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70
가이아인을 전멸시켜도 거핀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이어진다.’
천사의 시폭감이 닿지 못하는 까마득한 미래를 생각하면 이카엘의 역할이 중요했다.
“우리도 가자. 전쟁을 끝내야겠다.”
천사들과 바벨이 팽팽하게 맞서는 전장을 향해 대천사들이 몸을 날렸다.
이카엘은 하늘의 상황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대답해.”
거핀이 차갑게 받아쳤다.
“자꾸 뭘?”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입맞춤의 희열은, 둘 모두에게 시간을 초월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으나…….
“바벨 말이야.”
또한 천사와 가이아인의 대표로서 서로의 진영을 맹렬하게 파괴한 원수이기도 했다.
“네가 그걸 왜 신경 쓰지? 기계 쪼가리가 어떻게 생겼든, 그냥 부수면 되잖아.”
“대답하라고!”
예전의 이카엘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왜 나야? 당신에게 나는 뭐야? 당신의 마음에 무엇으로 정의되고 있는 거야!”
마음을 이해하기 전에는.
“그러는 너는?”
이카엘은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지. 왜 묻는 거지? 정말로 네가 듣고 싶은 대답이 뭐야?”
‘내가 듣고 싶은 대답.’
거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일까?
“몰라.”
이카엘이 힘없이 팔을 내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말해 봐.”
헥사를 통해 마음의 본질을 이해했으나, 그것을 던질 만한 용기는 없었다.
“나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마. 마음에 정답은 없어.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거야.”
모순적이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란.
콰르르르르르릉!
바벨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이카엘과 거핀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인류는 패했어.”
대천사들이 현저히 약해진 울티마 시스템을 뚫고 가이아인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당신만 남았다고. 우리가 소멸시킬 수 없는 유일한 가이아인이 당신이니까.”
바벨탑의 붕괴.
오메가 777년, 인류는 신에게 패했다.
“끝났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거핀이라는 가이아인이 남아 있는 한 굴복할 수는 없었다.
“…….”
거핀이 말없이 몸을 돌리자 이카엘이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당신이 숨을 곳은 없어. 어디에 있든 천사들이 찾아가서 죽일 거야. 내가 지켜 줄게.”
어쩌면 지금 이 말을 할 용기를 얻기 위해, 그녀는 치열하게 싸웠는지도 모른다.
“이번 것은 제법 괜찮군. 조금은 소리에 마음을 실을 수 있게 되었어.”
거핀이 살짝 고개를 틀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이카엘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거핀이 미라클 스트림을 발동해 모습을 감추었다.
“천사장님.”
대천사들이 도착했다.
“괜찮으십니까?”
빛으로 만든 그녀의 옷이 너덜너덜해진 것만 봐도 전투의 치열함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이카엘의 성광체에는 거핀이 남긴 마지막 말이 끝없이 맴돌고 있었다.
‘부족하다고?’
마음을 던질 수 없는 이유.
‘나는 거핀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있는가?’
거기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하는 한, 그녀의 말은 거핀에게 전해지지 않을 터였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천사장이시여.”
카리엘이 한쪽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바벨의 전리품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들의 기술을 분석하여 생명을 만들겠습니다. 천사를 따르고 앙케 라를 찬양할 것입니다.”
거핀이 헥사로 꽃을 피웠던 장면은 탄생의 대천사인 카리엘에게 영감을 주었다.
“천사를 따르고 앙케 라를 찬양한다고?”
훗날 네피림이라 불린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마음을 가진 존재가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좋을 대로 해라.”
이카엘은 경험하지 못한 일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고 있었다.
‘지금도 깨닫고 있지 않은가?’
괜찮을 것 같았거늘, 막상 거핀이 모습을 감추자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었다.
‘없다. 어디에도 없어.’
굽어보기로 행성 전체를 빠짐없이 살폈으나, 마치 증발한 듯 흔적조차 없었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이카엘의 뚫린 가슴에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
고대 도시, 에덴.
소정화를 피해 방주에 탑승한 아담과 릴리스는 작은 행성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둘의 무한한 수명은 유전으로 계승되었고, 덕분에 가이아인은 빠르게 번성했다.
“오늘도 평화로운 날이군.”
도시의 높은 곳에서 지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아담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릴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지요.”
천국을 떠나기 전 거핀이 남긴 유일한 말은, 서로를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담은 릴리스를, 릴리스는 아담만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에덴의 시민들은 모두 두 사람을 온전한 부모로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응?”
아담이 낌새를 눈치채는 순간 가이아인들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거대하게 열리더니 그 안에서 눈이 멀 정도의 빛이 쏟아져 내렸다.
“아, 아아.”
아담이 감격에 몸을 떨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친애하는 아담이여.”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음성에, 결국 아담은 무릎을 꿇고 오열하고 말았다.
“오셨군요. 드디어 오셨어.”
릴리스도 남편을 따라 무릎을 꿇었으나, 감격보다는 경외에서 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어째서?’
한참을 기다려도 거핀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아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서 내려오시지요. 당신의 뜻에 따라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동지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당신은…… 신이 되신 겁니까?”
한참이 지난 후에 거핀이 말했다.
“너의 아이들을 데려가야겠다.”
“네?”
이해하지 못한 아담이 되묻고, 릴리스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 저의 아이들, 에덴의 시민들을 어디로 데려가신다는…….”
“안 됩니다!”
릴리스가 벌떡 일어났다.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됩니다. 아담과 제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모든 것입니다. 단둘이서 시작해서, 영겁의 세월을 지나 이토록 번성한……!”
“알겠습니다.”
아담의 목소리에 릴리스가 돌아보았다.
“여, 여보.”
아담의 눈에도 슬픔이 담겨 있었으나, 그보다는 비장한 빛이 더 강했다.
“당신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데려가십시오. 필시 이유가 있는 것이겠죠.”
말이 끝나는 순간 에덴의 중심에 빛이 집중되더니 거대한 석문이 설치되었다.
문이 분해되며 빛의 구체로 변하자 릴리스가 하늘에 대고 소리쳤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여보! 저분이 가이아인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지 않소! 소정화를 피하지 못했다면 우리도 없었어!”
“차라리 그렇게 하지! 내 아이들은 못 데려가! 그 끔찍한 곳으로 다시 돌려보내지 않아!”
거핀은 말이 없었다.
“가겠습니다, 어머니.”
릴리스가 고개를 돌리자, 지상의 모든 가이아인이 눈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너희들…….”
“아주 오래전부터,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지요. 정말로 존재했군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신이 될 거라고.”
“아니야.”
릴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내 아이들이란 말이에요.”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순간, 그녀의 정신이 울티마 시스템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여, 여보…….”
어머니의 마음은 전체보다 컸던 것일까.
아담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릴리스를 제외한 모두의 생각은 같았고, 가이아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도 싸우겠습니다.”
이로써 거핀은 울티마 시스템을 부활시켜 광자계 이탈의 기회를 다시 잡게 된다.
오메가 799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
천국, 오메가 892년.
가이아인이 사라진 천국에는 아르고네스와 태성의 합작품들이 많이 생겼다.
천외종이라 부르는 것들이 넘어오고, 개중에는 독특한 지성을 갖춘 생물도 있었다.
오직 인간만 존재하지 않았다.
“제길! 제길! 제길!”
가이아인이 사라지고 세워진 제불에서, 카리엘의 짜증이 천공을 흔들었다.
“왜 안 되는 거야!”
카리엘이 발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근래 유리엘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네가 인간보다 멍청한 거 아닐까?”
“닥쳐! 내가 만든 대세계전을 봐! 바벨탑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고!”
사납게 쏘아붙인 카리엘은 실험대에 죽어 있는 천외종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네피림이 만들어지지 않아.’
천사의 능력을 받은 신인류를 만들겠다는 꿈이 장벽에 막힌 상황이었다.
“……인간이 필요해.”
유리엘이 팔짱을 꼈다.
“그럼 불가능하겠군. 이곳에 그런 건 없어. 심지어 인간 비슷한 종도 탄생하지 않고 있다.”
인간에 대한 공포라는 표현은 금기지만, 가이아인이 천국에 가한 충격은 그만큼 컸다.
“하아.”
카리엘의 성광체가 눈에 띄게 약해진 것을 유리엘은 놓치지 않았다.
‘탄생의 대천사가 거의 모든 정신력을 쏟아부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거핀은 도대체…….’
그때 대세계전이 흔들렸다.
“뭐야!”
빠르게 화면 앞으로 날아간 카리엘이 데이터를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건……!”
“하아.”
제불의 천사장실에 머무는 이카엘은 턱을 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 더 잦으시군.’
그녀의 3각 마라 아슈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지키고 있었다.
‘전쟁은 끝났다.’
천국에도 평화가 찾아왔으나, 그녀의 뚫린 가슴은 아직 아물지 못한 듯했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한심해 보이죠?”
아슈르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카엘 님이 한심하다면 온 우주가 자괴감이 빠질 겁니다.”
뼈 있는 농담에 이카엘이 피식 웃는 그때, 제불 전체에 사이렌이 울렸다.
-경고! 비정상적 율법 감지. 카르 총량 168억 4,390만. 카르 수치 100퍼센트.
아슈르가 고개를 들고 이카엘이 벌떡 일어났다
“100퍼센트?”
율법과 똑같은 수준의 옳음이었다.
-특이성 분석 중. 울티마 시스템으로 의심. 추정. 확신. 사실. 최고 방위 레벨 이지스 모드 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