡았다.
“같이 가! 나도 갈 거야!”
***
피쇼의 장례식이 끝나고 7일이 지날 무렵, 마족들은 마침내 카즈라의 수도를 장악했다.
왕족들은 대부분 척살되었고 국민들은 사상 교육을 통해 지옥의 군대에 편입되었다.
“심령권이 닫혔으니, 인간들을 이용해야겠지.”
여전히 마족들의 숫자는 2억이 넘지만 이제는 그들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앞으로 한 달. 그 안에 토르미아를 점령하면 전쟁은 끝난다. 그 후에는 쓸모없어.”
발칸의 계획은 전쟁에 승리한 이후 행성에 있는 모든 인간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왜 그래야 하지?”
하비츠의 뜻이었기에, 스모도가 질문을 던진 사람도 발칸이 아닌 하비츠였다.
“모든 인간을 제거하는 거?”
“그래. 다 죽이고 우리도 죽는 거지. 거기까지는 좋은데, 이유가 뭐야?”
“궁금하니까.”
하비츠가 콧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게 전부야. 최초의 살인자는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거야. 죽이면 어떻게 되지? 그래서 죽여 보는 거지. 별로 좋지 않았다면 다시는 안 했겠지만, 해 보니까 좋거든. 그 사람의 것을 뺏을 수도 있고, 자꾸 옆에서 짜증 나게 굴지도 않고. 그래서 많이들 하는 거야.”
“악 이전에 혼돈이 있었다는 거로군. 그러니까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 말이야.”
하비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쟁도 마찬가지야. 전부 죽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잖아? 우리가 해 보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하비츠가 웃음살을 볼록였다.
“그것도 재밌고. 인간이 무의미하다는 걸 증명하는 거니까. 하지만 특별한 존재라면…….”
하비츠의 시선이 밤하늘로 향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겠어? 신이 내려와서 당신은 승리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해 주려나?”
스모도가 말했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내 취향이거든. 짜릿하잖아.”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하고…….”
하비츠가 화신술을 펼치자 발칸과 스모도의 뇌가 그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 밤 적진을 급습할 거야. 나타샤에게 말해 줘. 그리고 제타로는…….”
하비츠가 말했다.
“산책 좀 갔다 올게.”
어느새 열 걸음 밖에 있는 하비츠의 모습에 발칸과 스모도가 고개를 돌렸다.
‘배니싱.’
정말로 섬뜩한 것은, 하비츠를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도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하비츠는 자유롭다.’
어떤 것도 할 수 있기에 극악이다.
“으음.”
눈꺼풀이 깔끔하게 잘려 나가 있는 나타샤의 눈동자에 적진의 풍광이 담겼다.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고 입가에는 흥미로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으며, 두 무릎을 오므린 자세로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굉장하다.’
전투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는 그녀이기에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다.
“뭐 해? 묘한 자세로.”
제타로가 하품을 하며 다가왔다.
“저기.”
나타샤가 적진을 가리켰다.
“엄청난 것이 있어. 누군지는 몰라도 숨을 쉴 때마다 세계가 빨려드는 것 같아. 빨리 가 보고 싶다.”
“그렇게 강한 놈이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닌 나타샤의 평가였기에 제타로도 어둠을 뚫고 적진을 살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조금만 기다려. 발칸이 오늘 밤에 친다고 했으니까. 난 좀 더 잔다. 아, 맞다.”
몸을 돌린 제타로가 문득 깨닫고 물었다.
“이길 수 있지?”
“…….”
나타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족의 군대로부터 1킬로미터 떨어진 발키리 막사에 테스가 경계를 서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데…….”
겉으로는 평소와 다를 게 없지만 오늘따라 묘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날은 꼭 뭔가 터지던데.’
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아직도 그러고 있어?”
갓 구운 빵을 들고 다가온 그가 크게 반으로 쪼개어 테스에게 건넸다.
“먹어. 야식은 있어야지.”
“고마워.”
테스가 입꼬리를 올렸으나, 어색했다.
“오늘따라 왜 그래? 아까부터 안절부절. 방어 태세는 확실히 갖추고 있잖아.”
“모르겠어. 기분이 안 좋아. 왠지 저기서 누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리안이 적진을 살폈다.
“흐음.”
율법은 알고 있다.
리안과 나타샤의 시선이 1킬로미터 거리를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충돌했다는 사실을.
기억 (4)
***
“비상! 비상이다!”
자정이 넘은 시각, 마족의 별동대가 발키리의 진영 우측을 급습했다.
“빨리! 빨리 움직여!”
중부 대륙 전체를 커버해야 했던 예전과 달리 발키리의 수비 반경은 상당히 좁아진 상태.
덕분에 전보다 많은 병력이 집중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황은 불리했다.
“쳇!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테스가 말에 올라 부하들을 이끌었다.
“테스.”
리안이 옆으로 따라붙었다.
“죽지 마라.”
오직 테스를 위해 싸울 수는 없는 상황에서, 리안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가. 쓸어버려.”
테스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리안이 방향을 틀어 기마대를 이탈했다.
“후우우우!”
근육이 뒤틀리면서 야차의 육체로 변하고, 땅을 박찰 때마다 돌 파편이 솟구쳤다.
“엄청나군요.”
연달아 솟아오르는 먼지기둥을 멍하니 지켜보던 기마대의 병사가 말했다.
“보폭이 20미터도 넘겠는데요?”
단지 보폭만 넓은 것이 아니라 말처럼 빠르게 다리를 굴리고 있었다.
“본래 거인의 능력이었다고 하니까.”
테스는 지평선을 가득 채우는 마족의 군대를 바라보며 세검을 꺼냈다.
“리안이 먼저 치고, 우리가 들어간다. 준비해.”
“네!”
기마대가 속도를 높일 무렵, 리안은 어느새 적군의 코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느낌이 다르다.’
별동대에 불과하지만 전에 싸웠던 군대하고는 기세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정예들이야.’
발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상관없지.’
생각은 군사가 하는 것이고, 발키리에도 뛰어난 두뇌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크으으으!”
리안의 콧잔등이 일그러지고, 대직도를 붙잡은 양손에 무시무시한 힘이 들어갔다.
평범한 검이라면 쇠가 으스러질 정도의 악력.
하지만 는 그 모든 힘을 받아 내며 주인의 손에 폭발적인 감각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