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72
“그래, 상당히 까다롭지. 스톱은 쓸 수 없을 거야. 시옥이 발동된 순간에는 이미 우리가 인지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단테가 검지를 들었다.
“결국 방어 능력이야. 시옥으로 공격은 할 수 없다는 얘기. 따라서 발동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면 돼.”
“발동되기 전에? 그게 가능해?”
“보통은 불가능하지. 시옥은 즉각적이니까. 유일한 방법이라면…….”
단테는 구석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았다.
“어릿광대 피에로.”
상대의 인지를 벗어나는 비대칭의 극의는 분명 기술을 초월해 율법의 깊은 곳에 도달해 있었다.
“…….”
쿠안은 말이 없었다.
“하비츠가 시옥을 발동하기 전에 목을 베는 게 핵심입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이에요. 할 수 있겠어요?”
창이 먼저냐, 방패가 먼저냐.
“……어처구니가 없군.”
모두가 대답을 기다리는 가운데, 쿠안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멍청한 제자하고 똑같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이어지지 못한 죄 (2)
리안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아르민도 알고 있었다.
‘검의 위력에 있어서는 마하의 기사를 따를 자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기술에 국한하자면 쿠안의 무브먼트는 인류를 통틀어 최강이라 할 수 있었다.
‘하비츠의 인식을 우회하는 것. 쿠안이 할 수 없다면 누구도 할 수 없어.’
세인의 철륜안과 메이레이의 능력 ‘신의 주파수’가 더해지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설령 1퍼센트의 확률이라도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 하비츠는 그런 인물이야.’
극악을 제거하면 전쟁은 끝난다.
“가기 전에 고백할 게 있어요.”
메이레이가 말했다.
“테라포스는 기본적으로 선을 추구하는 종족이에요. 하지만 선과 악이 전면전을 벌이는 상황이 되면 더 이상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세인이 말했다.
“알고 있어. 테라포스는 인류를 심판하고, 악이 이길 경우 모든 걸 파괴한다. 물론 선이 패한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아르민이 말했다.
“선악의 전면전이 시작되면 ‘신의 주파수’ 능력도 쓸 수 없게 된다는 거군요.”
“네.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해 두고 싶어요.”
“무엇을?”
메이레이는 대답 대신 단테에게 손을 내밀었다.
“혹시 송곳이나 날카로운 게 있나요?”
책상으로 걸어간 단테가 서랍에서 서류철을 만들 때 쓰는 송곳을 던졌다.
“감사합니다.”
손잡이를 낚아챈 메이레이가 송곳 끝으로 귓구멍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규정외식 신의 주파수는 귀를 막는 행위로 발동됩니다. 세상의 파동을 차단하고 오직 테라포스의 주파수만을 받아들이는 거죠. 하지만 손으로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잡음이 섞이거든요.”
거기서 말을 멈춘 메이레이가 송곳을 귓구멍에 넣어 고막을 꿰뚫었다.
그런 다음 천천히 휘적거리자 신경이 널뛰면서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변화는 그뿐이었고, 메이레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송곳을 빼냈다.
“이제 됐어요.”
귓구멍에서 울컥 피가 쏟아지며 귓불을 타고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단지 소리를 듣는 거라면 문제가 없지만 마음의 파동은 상당히 예민해요. 오른쪽 청각을 상실시켰으니 조금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메이레이가 던진 송곳을 받은 단테가 팔을 휘두르며 피를 바닥에 뿌렸다.
오더의 역할을 맡은 세인이 시간을 확인했다.
“좋아, 그럼 출발하지. 지옥의 군대가 토르미아로 진격하고 있다. 그 전에 하비츠를 이탈시켜야 돼.”
암살 특공대가 세인을 따라 문으로 나서는 그때, 단테가 한 사람을 불렀다.
“리리아.”
“응?”
“조심해라.”
리리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 참, 걱정하지…….”
문득 깨달은 리리아가 단테에게 돌아섰다.
“오늘따라 정말 이상하네. 이런 스타일 아니잖아?”
“뭐가?”
“왜 이렇게 심각해, 세상에서 제일 쿨한 사람이? 너는 네 마음대로 할 때가 제일 멋있어.”
뺨이 살짝 붉어졌으나 리리아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감정에 휘둘리지 마. 너답게 하란 말이야. 나 무서우니까.”
갑자기 성격이 변하면 죽는다는 농담은, 율법에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그래.”
단테의 풀어진 미소를 보고 난 뒤에야 리리아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갔다 올게.”
문이 닫히고, 벽의 그늘로 돌아간 단테는 상자에 앉아 다시 담배를 물었다.
‘이루키.’
딱히 친하지도 않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술 한잔하자는 말이 맴돌았다.
“안줏거리는 있어야지.”
결정을 내린 단테가 벌떡 일어나 문으로 나서자 보안 팀의 부팀장 에나가 고개를 숙였다.
“팀장님,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생화의 가동 코드를…….”
“에나 씨가 알아서 해요.”
서류를 넘기던 에나가 고개를 들었다.
“네? 그게 무슨……?”
“로프의 모든 권한을 위임하겠습니다. 에나 씨라면 인수인계는 필요하지 않겠죠.”
생화는 화족들이 통제할 것이기에, 코드를 여는 건 누구에게 맡겨도 상관없었다.
“아, 저기…….”
이리저리 눈을 돌리던 에나는 승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였다.
“팀장님은 어쩌시려고요?”
서늘한 미소를 지은 것과 달리 단테의 눈은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전장으로.”
지하 깊숙한 곳에 숨어서 암호 쪼가리나 만지작거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열 받아서 미칠 것 같거든요.”
***
오메가 892년.
기나긴 세월 또한 개체 수를 불린 에덴의 주민들을 앞세워 거핀은 다시 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천사들도 평화를 누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
바벨을 통해 가이아인의 기술을 분석한 카리엘은 수많은 고대 병기를 만들었다.
“왜 돌아온 거야?”
분명 예전의 전쟁과는 다를 것이기에, 이카엘은 거핀의 복귀가 반가우면서도 끔찍했다.
“또 싸우겠다고? 지긋지긋하지도 않아? 한계를 인정해. 이미 인간은 패했다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게 전쟁이다.
“천국은 인간의 모든 기술을 섭렵하고 더욱 발전시켰어. 다시 붙어 봤자 결과는 똑같을 거야.”
아슈르가 그제야 도착했다.
“이카엘 님.”
숨을 고르기도 전에 거핀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마찬가지로 이를 악물었다.
‘신과 인간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는 것인가?’
아슈르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핀이 능청스럽게 두 팔을 벌리며 물었다.
“나 보고 싶었어?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 같던데.”
이카엘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그런 말이 나와? 시간이 흘렀다고 우리의 과거마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뭔가 오해하고 있군.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응?”
잠시 눈을 깜박거리며 생각에 잠겼던 이카엘이 은근히 화색을 드러냈다.
“……항복하겠다는 거야?”
가이아인이 백기를 든다면 최대한 위상을 올려 주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아니. 우리는 앙케 라를 인정하지 않아.”
자신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느낌에 이카엘이 목소리를 높였다.
“싸우러 온 게 아닌데 신이 되겠다고? 지금 나하고 말장난을 하자는 것이냐?”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거핀이 손을 내밀었다.
“가이아인의 대표로서 앙케 라와 회담을 요청한다. 나를 라에게 데려다줘.”
이카엘은 물론 이미 도착해 있던 수많은 천사들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직접…… 만나겠다고?”
“그래. 우리의 전쟁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모든 전투를 치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소모전은 하고 싶지 않아. 내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라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야.”
메티엘이 소리쳤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신을 영접하겠다고? 천사들조차 부름이 없이는 뵐 수 없는 분이거늘!”
“싫다면…….”
거핀의 눈에 불이 켜지고, 가이아인의 이데아가 거대하게 확장되며 하늘을 뚫었다.
“다시 해보는 거지, 뭐.”
대부분의 천사들이 적의를 드러냈으나, 입 밖으로 표현하는 자는 없었다.
‘아무리 천국에 승산이 있다고 해도…….’
저들은 가이아인이다.
천사들의 머릿속에, 영겁의 세월 동안 새겨진 전투의 기억들이 지나갔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마다 끈질기게 상황을 역전시켰다. 그게 가장 짜증 나는 거야.’
싸울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
천사들마다 생각이 분분한 가운데, 이카엘이 대표의 자격으로 나섰다.
“신을 부정하는 네가 신을 만나겠다고? 어떤 말로도 그분을 설득시킬 수 없을 거야.”
“할 수 있어.”
이카엘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가 남겠다.”
천사들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이카엘은 온 신경을 거핀에게 곤두세웠다.
“내가 신이 되는 것을 포기하겠어. 그 대신 남은 가이아인들은 보내 줘라. 이 정도면 협상이 될까?”
“어…….”
앙케 라의 의중을 파악하는 게 먼저라는 것을 깨달은 이카엘이 말을 멈췄다.
“좋다.”
천사장의 권력을 상징하는 아타락시아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가 증폭되었다.
“회담을 주선해 주지. 단, 회담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다.”
“충분해.”
거핀이 뒤를 돌아보자 대지를 가득 채운 가이아인들이 동시에 링크를 차단했다.
회담의 결과에 따라서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기에 천사들도 자리를 지켰다.
하늘로 떠오른 거핀이 이카엘에게 다가갔다.
“그럼 갈까?”
“흥.”
차갑게 몸을 돌렸으나 빠르게 멀어지는 그녀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하아.’
어째서 이러는 것일까?
‘이자가 사라진 뒤로, 나는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던가.’
마지막 순간에 조금 더 강하게 붙잡았더라면, 솔직하게 마음을 던졌더라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거핀이 말했다.
“할 말이 있는 표정이군.”
“그…….”
이카엘의 입술이 움직였으나, 목에 막이 쳐진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천국에 남게 되면 우리와 함께 지낼 생각이냐?”
소리에 마음을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는 그녀였다.
“흐음.”
거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그래…….”
어딘가 부족한 대답이었지만, 고개를 되돌린 이카엘의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잘 생각했다. 내가 많이 도와주마.”
거핀의 눈이 슬픔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이카엘은 아라보트에 도착했다.
앙케 라가 머무는 꼭대기 층에 도착한 그녀가 문 앞에서 부복했다.
“앙케 라시여, 가이아인의 대표인 맥클라인 거핀이 회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천천히 문이 열리더니 북을 치는 듯한 앙케 라의 박동 소리가 빠져나왔다.
둥. 둥. 둥.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심장처럼 뛰는 모습은 기괴했으나 거핀은 놀라지 않았다.
이카엘이 화색을 드러내며 일어섰다.
“회담에 응하셨다.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이야. 일이 끝나면 나를 찾아와라.”
“이카엘.”
자리를 피해 주려던 이카엘이 몸을 돌렸다.
“왜 그러느냐?”
거대한 시간을 치열하게 싸웠지만 슬픈 표정을 짓는 거핀은 처음이었다.
‘하긴. 그토록 원하던 것을 포기해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