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39
“테라포스는 조금 더 낫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상황에 따라 정답은 다르지만 우리의 선택은 예외 없이 똑같다. 그만큼 행위의 기준이 완벽하게 정립되어 있다는 거야.”
“하지만 이번에 갈렸잖아.”
대법관이 머쓱한 느낌으로 손을 뗐다.
“그래. 그만큼 어려운 문제다, 통합적 정신 체계라는 것은.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제10감을 열었음에도…….”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가 울티마 시스템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
시로네 또한 무태를 깨달은 이후부터 머릿속 한구석에 남아 있던 의문이었다.
파멸의 일격 (2)
“통합적 정신 체계라는 것은…….”
시로네는 말을 흐렸다.
세계의 순행 원리가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다면 한 가지 더 밝혀야 하는 사실이 있었다.
“마음.”
대법관이 말했다.
“그래. 물질의 정보는 빛을 기반으로 하지만 마음은 양자 신호를 통해 형성된다. 결국 이런 것이지.”
허공에 홀로그램이 켜졌다.
“우리가 인식하면 양자적 신호가 발동, 그것이 빛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와 결합하여 세상이 구현된다.”
시로네는 행성의 홀로그램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이 홀로그램은 실체가 아니다. 확대하면 행성의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지만, 결국 바깥에서 봤을 때는 그저 한 줄기의 신호일 뿐이지.”
대법관이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제10감은 세상을 이루는 모든 신호의 최소 단위를 인식한다. 그래서 관리자인 것이지.”
“대답해 줘. 나는 왜 기억을 지웠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조차도 너에게 사고의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 원한다면 말해 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전에 분명히 하고 싶은 건, 네가 원했다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과거의 네가 말이야.”
그렇다면 시로네도 굳이 캐고 싶지 않았다.
다만 과거의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에, 어떤 이유였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갔다.
“나네를 막기 위해서겠지.”
“그래. 네가 제10감을 연 순간, 이제 이 세계의 관리자는 두 명이 되었다. 그리고 울티마에 도달하는 방법 또한 서로 다를 것이다.”
“나네가 울티마에 도달하면…….”
“진정한 부처가 되겠지. 완벽하게 옳다. 문제는 그거야. 생동감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사용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용자? 존재할 수 없게 된다고?”
“공이 완벽해지면, 생물 프로그램 아르고네스가 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의 모든 생명을 소멸시키는 것이지. 바깥 세계의 기준으로 표현하자면, 사용자의 접속을 강제로 끊어 이탈시키는 셈이다.”
피쇼의 경고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바깥 세계가…… 있다고 믿어?”
“알 수 없지. 믿음의 문제가 아니야. 테라포스는 세계를 지키는 쪽이다. 일종의 사용자 보호 프로그램. 공이 완벽해지면 아르고네스가 발동하듯, 악이 완벽해지면 우리가 파괴한다.”
“심판?”
“싫어하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엄밀히 따졌을 때 심판이 아니야. 악의 본질은 혼돈. 혼돈의 세계에서 지성은 살아갈 수 없어. 우리가 심판하는 게 아니라,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시로네는 대법관이 찾아온 이유를 깨달았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거로군.”
“그렇지. 공이 이기면 우주가 닫히고, 악이 이기면 인류는 소멸한다. 나쁜 게 아니야. 다만 야훼의 입장에서는 어느 것도 반가운 일이 아니지.”
“싸울 거야. 나네를 막고, 하비츠를 막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울티마 시스템에 도달해야 한다.
“테라포스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야, 모든 사용자의 마음을 통합시킨다는 것은.”
대법관이 몸을 돌렸다.
“사용자의 마음, 그 수많은 신호가 하나로 통합되었을 때 울티마는 완벽해진다. 가이아인이 관리자인 앙케 라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야. 그리고 또한, 네가 나네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시로네는 대법관의 말을 곱씹었다.
“대비해라, 시로네. 최후가 오고 있다. 심판의 날,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다.”
대법관이 기관을 작동시키자 공동의 철벽이 미끄러지며 전면 유리창이 나타났다.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의 한복판에서 상아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
“크으으으!”
중부 대륙의 동굴 속에서 가올드는 신음하고 있었다.
“벌써 3일째 발이 묶였어요.”
강난의 말은 가올드가 끔찍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기간이 3일이라는 뜻이었다.
“으아아아아!”
비명에 이어 동굴이 무섭게 흔들렸다.
“가올드!”
강난이 달려 들어가려는 그때 줄루가 어깨를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어.”
아마도 이성을 잃은 상태일 것이고 만에 하나 에어 프레스가 발동되면, 즉사였다.
“하지만…….”
“내가 가 볼게.”
미로가 성큼 걸음을 옮기자 강난이 매섭게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당신이 가 봤자 상황만 더 악화된다는 거 몰라? 도대체 왜 안 떠나고 붙어 있는 거야?”
왜일까?
여기까지 동행하면서 가올드에게 똥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미로였다.
‘나쁜 자식!’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닐 것이다.
끔찍한 통각의 지옥에서 미로라는 여자가 얼마나 증오스러울지도 짐작이 갔다.
‘끝까지 참아 보란 말이야!’
이기적인 생각.
하지만 그런 가올드였기에 완전무결한 정신에 균열을 남긴 게 아니겠는가.
‘너 때문에 나까지 이게 뭐야!’
이기적인 마음으로 버티고 있지만, 심마가 심해지면 삼라만상을 관조하는 천수관세음의 정신마저 깨질 터였다.
“한 대 패 주겠어!”
미로의 말에 강난이 소리쳤다.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가올드의 위력을 몰라서 그래?”
미로가 싸늘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내가 너하고 같은 줄 알아? 그딴 녀석, 지금 당장이라도 패대기칠 수 있어.”
“크윽!”
어쨌거나 가올드의 파계에 준할 수 있는 여자였기에 강난도 대꾸할 말이 없었다.
“크아아아아!”
가올드의 비명에 또다시 동굴이 울렸다.
“짜증 나 미치겠네!”
소매를 걷으면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미로는 동굴 끝에 웅크린 가올드를 보았다.
“야! 며칠째 이러고 있으면 어쩌란 거야! 세상을 지킨다고 할 때는 언제고! 나약해 빠져서는!”
“꺼져.”
쉰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꺼져 버려!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란 말이야!”
그렇게 외친 가올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갖은 폭설을 퍼부었다.
“……!”
두 주먹을 잔뜩 움켜쥔 미로는 입술을 깨문 채로 모든 말을 받아 냈다.
“하아! 하아!”
가올드가 거친 숨을 토해 냈고, 그것만으로도 면도칼을 삼키는 듯한 고통이었다.
“다 했어? 이제 속이 좀 후련해? 그렇게 날 까고 싶어서 평소에는 어떻게 참았대?”
“……꺼져.”
죽어 가는 가올드의 목소리가 미로를 화나게 했다.
“착각하지 마. 좋아서 따라온 게 아니야. 확실하게 끝내고 싶어서야. 그리고 지금 결정했어. 역시 너는 안 되겠다. 이것으로 정리하자.”
“알았으니까, 제발 가라고…….”
“야! 너 진짜!”
도끼눈을 치켜뜬 미로가 주먹을 휘두를 기세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갈 때 가더라도 한 대는 쳐야겠다!”
섬광 마법으로 주위를 밝히고 가올드의 멱살을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
미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흐으으으…….”
빛조차 괴로움인지 말라비틀어진 몸을 웅크린 상태로 떨고 있는 가올드의 모습은…….
“……야.”
차마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였다.
“이 바보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미로의 얼굴이 울상으로 구겨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체 이 꼴이 뭐야?”
가올드는 수치스러운 듯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췄으나, 그 모습이 더욱 처연했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음조차 축복일 듯했다.
“너는 왜 이렇게 바보 같니?”
뼈밖에 남지 않은 가올드의 몸을 끌어안은 미로가 어깨에 뺨을 기댔다.
“흐윽! 흐으으윽!”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미로의 떨림을 느끼며 가올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흐아아앙! 으아아아앙!”
아마도 생애 처음, 완전히 감정을 드러낸 그녀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인류 최강의 구도자.
일말의 결점도 용납하지 않았던 초인의 정신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날 저녁.
“후. 후.”
모닥불 앞에 모포를 뒤집어쓴 가올드가 떨고 있는 가운데, 강난이 수저를 내밀었다.
“자, 먹어요.”
가올드의 입이 천천히 열리고 강난이 수저 아래를 받치며 천천히 식사를 넣었다.
건너편에 앉아 두 무릎 사이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미로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흥. 아주 보기 좋네. 그러다 정분나겠어.”
“무슨 상관이야?”
무심하게 대꾸한 강난이 미음이 담긴 접시에 수저를 넣고 휘휘 저었다.
‘질투?’
솔직한 심정으로 고소했지만, 천하의 미로가 질투심을 느낀다는 건 아이러니했다.
가올드가 시선을 들었다.
“미로야.”
동굴에서 나와 처음으로 부르는 상황에 미로가 화색을 드러내며 일어섰다.
“왜? 내가 먹여 줄까? 역시 내가 낫지?”
“그만 떠나라.”
미로가 미간을 좁혔다.
“또 그 소리야? 떠나고 말고는 내가 결정…….”
“너, 위험한 상태야.”
가올드에게 들켰다는 생각에 말을 하던 그녀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너는 나와 달라. 극상의 정신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싸울 수 없어. 세계를 구하고 싶잖아. 네 자리로 돌아가.”
“내 자리가 뭔데?”
“극선. 너에게 인간의 감정은 어울리지 않아. 하나에 집착하면 전체를 보지 못해.”
미로의 화신 천수관세음이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는 사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방향에서 세계를 관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공격을 도모할 수 있다.
미로는 털썩 자리에 앉았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마음이란 그런 것, 쉽게 돌이킬 수 있는 일이라면 진즉에 했을 것이다.
“못하겠다면.”
가올드가 검지를 내밀었다.
“내가 도와줄까?”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지면서 손가락 끝에 거대한 공기가 압축되었다.
주위의 대기마저 떨리는 위력에 강난이 침을 꿀꺽 삼키고, 미로가 손끝을 노려보았다.
‘가올드는, 정말로 죽일 거야.’
천수관세음의 화신이 정상적으로 발휘된다면 에어 건 정도는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마음속에서 가올드를 죽였다는 뜻이었다.
“너.”
미로가 입을 여는 그때, 일행이 등을 지고 있는 절벽 쪽에서 마족의 괴성이 들렸다.
“키에에에!”
아직 핵심 전장과는 거리가 있지만 중부 대륙에서 마족은 어디에나 있었다.
“쳇! 움직여요!”
강난이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가올드와, 줄루, 미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두두두두두두!
마치 폭포수처럼 마족들이 절벽을 타고 쏟아지고, 비행 능력을 가진 자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에어 건!’
가올드는 미로에게 겨누었던 손을 돌려 절벽을 향해 공기 탄환을 쏘았다.
콰아아아아앙!
단 한 발로 절벽이 파괴되었으나 마족들은 연기를 헤치고 끝없이 밀려들었다.
‘대략 10만은 넘겠군.’
아마도 어딘가로 이동하던 중인 듯했다.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