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59
유리엘이 말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자. 리셋이 성공하면 가이아인이 존재했던 미래도 사라진다.”
우주의 초기부터 다시 설계하여,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터였다.
쿠우우우웅!
또다시 백경이 흔들리자 분해의 대천사 사티엘이 팔자 눈썹을 그렸다.
“그래도 정말 대단하네요.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위력이에요.”
결합과 분해는 자매의 개념.
그렇기에 사티엘의 외모도 메티엘과 마찬가지로 천상의 아름다움이었다.
다만 구별이 되는 특징은, 머리가 단발이고 눈이 순진하게 크다는 정도였다.
존재의 대천사 메타트론이 말했다.
“생각을 조심해라, 사티엘. 대천사의 직위를 가진 존재가 하등한 피조물을 칭찬하는가?”
사티엘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그거 알아요, 어떤 존재든 해체하면 다 똑같아진다는 거?”
메티엘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래서 우리가 똑같아? 아니잖아. 너는 정신이 너무 유치해. 그래서는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
“알, 알았어.”
사티엘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분해의 개념을 가지고 태어난 그녀는 모든 만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성향이었다.
개성을 상징하는 결합의 대천사인 메티엘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대천사들이 침묵을 지키는 그때, 이카엘이 입을 열었다.
“천사의 저지선이 붕괴되었다.”
가이아인과 수많은 전투를 치른 그녀의 눈에는 대천사의 권위가 흘러넘쳤다.
“그 정도란 말인가?”
파괴의 대천사 유리엘의 몸에서 우유처럼 하얀 증기가 흘러나와 백경에 스며들었다.
“내가 나가겠다. 오늘에야말로 울티마를 파괴시켜 주지.”
“아니. 모두 참전한다.”
울티마에 일말의 균열이라도 생기는 순간 앙케 라는 세계를 초기화시킬 것이다.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는 것은, 가이아인의 정신이 천사의 군대를 상회한다는 뜻.’
전원 출격만이 답이었다.
“굳이 나까지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소멸의 대천사 파이엘은 상황이 이렇게까지 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파이엘.’
오메가의 기록을 지나가는 시로네는, 자신이 직접 소멸시킨 대천사에게 관심을 가졌다.
‘정말로 강했지.’
발할라 액션으로 127년이 넘는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그를 꺾을 수 있었다.
시간의 부채를 감안하고라도, 그때로부터 5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강적이었다.
“모두 출전한다.”
이카엘이 파이엘에게 경고했다.
“섣부르게 적을 상정하지 마라, 파이엘. 그랬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대가를 치르는 거니까.”
“적은 인정하고 있어.”
울티마는 강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굳이 우리가 당신의 뜻에 따라서 움직여야 되냐는 것이지.”
빛의 대천사 레이엘이 물었다.
“무슨 소리야? 앙케 라의 명을 직접 수행하는 천사장님을 의심하는 건가?”
“맥클라인 거핀.”
이카엘의 미간이 구겨졌다.
“가이아인이 최초로 광자계를 이탈하려고 했을 때, 천사장은 그들을 막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일이었으나 천사들에게는 망각이 없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만약 너였다면, 가이아인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천사들의 수장인 이카엘에게 당당하게 반론을 제시할 수 있는 건 대칭의 개념인 파이엘뿐이었다.
“물론 울티마는 강하다. 내가 의심스러운 건, 어째서 거핀이 당신을 살렸냐는 거야.”
포톤 캐논을 쏘는 즉시 날아와 이카엘을 막아선 거핀의 일이 천사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살려? 그가 막아서지 않았다고 해도 그딴 공격에 타격을 받을 내가 아니다. 그리고 가이아인을 저지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앙케 라께서 충분한 훈계를 내리셨다. 네가 나설 일이 아니야.”
앙케 라의 준엄한 꾸짖음을 당한 이후로 이카엘의 정신은 더욱 단단해졌다.
“…….”
어쨌거나 천사장은 이카엘이었기에 파이엘도 더는 반박할 명분이 없었다.
“내 명이 곧 앙케 라의 명이다. 모든 대천사는 들어라. 지금 당장 출동하여 가이아인을 저지하도록.”
“명을 받들지.”
8명의 대천사가 동시에 백경의 장막으로 스며들며 모습을 감추었다.
“쳐라! 더 거세게 몰아쳐!”
하늘을 수천 개로 쪼개는 벼락이 질주하더니 가이아인의 무리에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약해.”
지상 2킬로미터 높이에서 사방으로 분산되는 전기를 올려다보며 마이신이 입꼬리를 올렸다.
가이아인의 최연장자이자 대표인 그는 거핀 못지않은 통솔력으로 천국과 싸우고 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가 손가락 2개로 전방을 가리키자 가이아인의 정신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벼락.”
콰르르르르르릉!
세계가 열리면서 번개가 내리꽂히는 순간, 천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아아아아아!”
파계의 에너지 앞에서는 개념체인 천사조차도 성광체가 파괴될 정도였다.
“크크, 리셋이라니.”
앙케 라를 향해 걸어가는 군중 속에서,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자가 있었다.
거구의 덩치에 늑대를 닮은 인상, 가이아 종족의 전투대장 레오였다.
“앙케 라. 같잖은 꿈을 꾸는구나.”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중얼거리는 그의 곁으로 철색의 머리를 발목까지 늘어뜨린 여자가 지나갔다.
“야! 다들 움직이는데 너 혼자 뭐 해? 이게 대장이 되더니 빠져 가지고.”
“에이, 나 하나 빠진다고 티가 나겠어?”
“그런 생각을 모두가 하게 되면 누가 걸으려고 하겠냐? 빨리 안 일어나?”
치고받는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어차피 서로의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맛있었다.”
탁 하고 담배를 던진 레오가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여자의 옆으로 다가갔다.
“페니, 오늘 밤 시간 괜찮으면…….”
그 순간 찢어질 듯한 고음이 말을 차단했다.
“하찮은 인간들아!”
가이아인의 시선이 향한 곳에, 사나운 인상의 천사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감히 너희들이 신의 명을 거역하느냐! 거대한 재앙이 너희들을 덮칠 것이다!”
레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뭐야, 저 천사는?”
페니가 말했다.
“이카사다. 욕망의 천사.”
사법 광륜 발할라 액션으로 인과를 역전시킬 수 있는 그녀는 소멸을 각오했다.
“가자, 천사들이여! 우리들의 세계를 하찮은 피조물들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않겠느냐!”
천사들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확인한 이카사가 지상을 향해 쇄도했다.
“위대하신 앙케 라시여!”
그녀의 광륜에 흑백의 정보들이 집적되면서 거대한 결과물이 밀려들었다.
‘절대로 빼앗길 수 없어!’
이기는 쪽이 신이 된다.
반대로 패하는 쪽은, 노예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의 나락을 맛봐야 할 터였다.
“죽어라, 인간들아!”
시로네는 생각했다.
‘불가능해. 인과를 역전시킨다고 해도 생명을 갈취하는 결과를 끌어올 수는 없어.’
같은 사법 광륜을 쓰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나, 무태를 깨닫고 나자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야.’
이 세계는 물리적 배경이 되는 광자 코드와 거기에 깃드는 마음, 즉 양자 코드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은 광자 코드에 속해 있어. 반면에 행위의 촉발을 일으키는 주체, 즉 마음은 양자 코드.’
따라서 광자 코드는 양자 코드에 접근할 수 없다.
‘죽인다! 단 1명이라도!’
다만 이카사의 감정만큼은 진심이었다.
그 결과를 위해 끌어들인 미래는, 자신의 육체가 부서질 때까지 내지를 수 있는 주먹의 전부.
“이 세계는 우리의 것이다!”
레오의 눈썹이 꿈틀했다.
“……큰 착각을 하고 있군.”
두 어깨를 치켜올리며 주먹을 쥐는 순간, 3억 가이아인의 눈에 불이 켜졌다.
동시에 이카사가 발할라 액션을 발동했다.
“죽어라아아아아!”
인과가 역전되면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권의 충격파가 지상으로 불어닥쳤다.
“너희들의 세계라고?”
무게중심을 낮춘 레오가 하늘을 향해 오른쪽 주먹을 내지르는 자세를 취했다.
“아니,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다.”
세계의 신호는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없지만.
“신적초월.”
마음의 극단적 발현은 세계의 신호에 깃들어 강력한 현상을 일으킨다.
“즉격!”
풍경을 구기며 밀려드는 주먹의 환영 앞에, 발할라 액션의 충격파가 깨졌다.
“이…….”
공간이 중첩되자 시간도 무의미.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카사의 몸통을, 신적초월의 의지가 꿰뚫었다.
“으아아아아!”
상반신만 남은 채 추락하는 모습에, 뒤를 따르던 천사들의 날개가 일제히 멈췄다.
“이길 수 없어.”
성광체를 흔들며 겁에 질린 천사들의 주위로 애잔한 바이브레이션이 들렸다.
“이제 알았냐?”
3억 명이 동시에 내뱉는 목소리가 천사들의 바이브레이션을 파괴했다.
“우리는 하나.”
3억 개의 음파가 공명하면서, 마치 시간이 느려진 듯이 소리가 늘어졌다.
“저, 저기…….”
천사들이 가리킨 곳에 족히 1억이 넘는 가이아인의 행렬이 본진과 합류하고 있었다.
“통합적 사고를 가진 채.”
서로의 옷깃조차 스치지 않고 행렬을 교차시키는 모습에 천사들이 이를 깨물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
갑자기 걸음을 멈춘 가이아인들이, 똑같은 것이 없는 4억 가지의 포즈를 취했다.
“우리가 우주다.”
최소 1억 단위에 달하는 가이아인의 행렬이 사방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우리가 진리다.”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있었고, 몸에서 솟구친 수직의 섬광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었다.
“저것이 인간…….”
사용자들이 이룩한 사회의 최종 진화 형태.
“흑. 흑.”
상체만 남은 이카사는 곁을 지나가는 가이아인의 행렬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친구들끼리 잡담을 하며 걷는 모습,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
행위는 다르지만, 눈에 깃든 황금빛 광채만큼은 똑같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아니야.”
우리가 주인이다.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내가 신이야! 내가 고귀한 천사란 말이다!”
무심히 지나치던 가이아인들 중의 일부가 걸음을 멈추고 이카사를 돌아보았다.
“끄윽.”
가이아인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이카사는 겁에 질린 채 말을 멈췄다.
“아…….”
그리고 깨달았다.
‘선악공애, 어느 것도 상관없다.’
가이아인이 악을 두고 선이라고 하면 선인 것이고, 공을 애라고 하면 애인 것이다.
‘그들이 전부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검은 돌을 보고 하얀 돌이라 하면, 돌의 색깔은 흑인가 백인가?
-아카식 레코드인가 울티마 시스템인가?
‘인간이 정의한다.’
따라서 지금 눈을 마주친 꼬마가 자신을 무참히 죽이겠다고 결심하면…….
‘그것 또한 진리.’
겁에 질린 눈으로 처분을 기다렸으나, 아이는 피식 웃으며 지나칠 뿐이었다.
“흐으윽!”
이카사는 땅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
하찮은 존재로 정의된 순간, 그녀의 성광체에 쩍쩍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