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67
“피할 방법은 없어. 앙케 라의 말소 코드는 생물 전체가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 이래, 선수끼리?”
“…….”
“당신이 얼마나 많은 종을 창조했는지 알아. 설마 이 우주에 우리만 있는 건 아니겠지?”
“우주는 넓지 않아. 광자 신호를 기반으로 하기에 광속 장벽에 갇혀 있을 뿐이지. 생물의 숫자 또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
“오히려…… 없지는 않다고 들리는데?”
정곡을 찔린 아르고네스가 결국 입을 열었다.
“테라포스.”
“호오? 우리랑 비슷한 종족인가?”
“다르지. 가이아인은 마음을 극한까지 개발한 종족. 반면 드래곤은 정보의 정점에 도달했다. 각각 양자 코드와 광자 코드라면, 테라포스는 그 중간에 위치한다.”
“흐음, 중간이라.”
마음과 정보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것?
“소리.”
정답이었다.
“그래. 테라포스는 파동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종족이다. 기술력만큼은 가이아인을 상회하지. 광속 장벽을 넘어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
은하 간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굉장하군.”
“탁월한 종족이지. 너희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경건하며, 엄격하다.”
아르고네스의 감정이 소리를 통해 전해졌다.
“그래, 막나가는 종족이라 미안하다. 어쨌든 테라포스에게 내 의사를 전해 주겠어?”
다시 본론이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너희들이 싫은 게 아니야. 문제는 링크다. 수많은 종족 중 가이아인이 이데아에 링크된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결론은 실패야. 너희들은 세계의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있어.”
거핀이 제안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2명의 가이아인이 새로운 세상을 열면, 테라포스가 심판하는 거야. 만약 새로운 인류마저 혼란으로 치닫는다면 파괴해도 좋다.”
“으음.”
아르고네스가 턱을 괴었다.
“정확히 해라. 네가 말한 범위에는 광자계의 이탈도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 어느 누구도 세계의 비밀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물론이지. 우리가 패한다고 해도 남은 자들은 끝까지 살아갔으면 좋겠어. 설령 영원한 꿈일지라도.”
쯧쯧쯧쯧.
빠르게 혀를 차며 생각에 잠겼던 아르고네스의 육체가 점차 바닥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2명을 선발해라.”
그가 사라진 동굴에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방주를 보내겠다.”
***
신의 성지 아라보트.
하늘을 뚫고 세워진 첨탑만이 행성에서 유일하게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었다.
“전쟁이 끝났다.”
천사의 방에서 이카엘은 창밖으로 펼쳐진 검은 강물의 흐름을 눈에 담았다.
“그들은 싸울 거예요.”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사티엘이 옆에 있었다.
“아직도 고집을 꺾지 않느냐. 가이아인은 이것으로 전멸할 것이야. 울티마 시스템도 사라진다.”
“정말로 그렇다면, 우리 또한 세계의 비밀에 접근할 기회를 잃은 것이겠죠.”
이카엘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긋지긋했던 가이아인과의 싸움이 끝났지만,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왜 인간의 편을 들지?”
이카엘이 물었다.
“세계의 비밀? 그런 게 없어도 승리만 하면 아무 상관 없어. 정말로 이유가 그것뿐이냐?”
“설마요.”
사티엘은 지평선 너머의 하늘에 육각형의 빛이 펼쳐진 것을 보고 눈웃음을 지었다.
“딱 하나 더 있죠.”
***
“후우, 빌어먹을.”
거핀이 펼친 육각형의 빛 아래에 숨어든 가이아인들이 숨을 헐떡거렸다.
“모두 괜찮아?”
가이아인의 대표 파트란이 눈을 치켜들었다.
“거핀.”
수명의 개념에서 탈피해, 가이아인의 유구한 역사를 끝없이 따라오는 자.
“당신이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울티마 시스템은 지켜야 해요.”
“그러면 다 죽어.”
행성 전체를 녹여 버릴 기세 앞에서는 거핀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방법이 있습니까?”
“한 가지. 아니, 0.5가지라고 해야겠군. 하지만 시행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할 일이라뇨?”
거핀은 방주의 얘기를 꺼냈다.
“2명을 선별하라고요?”
“그래. 만약 소정화를 막아 낼 수 있다고 해도, 가이아인의 90퍼센트는 사라진다. 하지만 끝까지 싸울 거잖아?”
파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승리하든 인류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2명을 보내기로 했어.”
울티마로 연결되어 있는 그들이었기에 회의라는 복잡한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어야겠군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가 한 쌍의 커플을 돌아보았다.
“저, 저기…….”
유약해 보이는 한 남자와, 눈이 크고 순진한 인상의 여성이 걸어왔다.
긴 여정을 떠나야 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거핀이 눈웃음을 지었다.
“이름이 뭐냐?”
“네? 아, 네. 아담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거핀이 옆을 돌아보았다.
“릴리스입니다.”
아담과 릴리스.
앞으로 도착할 행성에서 새로운 인류가 되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이름이었다.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방주에서 듣게 될 것이다. 이제 너희들은 나처럼 끝없이 살아가는 거야.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해야 한다. 절대로 금단의 선을 넘어서는 안 돼. 세계의 혼란이 올 것이다.”
두 사람은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아담을 사랑하고, 평생 함께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릴리스의 눈이 결의로 반짝이는 순간.
‘저 여자는…….’
오메가의 기록을 받아들이고 있던 시로네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생김새는 전혀 다르지만, 그녀의 눈에 깃든 빛은 현재의 누군가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우오린?’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눈빛이었다.
“그래. 반드시 기억해라. 선도 악도, 모두 너희가 정의하는 거야. 절대로 울티마를 잃어서는 안 된다.”
거핀이 마지막으로 다짐을 받는 그때, 구름을 가르고 거대한 원반 형태의 비행 물체가 나타났다.
“방주.”
앞으로 인간을 심판할 종족의 기술력이었다.
“가라. 내가 보내 주마.”
파트란이 물었다.
“어떡할 생각입니까? 관리자가 파계를 할 정도로 강력한 권한이에요. 헥사로 막을 수 없을 텐데요.”
“뭔지 알기 전까지는 그렇지.”
“그럼?”
“삼킬 거야.”
모든 것을 말소시키는 검은 비를 향해 거핀이 미소를 지으며 날아올랐다.
헥사의 방어막이 빗물에 닿는 순간 깨지고, 검은 구름 속으로 육체가 들어갔다.
“너 자신을 구원하라고?”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거핀이 이를 악물었다.
“헛소리하지 마.”
미라클 스트림.
폭발과 함께 거대한 빛의 구멍이 생기더니 주위의 구름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앙케 라의 분노, 세상 전부를 파괴해도 모자라는 감정이 거핀을 강타했다.
간절함의 척도 (2)
***
오메가 689년.
앙케 라를 견제할 정도로 강성했던 가이아인은 소정화를 기점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아타락시아.”
이카엘의 사법 광륜이 빛을 발하자 6명의 대천사가 가이아인에게 돌진했다.
“빌어먹을……!”
소정화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핸드 오브 갓’의 위력도 현저히 떨어진 상태였다.
“라그나로크.”
백색 전기에 휩싸인 유리엘이 질주하자 인간으로 가득 찬 공간에 거대한 길이 열렸다.
“대열을 유지해!”
마치 세포가 상처를 수복하듯 가이아인들이 일사불란하게 뭉치자 메티엘이 혀를 찼다.
“아직도 발버둥을 치는가?”
바야흐로 항전의 시대.
‘핸드 오브 갓’의 공격을 회피한 그녀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었다.
“소형중속탄.”
하늘을 가득 채운 수백 톤이 넘어가는 금속체가 음속을 초월하는 속도로 쏘아졌다.
소규모의 운석 충돌에 달하는 위력이었고, 울티마 시스템이 크게 흔들렸다.
“버텨라! 새로운 시대를 위해!”
핸드 오브 갓이 형태를 되찾기 전에 빛의 대천사 레이엘이 침투해 주먹을 휘둘렀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지만, 광속에서 넘어오는 물리량은 막아 낼 도리가 없었다.
“울티마 시스템!”
가이아인의 중심부에서 무형의 방어막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빠르게 확장되었다.
“흥.”
레이엘이 정권을 내지르자 수평의 섬광이 방어막을 끝없이 관통하고.
펑! 펑! 펑! 펑! 펑!
섬광의 궤적을 따라 강력한 연쇄 폭발이 고열을 일으키며 꼬리를 물었다.
“다 죽어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하늘로 날아오른 레이엘이 액셀러레이터를 회전시키며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직성?”
가이아인의 눈동자에 빛이 들어왔다.
“나에게 말한 것인가?”
억 단위의 목소리가 하나로 통일되면서, 핸드 오브 갓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똑같은 패턴이군. 이제는 통하지 않아.”
레이엘이 사법 광륜을 광속으로 돌리며 튀어 나갈 자세를 취하는 그때.
“그만하세요!”
사티엘이 사이에 끼어들어 두 팔을 벌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싸웠잖아요. 이러다가 한쪽이 전멸하면 모두에게 손해예요.”
레이엘은 콧방귀를 뀌었다.
“물러서라, 사티엘. 여태까지 너를 내버려 둔 것은 중립의 입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편을 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구의 편을 드는 게 아니에요. 이대로 전쟁을 계속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가이아인들은 생각했다.
‘의미가 없다고?’
광자계를 이탈하기로 결의했던 자들 중에서 남아 있는 인간은 오직 거핀뿐이다.
‘그래. 우리는 왜 싸우는 거지?’
너무나 오래전의 일이라, 이제는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사티엘이 대표에게 말했다.
“휴전을 요청하세요. 천사와 인간이 힘을 합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방법도 있잖아요.”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왔어. 고작 여기가 끝이라면 영겁의 세월을 이어 온 선조들의 전쟁은? 소정화로 죽은 천억이 넘는 인류는?”
이카엘이 목소리를 증폭시켰다.
“아직도 너희가 신이라 생각하느냐? 보아라, 전쟁은 패했고 몰골은 초라하다. 내가 알기로 그런 신은 어디에도 없느니라.”
지상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나보다 초라하겠어?”
넝마를 걸친 거핀이 거친 숨을 내쉬며 절뚝거리자 이카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 지경이 되어서도 싸우는가?’
앙케 라의 분노를 홀로 집어삼킨 그의 모습은 폐인이나 다름없었다.
‘소정화는 막았지만.’
세계 전체를 파괴할 정도의 분노는 1명의 인간이 감당할 크기가 아니었다.
이카엘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어리석은 인간.’
강적의 몰락이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망가진 그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하긴, 참으로 오래 싸웠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만 포기해라, 거핀. 가이아인은 쇠퇴했고 너의 상태도 정상이 아니다.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