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44
‘이렇게 차이가 난단 말인가?’
대천사에 대해 모르지 않지만, 같은 대천사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무력이었다.
‘이것이 유리엘.’
전투력에 있어서는 천사장 이카엘과 맞먹는다는 소문이 과장이 아니었다.
달마가 물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파괴.”
유리엘이 수도사들을 가리켰다.
“신을 배신한 자, 재앙을 맞이하리라.”
“우리들의 신이 아니오.”
“신은 오직 하나다.”
지극히 단순한 논리로 무장한 유리엘을 설득시킬 방법은 없을 터였다.
“싸우겠소.”
달마의 뒤로 수도사들이 전의를 가다듬었다.
“인간은 참으로 이상하군.”
미로가 시공의 장벽을 만들어 천국의 군대를 막은 뒤부터 생겨난 의문이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겠다고?”
“당신은 모르겠지만…….”
달마가 두 다리를 구부렸다.
“인간의 삶에 이길 수 있는 싸움 같은 건 없소.”
달마를 위시한 모든 수도사들이 돌진하는 모습을 유리엘은 지켜보았다.
“그런가.”
천국의 군대를 막아서던 미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싸우는 건가.”
무언가를 원망하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던 모습.
“과연 그렇다면.”
수도사들이 악을 질렀다.
“우아아아아아!”
사법 광륜 라그나로크가 회전하는 것과 동시에 유리엘의 육체가 움직였다.
“참으로 가련하다.”
지상에서 치솟은 백색 전기가, 수십 킬로미터 반경의 회색 구름을 관통했다.
“저기다!”
줄루의 소환수 카이드라에 타고 있는 미로가 남극대륙의 중심에서 솟아오른 번개를 가리켰다.
“세상에…….”
강난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아직 육지에 진입하지도 않았건만 역전하는 번개가 두 눈에 똑똑히 보였다.
‘크기를 봤을 때, 이미 끝났어.’
천국의 군대가 시온을 점령했다면 이대로 돌진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미로 씨, 작전을 바꿔서…….”
“아니야!”
미로가 강난의 말을 끊었다.
“살아 있을 거야.”
전부는 아니라도, 생존자가 1명이라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할 수 없다.
“속도를 올리겠다요.”
줄루의 눈동자가 심연으로 빨려들면서 카이드라가 괴조음을 내질렀다.
끼야아아아아!
강풍을 맞으며 남극대륙으로 진입했으나, 이미 대륙은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다.
‘설령 대천사라도 이런 위력은 불가능해.’
미로는 직감했다.
“유리엘.”
시온에 도착할 무렵, 온몸이 땀에 젖은 줄루의 동공이 위로 올라갔다.
“줄루 씨!”
의식을 잃은 줄루를 강난이 부축하는 순간, 카이드라가 허공에서 사라졌다.
“크윽!”
엄청난 관성에 이끌려 땅으로 추락한 강난이 대퇴근을 부풀리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크으으으……!”
빙판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한 강난이 황급히 몸을 뒤틀었다.
칵 소리를 내며 이동을 멈춘 그녀는 시온에 생긴 파괴의 장관을 눈에 담았다.
피를 머금은 빙판 사이로 수도사들의 시신이 너덜너덜하게 걸려 있었다.
“왔군.”
“깨갱! 깨개갱!”
유일한 생존자 아리우스가 유리엘의 발에 가슴을 밟힌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유리엘.”
“천국에 왔던 여자로군.”
당시 가올드와 미로, 강난의 관계에 흥미가 있었기에 놀라운 일이었다.
“화해라도 한 건가?”
“아니. 일시적 동맹이지.”
미로가 강난을 지나쳐 걸어왔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거든.”
“크릉! 크르르릉!”
주인의 등장에 아리우스가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몸부림을 치자, 유리엘이 다리를 들었다.
“컹! 컹!”
곧바로 몸을 돌린 아리우스가 미로의 다리에 뺨을 비비자 그녀가 몸을 낮췄다.
“잘 지키고 있으라고 했잖아. 이게 뭐야?”
아리우스가 말했다.
“도망치십시오.”
“…….”
오랜만에 나온 인간의 말에도, 미로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유일하게 미로의 내면을 탐색했던 아리우스이기에 알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속의 균열.’
가올드에 대한 마음은 이제 균열을 넘어 거대한 틈새로 자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괜찮아.”
가올드는 이렇게 말했다.
“선택을 해야 될 때가 온 것뿐이야.”
불과 열 걸음 떨어진 유리엘에게 다가가며, 미로는 자신의 생을 정리했다.
대부분의 것들은 쉬웠지만, 유독 떨어지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마음속의 균열.’
왜 생겼을까?
‘그런 남자 질색이라고 생각했는데.’
애초부터 균열이 없었다면 이토록 마음이 커지지도 않았을 터였다.
“미로, 그만.”
강난의 말에 걸음을 멈췄을 때에는, 어느새 유리엘이 눈앞에 서 있었다.
“정리가 안 돼서 그러는데, 조금만 더 시간을 줄래?”
강난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정리? 지금 이 상황에…….”
“그럴 필요는 없다.”
말을 끊은 유리엘이 무심하게 극락곤을 쳐들었다.
“어차피 파괴될 테니까.”
일단 부숴 버리면, 미로에 대한 흥미도, 그녀의 존재도 의미는 없다.
“하아. 아쉽네.”
살기를 머금은 극락곤을 올려다보며, 미로는 생애 처음으로 초조함을 느꼈다.
‘이것만은 정리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왜 균열이 생긴 것이냐고?
“빨리 피해, 이 멍청아!”
극락곤이 공기를 불태우며 회전하자, 강난이 사납게 소리치며 땅을 박찼다.
미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 네가 맞았어.”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와중에도, 미로는 가올드가 있는 곳을 향해 돌아섰다.
“너……!”
강난의 말이 끝나기 전에.
“가올드.”
미로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너 좋아한다, 짜샤.”
그리고 이제.
‘안녕.’
눈을 감는 미로의 정수리 위로 극락곤이 떨어지고, 강난은 시간이 느려지는 기분이었다.
‘닫는다.’
가올드로 인해 산산조각 파괴되었던 마음이 깨끗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아아…….’
아리우스는 보지 않고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만큼 경이로운 태동.
‘지운다.’
미로에게는 세상 전부와 맞먹는 고통이었다.
‘미안해, 가올드.’
이런 아픔이라니.
한순간도 제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기분이 심장을 할퀴었다.
‘날 용서하지 마.’
번쩍 눈을 떴을 때, 미로의 눈에서 붉은 피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미로의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태우면서 지나간 극락곤이 다시 한 바퀴를 돌아올 무렵.
‘화신술.’
미로의 등 뒤에서 수천 개의 팔이 돋아나기 시작하며 극락곤을 움켜쥐었다.
“응?”
예비 동작조차 없이 극락곤이 멈추자, 공기가 파열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극락곤을 붙잡았다고?’
미로의 마음에 실금처럼 새겨져 있던 균열이 바람에 날리듯이 지워졌다.
천수관세음-전천투영.
유리엘을 향해 돌아선 미로의 옆구리에서 수만 개의 팔이 튀어나왔다.
완전무결한 시야를 얻은 미로의 눈이 번뜩이고, 좌우에 펼쳐진 손바닥이 연달아 유리엘을 강타했다.
드드드드드드드드!
찰나를 비집고 들어오는 끝없는 공격이 유리엘을 진동시키더니 마지막 한 방을 후려쳤다.
“크으으으!”
옆으로 튕겨 나간 유리엘이 땅을 긁으며 지나가는 중에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정신이…….’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성광체가 충격을 소화하지 못하고 크게 흔들렸다.
“커억!”
한쪽 무릎을 꿇은 유리엘이 고개를 들자 미로가 손을 털며 다가왔다.
“후우.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이미 말라 버린 피눈물이 뺨에 새겨진 미로가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영점이 잘 안 잡히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오메가 (3)
강난의 표정이 충격에 잠겼다.
“미로……. 당신…….”
천수관세음의 화신이 하늘을 가득 채운 크기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아. 아아아.”
아리우스의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의심할 여지 없는 완벽이다.’
미로의 정신에 침투했을 당시에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했다.
인간을 초월한 극상의 지고지순함에 두 눈을 뽑고 기꺼이 개가 되지 않았던가.
“큭큭큭. 큭큭큭큭!”
그것마저 뛰어넘었다.
“경배하라, 인간들이여.”
천천히 무릎을 꿇은 아리우스가 미로를 향해 납작 엎드려 절을 했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야말로 인류의 극선.”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아리우스가 고개를 쳐들고 소리치는 순간.
“대자대비하신 아드리아스……! 컹!”
미로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그의 턱을 발로 후려쳤다.
“아, 좀 시끄러! 영점 안 맞아서 짜증 나는데 시끄럽게 쫑알쫑알!”
“끼잉! 낑!”
아리우스가 턱을 붙잡고 우는 가운데, 강난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