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76
노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야. 거핀이 무슨 짓을 했든, 내가 판단했고 선택한 일이라고.”
가이아인은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다.
“사기꾼이라니.”
청동상 앞에 도착한 노인이 고개를 쳐들고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가기 전에 기가 막힌 농담을 들었어!”
블랙 엘릭서의 액체가 유리구를 가득 채울 때까지 그는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그것은 이카엘의 눈에 한 치의 의심 없이 죽음을 선택한 마음이었다.
***
마치 이카엘의 마음처럼 달은 차고 기울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처소에서 몸을 웅크린 채 하염없이 울고 있는 이카엘의 어깨가 떨렸다.
“흐으으으!”
두려움.
이 세계를 양분하는 두 가지의 거대한 율법 사이에 끼어 짓뭉개지는 상상을 했다.
“신이시여, 저는 어찌하면 좋습니까.”
마음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이카엘의 소멸을 포함한 전부를 잃는 것일 수도 있었다.
-속은 시원하잖아.
노인의 말은 참으로 속 편한 소리였지만, 한편으로는 이것 외에 더 나은 표현도 없는 듯했다.
미칠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백경에서 결정된 안건을 보고하기 위해 많은 대천사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양자택일의 갈등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이카엘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허억!”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남이 생각을 주입한 것처럼 충동적인 확신이 밀려들었다.
“……거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덧 아라보트의 성소로 날아가고 있었다.
‘문을 연다!’
성소의 문을 단번에 열어젖힌 행동은, 의지가 꺾이는 게 소멸보다 두려웠기 때문에.
“이카엘, 어찌 된 일이냐?”
앙케 라가 거대한 눈을 뜨고 바라보았지만, 이카엘의 시선은 공중에 떠 있는 거핀에게 향했다.
“아아.”
눈물이 왈칵 치솟았다.
“대답해라, 이카엘. 나는 너에게 이곳의 출입까지 허락하지는 않았을 텐데?”
앙케 라와 한마디라도 나누는 순간 원하는 미래가 바뀔 것 같아서.
이카엘은 곧바로 날아가 거핀과 연결되어 있는 앙케 라의 신경을 잘랐다.
앙케 라의 눈에 핏대가 일어섰다.
“너……!”
율법에 없는 결과.
절대적인 존재에게 가한 최초의 물리적 충격은, 이카엘의 정신마저 혼미하게 만들었다.
“이카엘!”
“흐윽!”
성소를 뒤흔드는 날카로운 노이즈를 이를 악물며 참아 내고, 그녀는 최고 속도로 아라보트를 벗어났다.
‘멀리! 더 멀리!’
앙케 라의 눈을 피할 곳은 우주에 없지만, 그녀가 찾는 곳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장소였다.
해발 6천 미터에 달하는 산맥을 발견한 그녀는 곧장 낙하하여 으슥한 동굴로 들어갔다.
성광체가 어둠을 몰아내고, 거핀을 바닥에 눕히자 그의 눈에 점차 초점이 돌아왔다.
“거핀!”
전부를 걸고 되찾은 만큼이나 이카엘의 목소리는 간절했으나, 거핀은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엄청난 세월 동안 앙케 라에게 지배당한 상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긴…… 어디?”
비로소 새어 나온 거핀의 목소리에, 이카엘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정신이 드느냐? 나다, 이카엘. 알아보겠어?”
거핀의 풀린 눈동자가 이카엘의 얼굴을 부분적으로 더듬었다.
“……이카엘?”
이카엘은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래.”
“왜 네가…… 나를…….”
거핀의 말이 그녀의 마음에 가시처럼 박혔다.
묻고 싶었다.
어째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는지, 루시퍼와의 거래는 무엇인지, 그때의 입맞춤은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거핀…….”
이카엘은 거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
천천히 소리를 내뱉는 그녀의 뺨을 타고, 빛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사랑한다.”
마음을 던진다.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상관없어. 내가 사랑하니까. 나는 너와 이어지고 싶다. 네가 아니면 안 돼.”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카엘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흐음.”
다시 고개를 번쩍 들자 거핀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100점 만점에…….”
아직 정신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거핀은 또렷한 발음으로 내뱉었다.
“100점이야.”
이카엘의 얼굴에 화색이 피었으나, 이내 자중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너의 대답인 것이냐?”
거핀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예의가 아니지.”
그리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얼굴을 이카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나도 사랑해.”
이카엘의 눈에 전기가 번쩍 튀었다.
“언제부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도 너와 이어지고 싶었어. 정말로 간절하게.”
울상을 짓던 이카엘이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아. 아아아.’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앙케 라, 신이시여.
‘죄송합니다.’
마음이 율법을 어지럽힌다고 해도, 설령 이 모든 게 착각이라고 해도.
‘저는 이 착각이…….’
거핀을 와락 끌어안은 이카엘의 얼굴에 빛처럼 순수한 웃음꽃이 피었다.
‘너무나 좋습니다.’
착각일지라도 (2)
***
하비츠 암살 임무를 맡은 세인 팀은 지옥의 군대가 진격하고 있는 데난 평야를 질주했다.
‘시간이 애매하겠군.’
세인의 눈에 빛의 고리가 켜지더니 하늘 저편에 거대한 2개의 광륜이 탄생했다.
‘철륜안, 일월광륜.’
2개의 광륜이 서로를 향해 모여들어 하나로 합쳐지자 세상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이 밀어내는 듯 전방의 풍경이 빠르게 밀려들자 에덴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것이 철륜안.’
하늘이 밤처럼 어두운 곳에 오직 빛의 고리만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할 수 있어. 이것으로 하비츠를 막는 거야.’
광륜이 떠 있는 반경 내의 모든 물리적, 정신적 요인을 통제하는 능력.
아마도 하비츠는 낙석이 떨어지는 한복판에 있어도 죽지 않을 테지만…….
‘만약 중력을 조절한다면 어떻게 될까?’
불사의 미래는 깨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특정 인자를 강화하기 위해 세인이 포기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과 육체일 터였다.
‘그래서 내가 팀에 있는 거야.’
방어 마법의 스페셜리스트인 에덴은 보호 대상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했다.
‘컨트롤 타워를 지킨다.’
에덴이 투지를 끌어올릴 무렵, 아르민은 건너편에서 달리는 쿠안에게 다가갔다.
“괜찮겠어?”
“검사는 확률을 따지지 않아.”
“아니, 시이나 말이야.”
쿠안의 눈썹이 꿈틀했다.
올리페르 시이나는 여전히 크레아스 도시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시온에 비하면 가까운 거리.
하지만 쿠안은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왜 그녀에게 가 보지 않았지? 이 전투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데.”
“불쾌하군.”
쿠안이 눈에 힘을 주며 아르민을 돌아보았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그리고 당신만 그녀를 걱정하는 게 아니야.”
아르민이 상아탑의 주민 케이라와 만나는 사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이번 작전이 실패하면…….”
쿠안이 말했다.
“어차피 토르미아 왕국은 멸망한다. 반대로 하비츠를 죽이면 전쟁은 끝나지. 그게 전부야.”
세인이 전방을 가리켰다.
“온다.”
말 그대로 지평선의 끝과 끝을 가득 채운 마족의 군대가 돌진하고 있었다.
“하비츠는?”
메이레이는 더 이상 귀를 막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듣고 있어요. 를 끼세요. 아, 그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할게요.”
메이레이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도청 대상은 하비츠입니다. 정상적인 소리일 거라는 생각은 버리세요.”
무슨 뜻인지 즉각 이해한 일행은, 긴장한 표정으로 반지로 가공된 를 꼈다.
메이레이가 듣고 있는 하비츠의 마음의 소리가 모두에게 환청처럼 들렸다.
에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이건……1”
한 인간의 마음을 엿듣는다는 것도 생소한 경험이지만, 구도자의 삶을 살면서 인간의 탁한 모습들을 많이 봐 왔기에 나름의 각오는 하고 있었다.
‘이럴 수는 없어.’
지금 듣고 있는 소리가 정말로 인간의 마음 안에서 태동하고 있는 것이라면…….
‘지옥이다.’
이 세계는 지금 당장 스스로 목을 베어도 억울할 것이 없는 고통의 산실이었다.
모두 같은 감정을 담은 표정이었고, 차가운 쿠안조차 한쪽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안 돼.”
하비츠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에덴이 모두에게 소리쳤다.
“돌아가야 해요!”
하비츠가 아닌, 하비츠의 생각을 막아야 한다.
“이미 늦었어.”
쿠안이 오히려 속도를 높일 것을 주장하자 세인이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강행한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 잘하는 것을 하면 되는 거야.”
꽃밭에 남아 있는 토르미아 군대와 성전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적군이 일으키는 땅의 진동이 느껴지는 순간, 세인이 지시를 내렸다.
“지금.”
아르민의 안대에 가린 눈에서 빛이 뿜어지면서 스톱 마법이 발동되었다.
직경 4킬로미터에 달하는 영역의 시간이 멈추었으나, 군대를 전부 가두지는 못했다.
스피릿 존의 경계선에 충돌한 마족들이 얼어붙자 뒤를 따르는 부대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뭐야!”
거대한 관성은 백만에 달하는 군대를 추가로 스피릿 존에 처박고 나서야 사라졌다.
아르민이 말했다.
“전부 가두지 못했어.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해.”
세인은 단단하게 얼어붙은 마족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달렸다.
‘현재 우리는 질량이 없다.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어.’
정보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계에 들어오는 신호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찾았다.”
마족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하비츠가 뒷다리를 박차고 있는 상태로 얼어붙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리리아가 등에 메고 있던 통에서 박달나무 토템을 여러 개 꺼내 들고 뛰어올랐다.
‘하비츠를 이탈시켜야 해.’
그 순간, 세인은 똑똑히 보았다.
‘저게 뭐지?’
밀랍 인형처럼 생기가 없는 하비츠의 한쪽 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