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37
“크윽!”
순간 이동으로 거리를 벌리고 백사장을 살피자, 인간은 1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뭐야?”
사마귀 같은 삼각형의 얼굴에, 두개골은 부채처럼 납작하게 퍼져 있었다.
몸은 미라처럼 말랐고 무릎은 역관절, 팔은 가늘었고 손목에 금색 건틀렛을 차고 있었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익숙한 모습이었다.
“테라포스?”
그 사실을 강하게 증명하는 것은, 메로 절벽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비행 물체였다.
“그렇다. 우리는 테라포스 전투병단. 너는 테라포스의 기대를 배신했다.”
인간의 말을 내뱉은 외계 생명체가 새처럼 갈라진 발바닥으로 모래를 밟았다.
“내가 무슨 기대를 배신했다는 거야?”
아니, 지금 이 순간이 이미 경험한 과거라면…….
‘도대체 나는…….’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기 전에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알 수가 없다.’
타임 바이브레이션으로 시간을 거슬러 왔어도, 조작된 기억이 가로막고 있었다.
“대답해. 나에게 무슨 짓을 했지? 머릿속의 칩은? 왜 이상한 기억을 주입한 거야?”
외계 생명체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미래에서 왔나? 우리의 예측보다 훨씬 빠르군.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수십 명의 테라포스가 시로네를 에워쌌다.
“너는 인류의 대표자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야훼의 경지를 양도한 시점에서 말이야.”
“양도하지 않았어. 너희들 때문에 기억은 없지만, 그 정도는 내가 알아.”
“속 편한 감상이군. 너의 행동이 앞으로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수십 개의 손바닥이 시로네를 겨누었다.
“망각의 늪에서 지켜봐라.”
테라포스 종족의 건틀렛이 작동하면서, 날카로운 음파가 쏘아졌다.
시로네가 소리쳤다.
“……!”
분명 말을 토해 냈으나, 목소리는 입 바깥으로 나오는 시점에 소멸했다.
‘음파를 잡았어!’
주변의 소음이 극한의 0데시벨로 수렴하면서,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해졌다.
반면에 테라포스의 음성은 거대하고 웅장했다.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라!”
마치 다른 사람이 뇌에 들어와 소리치는 느낌에, 시로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엄청나다.’
무결점의 정신이라 자부하는 무한의 마법사지만, 테라포스 또한 파동의 지배자였다.
“퇴로를 막아라!”
음파가 풍경을 짓이기고, 어떤 것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시로네의 목을 노렸다.
“……!”
이것들이!
이쯤 되면 테라포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과거의 일이었다.
“……!”
적당히 하란 말이야!
호밍 포톤 캐논이 테라포스 전투원들을 개별적으로 포착하고 날아들었다.
징! 징! 징! 징!
테라포스의 눈앞에 무형의 파문이 퍼지면서 섬광의 공격을 막아 냈다.
“옳다고 생각하는가!”
땅이 물결처럼 출렁이고 공기가 철처럼 단단해지면서 시로네를 짓눌렀다.
“이 우주에서, 고작 한 칸을 차지하는 행성에서, 발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생명체 따위가…….”
테라포스의 굉음이 터졌다.
“진리를 정의할 수 있다고 믿는가!”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두 손을 둥그렇게 모았다.
‘엘리멘탈 포톤 캐논.’
구화를 통해 모든 현상을 끌어내는 시로네의 손바닥 사이에 강력한 전기가 뭉쳤다.
“……!”
뭐가 됐든지 간에.
“나도 말 좀 하자!”
음파의 장벽을 찢어 버린 엘리멘탈 포톤 캐논이 진동을 일으키며 뻗어 나갔다.
징! 징! 징! 징!
파동의 장막에 전기가 얽히고, 이어서 몇몇 전투원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조차 반가운 시로네가, 턱에 흐른 땀을 닦고 손을 들었다.
수십 체의 전기 구체가 하늘로 떠오르면서 테라포스 전원을 겨누었다.
“이해를 못 하겠어. 보다시피 나는 야훼야. 그리고 설령, 여지를 남겼다고 해도 어째서 나를 공격하는 거지?”
“역시 이길 수 없는가?”
테라포스는 대답을 회피하듯 서로를 돌아보았고, 이내 시로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만 잠들어라.”
시로네의 머리에 장착된 칩이 작동하면서, 뇌파가 의지와 무관하게 켜졌다.
“으아아아!”
이명이 끝없이 흐르고 극심한 두통이 치밀었다.
“잊어라, 인간이여. 너희들은 절대로 악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심판할 것이다.”
“끄으으으……!”
무릎을 꿇은 채로 머리를 부여잡은 시로네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쳐들었다.
“누구도 타인을 심판할 수 없어.”
“그러는 너 또한 악을 심판하지 않는가? 수많은 마족들을 소멸시키지 않았는가.”
“헛소리하지 마.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할 뿐이야. 다수가 믿으면 법이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타인을 심판할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야.”
“그 다수가 너희의 한계다. 우리는 전 우주를 관할하는 테라포스. 인간의 정의는 테라포스에게 극히 소수의 의견에 불과하다. 우리가 법이다.”
테라포스가 손을 내민 채로 걸어왔다.
“물론 진리는 어디에나 있지. 우리는 야훼가 그렇다고 보았다. 하지만 너는 규칙을 어겼어.”
거리가 가까워지자 시로네의 의식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안 돼! 버텨야 해!’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으아아아아!”
시간이 없다.
지금 이러고 있는 시간에도 세계는 마족의 발길에 짓밟히고 있을 터였다.
‘이게 마지막이야.’
최후의 도박을 걸어 볼 생각으로, 시로네는 검지를 귀에 대고 찔러 넣었다.
“무슨……!”
피부를 찢고 들어가자 차가운 기계가 만져졌다.
‘다행히 깊지는 않아. 하지만…….’
그것을 붙잡고 천천히 꺼내자, 뇌와 연결된 전선이 뇌를 자극시켰다.
“크으으으!”
눈동자가 위로 말려들고, 뇌의 작용들이 망막에 전기처럼 잔상을 일으켰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것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그 장치를 빼면 죽는다.”
듣지 않아도 그럴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 돼.’
투툭. 투투툭.
전선들이 10센티미터나 뽑혀 나왔고, 얼마나 길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모든 생각, 심지어 영혼까지 함께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섬뜩했다.
“으아아아아.”
시로네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지고, 칩의 단말 구조물이 뇌 전체를 자극했다.
“죽었…….”
테라포스가 말을 멈췄다.
뇌와 손 사이에 연결된 전선을 타고 핏물이 흘러내려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어?’
시로네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이게 뭐야?’
세상의 모든 풍경이 시간의 순서대로 중첩되어 눈앞에 머물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전선을 붙잡은 채로 멈춰 있는 또 하나의 자신이 보였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24시간이 완전히 펼쳐졌기 때문에.’
아마도 공진을 가동한 뇌에 자극이 들어와서 생긴 부작용일 터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뇌가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뜻이다.
‘정말로 죽는 거구나.’
저 멀리, 대략 3시간 정도 후의 사건을 보자 코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자신이 보였다.
‘방법이 있을 거야.’
시로네는 칩을 뽑아내는 또 하나의 자신에게 다가가 두 손을 집어넣고 좌우로 펼쳤다.
생각, 인지의 세계에서 1초 사이에 중첩되어 있던 수백 명의 시로네가 좌우로 펼쳐졌다.
‘제길!’
시로네는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10분의 1초, 100분의 1초, 1천분의 1초에 도달할 무렵,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보았다.
‘깜짝이야.’
도미노처럼 이어진 시로네 사이에 검붉은 구체가 기괴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 시간대에는 내가 없어.’
0.666초였다.
‘엄청나게 시간을 쪼갰을 경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대가 존재한다라…….’
왜?
‘어째서 이런 빈틈이 있는 것일까?’
우주가 완전무결할 것이라 믿고 있는 인간에게, 지금의 결함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언가에 필요하기 때문에.’
세상이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면, 공기는 인간에게 필요한 특정 신호가 될 수 있다.
대략 78퍼센트의 질소와 21퍼센트의 산소, 그 외 0.1퍼센트도 안 되는 기타 정보의 결합.
‘시간도 마찬가지.’
찰나에 담긴 특정 구간대의 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터였다.
‘더 들어간다!’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계속 시간을 파헤쳤다.
‘더! 더! 더!’
시간을 해체한다.
점차 가속이 붙으면서, 이제는 팔을 벌리기도 전에 시간대가 확장되었다.
수많은 시로네가 좌우로 퍼지는 와중에도 가끔 특이한 것들이 지나갔다.
‘멈출 수가 없어.’
이미 천문학적인 분수로 쪼개진 상태에서 되돌리기에는 너무 까마득했다.
비율로 따지자면 아주 소량일 것이기에, 시로네는 계속 깊이 파고들었다.
‘나와! 대체 뭐가 있는 거야!’
시간의 끝을 향해.
명백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까, 시로네는 오직 그것에만 몰두했다.
‘변한다.’
그 무한대에 가까운 찰나에서, 시로네의 모습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헉! 헉!”
공포가 밀려들었으나, 생을 초월한 호기심이 계속해서 팔을 휘젓게 했다.
‘오고 있어!’
끝이 온다는 확신이 들었다.
“으…….”
좌우로 빠르게 밀려나는 것들은, 차마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형태였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인간은, 이 세계는, 한낱 뇌의 이미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과 전혀 달랐다.
두렵다.
“으아아아아!”
눈물을 흘리며, 시로네는 마침내 좌우로 밀려나는 것이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시간의 끝.
“아, 아아아…….”
그곳에는 어떤 형태도 없었다.
테라포스가 괴성을 내질렀다.
“이건 불가능해!”
다시 움직이는 시로네의 손을 따라 칩에 연결된 선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육체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법관의 말이…… 옳았단 말인가?”
“크윽!”
동공이 제자리로 돌아온 시로네가 기다란 선을 늘어뜨린 칩을 완전히 빼냈다.
“후우.”
테라포스 전투원들이 얼어붙었다.
“어떻게 인간이…….”
감각은 불가능.
마치 양자처럼, 감각할 수 없는 상태에서만 존재하는 우주의 종착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