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68
거핀이 건조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는 없어.”
“왜? 왜 너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하지? 소정화를 삼켜 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 텐데.”
또다시 마음이 뒤틀리는 고통이 치밀자 거핀이 인상을 찡그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크으으으!”
“오만하고 오만한 자여. 너희들은 신이 아니다. 세계의 안정을 파괴하는 돌연변이일 뿐이야.”
“그럴 수도.”
거핀은 순순히 인정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파괴하는 오류일지도 모르지. 그중에서도 나는 최악의 오류일 테고.”
“알면 그만둬. 소정화의 분노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면서, 왜 싸우려고 하지?”
“싫어서.”
거핀이 눈을 부릅떴다.
“이 차가운 세계가 너무 싫어서. 이제 신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내가 신이 될 거다.”
“망상을 현실로 착각하지 마라. 완벽한 세계다. 우리는 율법에서 태어난 존재야.”
“그게 신인가?”
이카엘은 입을 다물었다.
“완벽하게 만들어 놓기만 하면, 모든 게 다 끝나는 건가?”
이 순간을 기점으로, 거핀의 철학은 세계의 율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된다.
“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단 주제에, 자신이 만든 세계에, 그 세계에 사는 피조물에게는……!”
거대한 육각형의 빛이 떠올랐다.
“일말의 동정심도 가질 수 없다는 거냐!”
미라클 스트림이 용권을 일으키면서 빛의 토네이도가 반경을 휩쓸었다.
메티엘이 중얼거렸다.
“제정신이 아니군. 분노에 미쳤어.”
그와 동시에 6명의 대천사가 미라클 스트림을 역류하며 거핀에게 쳐들어갔다.
최고 개념들의 결합에 세계가 흔들리고, 하늘에서 천둥벼락이 내리쳤다.
‘폐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거핀은 거핀이었다.
대등한 전투가 계속 이어지자 이카엘이 눈을 번쩍 뜨며 아타락시아를 열었다.
대천사의 힘이 극한으로 증폭되었다.
“잡았다!”
무브먼트 제로의 영역에 거핀을 가둔 6명이 동시에 최강의 일격을 가했다.
‘끝이다. 절대로 피할 수 없어.’
레이엘이 확신하는 그때.
“크으으으으!”
눈에 흰자를 드러낸 거핀이 미라클 스트림을 자신을 향해 끌어들였다.
‘차가운 세계 따위!’
그의 두 손바닥 사이로 빛의 연기가 압축되면서 찬란하게 발광했다.
‘인정할 수 없어!’
브레이크.
“뭐……!”
범접할 수 없는 관성이 밀려들면서 6명의 대천사가 똑같은 방향으로 날아갔다.
공격이 무산된 와중에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한 대천사는 아무도 없었다.
“어, 어떻게…….”
처음으로 깨달은 이카엘은 천사장의 위세마저 잊고 전율을 받아들였다.
“자전을 멈췄어.”
대략 3초 정도 행성에 브레이크가 걸렸고, 대륙 전역에서 화산 폭발과 지진, 해일이 발생했다.
‘고작 1명의 인간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원하면, 우주의 율법조차 바뀌게 되어 버린다는 말인가?
이카엘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음을 가진 신……이라고?”
세상을 끝없이 굽어살피며 피조물의 아픔을 동정할 수 있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의 자비 아래에서.’
천사도, 인간도, 산과 바다도, 들과 나무도.
‘하찮은 건 없는 것이다.’
대천사들에게 돌진하는 거핀의 두 손이 미라클 스트림의 빛으로 불타올랐다.
“내가 신이 될 것이다!”
유리엘이 팔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하는 그때, 거핀의 눈이 갑자기 크게 뜨였다.
“커억!”
이어서 한 바가지의 피를 뿜어내더니 위세를 잃고 고통에 비틀거렸다.
‘제길!’
앙케 라의 분노가 다시 파도를 치면서 세포 전체가 쇼크를 일으킨 것이었다.
유리엘이 극락곤을 회전시켰다.
“……날 원망하지 마라.”
거핀이 황급히 헥사를 발동했으나, 완성되기 전에 극락곤이 복부를 강타했다.
증발해 버린 듯이 거핀의 육체가 화살처럼 날아가고.
“안 돼!”
사티엘이 소리치며 천사의 날개를 폈다.
“사-티-엘!”
천지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이카엘의 음성에, 그녀는 결국 거핀을 뒤쫓지 못했다.
“흐윽!”
거대한 아타락시아를 펼치고 내려다보는 이카엘의 모습은 단연 가장 고귀한 존재였다.
“사티엘, 너의 방종을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내가 명하노니, 한 걸음도 움직이지 마라.”
명령은 사티엘에게 내려졌으나 어떤 천사도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저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이군.’
이카엘이 거핀이 날아간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내가 직접 결판을 내겠다. 너희들은 여기에서 가이아인들을 막도록 해라.”
적어도 거핀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끝내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을 긁고 지나간 흔적이 끝나는 곳에 착지한 이카엘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또 너냐? 이러다 정들겠어.”
무너진 암벽 더미에 등을 기대고 있는 거핀의 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가련하구나, 인간이여.”
이카엘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우린 참으로 오래 싸웠지. 마지막이 이토록 초라할 줄 알았더라면, 진즉 끝내 줄 것을 그랬구나.”
“큭큭. 큭큭큭.”
어깨를 떨며 웃은 거핀이 물었다.
“기분이 어때? 너를 방해하던 최강의 적을 쓰러뜨린 기분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나는 고귀한 대천사, 인간에게 감정 따위는 없어.”
“그러냐.”
거핀은 회상했다.
화를 내고, 짜증 내고, 당황하고, 때로는…… 미소를 지을 때도 있었던 이카엘을.
“하긴, 역사는 승자의 것이지. 네 마음대로 기록해라. 그래도 미남이었던 부분은 사실대로 해 줘.”
“유언은 그게 전부인가?”
거핀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으나, 누구에게도 감당하게 하고 싶지 않은 짐이었다.
“그래.”
이카엘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끝까지 오만하구나. 인간의 몸으로 신을 쓰러뜨리기 직전까지 갔으면서, 후세에 남길 것이 없다고?”
“어쩌겠어? 제대로 맞았는데.”
날개를 펼친 이카엘이 수도를 칼처럼 세우며 엄청난 속도로 튀어 나갔다.
“……!”
수도가 눈앞에 우뚝 멈추고, 그녀의 손끝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거핀이 물었다.
“왜 그래? 정말 정이라도 든 거냐?”
“닥쳐.”
평생을 꿈꾸던 순간이건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자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항복해라.”
이카엘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백기를 들고 투항해. 내가 책임지고 너희들을 지켜 주겠다.”
“싫다고 했잖아.”
“정신 좀 차려!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역사에도 무승부로 기록해 주겠다.”
거핀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너, 나 좋아하냐?”
“헛소리하지 마라. 네가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야. 네가 죽으면 그 헥사……!”
모두가 링크될 수 있는 가능성.
“정말 이대로 끝내겠다고? 세계를 살피는 너의 자비는 고작 이 정도였던 것이냐?”
“불가능해.”
거핀의 손바닥 위로 육각형의 헥사가 청명한 소리를 내며 떠올랐다.
“헥사는 상위 차원에서 하위 차원으로 내려오는 신호야. 이데아와 똑같지. 하지만 너희들을 링크시키려면 역순, 하위 차원에서 상위 차원으로 신호를 쏴야 한다.”
“…….”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야. 마치 그림이 종이를 뚫고 현실로 튀어나오는 것과 같은 수준이지.”
이카엘의 눈빛이 흔들렸다.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거핀이 성광체를 가리켰다.
“아타락시아로 헥사의 신호를 무한대로 증폭시킬 수 있다면 또 모르지.”
대천사의 감각으로 가능성을 검토한 이카엘이 침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결합할 수 없어. 모든 것을 증폭시킨다고 해도, 헥사는 율법 바깥에 있는 신호야.”
“단정 지을 수만은 없지.”
“응?”
이카엘이 눈을 깜박거리는 가운데, 거핀이 헥사를 성광체 쪽으로 내밀었다.
“해 볼까?”
간절함의 척도 (3)
눈앞에서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는 헥사를 이카엘은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뭘 어쩌려고?”
“보는 그대로. 너의 정신에 헥사를 심는 거야. 물론 네가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천사의 정신은 성광체였다.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나에 대해 알게 되겠지. 물론 나 또한 헥사를 통해 너를 알게 될 것이고.”
이카엘은 입술을 옆으로 뒤틀었다.
고귀한 천사의 정신에 인간이 침투한다는 것은 어떻게든 불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인간의 정신이 헥사라면.
“만약 내가 헥사를 받아들이면, 너와 똑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건가?”
거핀이 고개를 저었다.
“이해라는 것은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추출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지. 헥사는 율법 바깥에 있다.”
“내 말이 그거야. 어차피 내가 헥사를 다룰 수 없다면 굳이 이런 일을 할 필요도 없잖아?”
“어떤 깨달음은…….”
거핀은 신중히 말을 골랐다.
“결과에 도달하고 나서야 과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도 있지. 스스로 얻을 수 없다면 맹목적으로 믿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손해 볼 거 없잖아? 지금은 미친 짓으로 보이겠지만, 모든 과정이 지나가면 내가 옳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이카엘 또한 정신의 높은 경지에 도달한 존재이기에 거핀의 말을 이해했다.
‘하지만 믿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영겁의 세월을 싸우는 동안 거핀의 인격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냥…… 기분이 이상해.’
이것은 공포일까, 아니면 설렘일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손해 볼 것 없잖아? 나는 이미 그로기 상태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때 나를 죽여도 상관이 없다고.”
“좋다.”
이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만약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그때는 더 이상 자비를 바라지 마라.”
“맡겨 둬.”
거핀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자, 우물쭈물하던 이카엘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
헥사가 성광체를 비집고 들어가는 순간.
“허억!”
이카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정신이라는 용광로에 헥사라는 정보가 녹아내리면서 하나로 통합되는 감각은…….
‘말도 안 돼!’
이카엘의 삶에서 그 어떤 열락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충격적인 희열이었다.
‘하나가 된다.’
마치 거핀의 모든 것을 정복한 느낌이었고, 또한 거핀에게 모든 것이 정복당한 기분이었다.
‘안 돼. 우리는 이러면 안 돼.’
적의 철학에 거부감이 없고, 심지어 설령 그가 틀렸더라도 모든 것을 받아 주고 싶은 기분.
“아아아…….”
거핀의 삶이 통째로 밀려들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가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슬퍼하는지,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것들까지 모두 다.
‘날 집어삼킬 심산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