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3
“간다.”
이모탈 펑션의 위력으로 쏜 섬광이 하비스트의 방패 같은 손등에 직격했다.
순식간에 그림자가 타 버리고 그의 육체가 점차 뒤로 밀려났다.
“크으으으!”
하지만 하비스트 또한 태양을 견디는 마도 생물체. 일정 거리 이상부터는 빛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역시 쉽지 않아.’
더 강한 힘이 필요하지만 시로네의 전능은 이미 개인적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그렇다면…….’
전지를 강화하는 수밖에.
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광속의 제곱.
여태까지 신의 입자로 질량을 높였다면, 이번에는 그 역치를 통해 모든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저, 저게 뭐야?”
전투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광자 출력의 섬광이 점차 가늘어지더니 붉게 변하고 있었다.
빛의 스펙트럼이 달라지는 결과에 이루키는 아버지에게 들었던 마법을 기억해 냈다.
“레이저.”
네이드가 되물었다.
“저게…… 레이저라고?”
“그래. 까놓고 말해 빛 에너지를 고도로 증폭시킨 것뿐이지. 하지만 그렇기에 재능이나 노력을 떠나 완력의 영역이야. 아버지에게 듣기로 광자 전공, 그것도 최소 4급 이상의 마법사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하던데.”
“그렇다는 말은…… 시로네의 스피릿 존이 4급 마법사에 준한다는 건가?”
“아니. 이모탈 펑션으로 수를 초월한다고 해도 인간의 의식에는 한계가 있어. 더 나아가면 자신의 존재마저 잊어버리지. 레이저가 가능한 스피릿 존을 만들려면 앞으로 몇 년은 더 정신적 리바운드를 해야 할 거야. 그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그럼 어떻게 된 거야?”
“다만 수학적으로 우회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보통의 마법사가 에너지를 증폭시켜 레이저를 만든다면 시로네는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한 거야. 신의 입자를 가진 사람만이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식이 생긴 거지. 이 전지라면 스피릿 존이 강하지 않아도 레이저를 만들 수 있어.”
“…….”
네이드는 멍한 표정이었다.
새로운 전지로 우회하여 수년의 전능을 뛰어넘는다.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시로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아아아아!”
적색 광선에 노출당한 하비스트가 몸부림쳤다.
광자 출력에 비해 가늘지만, 집적되는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애초에 색은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건 적색 파장의 외부에 있는 비가시 열선.
그것이 분자를 진동시키며 열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큭! 하비스트!”
카니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본체에게 고통이 전달된다는 것은 하비스트가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불과 2초 만에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시로네의 마법, 레이저 펄스 캐논의 가공할 위력이었다.
‘더 이상은 못 버텨.’
하비스트는 소멸을 직감했다.
그림자가 끓는 물처럼 부글거리더니 급기야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에텔라는 아케인을 살폈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표정 변화가 없는 그의 모습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설마?’
엄청난 에너지를 삼킨 하비스트가 이 자리에서 폭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에텔라가 소리쳤다.
“그만 포기하세요! 이대로는 모두 죽습니다!”
카니스는 고개를 저었다.
“닥쳐! 난 싸울 거야!”
“당신은 아케인에게 속고 있어요. 하비스트는 당신의 종속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하비스트의 종속이었던 거예요. 당신은 이용당한 거라고요.”
카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면 거짓말이다.
대마법사의 궁극의 결과물인 마도 생물체가 자신의 것이 된다고 들었을 때부터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없어.’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사실을 인정하면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긴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아! 너희들 따위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않아!”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을 차렸을 때, 그가 있던 곳은 세상의 지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얼마든지 죽여 봐!”
아케인에게 그는 소모품일 뿐이었다.
“내가 질 것 같아?”
친구라고 생각했던 하비스트에게, 그의 존재는 그저 연료통에 불과했다.
“더! 더 때려 보라고! 고작 이 정도로 날 죽이겠다고? 어디 해보란 말이야!”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카니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세상에 대한 증오뿐이었다.
아린은 울었다.
‘카니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비루한 몸뚱이에 담긴 생명 하나.
그것 외에는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불행한 인간이었다.
그녀는 아케인에게 달려갔다.
“스승님! 제발 카니스를 살려 주세요!”
이제는 스승이라는 생각조차 없었지만, 카니스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하지만 아케인은 차가웠다. 그 차가운 시선으로 하비스트를 향해 그가 말했다.
“하비스트, 그만 끝을 내라.”
에너지 과포화 상태인 하비스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음성 진동을 일으켰다가는 당장에 터져 버릴 터.
그것이야말로 아케인이 바라는 바였다.
-카니스, 잘 들어라.
카니스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하비스트?
-아케인은 나를 폭발시킬 생각이다. 나에게는 거부할 권한이 없어. 아마도 이곳의 모든 인간이 폭발에 휘말리겠지. 그러면 너도 나도 끝이다.
학생들의 정신 지배를 푼 아린이 살기가 담긴 스피릿 존으로 아케인을 겨누었다.
“카니스를 놓아줘! 안 그러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린! 안 돼!”
아케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카니스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지금 당장 그녀의 목이 떨어져 나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스승님, 저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라둠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만으로도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어요. 제가 죽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린은 살려 주세요.”
아케인은 화가 난 눈빛이었다.
“……어리석은 놈.”
그리고 천천히 하비스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태를 파악한 시로네도 레이저 펄스 캐논을 중단한 상태지만, 여태까지 흡수한 에너지만으로도 절벽 위를 초토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비스트, 내 명을 거역할 셈이냐?”
하비스트는 음성 진동은 물론 몸조차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내부에서 기폭 작용이 일어날 때마다 거대한 그림자가 좌로 우로 뒤틀렸고, 검은 표면에는 수많은 기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조만간 폭발이 일어날 것임은 자명해 보였다.
-카니스, 미안하다.
정신 채널을 통해 하비스트의 뇌파가 들어오는 순간 카니스의 표정이 굳었다.
-하비스트, 너…….
-주종의 계약을 해지하겠다.
“헉!”
하비스트는 카니스에게 남은 마지막 정신력을 모조리 흡수하고 채널을 끊었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박탈감을 느낀 카니스가 땅에 처박힌 상태로 힘없이 내뱉었다.
“어, 어째서……?”
흡수한 정신력을 이용해 하비스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가장 멀리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풍선처럼 그림자가 떠오르자 아케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 이놈! 하비스트!”
앙칼진 고함을 뒤로한 채 하비스트는 생애 처음으로 외로운 비행에 나섰다.
“…….”
폭발까지 몇 초가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마도 생물체는 소멸이 두렵지 않다. 그저 육체에 새겨진 기억을 되짚으며 마지막을 기다릴 뿐이었다.
마굴을 소탕했던 기억.
-가자, 하비스트.
보물을 찾아 유적지를 탐사했던 기억.
-하비, 이것 좀 봐. 찾았어! 고대 유물이야!
아케인에게 암흑 마법을 배우다가 잔뜩 혼이 나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기억.
-멍청아! 내가 언제 울었다는 거야!
하비, 하비, 하비.
시도 때도 없이 불러 대던 목소리도 이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테지만.
‘크크크.’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카니스, 너는 그게 문제야. 쓸데없이 강한 척을 한다는 거. 사실은 상처투성이면서.’
유일한 미련이라면 정신 채널을 통해 공명했던 카니스의 배신감이었다.
‘그래서 말할 수 없었어.’
이제는 아무것도 전할 수 없기에 하비스트는 그저 마음으로 바랐다.
그가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카니스.”
지상으로부터 떨어진 고도 2킬로미터 상공에서 그림자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가고.
“재밌었다.”
찬란한 폭발이 밤하늘의 어둠을 찢어발겼다.
빛을 잃은 천재(1)
“네 이름은 하비스트다.”
검은 구슬이 부르르 진동했다. 분자 결합력이 느슨해지면서 물질은 점차 연기로 퍼졌고 최종적으로 인간의 데포르메 같은 형태를 이루었다.
어둠에서 태어난 괴물체가 말했다.
“……나는 하비스트.”
“몇 가지 검사를 할 것이다. 당분간은 시험관에 들어가 있도록 해라.”
3미터 높이의 유리관은 인간이라면 10분도 견디기 힘들 만큼 좁은 곳이었으나 마도 생물체에게는 시간의 영속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사물처럼 고요히 머물러 있는 그날 밤, 카니스와 아린이 실험실에 잠입했다.
아케인의 허락을 받지 않은 터라 긴장한 상태였으나 하비스트를 발견한 순간 그런 감정은 사라졌다.
신장 2미터가 넘는 인간 형태의 그림자.
가느다란 허리에 역동적으로 넓은 어깨가 카니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것이 스승님의…….”
대마법사가 150년에 걸쳐 완성한 마도 생물학의 진수. 게다가 아케인의 기억을 전부 물려받아 지성까지 겸비한 마도 생물체였다.
카니스와 달리 아린은 겁에 질렸다. 그녀가 보는 형태가 평범한 인간과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도 풍기는 기운이 흉물스러웠다.
“으으, 되게 이상하네. 인간하고 비슷할 줄 알았는데.”
“마도 생물체가 무섭게 생기지 않으면 누가 겁을 먹겠어? 내가 보기에 이 형태는 대단해. 전투적이잖아.”
“그래도 난 이상한데.”
카니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기다려라. 내가 너의 주인이 되어 주마.”
아케인은 자신과 아린 중에 하비스트의 주인을 고를 것이라고 했다.
물론 아린은 목숨보다 소중한 친구지만 이런 일에는 양보가 있을 수 없는 법.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반드시 자격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카니스, 그만 가자. 스승님이 오실지도 몰라.”
“응? 어, 그래.”
카니스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서던 아린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흠칫 몸을 떨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하비스트의 폭발적인 진동이 느껴졌다.
“히익!”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온 아린은 연구실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문득 하비스트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다. 그녀 또한 라둠에서 무려 10년이란 세월을 갇혀 지냈던 것이다.
모두가 잠든 시각, 아린은 용기를 내어 홀로 연구실을 찾았다. 예전의 모습 그대로 유리관 안에 갇혀 있는 하비스트가 보였다.
“많이 답답한가요?”
대답이 들리지 않자 아린은 유리관의 장치를 더듬으며 스위치를 찾았다.
“잠깐이라면 밖으로 나오게 해 드릴 수 있어요.”
“어째서 답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아린은 황급히 물러섰다. 공포를 절로 불러일으키는 스산한 목소리였다.
“벌써 한 달이나 갇혀 있잖아요.”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불편하게 여기는 건 인간이다. 나는 시간을 인지할 수 없어. 영원히 이대로 갇혀 있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아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보는 하비스트의 형태는 억눌리고 답답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비스트가 말했다.
“어쩌면……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
“뭔가 떠오르셨나요?”
“글쎄. 호기심이라고 해야 할까? 표현이 적합하지 않군. 나는 존재하는 순간부터 학습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하지.”
“바로 그걸 답답하다고 하는 거예요.”
하비스트는 생각했다.
과연 그런가?
생각할 거리를 메모리에 저장해 둔 하비스트는 아린의 존재에 관심을 가졌다.
“너는 어떻게 내 감정을 읽을 수 있지?”
“헤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어요. 저는 라둠에서 오래 갇혀 있었거든요.”
“라둠. 토르미아의 수도 바슈카의 빈민굴. 고난도 은폐 시설과 극심한 인구 변동. 대륙에서 영토를 잃은 아인종의 소굴로 추정.”
라둠에서 살았던 아린조차 처음 듣는 정보였다.
“하비스트 씨는 많은 걸 알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