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53
이 세상이 한낱 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지옥에서 끝까지 생을 구하는 자.’
선악공애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가올드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어째서?”
미네르바가 물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가올드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상아탑의 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미로는 너를 이용했어. 자의는 아닐지라도, 너의 인생을 파괴했다고.”
반응조차 하지 않는 가올드의 고집에 미네르바는 속에서 불이 치솟았다.
“천국까지 쳐들어가서 그녀를 구했잖아! 나네를 꺾었잖아! 남방의 마족들을 해치우고, 이제는 사랑을 포기하는 것으로 미로라는 인간을 극선으로 만들었잖아!”
“……그랬지.”
“아직도 모르겠어? 너는 미로에게 쥐어짜 내진 거야. 물기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빨아먹고 버려진 거라고!”
“그렇겠지.”
“그런데 왜 버티는 거지? 사는 것이 지옥이잖아. 끝내고 싶잖아. 왜 포기하지 않는 거야?”
“또…….”
가올드가 천천히 턱을 치켜들었다.
“또 운다.”
미로가 운다.
“…….”
미네르바는 여태까지 가올드가 자신과 이야기를 한 것인지조차 의문스러워졌다.
“제발 그만해! 마법사잖아! 네가 보는 건 허상이야! 진짜 미로가 아니라고! 그녀는 이미 너를 잊고 극선의 경지가 되어 잘 살고 있어!”
가올드가 입을 열자 침이 질질 새어 나왔다.
“너희들이…… 미로에 대해…… 뭘 알아?”
씽이 말했다.
“설득은 소용없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남은 건, 어떻게 처리하느냐.”
프리드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게 문제란 말이지.’
손가락 하나 까닥 못 할 것 같은 몰골이지만, 반경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벌어질 일은 자명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겠다.”
마검사의 육체 능력으로 가올드의 정신을 묶어 두고 공격하는 전략이었다.
씽이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내가 율법으로 구속시키겠다. 0.01초 정도는 더 벌어 줄 수 있을 거야.”
프리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아갔다.
“……충분해.”
미네르바가 곰방대를 빨아들이고, 아만타가 세계륜을 돌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거대한 살기가 어깨를 짓누르는 와중에도, 가올드는 미로의 환영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왜 울어?’
왜 우는 것일까?
“원하는 것은 다 해 줬잖아. 이제 나는 폐인이야. 그렇게 울어 봤자 소용없다고.”
“간다.”
프리드가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씽의 율법이 가올드의 자유를 구속했다.
칼날이 목덜미를 향해 날아오는 와중에도 가올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끝났다.’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와중에도 프리드의 머릿속에는 승리의 확신이 스쳤다.
‘결국 폐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한 줄기 섬광이 가올드의 목을 수평으로 가르고 지나가는 순간, 철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검에 손잡이만 남아 있었다.
‘어떻게?’
오브제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위력으로는 절대 부러지지 않는 명검이었다.
“크윽!”
뒤늦게 고통을 깨닫고 손을 살피자 뼈가 드러날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진동.’
공기의 압력이 칼날을 진동시키면서 충격파가 피부를 뚫고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씽의 율법이 이미 깨졌다는 얘기.
프리드가 고개를 돌리자, 씽이 있던 자리에 시커먼 구멍이 뚫려 있었다.
대기가 땅을 뚫고 들어가 버린 것.
‘아직도 충격이 없어?’
흙을 위로 퍼내지 않는 한, 저런 구멍이 생겼는데도 지반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흐윽.”
태성이 눈을 질끈 감으며 비틀거리고, 미네르바가 제트를 타고 날아올랐다.
“떨어져!”
땅이 풍선처럼 부풀더니,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갈라진 곳에서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폭발한다!’
콰아아아아아앙!
두 팔을 엑스 자로 교차한 프리드의 몸이 강력한 충격파에 휩쓸려 날아갔다.
“크으으으으!”
외중력을 수없이 방출해 보지만 관성을 벗어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약해진다.’
충격을 절반으로 상쇄시킨 아만타가 프리드의 뒷고대를 잡고 하늘로 올라갔다.
“방심했어. 생각보단 힘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야.”
아만타의 말에 프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방심하지 않았다.
실제로 접한 가올드의 파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강력했을 뿐이다.
연기가 걷히자 숲이 사라진 자리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되어 있었다.
“괜찮아?”
미네르바가 제트를 타고 날아왔다.
“일단은. 하지만 씽이 걱정이야. 대체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간 거야?”
가올드의 대기압에 짓눌려 땅속으로 들어갔다면 살아 있기란 글렀다.
크레이터 중심부의 깊이를 살핀 미네르바가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깊이가 100미터는 되겠어.”
“나는 괜찮아.”
그때 씽의 목소리가 들렸다.
옆을 돌아보자 한쪽 어깨가 탈구된 채로 숨을 헐떡이며 날아오고 있었다.
“버텼다고?”
씽이 멀쩡한 팔로 프리드를 가리켰다.
“오신장의 갑옷 세트.”
60퍼센트의 안티매직 효과를 낼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갑옷이었다.
“조준점이 4미터 정도 빗나갔어. 하지만 풍압만으로 어깨가 빠져 버렸다. 죽을 뻔했어.”
즉사는 면했어도, 대기에 눌려 땅으로 파고드는 순간 그녀는 죽음을 직면했다.
“굴욕이군.”
아만타의 눈이 가늘어졌다.
“파계의 마법사라고는 하나 우리는 상아탑의 오대성 4명이다. 못 이긴다는 건 말이 안 돼.”
미네르바도 동의했다.
“솔직히 위력으로는 밀린다. 전술적으로 제압해야 돼. 아마도 태성께서 더 힘드시겠지만…….”
별의 화신인 태성은 마법에 당하지 않지만, 행성 자체의 충격에는 무방비였다.
프리드가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그래도 조심해라. 달려드는 나를 무시하고 씽을 먼저 처리하려고 했어. 본능이 시킨 거지. 전투의 달인이다.”
모두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가자.”
네 사람이 몸을 날리자, 하늘 높은 곳에서 원통형의 대기압이 연달아 떨어졌다.
쿵! 쿵! 쿵! 쿵! 쿵!
“움직여! 스피릿 존으로 감지해!”
평범한 마법사는 반응조차 못할 속도지만, 그들은 상아탑의 별들이었다.
지상에 도착한 미네르바가 볼을 크게 부풀리며 녹색 연기를 내뿜었다.
독성 마법.
‘에어 마법에는 취약하지만…….’
가올드의 마법을 오직 방어에 집중시키기에는 충분한 질과 양이었다.
‘한 숨만 들이마셔도 끝이다.’
예상대로 가올드는 빠르게 퍼지는 연기를 차단하기 위해 주위를 에어 실드로 감쌌다.
‘여기서부터…….’
아만타가 에어 실드의 밀도를 반으로 줄이고, 씽이 율법을 집중시켜 틈을 만들었다.
“부순다!”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간 프리드가 가올드에게 연타를 퍼부었다.
“끝이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응?”
생물인 이상 육체가 부서져야 정상이건만, 오히려 프리드의 주먹이 찢어졌다.
‘에어 실드?’
마치 피부처럼 가올드를 뒤덮고 있는 공기가 칼날처럼 예리하게 대류하고 있었다.
‘에어 실드는 패시브 스킬이 아니야. 설마 바깥의 실드를 해제했나?’
당장 살기 위해 바깥의 실드를 없앴다가는 네 사람의 집중포화에 당할 터였다.
‘아직 있다.’
여전히 미네르바의 독성 연기가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게 증거였다.
‘그런데 어떻게……?’
여전히 가올드를 두들기고 있는 그의 뇌리에, 황당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시분할?”
2개의 전지를 빠르게 교차하여 두 가지 액티브 스킬을 유지하는 기술.
“우우. 우우우.”
풀린 눈으로 비틀거리는 가올드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프리드는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하지만 호탕한 웃음소리와 다르게, 그의 눈에는 애잔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추하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이미 고통과 쾌락에 망가진 뇌로 전지를 교차하고 있는 가올드의 모습이란.
“우아아. 우우우우.”
집중력을 쥐어짜 내며 내는 소리가, 마치 겁에 질린 바보를 연상시켰다.
“세상 꼭대기까지 올라갔으면서……!”
부처를 꺾을 당시에 받았던 충격과 경외를, 프리드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자존심마저 팔아먹은 거냐, 가올드!”
화가 치솟은 프리드가, 주먹이 부서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력을 퍼부었다.
점차 에어 실드의 내구력이 약해지면서 육체에 충격이 미치기 시작했다.
“어어어. 어어어어.”
살이 터지고 뼈에 금이 가는 고통 속에서도, 가올드는 미로를 보고 있었다.
훌쩍. 훌쩍.
힘없이 주저앉아 눈을 가리고 우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 환영이겠지만…….
‘왜 나한테 그래?’
가올드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다.
‘그렇게 울어서 뭘 어쩌겠다고!’
이미 폐인이 되어 버린 상태에서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충분히 할 만큼 했잖아! 내 인생을 바쳐 가며, 네가 하라는 건 다 했잖아!’
훌쩍. 훌쩍.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라고! 극선까지 됐잖아! 이제는 좀 알아서 해야 될 거 아니야!’
훌쩍. 훌쩍.
프리드의 눈에 핏발이 일어섰다.
“죽어! 그냥 포기하란 말이야!”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으나, 가올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양심이 있으면 말해 봐! 내 인생을 다 줬잖아! 그런데 왜 자꾸 나에게 와서 처울고 지랄이냐고! 왜! 왜! 왜!’
미로가 고개를 들더니,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입술을 작게 움직였다.
가올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술의 형태가 뇌리에 꽂히는 기분이었다.
‘닥쳐! 너보다 내가 더 아파! 이 세상에서 나보다 아픈 사람은 없어! 여기서 뭘 더 해 달라고!’
가올드.
‘죽고 싶어 미치겠다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어!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나, 너무 힘들어.
미로의 말이 꽂히는 순간, 가올드의 동공이 말려들어 가며 흰자가 드러났다.
“……어떻게 해 주면 되는데?”
건조한 목소리에 새어 나오는 순간, 프리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뭐야?’
세상이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내가 할 테니까.”
이를 악문 가올드가 에어 실드를 해제하고 프리드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