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51
대답조차 듣지 않고 몸을 돌려 멀어가자, 슈라가 호미를 던지며 성질을 냈다.
“아우, 짜증 나! 별것도 아닌 게.”
“화계가 별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
슈라는 입을 다물었다.
한때의 에이미는 그저 강한 마법사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하나의 시스템이었다.
‘그때의 불기둥.’
카니안 고원에서 하늘을 뚫고 치솟았던 거대한 불길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렸다.
“쳇!”
슈라가 나네를 쏘아보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잘해 줄 필요 없는 거 아니에요? 언젠가는 우리의 적이 될 거예요.”
“말했잖느냐. 시로네를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한 부처가 될 수 없다. 시로네도 마찬가지야. 아마도 지금쯤 공의 진리를 깨닫고 있을 터.”
“그냥 예뻐서 그런 건 아니고요?”
“하하! 부정할 수 없겠지.”
슈라의 눈이 퀭해졌다.
“무슨 부처가 그래요?”
나네가 슈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쁜 건 예쁜 거지. 진리를 대하는 첫 번째 소양은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의 말은 언제나 옳기에 이번에도 받아들였으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왜 이러지?’
나네가 에이미에게 고백을 한 순간부터 심장을 억죄는 느낌은 무엇인가?
‘부처여, 나는 왜 당신의 곁에 있는 것일까요?’
처음으로, 그 작은 사실이 세계의 비밀보다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슈라는 끝까지 묻지 않았고, 나네는 예의 인자한 미소로 다시 밭을 일굴 뿐이었다.
‘이그나이트!’
화염 마법의 기본인 점화의 전지가 장착되는 순간 에이미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우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막강한 위력.
‘이것이 화신술?’
화염을 다루는 마법사가 아닌 화염 자체가 되어 버린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안 돼.”
카니안 고원에서 시전했던 마법의 위력 정도가 아니면 천국의 군대와 싸울 수 없다.
“후우. 후우.”
이미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기에 첫발을 내딛기가 두려웠으나…….
“간다.”
에이미는 군인이었다.
‘공겁의 관.’
집중점이 끝없이 공겁을 향해 파고들자 뇌가 열린 듯 의식이 멀어졌다.
‘포기하면 안 돼!’
공겁의 관성을 통제하지 못하면 카니안 고원에서처럼 사망에 이를 터였다.
“크으으으!”
홍안의 눈이 초당 30회나 번쩍였지만 통제는 불가능, 불길은 끝없이 커졌다.
‘안 돼! 안 돼!’
통제의 선이 끊어진 것을 깨닫는 순간 불길이 기름을 끼얹은 듯 불타올랐다.
“설법. 진鎭.”
나네의 목소리가 세상을 울리자 화계의 불길이 짓누른 것처럼 가라앉았다.
“허억!”
마치 익사 직전까지 물에 잠겨 있다가 누군가가 머리채를 잡고 끄집어 올린 것처럼.
“하아! 하아!”
에이미의 정신이 세상으로 튕겨 나왔다.
풀린 동공으로 한참이나 숨을 헐떡이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네가 난감한 얼굴로 눈썹 쪽을 긁고 있었다.
“곤란해요. 정신 단련을 권유한 것이지, 사즉생의 각오로 훈련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무슨 상관이야?”
사납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의 설법에 도움을 받았기에 목소리는 작았다.
나네가 뒷짐을 지고 걸어왔다.
“당신의 화신술은 위험해요. 실제로 인간이 자연계의 원소를 화신으로 깨우는 경우는 드물죠. 시로네 같은 경우가 아니면 말이지요.”
헥사 자체가 빛이었다.
“물론 에이미 씨도 특이합니다. 아마도 인간의 정신에 불의 혼이 깃들여 있는 것 같군요.”
‘잭 오 랜턴.’
천국 외곽에서 시로네가 선물해 준 불의 정령은 에이미와 함께 성장해 왔다.
“그게 화신으로 발현되었다는 거야?”
“다른 사람보다 불에 대한 친화성이 높은 상태를 유지해 왔던 겁니다. 물론 굉장한 단련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지만요. 양날의 검이에요.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술자를 다치게 할 겁니다.”
‘화신술은 단순하지 않다.’
마법처럼 반복 훈련을 한다고 강해지는 것이 아님은 조금 전의 시연으로 느꼈다.
‘구도.’
정신을 넘어 마음까지 통제할 수 있는 특별한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명상을 할 수도 없고. 아니, 한다고 되기는 하려나?’
자신이 구도자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에이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나네가 물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됐어. 나 혼자 연구해 볼 거야.”
어제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면 모를까, 더 이상은 나네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심마에 빠진 자를 돕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시로네하고는 상관없어요. 그리고 아마도, 저는 제법 괜찮은 선생일 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옳음에 가까운 자였다.
“알아. 그래도 싫어.”
나네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고집이 세군요. 그럼 힌트를 드리죠. 크게 틀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틀림에 크고 작음은 없지만, 깨달음이란 게 그렇죠. 찰나의 섬광. 조금만 방향을 틀면 순식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순식간에?”
“네. 하기 나름이에요.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고집을 내려 두세요.”
에이미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다시 해 볼까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화신을 완전히 개방해 보세요.”
나네가 오른팔을 벌렸다.
“설법 벽.”
황토색의 벽이 부채처럼 펼쳐지더니 주위의 풍경을 그물처럼 차단했다.
에이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려보자 나네가 어깨를 으쓱했다.
“적어도 제 땅은 지켜야죠.”
“흠, 좋아.”
진언은 전해 듣지 못했지만 화신을 완전히 개방하라는 말에 느끼는 바가 있었다.
‘겁을 먹은 거야.’
이번에야말로 통제할 것이다.
‘공겁의 관.’
홍안이 켜지면서 에이미의 주위로 다시 화염이 괄하게 피어올랐다.
“흐으으으!”
이래서 어려운 거구나.
‘머리로는 알겠는데…….’
깃털보다 가벼운 것이 마음이라고 생각했건만,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정신이 빨려 들어가고.
“허억!”
다시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나네가 만든 방어벽의 천장을 때렸다.
‘여기서 멈춰야…….’
그때 나네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렸다.
“멈추지 마세요.”
뭐라고?
“당신은 불입니다. 모든 것을 태우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아요. 더 커지세요. 끝없이 커지는 것입니다.”
“끝없이?”
찰나의 섬광이 에이미의 뇌리를 스쳤다.
‘그렇구나!’
불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이야아아아!”
에이미는 두려움의 한계를 돌파한 채 무아지경 속에서 화력을 높였다.
‘그래! 타 버려! 전부 다 타 버려라!’
마치 폭탄이 되어 버린 것처럼, 에이미의 정신이 불의 의지에 휩싸였다.
“허어어어억!”
불의 의지가 공겁의 속도를 초월하여 파고드는 순간 거대한 카타르시스가 밀려들었다.
“그래요.”
나네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겁니다.”
에이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에 보인 것은 자신의 주위를 감싸는 화염이었다.
“이것이…….”
크기는 작았으나 불길은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사방을 겨누고 있었다.
“불의 의지.”
나네가 수도를 세우며 말했다.
“화계의 진의는 불이 자신을 삼키기 전에 스스로 불이 되는 것. 화계를 제압하는 건 더욱 거대한 화계임을 기억해 두세요.”
“해…….”
나네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던 에이미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해냈다! 내가 해냈어!”
불을 지배했다.
마법학교 시절부터 간절히 꿈꿔 왔던 경지에 비로소 도달하게 된 것이다.
“내가, 내가 해냈어! 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방방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네가 흐뭇하게 웃었다.
“정말로 마법을 좋아하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에이미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결국 도움을 받았잖아.”
“당신이 해낸 겁니다. 저도 한때는 마법사였기에 얼마나 간절한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몇 마디 말을 건넸다고 해서 그걸 도움이라고 하지는 않아요.”
“부처의 말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솔직히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목숨을 걸고 따르지 못했을 거야.”
“그렇게까지 파고들면…….”
나네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이자 에이미도 조금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호의는 호의로 받아야지.’
“정말로 사심은 없어요. 목숨을 건 것은 당신이고, 어떤 구도자도 길을 잃은 중생을 외면하는 경우는…….”
“고마워.”
에이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도움을 받은 걸로.”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잠시 눈을 깜박이던 나네는, 문득 깨달았다.
‘그렇구나.’
조금은 시로네를 이해한 기분이었다.
결국 인간 (1)
에이미와 나네는 모닥불을 피웠다.
근처 강에서 잡은 물고기가 나무 꼬챙이에 끼워진 채로 노릇노릇 익어 가고 있었다.
‘맛있겠다.’
뇌의 신호를 받은 에이미의 배가 꼬르륵 소리를 냈다.
“윽.”
나네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식사가 조촐했죠.”
고열량의 군대 음식을 먹던 에이미에게 나네의 식단은 확실히 부실했다.
“편하게 얘기해. 나이도 비슷하잖아.”
“제가 두 살 어릴 겁니다.”
시대의 부처라면 재능은 물어볼 필요도 없지만, 막상 나이를 듣자 속이 쓰렸다.
“이제 갓 성인이네? 진짜 천재구나.”
“시간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아니, 시간의 문제지. 생각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거니까.”
나네가 뇌 기능을 풀로 활용할 경우, 시간은 정지 상태에서 거의 흐르지 않는다.
“너무 띄우지 마세요. 시로네 씨의 통찰력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그의 사유는 논리를 뛰어넘습니다.”
에이미의 표정이 다정하게 변했다.
나네가 시로네를 인정하는 말을 듣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안 싸우면 안 돼?”
세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어쩌면 해답은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로네하고 대화로 풀 수는 없는 거야? 합리적인 사람이야. 분명 다른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거야.”
“알고 있어요.”
나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수많은 시로네, 수많은 나네가 논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온갖 의견이 쏟아지는 세계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대화는 필요 없어요. 관철시킬 때입니다.”
“잘 모르겠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