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27
“이야아아아!”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떨어진 대직도의 충격파에 마족들이 모직물처럼 찢어졌다.
부채꼴로 열린 풍경 속에 달이 떠 있었다.
“흐으읍!”
일격을 가한 자세에서 한 걸음을 내디딘 리안이 검을 끌어당기며 수평으로 휘둘렀다.
또다시 세상이 쪼개지고, 섬광이 지나가는 자리에 있던 마족들의 몸이 분리되었다.
그 시점에 테스의 기마대가 도착했다.
“들어가! 안에서 궤멸시켜!”
리안의 선공에 용기를 얻은 기마대가 무서운 기운을 뿜어내며 창을 내밀었다.
“죽어라! 더러운 마족들아!”
콰아아아아앙!
수십 마리의 말이 허공으로 날아오른 순간 기마대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이런……!”
단지 리안이 너무 강했던 것일 뿐, 여태까지 싸운 마족과는 강함의 수준이 달랐다.
‘이대로는 고립된다.’
이미 대부분의 마족들이 발키리의 부대를 수십 미터 이상 밀고 들어간 상황이었다.
“테스!”
마족들을 하나씩 베어 나가며 길을 열자 적에게 포위당한 기마대가 보였다.
“일단 후퇴하자! 이대로는……!”
살기를 느낀 리안은 걸음을 멈추고 테스가 노려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엇을 꿈꾸는가, 하찮은 미물이여?”
사마귀처럼 상체를 세우고 곤충의 다리를 가진 회색의 마족이 서 있었다.
왼쪽에는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3개의 팔이, 오른쪽에는 비정상적으로 두꺼운 하나의 팔이 달려 있었다.
“간부다. 다들 조심해.”
테스의 지시에 기마대가 전열을 정비했다.
“나는 윤괴.”
지옥의 군대에서도 최강으로 평가받는 제1군단 소속의 여단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대석상.”
쿵쿵 땅이 울렸으나 목소리의 정체는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바위처럼 크고 길쭉한 얼굴이 신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마족이 등장했다.
뒤룩뒤룩 큰 눈으로 인간을 살피던 그가 입꼬리를 한계까지 찢으며 웃었다.
“맛있게 먹어 주마.”
동시에 윤괴가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여 기마대의 진영으로 침투했다.
“너부터.”
거대한 손이 테스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어디지?”
나타샤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움직였다.
“으아아아!”
그녀가 지나가는 자리에 서 있던 수십 명의 병사들이 목이 부러진 채 쓰러졌다.
“어디냐고?”
발키리의 중대장이 지시를 내렸다.
“잡아! 포위해서 공격하란 말이야!”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도 아군을 쓰러뜨리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불가능합니다! 위치를 파악할 수…… 커억!”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병사의 가슴에 무언가가 뚫고 지나간 듯한 구멍이 생겼다.
“제, 제길……!”
뭐가 보여야 싸울 게 아닌가?
“중, 중대장님! 으악!”
마치 여러 명의 적이 있는 것처럼, 전혀 다른 곳에서 병사들이 푹푹 고꾸라지고 있었다.
“후퇴! 후퇴하라!”
중대장의 귓가에 바람 소리가 들렸다.
“크윽!”
풍경이 뒤집어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몸이 거꾸로 떠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우선 확실한 점은, 적이 자신을 죽이지 않았기에 이런 생각이 가능하다는 것.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팔을 옆으로 쭉 뻗은 나타샤의 손에는 거꾸로 뒤집어진 중대장의 뒷목이 붙잡혀 있었다.
손에 힘을 풀자 머리부터 떨어진 그가 황급히 몸을 뒤집어 고개를 들었다.
“크윽!”
눈꺼풀이 없는 여자가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타샤구나.’
전장의 상황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녀가 시선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여기서 제일 강한 사람, 지금 어디 있어?”
중대장은 깨달았다.
‘요인 암살이군.’
마하의 기사는 현재 부대의 최고 전력, 실력의 고하를 떠나서 위치는 기밀이었다.
“몰라.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타샤가 몸을 돌렸다.
“말하면 살려 줄게.”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한 법이었다.
“약속하는 거냐?”
“응. 워낙에 넓어서 찾기가 어려워.”
“좋아. 이 부대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어디 있는지 말해 주지. 바로 여기.”
중대장이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최강의 군인이다! 그러니까 나랑 싸우자! 이 머저리 같은 여자야! 푸하하하하!”
“……살고 싶지 않아?”
“개소리 집어치워! 너에게 죽은 부하들이 지옥에서 지켜보고 있다! 덤벼! 날 죽여 보라고!”
나타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친한 사람들이었어?”
“죽어어어어!”
중대장이 검을 치켜들고 돌진하는 그때, 나타샤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미안해.”
검이 공기를 가르는 순간 나타샤의 육체가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었다.
“뭐?”
생각의 속도보다 빠른 듯했고, 뒤늦게 중대장의 사고 회로가 작동했다.
‘전투 인형 나타샤.’
피도 눈물도 없는 최강의 전투 병기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우리는 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어쩌면 그것이 핵심이었다.
윤괴의 손에 붙잡히기 직전 몸을 뒤튼 테스가 한 걸음을 내디디며 세검을 찔렀다.
‘심장!’
공격은 정확히 들어갔으나 윤괴의 얼굴은 사악하게 웃고 있는 그대로였다.
“크크, 사실 내 심장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괴의 몸이 흔들리더니 허리까지 둘로 분리되었다.
벌어진 육체 사이로 리안이 서 있었다.
“심장이 어쨌다는 거야?”
“크아아악!”
비명 소리에 몸을 틀자, 대석상이 말과 함께 병사를 들어 씹어 삼키고 있었다.
오도독, 오도독.
앞 이빨로 조금씩 끊어서 삼키던 그가 하체만 남은 병사의 다리를 물고 씩 웃었다.
“맛있다.”
여전히 신경이 살아 있는 병사의 하체가 마음대로 휘적거리는 것이 보였다.
분노를 느낀 리안과 테스가 함께 뛰어나가려는 그때, 대석상의 몸체가 불룩 부풀었다.
“응?”
퍼어어어엉!
“크악!”
대석상의 몸통이 뚫리면서 그 사이로 강풍이 몰아치더니 잔상이 아른거렸다.
“아차.”
급하게 속도를 줄인 나타샤가 주먹을 내민 자세 그대로 혀를 내밀었다.
“어두워서 안 보였어.”
“…….”
여단장을 일격에 없앤 것은 그녀가 조금 전에 보인 속도에 비하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리안, 저 여자…….”
테스가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그때, 리안과 눈을 마주친 나타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안녕?”
그녀의 몸에서 검은 로브를 쓴 해골의 화신이 피어오르더니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극단적인 속도 앞에서 리안은 생각을 포기하고 대직도로 앞을 가로막았다.
찰나의 순간에 일곱 바퀴 반을 회전한 나타샤가 검의 넓적한 면을 발로 강타했다.
인지가 뇌에 도달하기도 전에 리안의 팔이 굽혀지면서 가슴을 강타하고…….
“커억!”
숨이 멈추는 충격을 느낀 순간에는 이미 수십 미터를 튕겨 나간 상태였다.
“어?”
아무것도 모른 채 전방을 바라보고 있던 테스가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리안 대신에 나타샤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테스가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으나, 나타샤는 관심이 없었다.
“막았어.”
알고 막았든 본능으로 막았든, 자신의 속도에 반응한 것은 사실이었다.
“호오, 그렇군.”
나타샤의 어깨 너머로 하비츠의 얼굴이 불쑥 넘어왔다.
“재밌겠는데, 나타샤?”
하비츠의 목소리는 실제로 울리고 있었고, 그의 육체도 이 공간에 실재한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었다.
“한 번만 더 확인해 볼까?”
하비츠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나타샤가 땅을 박차며 리안에게 돌진했다.
“리안…….”
눈앞에서 나타샤가 사라지자 테스가 입술을 짓깨물고 뒤를 쫓을 채비를 했다.
“가면 안 되지. 저 인간은 나타샤랑 놀아야 하는데.”
하비츠가 테스의 앞을 가로막으며 명치를 눌렀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지만, 테스는 조금의 위화감도 느끼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쁘게 생겼군. 애인인가?”
하비츠의 얼굴이 테스의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그녀의 뇌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상사님! 후퇴해야 합니다!”
기마대의 병사들은 테스가 무언가에 막힌 듯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밀렸어요! 지금 떠나야 합니다.”
부관이 어깨를 붙잡자, 리안을 쫓기를 포기한 테스가 혀를 차며 돌아섰다.
“좋아! 날 따라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하비츠가 검을 뽑아 들더니 부관에게 접근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부관의 머리를 붙잡고 끌어당기자 허리가 숙여졌고 검이 목뒤에 닿았다.
“슥삭슥삭.”
천천히 위아래로 긁어 내며 목을 베는 동안에도 부관은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최소 300미터 이상 뚫고 나가야 합니다. 우선 아군을 집결시킨 다음…….”
“슥삭슥삭.”
마침내 칼날이 빠져나오고 부관의 목이 떨어졌다.
“스테아! 스테아!”
부하의 죽음에 테스의 눈에 살의가 깃들었으나, 분노를 표출할 대상은 없었다.
“이 나쁜 자식들!”
원인과 결과는 뇌의 착각일 뿐이다.
실제로 꿈속에서 인간의 뇌는 어떤 인과율의 모순도 정상적으로 해결하지 않던가.
“즐거운 꿈을 꾸는구나.”
하비츠는 테스 주위를 한가로이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대로 병사들을 죽였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데도 그들의 뇌는 지금의 상황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흐음.”
슬슬 살육이 지겨워진 하비츠가 검을 시체에 닦으며 리안 쪽을 돌아보았다.
“빨리 끝내야 할 텐데?”
테스가 그의 등에 부딪혔다.
배수진 (1)
“사신의 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