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48
하지만 오메가의 기록에 의하면, 공교롭게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가 보려고.”
꽤나 지루한 시간이 되겠지만.
“키아아아!”
코 위쪽으로 머리가 날아간 아귀들이 긴 팔을 뻗으며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먹는다! 먹는다!”
이면 세계의 주민들은 지옥에 들어온 자에게 고통을 기반으로 하는 행위를 가한다.
‘그런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
현실에 사용되는 정신은 드리모로, 감정은 이면 세계에 흘러들어 순수한 상태로 해체된다.
‘정보의 재활용을 위해.’
애초부터 그런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나쁘지는 않아.”
거핀이 몸을 일으키자 금빛으로 달구어진 머리카락에서 뚝뚝 불똥이 떨어졌다.
“먹을 거야!”
아귀들이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거핀의 몸에서 야훼의 광채가 번뜩였다.
“크아아아아아!”
빛에 휩싸인 아귀들의 육체가 가루로 분해되고, 불길마저 깡그리 잠재웠다.
시로네는 감탄했다.
‘무한의 마법사.’
마법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부터 가이아인은 현상을 지배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직 거핀만이 영겁의 윤회를 통해 야훼의 경지에 도달했다.
“특별해져 버렸지.”
파계.
이 세계의 밸런스를 깨는 현상이라면 무엇이든 지옥에 끌려갈 수 있다.
이미 세상을 등진 동지들을 떠올리며 거핀은 기꺼이 고통에 몸을 맡겼다.
“내가 이끌겠다.”
훗날 가이아인의 대표로서 앙케 라와 마주하게 되는 거핀의 첫걸음이었다.
***
지옥으로 끌려가는 유정이 이빨을 드러내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키아아! 키아아아!”
사나운 원숭이의 일갈이 시옥의 장송곡에 파묻혔으나, 놀랍게도 상반신이 다시 빠져나오고 있었다.
“호오.”
하비츠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빠져나온다고?’
일단 지옥에 들어가면 정화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돌아올 수 없다.
유정도 그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에 사력을 다해 버티는 것이었다.
“개자식! 죽여 버릴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손오공의 증손녀.
금안이 폭발할 듯이 빛을 발하면서 유정의 몸이 붉게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마음만 먹으면 부처도 이기는 돌원숭이다!”
화신을 깨달아 생물의 경지에 올랐지만, 사실 그녀의 이데아는 무기질이다.
어떤 물리력에도 파괴되지 않고, 발산할 수 있는 에너지에도 한계는 없었다.
“키아아아아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오브제 가 현실과 지옥의 경계선에 수평선으로 뻗어 나갔다.
‘움직여라! 움직여!’
그녀의 육체가 백색으로 타오르자 시옥의 장송곡이 더욱 거대하게 울려 퍼졌다.
“좀……!”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유정이 턱을 끝까지 벌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닥쳐어어어어!”
여의봉이 현실과 이면 세계를 넘나들며 회전하자 땅이 해일처럼 출렁거렸다.
***
“뭐, 뭐야?”
성전의 건물이 뒤흔들렸다.
지휘관실에서 전략을 검토하던 이루키가 놀란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금이 가고 있습니다! 피하십시오!”
아로미가 이루키에게 소리치는 그때, 문이 열리면서 전령이 들어왔다.
“총군사님! 긴급 속보입니다!”
“무슨 일이에요?”
48시간 내로 마족을 섬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변수가 생긴다는 자체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국토방위부에서 강진을 관측했습니다. 진원은 심연의 절벽, 규모는 12.4입니다.”
“뭐!”
이루키가 테이블을 치며 일어섰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심연의 절벽은 조산대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규모 12.4라고?
이루키의 머릿속에서 그 정도 규모의 강진이 일어났을 때의 상황이 그려졌다.
‘땅을 찢어 버리는 수준인데.’
처음에는 지리학적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부디 자연의 심술이기를 바랐다.
‘그래, 자연재해야. 어떤 의지를 가진 자가 이런 위력을 낸다는 건 말도 안 돼.’
이루키가 분석한 세계 전력 누구를 통틀어도 불가능한 파괴였다.
“총군사님.”
아로미의 눈빛을 확인한 이루키는 정신을 차리고 입술을 짓깨물었다.
‘그래, 맞아.’
자연재해일 리가 없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뇌리에 달라붙어 있던 불길한 느낌. 그게 현실로 닥친 거야.’
지휘관이 물었다.
“총군사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심연의 절벽의 피해 규모를…….”
이루키는 말을 끊고 고개를 흔들었다.
딱히 확인할 필요도 없이, 이미 마족들의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붕괴됐을 터였다.
‘그래도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어.’
원소 폭탄을 터트릴 최적의 위치를 잃은 이루키는 세계 지도를 돌아보았다.
“작전을 실행할 두 번째 장소는…….”
지휘봉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이루키의 손끝이 무섭게 떨리고 있었다.
“토르미아의 수도, 바슈카.”
왕국의 인구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대도시였다.
대면 (2)
***
슈라의 눈은 퀭했다.
“차라리 날 죽여라.”
밤새도록 이어지는 나네의 불경에, 이제는 산천초목이 벌벌 떨고 있었다.
게슈탈트의 능력으로 만든 쉼터의 외곽에 처박혀 있지만 소리는 조금도 옅어지지 않는 듯했다.
쿠르르르르르.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진동에 슈라는 오랜만에 정신을 되찾았다.
“응?”
지진파가 빠른 속도로 밀려들면서 슈라가 있는 곳으로 파고들었다.
게슈탈트가 붕괴되면서 거짓의 장막이 사라지자, 바슈카까지 뻗어 있는 산맥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부처의 뒤를 따르며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배운 그녀였기에 짐작하는 사실은.
‘자연 발생이 아니야.’
이 정도의 강진이 해안가에서 시작되었다면 쓰나미가 대륙을 덮쳐야 정상이었다.
‘파계의 위력이다.’
슈라의 머릿속에 몇몇 인물들이 지나갔다.
‘시로네, 리안, 가올드…….’
하지만 누구를 떠올려도, 대륙을 흔드는 크기의 지진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늘이 열렸다.”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천국의 인물들이 먼저 떠오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알려야 해.’
지금도 불경을 외느라 여념이 없는 나네지만 슈라는 땅을 박차고 그에게 달려갔다.
에이미가 의식을 잃은 채로 잠들어 있는 오두막 내부는 나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마하반야…….”
나네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소리들이 질량을 가진 물질처럼 쌓여 가는 듯했다.
“관자재…….”
나네의 목소리가 뚝 끊기는 것과 동시에 작은 진동이 건물을 흔들었다.
“으음.”
단지 지진을 감지했기에 끊은 것이 아니다.
수많은 깨달음에 강타당하면서도 깨어나지 못하던 에이미의 눈이 신호를 받은 듯 천천히 열렸다.
“……일어나셨습니까?”
정신이 혼미한 그녀는 나네의 목소리가 인간의 언어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여긴 어디지?’
절지동물이 된 것처럼 손발의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눈동자만 좌우로 움직였다.
‘나는 분명…….’
끔찍한 기억이 연달아 떠올랐다.
동료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사단장 파크마를 만나 전멸당했다.
‘베리크.’
그렇게 죽을 인재가 아니었다.
‘나만 살아남았구나.’
한 남자의 호의로 목숨을 건진 상황 앞에서 에이미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나 같은 애가 무슨 군인이야.’
그때 불쑥 나네의 얼굴이 시야에 끼어들었다.
“괜찮아요?”
“…….”
에이미는 잠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구지?’
얼굴에 새긴 온갖 문신 탓에 본바탕조차 알아볼 수 없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눈빛만큼은, 그녀가 알고 있는 그리운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시로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모든 정보가 흘러들어 와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나네!”
놀란 표정의 에이미를 내려다보며 나네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그 나네입니다.”
에이미는 황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으아아아!”
곧이어 근육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고, 결국 도로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다.
“당신은 막 태어난 아이와 같습니다. 고통은 물론이고, 억지로 움직이려고 하다가는 몸이 상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왜 여기에?”
시대의 부처.
세상을 공으로 판단하고 우주를 닫으려는 자를 고운 눈길로 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시로네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명백한 적이었다.
“아직 상태가 좋지 않군요.”
에이미에게 이불을 덮어 준 나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먹을 것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그때까지는…….”
말을 멈춘 나네가 천천히 돌아섰다.
“하아. 하아.”
침대에서 내려온 에이미가 고통에 부들거리는 몸을 지탱하며 노려보고 있었다.
에이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대답해. 왜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거지? 나를 어떻게 한 거야?”
나네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이것저것…….”
하지만 에이미의 표정이 급격하게 싸늘해지자, 곧바로 말을 고쳤다.
“당신은 화계에 잠식당했어요. 의식마저 불태울 정도의 위력이었죠. 그래서 제가 깨웠습니다.”
“깨웠다고?”
에이미에게도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베리크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은 그녀는 삶을 포기하는 대가로 화력을 끌어 올렸다.
“어떻게 깨웠지?”
설명하기에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기에, 나네가 다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일단 쉬세요. 먹을 것을 가져오겠습니다.”
어쨌거나 나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 같았기에 에이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눈을 부릅뜨며 그에게 돌진했다.
‘부처를 없앤다.’
생각해 보면 나네의 존재로 인해 지금의 모든 결과가 나온 게 아니던가?
물론 시로네와의 생이별에 핵심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