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69
일말의 이성을 붙잡은 이카엘은 필사적으로 거핀을 몰아내려고 애썼다.
‘싫어. 이렇게 되는 건 싫어. 이 상태가 계속되면, 당신을 미워할 수 없어.’
거핀을 이해하게 되어 버린다.
“그만…….”
힘겹게 몸을 빼내려는 이카엘의 허리를 거핀이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운 그가 이카엘의 입술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에게 맡겨.”
진실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이카엘은 넋이 나간 상태로 움직이지 못했다.
거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으면서 벌어지고, 뜨거운 물체가 들어왔다.
“……!”
벼락을 맞은 듯 이카엘의 어깨가 전율했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천사의 육체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생물들의 행위가 그녀를 패닉에 빠트렸다.
‘축축하고, 혐오스럽고.’
너무나 불쾌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기괴한 행위를 계속 이어 가 보고 싶은 마음도…….
‘나쁜 자식.’
조금은 있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알 수는 없지만 암묵적 기준은 이미 넘어섰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거핀의 손이 이카엘의 가슴으로 올라간 순간에는 이미 통합이 끝나 있었다.
“저리 가!”
깜짝 놀란 이카엘이 두 손으로 밀자 거핀의 상체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아욱!”
아픈 표정을 짓던 거핀이 씩씩대고 있는 이카엘을 보며 윙크를 날렸다.
“너도 원하는 줄 알았지.”
“이게 무슨 짓이야!”
모든 과정이 끝나고 정신이 돌아오자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비로소 느껴졌다.
“이런 혐오스러운 짓을 하다니. 감히 네가 천사장을 능멸해? 지금 당장 죽여 주겠다.”
이카엘이 손을 들었다.
“혐오스럽지.”
거핀이 말했다.
“육체와 육체가 비벼지고, 타액과 타액이 섞이고, 기관들은 본래의 의미조차 잃어버리고…….”
생물이라는 것.
“하지만 그게 우리들의 삶이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어 나가지 못해.”
“너희들 사정 따위 알 게 뭐야? 천사는 자체로 고귀하고, 순결하며, 절대적인 존재이다.”
“어땠어?”
거핀이 물었다.
“정말로 싫었어?”
사실은.
‘잘 모르겠다.’
분명 뇌리에는 남아 있지만 기억 속의 모습은 자신이 아닌 듯했다.
“그건 네가 내 정신을 지배해서…….”
“싫지만은 않았다면.”
거핀이 말을 끊었다.
“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증거야.”
이카엘의 성광체가 흔들렸다.
“……마음?”
“그래. 어떤 혐오스러운 행위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그 어떤 단점도 완벽으로 인식되지. 헥사는 마음이다. 그렇기에 전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거핀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굳이 세계가 완벽할 필요는 없어. 무심한 신 따위는 신이 아닌 거야.”
차갑지 않아도 된다.
이카엘이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거핀이 말했다.
“이제는 내 말을 이해하겠지. 광자 신호에서 탄생한 너에게도 마음이 있다. 그것은 곧, 다르지 않다는 거야.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어.”
이카엘이 고개를 저었다.
“혼란스러워.”
모든 개념이 마음으로 통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마음이기에…….
“날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다.
‘나는 이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미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마치 망망대해의 한복판에 표류하는 듯한 이런 기분은 이카엘의 삶에서 없었던 일이었다.
거핀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거면 충분해.”
천사가, 그것도 최초의 대천사가 기준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알았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하라는 게 아니야. 어차피 그렇게 할 수도 없으니까. 지금 네가 혼란스럽다면 그게 너의 마음인 거야. 그냥 받아들여.”
이제 막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이카엘은, 아직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인간은…….’
이토록 자유로웠던 것인가?
‘가이아인.’
그리고 가장 큰 테두리에서 그 모든 자유로움을 통합시킨 유일한 종족.
“싸울 거다.”
이카엘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 말대로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면, 나의 마음은 아직 율법의 세계에 있다. 이러면 되는 거겠지?”
“물론이지.”
결과적으로 바뀐 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모든 것이 변한 것이다.
“흥.”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번뇌는 태어나는 법이니까.
하늘로 날아오른 이카엘이 떠나기 직전 거핀을 흘끗 내려다보며 말했다.
“몸을 아껴서 써라.”
그녀가 빛의 날개를 펄럭이며 지평선을 넘어가자 거핀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후우.”
오른손을 눈앞으로 가져온 그가 조금 전의 감각을 되새기듯 손끝을 까닥거렸다.
“진짜 미치겠네.”
그리고 다시 그 손으로 눈을 덮으며 끓어오른 열기를 차갑게 다스렸다.
‘루시퍼…….’
그의 마음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오메가는 시작과 끝에 담긴 모든 사건들을 하나의 신호로 시로네에게 전했다.
지금의 인류가 겪는 일들은 오메가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
‘거대한 신화가 있었다.’
이카엘과 정신적으로 통합했던 거핀은 천사의 무한 알고리즘을 분석했다.
울티마 시스템을 포기할 수 없었던 가이아인과 거핀은 헤일로를 기계에 이식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앙케 라, 신을 죽이기 위한 전략적 살상 병기 바벨이었다.
오메가 738년, 인류는 바벨을 대량생산으로 찍어 내기 위한 공장을 짓고 이를 바벨탑이라 불렀다.
“오만한 인간들이여.”
오메가 777년, 앙케 라는 천사들을 총출동시켜 바벨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세상을 이루는 원천 개념들과 그 개념에서 파생된 무수한 마라들이 바벨탑을 공격했다.
빠르게 비행하는 흑색 천사들을 바라보며 사티엘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카엘을 닮았다. 아니, 저건 이카엘이야.’
오래전에 거핀과 이카엘이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 바였다.
그렇다면 바벨의 형태가 이카엘을 닮은 것도 이해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런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천사장님과 거핀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면…….’
이카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느냐, 사티엘? 성광체가 흔들리는구나.”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온 이카엘이 무심한 눈으로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어째서……?”
사티엘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바벨의 형태가 천사장님하고 똑같은 것인가요? 적의 술수입니까,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이카엘이 차갑게 되물었다.
“수많은 가이아인들을 이 세계에서 지워 버린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바벨은 신을 위협할 물건이지만, 이카엘 또한 헥사의 본질을 깨닫고 ‘핸드 오브 갓’을 무력화시켰다.
‘그래, 단순한 거래야.’
가이아인의 울티마 시스템은 사상 최악으로 약화되었다.
단연코 이카엘의 업적이었다.
“싸워라!”
거핀의 목소리에 이어, 전장에 미라클 스트림의 빛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것을 막아 내면 우리가 이긴다!”
천사들이 가진 각각의 개념들이 미라클 스트림에 파괴되자, 바벨의 출동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아라보트와 맞먹는 높이의 바벨탑.
마라 중에는 그보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자도 있었으나, 바벨의 기능은 천사에 준했다.
“밀릴 수도 있겠는데?”
유리엘의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심했던 이카엘의 얼굴이 분노에 휩싸였다.
“내가 간다.”
아타락시아를 개방하며 지상으로 향하자 수백 기의 바벨이 날아들었다.
“같잖은 장난을!”
손으로 쳐 내고 발로 후릴 때마다, 철 깨지는 소리를 내며 바벨의 잔해물이 추락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복잡한 심경이었다.
‘조롱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모조품들을 전부 파괴한 후 지상에 착지한 그녀가 소리쳤다.
“거핀!”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거핀이 이카엘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고개를 돌렸다.
거핀의 두 눈에 불이 켜지는 것과 동시에 육체가 증발하듯 사라지고.
퍼어어어어엉!
둘의 육체가 충돌하며 발생한 충격파에 공기가 거대한 구체의 형태로 밀려났다.
가히 진공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간헐적으로 터지는 백색의 광전.
반면 초고속의 전투를 치르는 두 사람에게는 그저 외부 세계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서로의 권이 교차하면서 얼굴을 강타하고, 이카엘과 거핀이 같은 거리를 밀려났다.
“크으으으!”
동선을 따라 거핀의 안광이 길게 늘어졌다.
‘대답해 줘, 거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카엘이 2미터가 넘는 늘씬한 육체를 세우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조롱이냐? 아니면…….’
거핀에게 그녀는 어떤 의미로 정의되어 있는 것일까?
“이카엘!”
일갈을 내지르며 돌진하는 거핀의 모습에, 이카엘도 이를 악물고 튀어 나갔다.
“대답하란 말이야!”
충돌과 동시에 급팽창한 공기가 수십 톤의 바위들을 낙엽처럼 굴리며 퍼져 나갔다.
간절함의 척도 (4)
풍압에 천사의 날개를 진동시키며, 유리엘이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물었다.
“승부는?”
나지 않았다.
바람이 밀어낸 평지의 한복판에서 이카엘과 거핀은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 하아.”
강철로 만든 머리카락이 날카롭게 곤두서고, 두 눈에서는 투쟁의 이데아가 번질거렸다.
유리엘이 말했다.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거대한가?”
거핀이 삼켰던 앙케 라의 분노는 세계를 파괴할 정도로 거대한 감정이었다.
“거의 소화시켰다.”
후유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조금 전의 무위는 전성기 시절의 거핀을 연상시켰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다.’
영겁의 세월 동안 신에 대항하면서 그의 정신 또한 끝없이 단련된 결과였다.
“헥사와 헤일로를 맞바꿨지. 그 결과 울티마 시스템의 기능을 10퍼센트 아래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맥클라인 거핀.
“그때 죽였어야 했는지도 몰라. 정말로 위협적인 건 울티마 시스템이 아닌 거핀.”
천국이 얻은 이득을 근소한 손해로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인간.
“결과론적인 이야기야. 그리고 아직 진짜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지. 바벨탑을 무너뜨리면 거핀도 고립된다. 가이아인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거야.”
그 말에 유리엘은 침묵을 지켰지만,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정말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