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52
“내가 인류를 위해 싸우는 이유는, 결국 내가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야. 시로네도 당신도, 왜 그렇게 많은 것을 짊어지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당신도 인간이야.”
나네는 입을 다물었다.
“시로네를 알기 위해 나를 사랑하겠다고 했지. 사실 그것조차 이해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아.”
에이미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사람도 정말 외로운 거구나.”
나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느 누구도 당신의 깨달음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그래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거겠지만…….”
마치 시로네처럼.
“적어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줄 수 있어. 그러니까 힘들 때는 포기하고, 슬플 때는 울어도 돼. 부처이기 이전에 인간인 거야.”
그 순간.
“…….”
나네의 뺨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여운 사람.’
나네의 눈물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이유는, 이미 시로네의 눈물을 봤기 때문이다.
부처가 아닌, 인간 나네의 눈물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나네가 눈물을 훔치려는 그때, 에이미가 다가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그녀의 엄지가 나네의 눈 밑을 닦아 냈다.
“이렇게 다른데…….”
정말로 다른 두 사람인데.
“우는 모습은 똑같잖아.”
시로네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에이미의 얼굴을 본 순간.
“…….”
나네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가올드는 정신을 차렸다.
“어디지?”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에 대자로 누워 있는 상태.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자문해 보았지만, 이미 기억을 날려 버린 뇌는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크으으으!”
또다시 엄습하는 고통에, 가올드의 목을 따라 신경이 징그럽게 일어섰다.
‘또 온다.’
생生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살아 있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느껴야 되는 끔찍한 고통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크크크! 크크크!”
피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가올드의 허파에서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재밌는 사실을 말해 줄까?”
아무리 아파도.
“나는 죽지 않아.”
지금의 가올드를 만든 것은 자기상환적 돌연변이의 통각이 아닌, 그것을 버티는 인내였다.
“끄응.”
고통이 점차 줄어들 기미를 보이자 가올드는 포복 자세로 기어 나무에 등을 기댔다.
“하아아아…….”
통증의 끝에 밀려드는 쾌락에 시야가 몽롱해지고, 알 수 없는 환영이 보였다.
언제부턴가 쇼크를 줄이기 위해 뇌는 정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엔도르핀을 분출하고 있었다.
“흐흐흐흐.”
쾌락에 잠긴 가올드는 바보 같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사지를 부들거렸다.
강난과 줄루마저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이유는, 지금의 몰골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미로야.”
전기처럼 깜박이는 풍경 속에서, 슬픈 얼굴로 울고 있는 미로의 환영이 보였다.
“울지 마라.”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
“울지 마.”
동공이 풀려 가는 가올드의 기억이 다시금 망각의 저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저곳입니다.”
태성을 제트에 태운 미네르바가 지상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을 손으로 가리켰다.
“세상에…….”
가올드가 기억을 잃은 채로 저질렀던 흔적.
마치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100킬로미터를 따라 크리에이터가 연달아 형성되어 있었다.
아만타의 세계륜에 같이 타고 있던 프리드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행성급의 위력이군. 이러니 버틸 재간이 있나.”
미네르바가 얼굴이 백지처럼 창백해진 태성을 향해 고개를 틀며 말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이제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씽이 말했다.
“가올드가 폭주하는 바람에 시간을 빼앗겼어. 만약 협조하지 않으면 처리하는 것도 방법이야.”
리안에게 직행하던 상아탑의 오대성들은, 갑작스러운 파계에 황급히 방향을 틀었다.
‘원래는 무시하고 가겠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 가올드의 마법을 막지 않았다가는 행성이 먼저 파괴될 지경이었다.
“저기서 끝났다.”
숲이고 강이고 전부 황무지가 되어 버린 구역을 지나자 울창한 삼림이 펼쳐졌다.
“찾았다.”
씽이 율법으로 가올드를 포착하고 방향을 틀자, 남은 자들이 뒤를 따랐다.
“하아. 하아.”
숲에 도착했을 때, 가올드는 온갖 오물을 쏟아 낸 채로 부들거리고 있었다.
“이런 제길.”
태성을 두들기던 파계의 마법사는, 예상과 달리 인간의 형상을 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완전 폐인이잖아.”
“킥킥킥.”
잠시 초점이 돌아온 가올드가 태성과 4명의 오대성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위세는 놓치지 않았지만, 이미 정신은 엔도르핀에 절어 버린 상태였다.
“어이, 중부 대륙이 어디냐?”
가올드의 질문에 대답하는 자는 없었다.
“전장으로 가야 하는데, 보다시피 뇌가 맛이 가 버려서 말이야. 여기가 대체 어디지?”
실제로 가올드는 중부 대륙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미네르바는 밝히고 싶지 않았다.
“전 토르미아 마법협회장 미케아 가올드.”
오랜만에 듣는 호칭에도, 가올드는 흐리멍덩하게 눈을 뜨고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우리는 상아탑 오대성이다. 그리고 이분은 상아탑의 정점이자 행성의 화신, 태성.”
가올드의 시선이 창백한 태성에게로 옮겨졌다.
“반갑습니다.”
태성은 힘든 와중에도 애써 미소를 지었으나, 가올드의 시선은 무심하게 되돌아갔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프리드가 검의 손잡이를 붙잡으며 한 걸음 내디뎠으나, 미네르바가 말렸다.
“파계의 경지에 오른 당신을 1명의 마법사로 존경한다. 하지만 이미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라면, 태성에게 위협이 되는 것도 사실.”
가올드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중부 대륙으로 간다는 건 전투의 의지가 남아 있다는 얘기겠지. 그래서 묻겠다. 선악공애, 그중에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거지?”
“킥.”
가급적 참고 싶었으나, 가올드는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비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개소리하고 있네.”
최대한의 예우를 갖췄기에, 미네르바도 이번에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가올드가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가만히 보면 너희들 참 신념 좋아해. 뭔가를 정하고 그것을 따르면, 너희 연놈들이 뭔가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냐?”
아만타가 세계륜을 돌렸다.
“말을 가려서 해라.”
명백한 협박이었으나, 가올드는 오히려 입가를 찢으며 눈앞에 공기를 압축시켰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하루하루 숨 쉬며 사는 것조차 힘들어 죽겠는데.
“선악공애?”
주먹 크기의 공기 탄환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자 대기가 무섭게 흔들렸다.
“그딴 거 내가 알 게 뭐야!”
콰아아아아아앙!
에어 건이 굉음을 내며 쏘아지는 것과 동시에 4명의 오대성이 몸을 날렸다.
“푸우!”
어느새 검을 뽑아 든 프리드가 수십 미터 떨어진 자리에서 땅을 짚었다.
‘맞으면 골로 가겠군.’
마치 거대한 송곳이 자연을 관통한 것처럼 궤적을 따라 터널이 뻗어 나가고 있었다.
“학. 학.”
거친 숨을 내쉬던 가올드의 눈이 뒤집어졌다.
“으아아아아!”
또다시 고통이 엄습하면서 신경이 발악하자, 사지가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다.
“불쌍한 인간.”
태성을 어깨에 걸친 미네르바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와 가올드를 보았다.
“애쓰지 마라. 이미 이룰 만큼 이루었잖아? 네 덕분에 구원받은 세상이기도 해.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는 뜻이야. 어차피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도…….”
미네르바는 잠시 주저했다.
“이미 너를 잊고 진정한 극선이 되었다.”
“극선이…… 되었다고?”
이미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떠난 것이기에, 딱히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희들은 미로를 몰라.”
가올드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래, 절대로 모르지…….”
또다시 쾌락 물질이 밀려들면서, 울고 있는 미로의 환영이 아른거렸다.
“아아.”
가올드의 바지 사이로 오물이 새어 나오자 씽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코를 막았다.
“여기서 처리하는 게 좋지 않겠어?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이미 인간이라고 볼 수 없어.”
중요한 일전을 앞둔 상황에서 파계의 경지에 도달한 광인을 남겨 둘 수는 없었다.
“인간이라고…… 볼 수 없어?”
가올드가 배시시 웃으며 씽을 바라보았다.
“먹고.”
시선이 프리드에게 옮겨 갔다.
“자고.”
그리고 다시 미네르바에게.
“싸고.”
뇌리를 강타하는 쾌락에 다리를 부들부들 떨던 가올드가 비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너희들은 뭐 다르다고 생각하냐?”
“…….”
“대답해 봐, 상아탑의 별들아. 세상 꼭대기에서 노니까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것 같아? 변기에 앉아서, 똥을 싸 젖히면서, 우주가 어쩌고 선악이 어쩌고……. 으흐흐흐!”
미네르바의 인상이 구겨졌다.
‘완전 미쳤어.’
가올드의 웃음이 뚝 하고 그쳤다.
“그게 깨달음이야. 너희들과 가장 멀다고 생각하는 것이 네놈들 배 속에 들어 있는 거라고. 알았냐, 세상에서 가장 비싼 똥 싸는 기계들아?”
“결정했다.”
프리드가 검을 움켜쥐고 나아갔다.
“여기서 처리하고 간다.”
바라고 있었다는 듯, 가올드가 땅에 힘없이 놓인 손등을 까닥거렸다.
“크크, 덤벼.”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축 늘어진 모습에서는 어떤 전투력도 기대할 수 없었지만.
‘……이것이 가올드인가?’
오대성의 어느 누구도 함부로 뛰어들지 못했다.
“뭐 해? 덤비라니까?”
사악하게 입가를 찢고 있는 가올드의 뒤편으로, 끝없는 초열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결국 인간 (2)
‘참으로 대단하다.’
가올드의 극기에 미네르바는 감탄했다.
‘선을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악의 방법론을 따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미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고통스러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