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46
“모두 같은 생각이잖아요? 저랑.”
오메가 133년.
가이아인은 인종, 문화, 성별, 종교, 개성을 초월한 통합적 정신 체계를 이룩했다.
오메가 (4)
‘그렇구나.’
시로네는 발할라 액션의 채무로 아포칼립스에 떨어졌을 때 아르고를 만난 적이 있다.
또한 그렇다는 것은, 현실에서 영생 프로그램이 발동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물론 시로네가 그 기억에 닿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오메가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공겁은 무한하지 않아.’
이미 가이아의 사유를 깨달았기에 경험하지 않고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끝없이 시간을 쪼갠다고 해도 결국 상위 차원의 시간은 흐르기 때문이지.’
문득 미궁 안드레의 제19000번 세계에 들어갔던 참혹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모든 인간이 이성을 잃고 좁은 통로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살아가던 모습.
어쩌면 그것이 영생 프로그램이 가져다줄 인류의 최후일지도 모른다.
‘영생 프로그램은 영원할 수 없어.’
그렇기에 거핀은 윤회의 굴레를 끊고 상위 차원으로의 도약을 모색한 것이었다.
‘하지만 앙케 라는 바깥 세계를 인정하지 않아.’
결국 가이아인의 탈출을 방해할 것임은 시로네가 살던 시대가 증명하고 있었다.
‘전쟁의 시작이다.’
다른 말로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흐음.”
요르함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여야 하는가?”
대답은 없었으나, 가이아인에게 대답이란 딱히 필요한 소통수단이 아니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거핀이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을 둘러보았다.
“갑시다, 세상의 끝으로.”
말이 끝나는 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가이아인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우아아아아!”
거대한 함성 소리가 벽을 뒤흔드는 가운데 요르함이 큰 소리로 외쳤다.
“가이아인은 무한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시로네는 이 결정으로 인해 가이아인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를 것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이미 각오하고 있어.’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이기 때문에.’
나이도, 성별도, 성향도 제각각이지만, 그들의 사유는 완벽한 기준으로 관철되어 있었다.
서로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용족과는 질적으로 다른 통일이었다.
‘지성의 극치.’
전 세계의 인류가 오직 나를 지지하고, 그 나라는 개인이 다시 전체가 되는 기분은 어떨까?
‘멋있구나.’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그것을 행한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것을 떠안아야 했던 시로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도 저곳에 있고 싶다.’
가이아인의 무리 속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너무 힘들어. 너무 외롭다.’
언젠가는 시로네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인류도 하나로 통합되는 날이 올 것이다.
수없이 갈등하고, 반론에 반론을 거듭한 끝에, 해답을 찾을 날이 올 것이다.
‘싸워야 해.’
시로네는 눈물을 훔치고 오메가를 더듬었다.
수많은 개성들이 나름의 방법으로 가이아의 새로운 출발을 자축하고 있었다.
“무한을 넘어.”
오메가의 신호 속에서, 거핀의 음성이 시로네의 뇌리에 스며들었다.
***
생물체가 사라진 남극대륙에 홀로 남은 유리엘은 미로의 말을 곱씹었다.
‘내 파괴에는 감정이 없다고?’
우주 최강의 대천사인 자신이 언제부터 인간의 말에 휘둘리게 된 것일까?
그럼에도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이유는, 그녀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천사 이카엘이여.’
탄생과 파괴의 대천사, 카리엘과 유리엘에게는 오직 그녀만이 원인이었다.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든 상관하지 않소.’
다만 경이로운 것은, 대천사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그 자체였다.
“사랑이라는 게 뭐지?”
그것에 집착하여 수없이 사유했던 카리엘은 결국 자멸하고 말았다.
‘그래도 깨달았을까?’
유리엘의 유일한 파트너는, 소멸의 직전, 그토록 원했던 해답을 찾았을까?
‘불쾌하다.’
아드리아스 미로.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느낌이 성광체를 어지럽혔다.
“다음에는 죽일 것이다.”
파괴가 아닌 살인으로.
사법 광륜을 개방한 그가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파괴의 개념을 집적시켰다.
“이러면 되었느냐, 인간이여?”
백색의 섬광이 내리치는 순간, 유리엘의 몸이 남극대륙을 관통했다.
쿠르르르르르릉!
그 위력은, 행성 역사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충격이었다.
***
“헉!”
단말마의 소리조차 전부 새어 나오기 전에 태성이 눈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태성이시여!”
대지성전에 모여 있던 4명의 오대성이 황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
“정신 차리십시오!”
어차피 행성의 화신이지만, 지금은 그 화신조차 소멸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말도 안 돼.”
대지성전의 발밑으로 보이는 행성에서 남극대륙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만타가 말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저런 놈들이 이곳에서 날뛰면 멸망도 시간문제지.”
“프리드…….”
태성의 목소리에, 그녀를 부축하고 있던 프리드가 황급히 고개를 내렸다.
“정신이 드십니까?”
“시간이 없어요. 이대로는 행성이 작동을 멈출 겁니다. 저를 중부 대륙에 데려다주세요.”
“중부 대륙?”
미네르바가 눈썹을 올렸다.
“굳이 태성께서 전쟁터에 가실 필요는 없어요. 상아탑의 별만으로 충분합니다.”
“아뇨.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프리드가 물었다.
“시로네 말입니까?”
“아뇨.”
고개를 저은 태성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오젠트 리안. 그를 만나야 합니다.”
***
대기권을 돌파하는 운석처럼 시뻘겋게 달구어진 육체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개자식들이…….”
십로회의 서열 2위 손유정.
“내 친구를 괴롭혀?”
보통의 생명체라면 이미 몸이 타들어 가야 정상이건만, 그녀의 온도는 끝없이 높아지고 있었다.
“저기다.”
극악 사탄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족히 2억에 달하는 지옥의 군대가 한데 뭉쳐 전진하는 광경이 하늘 꼭대기에서도 보였다.
“침입자다!”
하늘을 경계하는 마족들이 불이 붙은 삼지창을 들고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흥, 요괴들인가.”
1만 년이 넘는 시간을 살면서 이면 세계의 마족들은 질리도록 접해 보았다.
“여의.”
그녀의 붉은 곤봉이 빠르게 회전하는 순간 엄청난 길이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적풍차.”
직경 4킬로미터에 이르는 곤봉이 회전하자 하늘이 진한 적색으로 물들었다.
늘어날 수 있는 길이는 사용자의 스케일이 허용하는 범위와 정확히 일치.
“저리 비키란 말이야!”
이론상 무한에 가까웠고, 장력의 소실 없는 여의봉이 마족들을 쓸어 담았다.
“뭐지?”
심연의 절벽에 들어온 하비츠 일행이 동시에 하늘 저편을 돌아보았다.
“허.”
지상에서도 똑똑히 보이는 거대한 붉은 구체가 마족들을 쓸어 담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발칸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크기가 문제가 아니군.’
아니, 어쩌면 크기가 문제일까?
대략 추정해도 4킬로미터의 곤봉을 잔상을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휘두르는 완력이었다.
“오고 있습니다.”
유정이 마족을 발로 밟은 채로 땅에 추락하자 마치 빙판 위처럼 미끄러졌다.
“크아아아아!”
얼굴이 갈린 여단장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사망하고, 유정이 적들을 향해 돌아섰다.
마치 달구어진 바위가 떨어진 것처럼 주위의 온도가 뜨거울 정도로 올라갔다.
“후우우우.”
마족들은 유정의 입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탄, 나와.”
“…….”
발칸은 생각했다.
첫째, 군중기를 읽을 수 없는 것을 보아하니 혼자서 온 것이 분명하다.
둘째, 그럼에도 위험하다.
“빨리…….”
유정이 크게 숨을 불어 쉬더니 두 주먹을 쥐고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나오란 말이야아아아아!”
공기가 찢어질 듯한 목소리에는 폭력을 상징하는 야수성이 묻어 있었다.
발칸이 미간을 찌푸리며 유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는 가운데, 말 한 필이 앞으로 나갔다.
“내가 사탄인데?”
하비츠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야?”
유정도 이 순간에는 목소리를 죽였다.
동물적 후각이 태고의 태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혼돈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뭐, 좋아.”
여의봉을 손가락으로 돌리는 것과 동시에 유정의 몸이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일단 두들겨 패 놓고…….’
어느새 하비츠의 앞으로 다가온 그녀가 옆구리를 노리며 봉을 휘두르는 순간.
‘어라?’
흐릿한 잔상에 이어, 눈꺼풀이 잘려 나간 소녀가 유정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손등으로 여의봉을 밀어낸 나타샤가 자세를 숙이며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막았어.’
유정은 섬뜩했다.
대부분의 마족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인지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만이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렇다 이거지?’
유정이 봉을 찌르자,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공기의 주름이 선명하게 보였다.
상체를 뒤틀면서 공격을 피한 나타샤가 유정의 복부에 정권을 질렀다.
‘뭐가 이렇게 단단해?’
생물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강도에 오히려 주먹이 부서질 지경이었다.
‘흥, 고작 이딴 주먹으로…….’
복부에 힘을 밀어 넣은 유정이 봉을 거두어들이며 재차 반격을 하려는 순간.
‘이런!’
여전히 유정의 배에 주먹을 대고 있는 상태에서 나타샤가 땅을 박차며 팔을 굽혔다.
마치 망치로 못을 때리듯, 자신의 골반으로 팔꿈치를 후려치자 유정의 몸이 크게 밀려났다.
‘됐다!’
적의 밸런스를 흐트러트린 나타샤가 마하의 속도로 날아가 연격을 퍼붓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