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61
“전장에는 무슨 일이냐? 분명 울티마 시스템에서 이탈하기로 했을 텐데. 생각이 바뀐 거냐?”
“바뀐 것은 맞지만…….”
거핀이 천사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시스템에 합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어째서…….”
그 순간 멀리서부터 유리엘이 날아들었다.
“으아아아아!”
인간에게 일격을 당한 분노가 사법 광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의외군. 네가 흥분하다니.”
극락곤이 큰 궤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파괴한다!”
거핀이 손을 내밀자 빛의 입자가 빠르게 모여들어 정육면체의 박막을 만들었다.
“끄으으으!”
극락곤의 충격이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흡수되자 유리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조화지?’
울티마 시스템 외에 라그나로크의 위력을 막을 자가 존재했던가?
“거핀, 그건……?”
마이신의 물음에 거핀이 미소를 지었다.
“헥사.”
육면체의 박막이 연기로 흩어지더니 부드러운 힘으로 유리엘을 멀리 밀어냈다.
찬란한 빛이 몸을 휘감는 가운데, 거핀이 이카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래도 우리를 막아야겠어?”
거핀에게는 안 좋은 추억이 있기에 이카엘의 목소리가 절로 사나워졌다.
“당연한 소리. 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는 오만한 자들에게 징벌을 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너하고는 상관없는…….”
“같이 갈래?”
말을 멈춘 이카엘이 한참 후에 되물었다.
“뭐?”
거핀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모두를 데려가 줄 수 있어.”
천사들이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가운데, 가이아인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신의 뇌 (5)
“모두를 데려간다고?”
이카엘이 되물었다.
“그래. 창조와 피조의 굴레. 누가 신인지 따지는 것보다는 훨씬 건설적인 제안 아닌가?”
분명 그렇지만 이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 그래, 솔직히 인정하마. 너희들의 이데아, 그것은 분명 이 우주에서 기록적인 사건이다.”
태성은 가이아인의 눈에 최초로 빛이 들어왔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르고네스도 그렇지만, 천국의 모든 존재는 거기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다.
“어쩌면 바깥 세계라는 게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나갈 수 없어.”
이데아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이데아는 바깥 세계가 아닌 그들 자신이었다.
“울티마에서 이탈한 뒤로 많은 연구를 했지.”
거핀이 손바닥을 펼치자, 헥사라고 부르는 육각형의 빛이 얼음 결정처럼 떠올랐다.
“이데아의 신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신호를 분석할 수 있다면…….”
가이아인은 반야와 야차의 모든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했다.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가이아인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바깥에서 들어온 신호로 이 세계가 구성된다면, 이데아를 만드는 것은 신의 영역이었다.
“그래. 그것이 헥사. 바깥의 정보를 가진, 이 세계에 없는 신호라고 할 수 있지.”
거핀이 팔을 들자 헥사가 쨍 하고 깨지며 연기가 되어 내려앉았다.
“미라클 스트림.”
빛의 연기가 지나가는 자리에 덩굴이 생기더니 꽃이 빠르게 피기 시작했다.
천사들이 술렁거렸다.
“어, 어떻게……?”
앙케 라와 가이아, 아르고네스가 동시에 기능해야 창조할 수 있는 게 생명이었다.
두 팔을 들어 올린 거핀이 주위에 피어 있는 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직은 이 정도 수준이지만, 연구를 거듭하면 더 복잡한 생명도 만들 수 있을 거야.”
카리엘이 중얼거렸다.
“생명…….”
탄생의 대천사인 그에게는 거핀의 능력이 말 그대로 신의 기적처럼 보였다.
거핀이 이카엘을 향해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이데아를 정복할 수 있다면 너희들에게도 이 세계가 끝은 아니야.”
가이아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싫지만, 이번만큼은 대천사들도 이카엘의 눈치를 살폈다.
“끝은 아니다?”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 또한 가이아인의 사고다. 인간의 무리를 이탈하더니 이제는 신이 되려 해?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신이 무심하다면…….”
거핀이 눈을 빛냈다.
“끌어내려도 상관없지 않겠어?”
“신성모독이다!”
아타락시아가 날카롭게 확장되면서 그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우리에게 신은 오직 영원불멸의 라뿐이다. 너의 말도 안 되는 가설에 현혹될 것 같은가?”
천사에게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에게 부모를 부정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거핀은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가고 싶어 했잖아?”
이카엘이 눈을 부릅뜨며 입술을 짓깨물었다.
‘그랬다.’
가이아인이 최초로 광자계를 이탈하려고 했을 때, 그녀는 분명 흔들렸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해도, 천사장으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그 이후로 나는 달라졌다.”
앙케 라의 준엄한 꾸짖음을 들은 그녀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가이아인이여, 헛된 희망을 버려라. 앙케 라께서 세계를 초기화시키면 너희들도 사라진다. 모든 것은 돌아오고, 율법은 평화로울 것이다.”
어느새 복구된 핸드 오브 갓이 맹수의 발톱처럼 손가락을 구부렸다.
10억의 목소리가 동시에 탄생했다.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리셋을 막고 앙케 라를 소멸시켜 버릴 것이다.”
결국 좁혀지지 않는 간극.
양측의 살기가 다시 팽팽해지는 그때, 사티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도는 해 볼 수 있지 않아요?”
대천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겁에 질렸으나, 그녀는 더욱 용기를 냈다.
“천사와 가이아인이 힘을 합치면 이 세계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거핀 또한 헥사에 대한 연구를 더 깊게 파고들기 위해서는 대천사의 능력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아타락시아.’
이데아의 신호를 증폭시켜 조사할 수 있다면 거핀의 이상향도 꿈은 아니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카엘의 눈에 살의가 깃들었으나, 사티엘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일단 대화라도 해 보는 정도는…….”
결합의 대천사 메티엘이 흐릿해졌다.
쾅!
엄청난 속도로 팔을 휘두르자 얼굴을 맞은 사티엘이 사라질 정도로 빠르게 날아갔다.
쿠우우우웅!
추락한 땅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메티엘이 주먹을 털며 중얼거렸다.
“천사의 수치 같으니라고.”
오만하고 아름다운 표정으로 손끝을 들어 올린 그녀가 거핀을 가리켰다.
“잘 들어라, 인간들이여. 신은 타협하지 않는다. 너희들을 벌하고 세계를 안정시킬 것이다.”
복잡하게 만들 필요 없이, 앙케 라가 리셋만 성공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메티엘의 성광체가 헤일로로 확장되었다.
“너는 내가 직접 죽이겠다.”
같은 생각이라는 듯, 이카엘을 제외한 5명의 대천사가 광륜을 퍼트렸다.
마이신이 심각한 눈빛으로 물었다.
“거핀, 어쩔 생각이냐?”
“당신은 나서지 마. 울티마가 흔들릴 수 있으니까. 내가 싸우는 동안 앙케 라의 리셋을 막아.”
한순간이라도 울티마가 흔들린다면, 앙케 라는 리셋을 발동할 것이다.
‘그러면 돌이킬 수 없다.’
거핀의 판단이 옳다.
하지만 울티마를 발동할 수 없는 그가 대천사 전원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미라클 스트림.”
황금빛 연기가 거핀을 중심으로 뱀처럼 똬리를 틀자 이카엘이 턱을 치켜들었다.
“아타락시아.”
대천사들의 개념이 증폭되고, 유리엘이 라그나로크로 전투의 포문을 열었다.
“세계의 무서움을 가르쳐 주마.”
일격을 당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육탄 공격이 거핀을 강타했다.
그 상태로 3킬로미터를 밀려 나가는 거핀의 눈에 스파크가 튀었다.
‘역시 만만치 않아.’
대천사가 한 대 맞았다고 흥분하기는.
‘튕긴다.’
미라클 스트림이 소용돌이치면서 유리엘의 몸이 거핀의 뒤로 넘어갔다.
“크윽!”
회전의 관성을 먹은 유리엘이 거대한 곡선을 그리면서 1킬로미터 뒤에 수직으로 추락했다.
콰아아아앙!
굉음을 들으며 두 다리를 땅에 심은 거핀이 전방의 대천사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신의 놀이를 시작해 볼까?”
존재의 메타트론, 빛의 레이엘, 소멸의 파이엘이 나란히 2진을 형성했다.
“유리엘을 튕겨 냈다.”
순수 충격량만 가지고는 꺾을 수 없다는 뜻.
“내가 가지.”
선두로 나선 파이엘의 사법 광륜이 빠르게 회전하며 심연의 소용돌이로 변했다.
“무의 전언.”
거핀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미라클 스트림의 빛이 사라지자 메타트론이 손을 내밀었다.
“중력 폭정.”
검은 구체 수십 개가 생성되자 거핀의 허리가 뒤틀리고 사지가 활짝 열렸다.
‘찢어발겨 주마.’
끝났다고 생각한 그때, 거핀의 몸이 중력파를 거스르며 허공에 우뚝 멈췄다.
“빛이 있으라.”
거대한 육각형의 빛이 떠오르더니 다시 연기로 분해되어 거핀을 감쌌다.
“헥사에 원인은 없다.”
그렇기에 파이엘이 몇 번을 소멸시켜도 이유 없이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잠들고.”
빛의 연기가 퍼지면서 중력 폭정의 구체가 하나둘씩 소멸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깨어나지 마라.”
그 순간 빛의 대천사 레이엘이 사법 광륜 액셀러레이터를 발동시켰다.
끼이이이잉!
빛의 속도로 회전하는 광륜이 빠르게 수축하며 소멸하자 시간이 멈췄다.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행성의 자전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는 0초의 시간대에서, 레이엘이 주먹을 내질렀다.
광자 신호,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는 물리적 신호를 전달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나는 빛의 대천사.’
그가 인지하는 시간의 단위는 시로네가 해체했던 시간선의 최소값이었다.
레이엘의 주먹이 거핀에게 닿는 순간.
‘이 지점이다.’
독립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시간의 사건이 바로 직후의 사건으로 넘어갔다.
율법으로 쪼갤 수 있는 시간의 최소 단위였기에 어떤 생물도 반응은 불가능.
퍼어어어엉!
레이엘의 정권이 끝나는 지점에서 대기가 수십 미터를 밀려 나가다 폭발했다.
“뭐?”
레이엘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시선을 내렸다.
“느려.”
상체를 뒤틀어 회피한 거핀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광속을 피해?’
그럴 리가 없는데.
주먹이 닿는 순간의 사건과, 광속을 해제한 사건 사이에는 어떤 사건도 없기 때문이다.
‘광속이다. 시간을 끝까지 쪼갰다고. 시간과 시간의 사이에는 오직 무無가…….’
섬뜩한 가정이 스치면서 성광체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