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73
이카엘이 위로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우리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 앙케 라 님도…….”
“마음은 이어진다.”
자신의 가슴을 두 번 두드린 거핀이 검지를 펴고 이카엘을 가리켰다.
“너도 이어 갔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이카엘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으나, 거핀은 대답 없이 몸을 돌려 앙케 라에게 다가갔다.
“잠깐! 거핀……!”
그녀가 손을 내미는 순간 석문이 쿵 하고 닫히며 눈앞을 가로막았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앙케 라.”
거핀이 천장까지 닿아 있는 거대한 괴물체에게로 걸음을 옮기자 박동이 순간 멈췄다.
북소리를 내며 가죽의 중심부가 가로로 열리고, 눈알이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맥…… 찍! 클라……찍! 인……!”
사방의 신경 말단들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음성 파동을 조율했다.
“거핀.”
마침내 안정된 소리는 신의 목소리라 해도 될 정도로 웅장하고 고요했다.
“세계를 기만하고 율법을 부정한 자여, 어찌하여 나를 찾는 것인가?”
“알고 있잖아? 광자계를 이탈하겠다. 세계를 파괴하지 않을 방법이 있어. 그러니 나를 제외한 모든 가이아인들을 떠나게 해 줘.”
“불허한다.”
앙케 라는 단호했다.
“너는 시간의 모든 순간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나는 너의 말을 신뢰하지 않아.”
“그래서 당신은 신이 아닌 거야.”
아주 긴 침묵이 이어졌다.
“……무슨 뜻이지?”
“믿을 수 없다는 건 모른다는 뜻이니까. 나에 대해 모른다면 신이 아니지. 그러니 여기서 진정한 신이 누구인지 담판을 짓는 게 어때?”
“담판이라고?”
앙케 라의 동공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거핀이 두 팔을 벌렸다.
“나를 삼켜라.”
이어지지 못한 죄 (3)
둥! 둥! 둥!
수십 톤의 근육 덩어리가 박동할 때마다 거핀의 피부가 찌릿찌릿 반응했다.
박동의 리듬은 더욱 빨라졌다.
음파가 비어 있는 여백이 없을 정도로 성소가 소리로 가득 차오르더니 마침내.
둥!
마지막 울림을 끝으로 정적이 찾아왔다.
“내가 왜?”
앙케 라의 눈꺼풀이 위와 아래에서 올라와 가느다랗게 뜬 눈을 만들었다.
“나는 이 세계의 전부다. 모든 것을 정의한 존재다. 너와 협상을 해야 할 이유는 없어.”
“그렇다면 나를 정의해 봐.”
앙케 라의 위쪽 눈꺼풀이 V 자를 그렸다.
“너는 나를 정의할 수 없어. 모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르는 것, 그게 나잖아?”
헥사.
“그러니까 애먼 애들 괴롭히지 말고 둘이서 승부를 내자고. 나를 삼킬 수 있다면 이 세계는 다시 명확해진다.”
끼익! 끼익! 끼익!
사방으로 퍼져 있는 신경 말단들이 부딪치면서 소름 돋는 노이즈를 일으켰다.
‘갈등하고 있군.’
앙케 라의 동공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것을 보며 거핀은 생각에 잠겼다.
‘아쉬운 쪽은 도전자인 나지만, 앙케 라에게는 신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아카식 레코드와 울티마 시스템.
‘붙어 보자고, 누가 신인지.’
세계를 관통하는 2개의 율법이 서로를 맹렬한 기세로 압박하고 있었다.
“…….”
앙케 라가 있는 성소의 문에 귀를 가까이 댄 이카엘은 눈을 깜박거렸다.
들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으나 거핀의 마지막 말이 묘하게 뇌리에 남았다.
‘마음은 이어진다.’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이어 갔으면 좋겠다고? 대체 누구에게? 내가 마음을 이을 수 있는 존재라면…….’
이카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구나.’
현재도 천국의 넓은 곳에서는 천사와 가이아인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똑같은 전쟁을 되풀이할 수는 없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나는…… 그저 거핀이 이곳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정답은 없다.
성소의 침묵이 길어지는 만큼이나 이카엘의 마음은 초조하게 타들어 갔다.
“좋다.”
앙케 라가 결정을 내렸다.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을 허락한다. 하지만 너 또한 전체에 스며들어 의지를 잃게 될 것이다.”
거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 약속만 지킨다면. 나를 제외한 모든 가이아인을 광자계 밖으로 해방시켜 줘.”
대답이 출력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3분.
“허락한다.”
앙케 라의 사고 속도로 추정하건대, 우주에 있는 원자의 개수를 전부 세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자신만만한데?”
“너를 분해해서 세계로 되돌린다. 모든 게 나의 통제 아래에 있을 것이다.”
앙케 라의 신경 줄기가 거핀에게 다가오더니 두 다리를 감으며 올라왔다.
무릎을 지나 허리를 타고 목에 도달할 즈음, 거핀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것이 내 유일한 기회. 그리고…….’
거핀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지막 도박이다!
앙케 라의 신경 단말이 귀를 뚫고 들어간 순간 거핀의 동공에서 빛이 폭발했다.
“으아아아아!”
아카식 레코드가 울티마 시스템에 침범하면서 모든 소스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끼긱! 끼기긱!”
앙케 라의 눈동자가 말 그대로 빛의속도로 흔들리며 헥사를 해체하려는 순간.
“끼이이이이이이!”
전자기파의 굉음이 성소를 뚫고 천국 전역에 퍼졌고, 가장 큰 충격은 이카엘이 받았다.
“흐윽!”
문에 귀를 대고 있던 그녀가 흔들리는 성광체를 겨우 진정시키며 허리를 숙였다.
‘앙케 라 님의 비명.’
이카엘조차 처음이었다.
‘왜지?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문을 깨부수고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이카엘의 정신에 그런 선택지는 없었다.
“끼익! 끽! 끼이이익!”
빛으로 가득 찬 성소에서 거핀은 신경 단말에 연결된 상태로 천장까지 들려 있었다.
앙케 라는 능력을 총동원했다.
‘모든 권한은 나에게 있다.’
거핀의 생각, 의지, 정신, 모든 것을 지배했으나, 그럼에도 헥사는 분해되지 않았다.
‘어째서?’
탄생 이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혼란에 라의 신경들이 괴롭게 뒤틀렸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무한.
‘아니, 불가능하다. 끝이 없다는 것은 어떤 존재에게도 부여되지 않은 성질이다. 흡수시킬 수 없다면…….’
파괴한다.
앙케 라가 고주파를 연달아 내지르며 헥사에게 파괴의 신호를 밀어 넣었다.
쇼크를 받은 거핀의 몸이 덜덜 떨렸으나, 헥사라는 개념에는 균열조차 가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념을 전부 이용해도 헥사에 접근할 수 없었다.
‘착각만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우주 전체를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앙케 라의 사고가 거핀의 말에 도달했다.
‘어찌하여 나는 신이 될 수 없는가?’
이 순간 이 지점에서, 앙케 라의 아카식 레코드는 처음으로 오류에 직면하게 된다.
‘아니.’
해결할 수 없는 오류.
‘신은 나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주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했다.
전체를 관장하는 앙케 라가 오류의 해결이 아닌, 문제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내가 전부다!”
앙케 라가 만든 모든 개념, 즉 모든 천사들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가이아인을 처단하라! 이 세계에 발생한 오류를 모조리 제거하라!”
성광체를 통해 받아들인 목소리에 이카엘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무슨……!”
전쟁이 시작된다.
당연히 천사장 이카엘도 전장으로 나가야 하지만, 그녀의 눈은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알아야 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문으로 향하는 그녀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안 돼. 앙케 라 님의 승낙 없이는 열어서는 안 돼. 나에게 주어진 권한이 아니야.’
거핀.
성광체에 전기가 튀면서, 오래전에 들었던 거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거야.
이카엘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흐으으으!”
이빨 사이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고 표정은 구겨졌으나, 두 손은 마침내 문에 닿았다.
“신이시여…….”
천사장이 일으키는 신성모독.
“할 수 있어.”
육체의 무게를 손바닥으로 밀어 보내는 그녀가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내가 선택할 수 있어!”
쾅 하는 소리를 내며 육중한 문이 안쪽으로 밀려나고, 시야가 확 트였다.
“이, 이건?”
앙케 라의 신경에 붙잡힌 거핀이 허공에 뜬 채로 사지를 펄떡이고 있었다.
앙케 라가 신경질적으로 음파를 퍼트렸다.
“누가 성소의 출입을 허락했지?”
이카엘은 혼란스러웠다.
“위대한 앙케 라 님이시여,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어째서 거핀이 저런…….”
“가라. 가이아인을 처단하라.”
거핀이 원하던 결과는 절대 아닐 거라는 생각이 그녀의 발을 묶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거핀도 동의한 것입니까? 아니면 회담에서 불손한 짓이라도…….”
앙케 라가 눈을 치뜨자, 핏줄이 솟아오르고 모든 신경이 마하의 속도로 대기를 긁었다.
“가아아아아아! 칵! 칵! 카카카! 칵칵! 칵!”
파동이 끔찍한 노이즈를 일으키자 성광체가 펑 하고 먼지로 폭발했다.
잠시 백지상태로 변했던 이카엘은 성광체가 복구되자마자 돌아서서 날개를 폈다.
‘뭔가 잘못되고 있어!’
최초의 생각을 받아들인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대치 장소로 날아갔다.
“죽여라! 가이아인을 섬멸해라!”
수많은 천사들이 공중을 날아다니며 가이아인에게 폭격을 퍼붓고 있었다.
사티엘이 소리쳤다.
“잠깐 기다리세요! 이건 뭔가 이상해요! 저들은 싸울 생각도 없잖아요!”
앙케 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마지막 말이 뇌리에 꽂혔다.
‘싸울 생각이 없다고?’
지상을 살피자 울티마 시스템조차 발동하지 않은 가이아인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지?”
동족이 죽어 가는데도 흔들림이 없는 눈빛을 본 순간, 퍼뜩 깨달았다.
‘거핀의 뜻이 아니야.’
아타락시아가 펼쳐졌다.
“그만! 공격을 멈춰라! 착오가 발생했다! 모든 천사는 내 앞으로 복귀하도록!”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제거하라! 인간은 오류다! 제거해!”
쾅! 쾅! 쾅! 쾅!
천사들의 공격이 막무가내로 지상을 폭격하는 광경 앞에서 이카엘은 망연자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