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30
대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을 무렵 에이미는 백 팩을 어깨에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시선이 에이미에게는 화살보다 아팠다.
식기를 내려놓은 부하들이 경례를 올렸다.
“지금 떠나십니까?”
“떠나는 게 아니라, 잠시 토르미아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 오는 거야. 금방 돌아올 테니까 부대 단속 잘하도록.”
부하들은 미소를 지었지만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대장님에게 배운 게 있는데 잘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수도 방위 사령부의 교육 장교로 편입되었다고 들었기에 꺼낸 말이었다.
“그래. 부탁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고 싶었기에 에이미도 변명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부대를 떠나는 길에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었어? 군단에서 유일하게 저 장교만 후방으로 배치되었다던데? 그것도 교육 장교.”
“쳇! 누구는 사지로 들어가는데, 누구는 편한 곳에서 젊은 놈들이랑 시시덕거리겠군. 이래서 사람은 배경이 든든해야 한다니까.”
상아탑의 오대성이 에이미의 연인이라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솔직히 이해는 되지. 마족들이 얼마나 잔인한 놈들인지 알잖아? 게다가 승산도 거의 없는 전투인데, 너 같으면 애인을 보내고 싶겠어?”
“누가 뭐래? 그럴 거면 처음부터 전쟁터에 뛰어들지 말든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사기만 떨어지게 말이야.”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에이미의 얼굴이 주체할 수 없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루키, 너 이 자식!’
에이미가 순순히 부대를 떠나는 이유는 단지 명령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네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빌어.’
이루키라고 단언할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너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납득시켜야 할 거야. 그럴 수 없다면…….’
에이미의 홍안이 붉게 타올랐다.
‘하극상이 뭔지 똑똑히 알게 될 테니까.’
급속 행군의 기간은 7일.
다시 부대에 합류하기 위해, 에이미는 공간 이동 마법진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배수진 (3)
***
발키리 사령부.
아르카 산맥의 채굴이 끝날 무렵, 도로시가 결재 서류를 들고 이루키를 찾아왔다.
“예상 채굴량의 93퍼센트. 이 정도면 충분히 임무를 완수했다고 할 수 있겠지?”
이루키가 사인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
도로시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뭐야? 고작 한다는 말이 ‘고생했어.’야?”
“내 성격 알잖아.”
도로시가 생각하기에 이루키는 무뚝뚝하지만 결코 차가운 성격은 아니었다.
“너는 너 자신을 속이는 경향이 있어. 솔직히 다른 말 하고 싶었지? 이를테면 사랑…….”
“밥이나 먹으러 가자. 뭐 먹을래?”
도로시는 그제야 깨달았다.
“너, 무슨 일 있구나?”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결코 내색하지 않던 그가 오늘따라 초조해 보였다.
이루키가 말없이 몸을 돌리자 도로시가 따라붙으며 집요하게 캐물었다.
“대체 왜 그러는데? 나한테는 말해 줄 수 있잖아. 전쟁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니야. 신경 쓰지…….”
문고리를 붙잡은 이루키가 문을 여는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군사를 만나러 왔다고요!”
도로시가 고개를 빼꼼 내밀자 복도 끝에서 일단의 무리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너! 지금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일개 대대장이 발키리 총군사를 마음대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말이라도 해 줄 수 있잖아요! 그 자식, 아니 총군사님은 분명 만나게 해 줄 거예요.”
“에이미?”
도로시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에이미가 여기에 있어?”
“내가 불렀어.”
짧게 대답한 이루키가 아로미에게 손짓을 했다.
“들어오라고 해요.”
이루키와 에이미가 친구 사이라는 건 알고 있으나 아로미에게도 지켜야 할 게 있었다.
“하지만 총군사님, 이곳은 발키리 사령부입니다. 지휘 체계의 말단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총군사를 독대하는 것은 규율 위반입니다.”
“그럼 중령급의 장교가 저를 독대하려면 어떤 적법한 절차가 필요하죠?”
아로미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런 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한 이루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오라고 해요.”
그로부터 10분이 지나서야 에이미가 방문을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
“에이미.”
도로시가 반갑게 인사했으나 에이미의 표정을 보고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
어색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에이미가 자세를 고치고 경례를 올렸다.
“충성. 중령 카르미스 에이미. 발키리 총군사님에게 면담을 요청합니다.”
이루키는 경례를 받지 않았다.
“됐어, 낯간지럽게.”
그리고 도로시에게 말했다.
“잠깐 나가 있어.”
지켜봐서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으나, 그렇기에 도로시는 떠날 수 없었다.
“싫어. 어차피 군대 얘기도 아니지? 그렇다면 나도 들을 자격이 있어.”
에이미가 말했다.
“상관없어. 길게 얘기하지 않을 테니까.”
이루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알고 있잖아?”
에이미가 성큼 걸음을 옮겼다.
“어제 정오를 기준으로 내 보직이 변경되었어. 수도 방위 사령부 교육 장교로.”
“알아.”
에이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가 지시한 거야?”
“그래.”
그녀의 주먹이 불끈 쥐였다.
“왜? 이유가 뭐야?”
“전방의 전투만큼 후방 교육도 중요해. 너의 부대 교육 능력은 장교 중에서도…….”
“이루키.”
에이미가 낮은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이유가 뭐야?”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도로시가 쩔쩔매는 가운데, 이루키가 던지듯 내뱉었다.
“한 대 치고 싶다는 얼굴이군.”
“나는 그냥 진실을 알고 싶은 거야. 왜 나를 후방으로 보냈어? 내가 너의 친구라서?”
“…….”
“약속할게. 솔직하게 말하면 절대로 화 안 낼 테니까. 나를 사지에서 빼낸 이유가, 정말 그 이유뿐이야?”
이루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에이미가 이루키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이루키가 바닥을 구르자 도로시가 황급히 부축했다.
“이루키! 괜찮아?”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홍안을 불태우는 에이미가 주먹을 치켜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멀었어.”
도로시가 손을 내밀었다.
“머리는 안 돼! 얘는 이것 빼면 시체란 말이야!”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에이미가 발을 들어 이루키의 복부를 겨냥했다.
도로시가 쭉 손을 내밀었다.
“여기도 안 돼! 이건 내 거야.”
에이미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네가 뭘 알아?”
이루키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훈련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네가 알아?”
“몰라.”
이루키가 상체를 세우고 앉았다.
“너를 살리는 데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어. 내가 결정했고, 내가 책임질 거야. 말단 장교는 얌전히 후방에 있어.”
도로시는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되었다.
‘그렇게 된 거구나.’
에이미가 느꼈을 수치심도, 그것을 알면서도 결정을 내려야 했을 이루키의 고뇌도 이해가 되었다.
에이미가 발을 내렸다.
“받아들일 수 없어. 시간 낭비인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온 이유는 이것 때문이야. 나를 다시 전선으로 보내 줘.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싫어. 내가 총군사야. 항명하겠다면 수도 방위 사령부가 아닌 영창으로 보낼 수도 있어.”
“……네가 원하는 게 그거야? 내 부하들이, 전우들이 전부 죽어 가는데, 나 혼자 비겁하게 살아남는 거?”
“그래.”
“너……!”
에이미가 욕을 내뱉으려는 그때, 이루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악을 질렀다.
“그냥 좀 살아아아아!”
마법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루키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루키가 벌떡 일어났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짜증 나게 하고 있어! 내가 무슨 지시를 내렸는지 알아? 그렇게 진실을 알고 싶어? 말해 줄까? 거기 가면 전부 죽어! 사망 확률 99퍼센트야! 무슨 말인지 알아? 네가 거기 가면 반드시 죽는다고, 이 멍청아!”
일단 감정이 폭발하자 주체할 수 없었다.
“비겁하면 좀 어때? 너 하나 빼 보려고 내가 전부 책임졌어! 총군사 친구 둔 덕분이라고? 그러면 좀 어때? 수치스러워도 참아!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내가 다 알아서 해 준다고 하잖아!”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이루키…….”
“닥쳐!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내 머리가 망상이나 할 뇌로 보여? 죽는 게 뻔히 계산되는데 너를 보내라고? 시로네 생각은 안 하냐? 네가 죽으면, 거기서 끔찍하게 죽으면, 내가 시로네 얼굴을 제대로 볼 수나 있을 것 같아? 그냥 좀 살란 말이야!”
에이미는 핏대를 세우는 이루키의 얼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얼굴을 발견했다.
‘화를 내는 게 아니야.’
에이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이루키가…….’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았다.
화를 낸 것도 처음이지만, 이토록 두려워하는 모습도 처음이었기에…….
‘거짓말이 아니겠지.’
이루키가 죽는다고 하면, 정말로 죽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리고 네 마음도, 나를 살리고 싶은 네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돼.”
반대의 입장에서 이루키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에이미는 단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로네의 연인, 너의 친구이기 전에 나는 군인이야. 그건 다른 사람에게 정의되지 않는 나만의 것이야. 그리고 군인은, 그래서는 안 돼.”
책상에 기댄 이루키가 고개를 숙였다.
“내 말 못 들었어? 가면 죽어. 죽고 싶어 환장한 거라면 네 뜻대로 해도 좋지만.”
에이미는 고개를 저었다.
“죽고 싶지 않아. 당연히 살고 싶지. 살아서 시로네와,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하지만 알잖아? 내가 살고 싶은 만큼…….”
애써 울음을 참아 냈다.
“다른 사람들도 살고 싶을 거야. 그런데도 인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거야.”
이루키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시를 내릴 때마다, 최소 수천 명이 죽어. 비보는 계속 들어와. 어디에서 1만 명이, 어디에서 10만 명이 죽었다고. 환청처럼, 끝없이 맴돈다고.”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자리가 아닐 것이다.
“끔찍한 일이지. 10만이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하고 싶지 않아도 꿈에 나타나. 하지만 그 어떤 상상도…….”
이루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네가 죽는 것과는 비교가 안 돼. 내가 아는 얼굴, 내가 아는 표정, 내가 아는 고통을 떠올릴 때마다 미쳐 버릴 것 같단 말이야.”
“이루키.”
에이미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이루키에게 다가가 그의 두 뺨을 쓰다듬었다.
이루키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일단 거기에 가면,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도와줄 수 없어. 그게 너무 무서워.”
에이미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루키…….”
내 소중한 친구.
완벽하게 고독한 회백질의 밀실에 갇혀서,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을까?
‘누구보다 냉철하니까.’
지금의 상황이 견딜 수 없이 두려운 것이었다.
도로시가 눈물을 훔쳤다.
‘에이미, 그냥 여기에 있으면 안 돼? 기왕 이렇게 된 거니까, 그냥 살면 안 돼?’
목구멍까지 말이 치솟았으나, 에이미의 신념 앞에서는 한낱 어리광일 뿐이었다.
에이미가 단호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이겨 낼 수 있어. 나는 군인이야. 세상에 무서운 건 아무것도 없어.”
살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시 전장으로 보내 줘. 너에게 내가 소중하듯, 나에게도 부하들이 소중해. 그들을 사지로 내몰고 나 혼자서 보중하고 싶지 않아. 이해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