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45
“어떻게 된 거야?”
미로의 정신이 복구된 것은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씁쓸했다.
“보다시피.”
강난을 향해 웃고 있는 미로의 얼굴에서는 한 점의 트라우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끝났어.”
더 이상 미로의 마음에 가올드는 없었다.
“…….”
마음이란 한순간에 바뀌는 것.
하지만 지금의 변화를 위해 미로가 무엇을 감당했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나는 그럴 수 없으니까.’
강난은 미로처럼 할 수 없었다.
“이제 편해졌어. 앞으로 세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지켜보기나 하라고.”
수많은 수도사들이 죽었지만, 더 이상 미로의 마음에 상처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 계속해 볼까?”
미로가 소매를 걷으며 다가가는 곳에 어느새 정신을 회복한 유리엘이 있었다.
“계속? 내가 무언가를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미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확실히 쪽팔린 공격이었지만…….’
극락곤에 당하기 직전 마구잡이로 반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피해가 없을 줄은 몰랐다.
“호호! 말은 잘하네. 내 무한 싸다구를 얻어맞고 정신을 못 차리던데?”
“그랬지.”
유리엘은 담담했다.
“인간들도 그렇지 않나? 갑자기 뒤에서 소리를 치거나, 징그러운 벌레 같은 것을 보면 말이야.”
미로가 지지 않고 맞섰다.
“그럼 무릎 꿇은 건 뭐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 휘청거리다가 주저앉은 거.”
“그건…….”
유리엘은 말을 멈췄다.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지만,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자괴감이 들었다.
“상관없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라. 이번에야말로 너를 파괴할 테니까.”
“너도 정상은 아니야.”
미로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카리엘의 대칭성이라 무식한 건 알겠지만, 사실 천사가 무식하다는 건 좀 그렇잖아?”
“무슨 뜻이지?”
“카리엘은…….”
탄생의 대천사를 떠올린 미로가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진짜 소심함의 극치잖아. 마마보이에, 뒤끝도 엄청 심하고. 반대로 당신은 굉장히 대범하단 말이지. 그래서 속에 담긴 것을 꺼내지 못하는 거야.”
미로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당신을 이해해. 파괴라는 것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문제 해결 능력이거든. 인간은 살아가며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지. 예를 들어 라이벌이 생겼어. 그렇다면 카리엘은 그를 뛰어넘는 수많은 전략을 모색할 거야. 반대로 당신은, 그냥 없애 버리면 끝이지.”
미로가 손을 좌에서 우로 휘저었다.
“살인을 하면 군대가 출동할 거야. 그럼 군대를 없애면 돼. 감옥에 갇힌다? 감옥을 없애면 돼. 당신을 비난하는 자를 없애고, 왕을 없애고, 국가를 없애고…….”
가장 단순하고 강력하다.
“그렇게 다 없애 버리면 끝. 더 이상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힐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지. 그래서 당신의 파괴에는 감동이 없는 거야.”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군.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너희들처럼 사고하지 않아.”
미로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렇다면 왜 카리엘은 이카엘을 증오했지?”
“…….”
“당신도 마찬가지야. 카리엘이 집착했다면, 반대로 당신은 외면하고 있는 거야.”
“무엇을?”
“이카엘.”
천수관세음의 공격에 흔들렸던 유리엘의 성광체가 다시 한 번 진동했다.
‘솔직해서 좋네.’
미로가 말을 이었다.
“아마도 충격이었겠지. 지고지순의 상징, 모든 대천사의 어머니 이카엘이 한 인간을 사랑했다는 사실이.”
맥클라인 거핀.
“앙케 라가 기록을 지웠지만, 이미 그때부터 너희들은 맛이 간 거야. 카리엘은 집착했고, 당신은 도망치는 거지.”
미로가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계속되는 의문. 왜 이카엘은 인간하고 응응한 것일까? 자꾸 생각이 나서 미쳐 버리겠지?”
“……너는 안다는 건가?”
“모르지. 하지만 기회를 줄 수는 있어.”
미로가 두 팔을 벌렸다.
“나는 어때? 이제 공식적으로 싱글인데.”
강난의 눈에 불이 켜졌다.
‘성격파탄자 같으니라고.’
시온에 오기 전만 해도 가올드의 걱정으로 세상도 포기할 것 같더니.
유리엘이 극락곤을 돌렸다.
“죽어라, 미로.”
“또 도망친다.”
유리엘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빙판이 펑 하고 치솟으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우오오오오!”
원반의 형태로 회전하는 극락곤을 천수관세음의 거대한 손바닥이 내리찍었다.
“파고들지 않으면 알 수 없어. 파괴하는 것으로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고.”
“해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유리엘의 성광체가 확장되면서 엄청난 속도로 정보가 집적되기 시작했다.
“문제를 제거하면 그만이니까.”
사법 광륜 라그나로크가 발동되면서 백색의 뇌전이 유리엘을 직격했다.
미로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 잠깐만…….”
유리엘이 섬광으로 질주하는 것과 동시에 미로의 발밑에서 황금빛 새가 날아올랐다.
‘포스메터리.’
의식을 되찾은 줄루가 미로를 시공간에서 이탈시키자마자 카이드라를 소환했다.
“타라.”
강난이 미로를 끌어오고 아리우스가 올라타자, 괴조가 무음으로 비행했다.
“후우, 언제부터 깨어 있었대?”
미로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주저앉자 강난이 기어와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 미친 여자야! 상대를 도발해? 정말로 전쟁을 이길 생각이 있긴 한 거야?”
“당연히 이겨야지.”
미로가 강난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대천사는 강해. 카리엘에게 통했던 방법을 써 본 것뿐이야. 절반은 성공한 것 같은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미로가 씩 웃었다.
“그 녀석, 나한테 관심 있거든.”
천국에 끌려갔을 때 깨달은 사실이었다.
“물론 흥미 이상은 아니겠지. 하지만 알잖아, 때로는 작은 균열이…….”
미로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주체할 수 없이 커지기도 하는 거니까.”
강난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이제 가올드는 잊은 거야?”
“가올드? 그게 누구야?”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미로의 모습에 강난이 이를 뿌득 갈았다.
“내가 말해 줄까? 너는 극선이 아니라, 그냥 인성 쓰레기에 제정신이 아닌 구도자야.”
아리우스가 끼어들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거대한 정신 앞에서 범인의 감정이란 한낱 세속의…….”
“넌 닥치고 있어. 뭘 잘한 게 있다고. 덕분에 시온 전력이 박살 났잖아.”
아리우스가 몸을 움츠리자 줄루가 물었다.
“이제 어떡할 거지?”
“솔직히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아. 내가 없으면 인류에 치명적이니까. 사실 그래서 유리엘하고 결판을 내지 않은 부분도 있어.”
강난이 물었다.
“이길 수 없었다는 거야?”
“흐음, 상당히 미묘한데. 열 번 싸우면 다섯 번은 이기고 다섯 번은 지려나? 하지만 실전은 다음 기회라는 게 없으니까, 내가 죽었을 수도 있지. 물론 영점이 잡히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미로가 손을 들고 강조했다.
“어쨌든 승부를 보는 건 많은 것들이 결착이 났을 때이어야 한다는 거야. 지금 우리에게는 장수 하나 쓰러트리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잖아.”
“어떤 문제?”
“시로네.”
줄루가 고개를 돌렸다.
“천국의 군대는 나네를 찾고 있을 거야. 우리도 시로네를 등에 업고 싸우지 않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어.”
강난은 이해했다.
“그럼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시로네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야겠지. 그리고 뭔가 하고 있는 중이라면…….”
천국의 군대가 시온을 칠 동안 시로네가 오지 않은 게 의문이었다.
“시간을 벌어 주는 수밖에.”
줄루가 말했다.
“중부 대륙으로 가겠다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가운데, 미로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정말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
***
시로네는 끝없이 오메가를 받아들였다.
모든 시간, 모든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의 신호로 뇌리에 쌓이고 있었다.
‘가이아인. 정말 대단한 종족이다.’
미싱 링크에 의해 기억을 잃어버린 태초의 가이아인들은 끝없이 번성했다.
원시를 지나 시로네가 살고 있던 시대의 문명을 뛰어넘어 최첨단의 과학 문명까지.
하지만 물질의 발달은 앞으로 그들이 도달할 정신의 발달에 비하면 편린에 불과했다.
‘감각이 확장된다.’
시간, 공간, 영적 세계, 통일장,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이 경이로웠다.
그리고 마침내.
오메가 133년.
세계를 이루는 신호의 13.3퍼센트 지점에서 가이아인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요르함, 좋은 아침이군요.”
“특별한 아침이지요.”
그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 구조물 속으로 수많은 가이아인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계급도 없고, 삶의 우열도 없다.
지긋지긋한 반목과 갈등의 끝에 얻은 것은, 생명과 생명 사이의 온전한 평화.
그들에게 더 이상 인간은 지옥이 아니었다.
“오늘은 우리의 인류, 가이아의 역사에 가장 큰 의미를 갖는 날이 될 것입니다!”
요르함이 소리쳤다.
“수없이 싸웠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모든 것을 깨달았고, 이제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참석한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지만, 요르함의 말이 거슬리는 자는 없었다.
“가이아인을 대표로 이 자리에서 공표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
요르함이 돌아서며 가리킨 곳에, 구조물의 크기와 똑같은 거대한 기계장치가 있었다.
“영생 프로그램! 아르고입니다!”
수많은 패널에서 빛이 들어오더니 장치 꼭대기의 구체가 중력을 무시한 채 내려왔다.
잠시 회전하던 구체가 방향을 잡고 멈추더니, 표면이 벗겨지며 거대한 렌즈가 드러났다.
“안녕하십니까. 유토피아의 윤회 관리자, 아카식 레코드 아르고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여러분의 윤회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사명에 따라 기능합니다.”
가이아인들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앙케 라의 생물학적 모델을 이용해 만들어진 아르고는 그들을 영생의 세계로 인도할 터였다.
요르함이 말했다.
“이것으로 이 세계에서 우리의 사명은 끝났습니다. 연결되고, 이어 나갑시다. 우리가 깨달은 모든…….”
“왜 그래야 하죠?”
누군가의 목소리에, 구조물에 있던 모든 가이아인이 고개를 돌렸다.
반론.
어쩌면 몇백 년 만의 반론일 수도 있었고, 통합적 정신 체계를 이룩한 그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지금…… 뭐라고…….”
요르함은 구석의 상자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가이아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우리가 책을 읽어?’
모든 지식을 섭렵한 종족이 텍스트를 관찰한다는 것 자체가 의아한 일이었다.
“그렇잖아요. 끝없이 이어지는 차원의 공겁. 이것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지루하지 않아요?”
가이아인이 술렁거렸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아니,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너도 알고 있지 않으냐?”
요르함이 말했다.
“거핀.”
거기까지 오메가를 탐색한 시로네의 의식이 한순간 강하게 집중되었다.
‘저 사람이 거핀이라고? 하지만…….’
분명 말소되지 않았던가?
“그래요.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기에, 이것은 명백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책을 덮은 맥클라인 거핀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