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33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린 소녀가 그 자세로 발을 구르며 이동하자 발에 깔리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이, 이 자식들이……!”
수족과도 같은 부하의 시체를 밟고 있는 발키리 지휘관이 이를 악물었다.
“이 개자식아! 인간의 생명을 뭐라고 생각……! 컥!”
정확히 40,000명이 사망했고, 그 인파 속에 지휘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신을 내 품에서……
소녀가 나지막하게 노래를 마무리했다.
익사시킬 거야
3분 48초의 노래가 끝난 상황에서, 평야에 서 있는 건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사망자 24만 8,247명.
소녀가 턱을 치켜들고 기립한 가운데, 기타루맨은 기타를 케이스에 넣었다.
“…….”
그리고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이, 침묵을 지키며 소녀와 함께 평야를 건넜다.
그로부터 2시간 뒤.
인류와 마족의 총군사들은 거의 동시에 부대가 전멸했다는 보고를 접했다.
“생존자가 없다고?”
겁에 질린 병사가 턱을 떨며 보고했다.
“네. 하지만 적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3세계의 인물로 보이며, 전문가의 소견에 의하면…….”
“의하면?”
병사가 고개를 쳐들었다.
“기타루맨일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발칸이 눈을 깜박거렸다.
“기타루맨? 마도7걸의 기타루맨?”
“네, 그것이…….”
그 시점에서 발칸은 귀를 닫고 생각했다.
‘세상에 나왔단 말인가? 아니, 우리가 불러냈다고 보는 게 맞겠군. 제길, 그걸 놓치다니.’
지옥의 군대가 세상을 휩쓸면서 그가 은신하던 장소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떡할까요? 놈을 쫓을까요?”
발칸은 대답이 없었다.
‘전투력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야. 대인 전투에서는 지극히 취약하다. 그래서 숨어 있었던 것이겠지만…….’
그의 능력 사문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됐어. 쫓을 필요 없다.”
“네?”
“불가항력이었어. 태풍이나 지진, 낙뢰 같은…… 자연재해에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발칸이 테이블을 내리치자, 병사가 멍하니 벌리고 있던 입을 급히 다물었다.
“제길! 재수가 없으려니까.”
아니, 과연 재수가 없었던 것일까?
‘너무 흥에 취했어. 발키리의 군사가 내 악수에 반응조차 하지 않았던 건…….’
처음에는 반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나만큼 미친놈이라는 거지.”
발키리 사령부로 들어오는 전령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보고! 게라 평야에서……!”
아군 병력 5만을 마족의 군대 20만과 맞바꾸었으니 승전보라고 할 수 있었다.
“기타루맨이라고?”
지휘관들이 저마다 의견을 나누는 가운데, 1명이 이루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요.”
모르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알았다면 대비를 했겠죠. 전략에 포함시켰을 거예요. 물론 저쪽의 군사도. 다만…….”
발칸이 모르는 걸 짐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히려 압도적으로 전력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발칸에게는 1만의 병사도 눈에 차지 않지만, 저에게는 100명도 소중합니다. 전력의 비대칭을 극복하려면 1명이라도 더 아껴야 하죠.”
테이트라 산맥에서,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병력의 손실이 자주 발생했다.
“무언가 있다고는 생각했어요. 물론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도박이었죠.”
“그, 그러니까, 그 무언가가 어느 편에 유리할지 모르고 승부를 걸었단 말입니까?”
“정상적으로 계획이 진행되었을 때에 우리가 이길 확률은 10퍼센트 미만.”
이루키가 손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발칸이 도박으로 승부를 건다면, 확률은 50퍼센트까지 뜁니다. 이렇게 남는 장사는 안 할 수가 없죠.”
만약 패했다면 모든 게 끝났을 테지만.
“인간의 책임을 대신 짊어질 수 있는 건 신과 숫자뿐이다. 서번트 마법사 베로니케의 명언입니다. 승산이 높은 쪽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렇더라도 엄청난 간이었다.
“그나저나 기타루맨이 나타나다니. 세상도 갈 데까지 갔다고 봐도 되겠군요.”
이루키가 동의했다.
“아마도 규정외식. 짐작건대 대인 전투에는 극히 취약할 거예요. 개체 수가 늘어날수록 위력이 증폭되는 경우겠죠.”
그럼에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기타루맨의 동태를 은밀히 추적하세요. 소수 정예가 더 나을 겁니다.”
“네, 맡겨 주십시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도 5만에 가까운 병력을 잃었습니다.”
이루키는 지도를 살폈다.
‘하지만…….’
발칸의 실수가 만들어 낸 균열을 통해 시간을 벌 수 있는 전략들이 수없이 탄생했다.
“하루.”
이루키가 검지를 치켜들었다.
“딱 하루만, 제2군단이 막아 주면 됩니다.”
전대미문의 폭탄이 인류에 장착되는 것이다.
다가오는 재앙 (1)
중부 대륙 각지에서 행군을 시작한 발키리 제2군단이 카니안 고원에 집결했다.
시야 끝까지 펼쳐진 암석 지대를 바라보던 테스가 리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로네는 어떻게 된 걸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미 상아탑에 보고를 끝내고 돌아왔어야 할 시점이었다.
“모르지. 하지만 괜찮을 거야.”
시로네는 강하다.
다만 성전조차 아직까지 야훼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불안했다.
‘왜 상아탑에 가지 않았지? 아니, 가지 못한 건가?’
리안에게 최우선 보호 대상은 시로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테스가 물었다.
“정말 이곳에 남아도 되겠어?”
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시로네를 찾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하비츠의 능력을 알고서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타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그녀는, 리안이 아니고서는 견제조차 불가능했다.
‘나를 찾아오겠지.’
마족의 입장에서도 마하의 기사는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발키리의 핵심 요인.
“하루만 버티면 돼.”
성전에서 바뀐 지령이 내려왔을 때, 제2군단 전체가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나는 나타샤를 막을 거야. 하지만 하비츠까지 막아 낼 수는 없어. 조심해라, 테스.”
배니싱을 떠올린 테스가 침을 삼켰다.
“걱정 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을 테니까.”
정신을 차린다고 막아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만, 어차피 다른 방도는 없었다.
“에이미는 괜찮을까?”
수 킬로미터 전역에 퍼져 있는 막사에서 에이미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마법부대니까 전략에 따라 자주 이동할 거야. 어쩌면 전투 중에 만날 수도 있겠지.”
리안은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각자의 임무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
자신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만이 이 지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에이미…….”
테스는 저편 어딘가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있을 친구에게 마음으로 전했다.
‘우리 꼭 살아남자.’
열외자의 복귀와 성전의 바뀐 지령으로 군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군기는 차가운 칼날이 되어 적진을 겨누었다.
“후우.”
에이미가 지휘하는 제6대대는 선봉대의 후미에서 화력을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할 수 있어.’
이루키는 죽는다고 했다.
이견은 없지만, 에이미는 그 무엇보다 자신이 여태까지 해 온 것을 믿었다.
‘싸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녀가 막사를 나가자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대장님, 시간이 됐습니다.”
공포를 극복한 대원들의 눈빛에서, 에이미는 긴말이 필요 없음을 깨달았다.
“가자.”
선봉대 2만의 병력이 좌우로 분리되어 있는 중간에 에이미의 부대가 합류했다.
먼저 무너진 쪽으로 지원이 들어가게 될 터였고, 그때부터는 상부의 지시를 기대할 수 없다.
“전 대원은 들어라!”
선봉장을 맡은 사람은 준장 타이강으로, 중부 대륙에서 유명한 검사였다.
“앞으로 우리가 상대할 적은……!”
지평선 쪽에서부터 거대한 흙먼지가 일어서더니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준장님.”
작별의 인사도 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래, 이것이 전쟁이지.’
전방의 흙먼지를 무심하게 지켜보던 타이강이 부대를 향해 돌아서며 미소 지었다.
“너희들이라서 영광이었다.”
그의 마음이 언어보다 빠르게 대원들의 가슴에 파고들자 두 눈이 충혈되었다.
“와아아아아!”
함성에 밀려나듯, 타이강이 말을 출발시키며 검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죽이자!”
시작이었다.
전략과 전술이 무용지물인 고원에서, 인간과 마족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온다!’
중진에서 돌진하는 에이미의 부대는 흙먼지 속에 숨어 있는 그림자를 보았다.
“크아아아아!”
눈으로 전부 담을 수도 없는 2억의 군대가 엄청난 굉음을 내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흐으으으……!”
에이미의 앙다문 이빨 사이로 어쩔 수 없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공포.
하지만 괜찮다.
‘됐어. 나는 여기까지 온 거야.’
이제부터 군을 움직이는 건 알량한 의지나 각오가 아닌, 돌이킬 수 없는 관성일 테니까.
“포격 개시!”
에이미의 지시에 따라 수백 명의 마법사들이 전방을 향해 화염을 쏘아 댔다.
두두두두두두두!
그리고, 모든 게 짓밟혔다.
발키리 사령부.
“보고드립니다! 카니안 고원에 집결한 제2군단 예하 3사단이 궤멸했습니다!”
지휘관이 물었다.
“예상 피해 규모는?”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합니다. 단위면적당으로 계산했을 때 3만 이상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흐음.”
허파에 구멍이 난 듯한 숨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이루키가 손톱을 깨물었다.
“3만이라고.”
전투가 시작된 지 고작 2시간 지난 상황이었다.
‘22시간을 더 버텨야 한다.’
가장 비참한 것은, 제2군단에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자리에서 일어난 이루키가 테이블의 반대편으로 걸어가 지도를 살폈다.
“고원 전투는 잊으세요. 이제부터 생각해야 할 것은 반격입니다. 배치는 어떻게 됐죠?”
“끝났습니다. 최적의 장소는 여기입니다.”
“…….”
지휘관이 가리킨 장소를 살피는 이루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개전 6시간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